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이후’에 대한 고민 없는
유류세 인하 경쟁, 해법이 아니다
- 시민은 패싱하고 정유사 배당금으로 흘러가는 세금,
멀어지는 공공교통 전환 -
지속적인 고유가의 대책으로 나온 것이 세금 감면이다. 현행 수송목적 연료에 부과하는 교통세와 일반소비세 그리고 여기에 교육목적세를 말하는 유류세가 주요한 대상이다. 알디시피 해당 세금은 정유사들이 일선 주유소로 기름을 전달할 때 사전에 매입가에 포함되고 최종적으로 소비자 가격에 이윤과 함께 합산된다. 따라서 실제 세금감면을 하더라도 그것이 판매가격을 낮출지 아닐지는 공급자에 달려있다. 실제로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조세감면의 효과가 실제 판매가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그제서야 정부는 부랴부랴 정유사의 답합구조를 살펴보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2000년 이후만 하더라도 군납 휘발유 입찰 조작(2000년), 경질유 담합(2007년), 액화석유가치 담합(2010년), 주유소 원적지 관리 담합(2011년) 등 정유사들의 담합 의혹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공정위가 보여주기식으로 과징금을 부과하면 바로 소송을 제기하고 김앤장 등 거대 로펌이 7~8년 소송을 끌고 나면 결과적으로 무죄가 선고되어 이자까지 물어내거나 당초 선거금액에서 상당액을 감면받는 방식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조사는 궁극적으로 소비자 후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금-여기서 벌어지는 문제를 아주 먼 미래에 해결될 문제로 바꿔버린다. 사실상 정부가 정유사의 담합 여부를 살펴보겠다는 것은 이미 경험적으로 학습된 ‘면죄부’를 주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실속없을 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유류세 감면 경쟁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7월 1일부터 정부가 적용할 수 있는 탄력세율을 최대로 적용해 37%까지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5월에 30%로 낮춘 지 2달 만이다. 이는 2018년부터 정부가 유류세를 15% 낮춰온 것의 연속성에 놓여 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까지 유가 상승에 대한 유일한 대책은 유류세 인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류세 인하의 정책효과는 얼마나 있었을까?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소비자 후생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5월 유류세 인하에 대해서는 ‘일주일 만에 다시 기름값이 올랐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최근 에너지 시민단체의 가격조사 결과를 보면 고작 1%의 주유소에서만 유류세 감면이 반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유류세 감면 효과는 소비자에게 돌아오기도 전에 정유사와 주유소 등 사업자들의 수입으로 이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회는 유류세를 50% 이상까지 감면할 수 있는 법안을 내겠다며 경쟁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안민석 의원은 지난 6월 20일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일부 개정안’을 통해서 탄력세율을 현행 30%에서 70%까지 확대하고 단서조항을 통해서 경제침체 등의 사유에 따라 국회보고를 전제로 아예 면제할 수 있는 규정을 포함했다. 뒤이어 사실상 정부의 청부입법이라고 할 수 있는 ‘교통에너지환경세 일부개정안’과 ‘개별소비세법 일부개정안’이 여당인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 대표발의로 6월 22일에 제안되었다.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나오는 상황에서 감면비율을 높인다고 경쟁한다. 명목상으로는 국민 등 소비자를 위한 것이라 주장하지만 사실상은 정유업계를 비롯한 국내 석유기업들의 뒷배를 봐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유류세 감면이 감추고 있는 것 3가지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지난 2월 별도의 정책브리프(https://c11.kr/10r6v)를 통해서 유류세 감면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바 있으며 중요한 것은 유류세의 수준이 아니라 유류세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니까 실효성을 알기 힘든 세금 감면이 아니라 그렇게 거둬들인 조세 수입으로 불안정한 유가 국면을 효과적으로 넘어설 수 있는 방안에 투자를 하는 것이 낫다. 그럼에도 현재의 상황은 2000년 이후 점차 불안정성이 확대되는 유가 변동과정에서 국민에 직접 안정망을 제공하기 보다는 정유업계를 보호함으로써 이들의 선의에 기대는 방식을 반복하고 있다. 그럼에 따라 3가지의 중요한 논점이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
첫째, 현재의 유가 변동이 일시적인가 하는 부분이다. 정부는 현재 유가변동을 코로나19 이후 회복 시점에서 단기적인 수요-공급의 불일치로 보려는 듯하다. 즉 어느 정도 안정기를 거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일단 절대적인 오일피크를 넘어섰다는 점을 전제로 해야 한다. 물론 새로운 채굴기술의 도입 등으로 전체 매장량 자체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과거와 같이 ‘값싼 석유’라는 것은 사라진다는데 이견은 없다. 더구나 전 세계적인 경기불황의 조짐이 확산된다. 즉 경기적 요인에 따라 단기적인 수요-공급 문제가 오히려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소비가 위축될 수 있는데 지금 당장 증산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유류세 인하는 기껏해야 6개월 이내의 대증요법으로서나 의미가 있을 뿐 장기적으로는 지속하기 힘들다.
둘째, 고유가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고유가에 대응하는 방식에 있어서 소비자가에 개입해서 기존의 수요를 유지시키는 것은 상당히 수준이 낮은 방식이다. 왜냐하면 정책의 성과를 가격이라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외려 기름값에 대한 공공통제를 강화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현재의 유류세 감면은 성과 측정조차 불가능한 정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에서 시행하고 있는 다른 대안들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고유가 이전부터 프랑스의 경우에는 주요 대기업에 대해 재택근무를 확대하거나 유지하는 데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통근 이동을 줄여 자동차의 총통행량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다. 여기에 대중교통 요금을 대폭 할인하여 자가용 수요를 대중교통 수요로 전환시키거나 셔틀버스 운행을 장려한다. 이런 정책들의 핵심은 ‘비싼 기름을 적게 사용하면서도 생활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름값 인상에 따른 유류세 징수분을 다양한 인센티브와 대중교통 전환을 위한 보조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 차제에 철도나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 인프라의 확대와 더불어 자전거와 보행이 생활권 교통의 핵심 수단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선행 투자를 강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고유가 대책 어디에도 ‘사용을 줄인다’라는 항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기후위기 시기에 탄소배출의 20% 정도에 책임이 있는 교통부분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현재의 상황은 자가용 중심의 교통체계를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체계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셋째, 교통에너지환경세의 무력화다. 현행 교통에너지환경세는 원래 부족한 교통인프라 설치를 위하여 제정되었다가 이후 에너지 환경세와 통합된 목적세다. 그리고 정부의 목적세 감축 정책에 따라 2009년 1월에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필요에 따라 폐지시점이 연장되어온 대표적인 좀비 세목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교통에너지환경세를 탄소세나 기후정의세 등으로 전환하자는 논의가 있어 왔다. 특히 교통에너지환경세 중 75%를 가져가는 교통시설특별회계는 아직도 50% 이상을 도로부문에 사용하는 대표적인 토건예산이다. 따라서 해당 재원의 전환이 중요하다. 하지만 유류세 감면이라는 명목으로 교통에너지환경세가 줄어들거나 사실상 폐지가 되어버리면 교통 목적세 자체가 소멸해버리고 만다. 전세계 주요국가 중 교통목적세가 국세와 지방세 수준에서 체계화되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 그런데 현재 유류세 감면 국면은 조세의 전환이 아니라 아예 교통목적세를 사리지게 만드는 모양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이후 유류세는 명목세율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사실상 감세인데, 해당 세목이 가진 특징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경제적 수준이 높은 이들에게 감면의 효과를 주는 특징을 가진다. 즉 사회적 형평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고유가라는 사회전환의 계기
현재의 상황이 일시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석유에 더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로의 전환, 특히 교통부문에서는 지연된 교통전환의 과제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유류세 감면 경쟁이라는 상황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대중교통을 공공교통으로 전환하려는 교통전환의 움직임에 가장 나쁜 반응이라고 평가한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주요한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재택근무를 강화하도록 권고하고, 가급적 불필요한 이동수요를 줄이고 자가용 이용을 대중교통 이용으로 전환할 수 있는 교통요금 감면을 시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한 임시적으로 공공이 직접 운영하는 왕복버스를 확대해서 출퇴근 시간에 시민 이동을 보장해야 한다. 대규모 무료 주차장을 운영하는 상업시설에 대해서는 주차장을 유료화하도록 해서 자가용 수요를 줄여야 한다. 차제에 대중교통이 열악한 지역에 대한 철도, 지하철, 버스의 공공투자를 강화하는 한편 정기권 도입 등 수요 전환에 따른 실질적인 인센티브 역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모두 현행 유류세를 감면할 것이 아니라 유류세의 수입을 교통 전환 목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는 것들이다. 유류세 감면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잘해봐야 현상을 유지하는 정도이거나 아니면 현재의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지속적으로 유류세 감면이 오히려 대중교통 체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교통 불평등을 강화하는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한편, 유류세 감면이 가진 한계들을 살펴보는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다. 또한 이를 대응하기 위한 협력과 연대 사업도 벌여 나갈 예정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유류세 인하라는 퇴보에 반대한다.
2022년 6월 29일
공 공 교 통 네 트 워 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