<운동회와 새끼 돼지>/구연식 그 옛날의 운동회 날은 10월에 주로 했는데 한글날이나 개천절에 행사를 하여 수업의 결손을 막고 지역 주민이 쉬는 공휴일로 정하여 많이 참석하도록 한 일련의 방법으로 생각된다.
세월은 흘러 고등학교 시절에도 초등학교 운동회 행사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모양 그대로 지속되었다. 어느 해 인가 그때 운동회도 개천절로 기억이 된다.
그날이 공휴일이어서 나는 집에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가정경제의 부가가치 창출을 아버지는 돼지를 기르고 새끼를 내어 토실토실하게 키워 시장에서 파는 수입원이 큰 몫을 차지했고, 당연하게 아버지는 상당히 전문가셨다.
돼지우리 바닥은 시멘트로 시공을 해야만 돼지의 천연 습성인 주둥이로 땅을 파헤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으며 돼지우리 청결을 위해 청소하는 데 최적이다.
돼지우리 막은 가랫장에 어른 팔뚝 정도 굵기의 통나무를 어미돼지가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대못으로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단단히 박아 둔다. 그렇게 해야 힘센 돼지가 밀고 나오려 해도 대못의 방향과 돼지가 미는 힘의 방향이 같아서 통나무는 끄떡없다.
이렇게 돼지우리를 만들어 놓아야 통풍이 잘되어서 돼지우리는 언제나 뽀송뽀송하고 열이 많은 어미 돼지에게 선선해서 좋다. 또 어미돼지가 새끼를 낳으면 새끼돼지들은 헐렁한 돼지우리의 통나무 사이로 들랑날랑하는 유일한 출입구이다.
이때 어미돼지는 새끼돼지들을 일일이 냄새를 맡아서 자기 새끼가 아니면 바로 물어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새끼돼지가 가축병원을 갔다 오거나 영양상태가 부실한 경우에는 따로 격리해 죽을 쑤어서 먹이는데 어느 경우이든 잠깐이라도 어미 곁을 떠나서 다시 우리에 넣을 때는 어미의 오줌을 새끼 몸에다 듬뿍 발라서 넣어줘야 어미가 자기 새끼로 인식하여 아무 탈이 없다.
그 해에도 돼지 새끼는 아홉 마리로 기억된다. 아버지는 동생들 초등학교 운동회 구경을 가시면서 오늘 집에서 돼지 새끼 감시를 잘하라고 몇 번이고 당부하시고 운동회 학교로 가셨다.
나는 “예”하고 돼지우리를 대충 훑어보니 어미돼지는 누워있고 새끼들은 2열 횡대로 엎어져서 어미젖에 매달려 열심히 빨며 숫자도 얼핏 보아 맞는 것 같다. 나는 안심하고 햇살은 따갑고 그늘은 시원해서 문턱을 베개 삼아 잠을 청하니 금방 꿈속으로 들었다. 한참 낮잠을 곤히 자는데 별안간 돼지 새끼 우는 소리에 잠이 깨어 벌떡 일어나서 돼지 새끼를 세어보니 세 마리가 없어졌다.
정신이 번쩍 들어 평소 잘 드나들었던 앞·뒷밭을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앞 밭의 수수밭으로 갔다. 세수 대야를 방망이로 세게 치면 그 소리에 놀라서 새끼들이 수수밭 밖으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세숫대야가 깨지도록 쳐도, 돼지 새끼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세숫대야 소리에 돼지 새끼들이 놀라서 야생의 본능처럼 수수밭 덤불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있을 것 같아 세숫대야는 치지 않고 수수밭 고랑에 앉아서 돼지 새끼 움직이는 소리를 탐지하기로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돼지 새끼 소리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고 어느 불쌍한 오누이의 전설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수수밭 전체가 붉은 호랑이 피로 얼룩진 수수 잎들의 흐느끼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혹시 이웃집 다른 어미돼지한테 갔을까 확인하려고 이웃집을 담장 사이로 가보니 돼지 새끼는 보이지 않는데 가끔 꿀꿀대는 새끼 돼지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집 꼬마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 집 돼지 새끼 혹시 갔느냐고 외쳐 봐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서 대문 쪽으로 가서 확인하려는 순간에 누가 안에서 돼지 새끼가 오긴 왔다는 대답이었으나 그쪽도 지금 한참 달콤한 낮잠을 즐기는데 왜 깨웠냐는 식의 볼멘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미안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돌아서려는데, 때는 오후 서너 시쯤이어서 대문 벌어진 틈에 햇빛이 그 집 예쁜이의 눈과 그리고 머리카락이 동시에 클로즈업되어 보였다.
가을바람은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부채질하였고, 눈은 햇빛의 입사각을 바로 반사각으로 내 눈에 그대로 쏘아 순간 나는 멍하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상대방이 그 집 예쁜이라는 직감이 되었고, 담벼락 안쪽의 사람도 내가 남학생이라는 것을 사전에 감지한 것 같아서 쉽게 말하지 못하고 얼버무린 어투로 자기 집에 돼지 새끼가 왔으니 가져가라는 답을 보낸 것으로 생각된다.
예쁜이는 부끄러워 눈을 내리깔고 있었으나, 상대방 표정이 궁금했는지 호기심이었는지 순간마다 위로 치켜세우며 슬쩍슬쩍 보곤 했다. 나는 그때마다 얼굴은 붉어지고 가슴은 콩닥거려 돼지 새끼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어스름할 때 아버지는 그 집에 가서 돼지 새끼는 모두 가져왔지만, 지금도 가을 하늘에 만국기가 펄럭이는 초등학교 운동회를 보면 책갈피로 끼워둔 노란 은행잎처럼 대문 사이 예쁜이의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수수밭의 붉은 호랑이 피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