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름으로 그리 재미를 못본 사람에 속한다. 錫자가 돌림자니까 거기까지는 어쩔수 없었다 치더라도 석기, 석진, 석우, 석천 정도만 되어도 괜찮았을 것인데, 할아버지께서 하필이면 洪자에 낙점을 찍으시는 바람에 한국에서도 발음하기가 불편했지만 외국에 나오면서는 본격적으로 고민이 늘었다. 서양사람들이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1년 이상 만나는 사람도 딴소리하기 일수였고, 더구나 spelling에 이르러서는 서로가 괴로왔다.
하는수 없이 흔해빠진 미국이름 하나 지어서 명함에 까지 넣고보니, 왜 진작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고 나보다 다른사람들이 더 고마와했다. 그런데 요즘 보니까 반드시 그런것도 아닌것 같다. 오바마 부인이 TV회견하는데 보니까 처음 바락 오바마란 이름을 들었을 때 얼마나 웃으웠는지 기가 찼었다고 했다. 또하나 이번 미국선거에서 깜짝 놀란 것은 남가주 Irvine 시장에 Suk Hee Kang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이다. 우선 나는 그의 이름에 주목하지 않을수 없었다. 강석희. 김석홍 보다는 발음하기 좋지만 서양감각과는 영 동떨어진 이름이다. 아마 "수키 캉" 쯤으로 발음하겠지. 그 이상한 이름을 달고 남가주에서 제일 보수적인 동네로 소문난 Orange County의 대표도시 Irvine에서 당선된것이다.
보성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농업경제학과 출신이란다. 50세 중반. 1977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이민을 와서 대학에 진학한것도 아니고, 곧장 미국 전자판매회사에 취직해 나중에 지점장으로 승진하여 12년을 근무했다니 그냥 평범한 사나이다. 그리고 6년전에 처음으로 시의원에 당선되어 연임했고 작년부터인가 시의회에서 뽑는 부시장을 겸임하고 있었다는 것이 경력의 전부다.
그러나 Irvine 이라는 도시는 인구는 20만명이지만, 남가주의 대표적인 도시로 55%의 백인과 35%의 동양인이 살고 있고 유명한 UC Irvine Campus가 있는 교육도시로 범죄발생률이 미국에서 제일 낮을 정도로 치안이 확실하고 (흑인이 1%정도) 도시 전체를 하나의 공원으로 보고 계획한 대표적인 전원도시로 잘 알려진 아름다운 도시다. 가구당 소득도 13만불 정도로 집값도 상당히 비싼 동네다. 이런 도시에서 주민 직선으로 이민 1세대에 이상한 이름을 가진 동양인을 자기네 시장으로 뽑아준것이다. 백악관에 입성한 바락 오바마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인들의 아량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본다.
우리는 정말 얼마나 편견이 많은 사람들인가. 우리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다닐때 혹시 "검둥이"라는 말이 나올라치면 아이들이 질겁을 했다. "아빠, 흑인이라고 하세요. 미국사람들이 우리를 노랑둥이라고 하면 좋겠어요?" 나는 말을 잃고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그 뒤로 검둥이란 말을 입에 올려본적이 없다. 사회주의 한다는 사람들에게는 "놈"자를 거침없이 쓰면서도 말이다. 한국에서 다문화가족이니 어쩌고 하면서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차별한다고 하며, 심지어 탈북한 우리 동포들 까지도 내려다 본다니 우리민족이야 말로 골치아픈 민족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네팔출신이 천안시장에 출마하면 어떻게 될까?
작년에 강성모박사가 UC Merced총장에 취임할 때 느꼈던 감격을 다시 한번 되삭여 본다.
첫댓글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고 미국 국민의 위대성을 다시 한 번 느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