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삶의 변화
누가복음 19:1-10
들어가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에게는 반드시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온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났는데 어찌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여전히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듯 보이는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어쩌면 아직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면 평생 교회를 다녀도 참된
신앙인이 되지 못하고 단지 교회를 다니는 사람으로 머물러 있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을 만나 그 삶이 송두리째 변화된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삶 전체가 변화되기를 소망합니다.
성경 속으로
1. 예수님이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실 때 한 사람과의 의미 있는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사람은 누구였으며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2, 7절)
2절을 봅시다.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예수님이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실 때 만난 사람은 삭개오였습니다.
그는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입니다. 7절도 봅시다.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삭개오는 마을 사람들에게 죄인으로 알려진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예수님 당시 세리들은 멸시와 미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세리들은 요즘의 세무 공무원과는 다른,
로마 제국으로부터 세금 징수를 허락받은 브로커에 가까웠습니다.
그들은 대개 로마로부터 부여받은 세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정해진 세금만 납부하고 나머지는 착복했습니다.
많은 양의 세금을 뜯어내기 위해 물리적인 방법도 동원했습니다.
그러니 당시 유대 사람들은 로마 사람들보다 세리를 더 미워했습니다.
마치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앞잡이들을 더 미워하고 경멸한 것과 유사합니다.
복음서에는 ‘세리와 죄인들’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세리는 죄인들 못지않게 당시 유대 사람들이
가장 경멸하던 부류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으니까 얼마나
경멸을 받았겠으며 손가락질을 당했겠습니까?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삭개오는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2절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고 했는데,
부자이긴 했으나 주위에 사람이 없는,
도리어 사람들에게 멸시와 경멸을 당하던
사람이 바로 삭개오였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삭개오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삭개오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3-6절)
3-4절을 봅시다.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삭개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여리고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삭개오가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했기 때문에 만나고자 했는지,
혹은 예수님이 당시 많은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에 단지 유명인으로서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는지는 분명히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단지
호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보러 많은 사람이 모였고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삭개오는 무리 사이에서는
예수님을 전혀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가 나무에 올라간 것입니다.
유대 사회는 예전 우리나라 못지않게 체면을 중시합니다.
삭개오가 세리장이었다고 했으니까 어느 정도 나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키는 작고 나이도 지긋한 사람이 나무 위에 올라가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삭개오는 세리장으로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가 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은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이나 형편을 모를 리 없는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님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 삭개오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겠습니까?
5-6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예수님은 삭개오가 올라간 돌무화과나무 아래에 이르시자 삭개오를 쳐다보셨습니다.
그리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이름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삭개오를 알고 계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여리고로 들어오신 것이 사실 삭개오를 만나기 위함이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보고 싶어 한 삭개오에게 예수님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예수님과 삭개오의 의미 있는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제각각 다른 사연, 다른 이유로 예수님을 만났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와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먼저 손을 내미신 분은 우리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찾으셨고
우리가 예수님을 부르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은혜로 다가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신 삭개오는 예수님께 무엇이라 말씀드렸습니까? (8절)
8절을 봅시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모신 후에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에게 드린 말씀을 보면 그가 두 가지를 결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재물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는 일과 같은 악행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세리는 세금을 징수하면서 부당한 일을
저지르고 자신의 재산을 불려나갔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으니 얼마나 더 심했겠습니까?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경멸과 미움을 받았는데,
그런 사람일수록 더더욱 다른 사람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자신은 가진 것에 집착하는 법입니다.
아마 삭개오에게는 돈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을 느낄 때마다 이렇게 외쳤을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 봐야 너희는 가난한 놈들이야.
내게는 돈이 있어. 돈이 있는 한 너희가 어떤 식으로 나를 대해도 괜찮아.”
삭개오는 돈에 집착했고, 결국 돈에게 지배받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자신의 삶을 지배했던
그 돈으로부터 자유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돈이 삭개오의 주인이었다면,
이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삶을 다스리시는 주인이 되셨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이 삭개오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변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면,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모든 생각과 감정과 말과 행동을 다스리셔야 하고,
나의 시간과 물질을 다스리셔야 합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삭개오처럼 자연스럽게,
또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지금까지 내가 붙들고 살았던 것들,
내가 집착했던 것들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삭개오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무엇을 선포하셨습니까? (9-10절)
먼저 9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삭개오가 구원받았다는 뜻입니다.
삭개오가 가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말한
그 자체 때문에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삭개오가 변하기로 결단한 것은 그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인격적으로 만났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입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삭개오가 구원받았다고 예수님이 선포하신 것입니다.
10절을 봅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와 관련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님이 찾아서
구원하시려는 사람들이 모두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 삶이 변화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삭개오처럼 삶을 지배하고 있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까?
다른 그 무엇이나 그 누군가가 아니라 예수님이 진정한 주인이십니까?
부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우리 삶이 전적으로 변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내 삶의 진정한 주인임을 고백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생각합니까?
언제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지 나누어 보세요.
예수님을 만난 이후 내 삶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예수님으로 인한 변화가 더 크고, 더 깊게 일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습니까?
한 주간의 실천/ ‘내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한 사람 이상에게 들려주기
마무리하며
삭개오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돈에 얽매여 살던 인생, 돈을 위해 다른 사람을 탈취하던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서 돈에서 자유하게 되고 사람들을 돕고 섬기며 살게 되었습니다.
상상하기 힘든 변화가 일어나게 된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기를, 그럼으로써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예수님으로 인한 변화를 경험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찬송: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