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 밭에서 따온 풋고추에 된장 듬뿍 찍어 차가운 물에 말은 밥과 함께 우적우적 먹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생각만 해도 입가에 웃음이 날 것이다.
우리의 식탁에서 고추가 없는 상상을 해본적인 있는가 ?
도입 시기는 불과 몇 백 년에 불과하지만 양념채소로서의 위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전 세계 인구의 75% 정도가 고추를 먹고 있으며 꽃의 색이나 열매가 달리는 방향, 매운맛의 정도가 다른 다양한 품종들이 재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년생이지만 열대지방에서는 다년생으로 자란다.
고추의 원산지는 중앙 및 남아메리카로 BC 6500년경 멕시코 인디언 유적에서 오늘날 재배되는 종과 같은 종이 출토되었다. BC 11세기경의 페루의 해안지대 무덤에서는 고추관련 유적이 발견되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이전부터 잉카족, 오르멕족, 토르텍족, 아즈텍족 등의 언주민들은 고추를 재배하고 있었다. 콜럼버스가 카브리해의 섬에 도착했을 때 ‘아히(aji)’라고 불리던 고추를 알게 되어 스페인으로 가지고 왔는데 지금도 스페인에서는 고추를 ‘아히’라고 부른다. 고추의 영문인 ‘Red pepper’는 콜럼버스가 인도를 발견했다는 증거로 후추를 내놓아야 하는데 가져오지 못하여 붉은 고추를 내놓으며 후추(Black pepper)와 구별하기 위해 붙임 이름이다. 또한 고추를 ‘칠리(chili)’라고 하는데 칠레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스페인에서는 아주 매운 것을 ‘칠리’라고 부르는데서 유래한 말이다.
고추는 1493년 스페인에 전해진 후 유럽과 열대지방, 아열대 지방으로 빠르게 전파되었고 17C에는 많은 품종이 만들어 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재배가 되고 있다. 고추의 매운 맛은 유럽인들의 기호에 맞지 않았고 매운맛이 적은 피망과 파프리카 같은 품종들이 퍼져 나갔다.
‘피망’은 스페인어 ‘피멘토’의 프랑스어 발음으로 원래는 ‘자극적인 향신료’라는 의미이다. 파프리카는 그리스어 ‘페페리’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발칸반도로 전해지며 피페루케, 페페루케, 파파루카로 불리다가 파프리카로 정착되었고 헝가리로 전해질 당시에는 매운맛이 강했으나 매운맛이 없게 개량되었다. 사실 피망과 파프리카는 식물분류학적으로 같은 작물이다. 우리나라 원예학회에서는 매운맛 고추와 구별하기 위해 피망은 ‘단고추’ 로 색이 다양한 파프리카는 ‘착색단고추’로 분류하였다.
우리나라 고추 전래설은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남쪽 오랑캐가 전해준 매운 채소라는 의미의 ‘남만초’와 독이 있으며 일본에서 건너온 의미의 ‘왜겨자’의 명칭이 쓰여 진 근거로 임진왜란 전후에 도입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왜초, 고초, 단초, 만초, 초초 등의 명칭으로 나타나고 있다. 《순조실록》에는 1823년 홍주 고대도(현재 보령시 오천면 삽시도리에 있는 섬)에 정박한 영국 상선이 여러 가지 식량에 쓸 물품을 요구하여 보내 준 품목 중에 고추 10근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일반적인 식재료로 이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추 사랑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 보다 유별나다. 서양에서는 소스 형태로 발전되어 이용되어 왔지만 우리의 고추장과 고춧가루는 일상의 식재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고추장은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우리의 식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고추는 피망과 파프리카를 포함하여 3,000만톤 이상이 127개국에서 생산되는데 90% 이상이 풋고추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7위의 생산국이고 건고추의 국민 1인당 소비량은 3kg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고추품종만도 3,500종이 넘는 것을 보면 고추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농촌의 노령화와 기계화가 어려운 조건으로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는 반면 수입량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건고추 자급률이 2000년에는 84% 수준이었으나 2021년에는 53%까지 떨어졌고 최근 5년간 자급률은 45%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고추에는 Vit A, C, E, K가 풍부하며 Vit C는 다른 채소나 과일에 비하여 월등히 많이 함유하고 있다. 헝가리 과학자 엘베르트 센트죄르지는 고추에서 Vit C를 다량으로 분리하는 방법을 성공하여 1937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매운 맛을 내는 캡사이신은 항균, 항암, 항비만 등의 효과가 있는 생리활성 물질이다.
미국의 화학자 스코빌은 고추의 매운 맛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기 위하여 스코빌지수(SHU / Scoville Heat Unit)를 개발하였다.
고추 추출물의 매운맛이 느껴지지 않으려면 설탕물을 몇 배로 희석해야 하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로 원래는 사람이 직접 맛을 봐서 측정하였으나 개인의 주관이 개입되어 기준이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최근에는 측정기계를 이용하여 캡사이신의 양을 측정한다. 고추의 매운 맛인 순수 캡사이신은 1,500∼1600만 SHU, 청양고추는 4,000∼10,000 SHU, 태국 쥐똥고추는 50,000∼70,000 SHU 정도이고 인도에서 혼이 나갈 정도로 맵다고 하여 유령고추로 불리는 부트졸로키아는 100만 SHU 정도이다.
고추를 먹으면 느끼는 매운 맛은 사실은 혀가 느끼는 통증이다. 이 통증을 잊기 위해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과 같은 기분이 상쾌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너무 맵게 먹거나 많이 먹으면 위에 부담이 가겠지만 !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 전통식단과 식재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고추가 기본적으로 쓰이는 김치나 장류와 같은 발효음식은 슬로푸드와 로컬푸드의 대명사로 여긴다.
캡사이신의 기능성은 의약품 원료로도 이용되지만 다이어트 제품은 일본, 영국,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제품이 팔리고 있다.
고추는 자급률이 비록 45%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우리나라에 도입된 이래 밥상의 혁명을 불러온 작물이다. 우리나라는 최고의 생산기술과 인력을 보유한 장점을 가지고 있고 전통문화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2022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조사한 결과 91%의 소비자가 국내산 고추를 구매하겠다고 하였다. 다른 농산물보다도 국산 선호도가 월등히 높은 품목이다.
한국 고추는 국내 시장에만 머물러 있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종자 수출은 물론 관련 식품까지 세계를 향해 날아오르는 K-Food의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