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에서 9시 10분 발 KTX를 타기 위하여 새벽같이 친구 K와 함께 집을 나섰다.
수 십년 만에 발을 드러선 용산역은 옛날의 허름한 모습은 찾을 수 없이 현대적 모습으로 단장이 되어 격세 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인 모양이다.
처음 타 본 KTX의 실내는 예상보다 고급스럽지는 못했다. 그동안 신문이나 TV를 통해 들은 바 대로 좌석이 불편하고 분위는 우중충했다. 어쨋든 열차는 광명을 지나 아산을 지나면서 시속 300km를 돌파하며 그 위력을 과시한다.
2시 30분이 되어 열차가 목포역에 도착 하자 마자 삼악도의 요트 선착장에 있는 표선장을 찾아가 요트를 정리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그의 눈은 충혈이 되어있었고 입술은 다 터져 짖물러 있는 것을 보니 지난 밤 항해를 하면서 그가 얼마나 고생을 하였는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그는 그 때까지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했으나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내가 했어야 할 고생을 대신 해준 편인 그에게 말할 수 없는 염치를 느낀다.
지난 밤 추자도를 떠나 단독으로 목포를 항해하던 표선장은 4-5미터의 파도와 싸워가며 15시간에 걸쳐 목포항에 아침 8시에나 도착 하게 되었다고 했다. 날씨만 좋으면 10시간이면 올수 있는 거리를 5시간이나 더 걸려 온 것이었다.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이 시절이면 항상 바람이 많은 편으로 예측하기 힘든 돌풍을 만나기 십상이어서 조심해야 하는데 바로 그 돌풍을 만나 생고생을 한 것이 었다. 그날 밤 해남 앞바다에서 어선이 실종된 사고도 있었다고 하니 그나마 무사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야간 항애를 하는데 가장 어려움은 추위라고 했다. 요트의 특성상 난방이 충분치 못 할 뿐 아니라 cock pit(요트의 뒷쪽에 있는 갑판으로 이곳에서 대부분의 일이 이루어 진다.)에 서서 요트 조정을 해야 하므로 추위에 온몸이 노출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온이 잘되는 옷을 입기는 하지만 바다의 차고 습한 바람을 계속 받으며 항해 한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3-5일간의 항해를 위해서 우리 일행은 먹을것과 연료등 필요한 갖가지의 물품을 사는라 몇 시간을 목포 시내에서 보냈다. 비록 몇일 간이지만 바다 안에서 요트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살아가기 위한 생필품들, 그것은 항해에 있어서 안전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동안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버티어 오다 막상 물건을 챙기며 현실감을 느끼게 되면서, 더우기 피로에 지쳐 힘든 몰골의 표선장을 대한 이후부터 은근히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밤이면 영하의 살을 파고드는 추위와 심한 풍랑으로 인한 멀미를 견디어 낼 수 있을지 영 걱정이 되었다.
한 짐은 될만큼 많은 물품을 요트 안에 정리하며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항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오십을 넘기면서 건강이 예전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사십 대만 해도 그날의 피로는 하루만 자고나면 거뜬 했었지만 지금은 심하게 피로가 쌓이면 몇일이 지나야 걷힐 정도로 회복이 느린 편이었다. 만일 밤낮을 통해 무리하게 항해를 했을 때, 비록 표선장 자신은 상관 없다고 하지만 항해에 초심자인 친구와 나의 입장은 이십 년이나 연배의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오랜 항해로 단련된 표선장과는 사뭇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나와 친구 K의 사정을 하듯 한 의견대로 우리는 낮에만 항해를 하고 밤은 항구에 정박해서 쉬어가며 항해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일요일인 탓에 밤새 목포 시가지를 돌며 겨우 멀미약과 귀미태를 구해 숙소에 돌아와서 우선 귀미태를 붙이고 눈을 붙였다. 기차를 타고 목포에 온 후 종일 분주하게 움직인 터라 고단한 탓에 금방 골아 떨어져 나는 바로 꿈나라로 직행하였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콩나물 해장국으로 요기한 후 다시 주유소에 들러 경유 다섯 통을 사들고 요트 정박지로 갔다. 파르스름한 목포 앞바다는 그다지 크지 않은 파랑이 일고 있었지만 아직도 북쪽에서 불어 오는 바람은 살을 애이는듯 차가웠다.
요트에 경유를 가득 보충한 후 시동을 걸고 목포 앞바다를 향해 출항을 했다.
선미에 메어 달린 태극기가 바람에 팔랑인다. 선수 쪽 좌측 위로는 유달산이 아침 햇빛을 받아 기암 절벽을 드러내며 자태를 뽐내듯 그 수려함을 자랑하고 있었고 왼쪽에는 반도처럼 길게 이어진 목포항의 자연 방파재 역할 담당하는 섬자락이 그 풍광을 드러내고 있었다.
비록 바람을 안고 항해해야 하기 때문에 쎄일을 올릴수는 없어 엔진으로 항해를 해야 했지만, 아침 바람을 뚫고 항해하는 느낌이 생견 스러웠다. 내게 있어서 사실 상 대양을 향한 처녀 출항인 터에 그 시작의 느낌이 좋은 아침이었다.
좌우의 섬 끝자락과 방파재 끝에 세워있는 하얀 등대와 빨간 등대, 항해의 규정 상 입항하는 위치에서 하얀 등대는 항구 입구의 왼쪽을 표시하는 것이고 빨간 등대는 오른쪽 입구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 사이를 지나면서 서서이 파도가 커지기 시작 했다. 너울이라고 했다,
너울이란 파도와 달리 밀려오는 파도가 아니라 그냥 제자리에서 넘실 거리는 파도를 말한다. 밀려오는 파도가 아니므로 바닷물이 배를 치고 들어 오지는 않지만 물 위에 흔들리는 낙옆처럼 너울을 지나 올때면 배는 너울을 따라 두둥실 떠있는 오뚜기처럼 뒤뚱거리며 항해를 하게 되므로 오히려 멀미를 더욱 느끼게 된다고 한다. 물론 배의 속도도 마치 언덕을 오르는 형상이 되어 속도가 나지 않는다.
5 노트의 속도로 항해하던 우리의 Orion은 너울이 2-3미터에 이르면서 그 속도가 2-3노트로 뚝 떨어지고 있었다.
점점 목포항이 멀어지며 눈 앞에는 신안군의 수 많은 섬들이 하나 하나 눈에 들어 오고 있었다. 날씨는 구름은 끼었지만 비교적 맑은 편이어서 섬의 식별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은 편이었다. 혼탁해 보이던 바닷물의 색깔도 연안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점점 파래지며 푸른색으로 대양의 위용을 과시하듯 서서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