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느림의 근육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빠른 속도가 우상이 된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기다리는 것은 고통이 되었습니다. 서두름과 조급함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느림의 근육이 풀려 버렸습니다. 다시 느림의 근육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느림은 게으름이 아닙니다. 느림은 음미의 미학입니다. 속도가 빠른 기차를 타면 창밖의 풍경을 음미할 수 없습니다. 음식도 너무 급히 먹으면 맛을 음미할 수 없습니다. 책도 너무 급히 읽으면 글맛을 음미할 수 없습니다. 이제 빠른 속도는 거의 중독이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느림, 늦춤, 천천히, 기다림과 동경을 사모합니다.
우리가 소유한 것을 상실하기 전까지는 소유한 것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우리는 느림이 주는 행복을 상실했습니다. 느림의 결핍 속에 살고 있습니다. 결핍이 소중함을 낳습니다. 갈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생수의 가치를 모릅니다. 저는 결핍의식보다 풍부의식을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결핍의 유익을 결코 망각하지 않습니다. 결핍 때문에 기도하게 됩니다. 결핍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결핍 때문에 꿈을 꿉니다. 결핍 때문에 풍성한 미래를 꿈꿉니다. 결핍 때문에 자극을 받습니다. 결핍 때문에 변화와 성숙을 추구합니다. 건강이 결핍될 때 건강을 갈망하게 됩니다. 풍부가 있기 전에 결핍이 있습니다. 결핍이 기대를 낳습니다. 결핍이 소원을 낳습니다. 결핍이 열정을 낳습니다. 모자람 속에 풍성한 복과 기적이 담겨 있습니다.
결핍 때문에 자포자기 한다면 결핍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핍이 성장과 성숙의 자극제가 된다면 결핍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기적들은 결핍 때문에 경험한 것입니다. 결핍이 없으면 기적도 없습니다. 결핍이 없으면 기도 응답도 없습니다. 결핍이 없으면 진보도 없습니다. 결핍이 없으면 창의력을 발휘할 수도 없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결핍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족하면서도 거룩한 불만족을 갖고 살아갑니다. 어느 정도의 결핍의식과 위기의식을 갖고 삽니다. 바울은 범사에 자족할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모든 환경에서 자족하길 배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거룩한 불만족을 갖고 살았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2-14).
우리 민족은 어느 때보다 풍족한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가난했을 때 “잘 살아 보세”라는 노래가 전국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때 우리 민족은 분발했습니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개척자였습니다. 도전적이며 모험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힘든 광부 생활과 간호사의 삶을 살기 위해 독일로 떠났습니다. 뜨거운 태양 볕과 사막의 모래와 싸우며 중동에서 일을 했습니다. 억지로 끌려가듯 베트남 전쟁에 참전 했습니다. 그때 우리 민족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기 위해 새벽 기도, 철야기도와 산 기도를 드렸습니다. 북미와 남미와 여러 나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결핍 때문입니다. 결핍 때문에 힘들었지만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민족은 어느 때보다 잘 삽니다. 반면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억울해하고 섭섭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헬 조선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더욱 풍성하고 부요하고 안락한 삶을 기대합니다. 문제는 그 풍요로움이 방종을 낳고, 타락을 낳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에덴동산에 뱀이 함께 살았습니다. 지금도 에덴동산과 같이 풍족한 곳에는 뱀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많은 문제는 조급함에서 돌출됩니다. 조금만 속도를 늦추고 숙고해 보십시오. 많은 문제를 미리 예방할 수 있습니다. 느림은 잠시 멈춤입니다. 느림은 숙고입니다. 깊이는, 깊은 숙고에서 나옵니다. 깊은 숙고에서 깊은 논리가 나옵니다. 깊은 묵상이 깊은 깨달음을 낳습니다.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은 그의 책 《인생의 의미》에서 “나무에게 느림을 배우라”고 권면합니다. 나무는 느리게 자랍니다. 그는 겨울 나무를 통해 깨달은 느림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나눕니다. ”느림이 없으면 삶은 숨이 막히고, 만족감을 주지 못하고, 머리와 꼬리도 구분할 수 없이 급히 꿰매진 조각이 되고 만다. 나무는 뿌리에서 위로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추운 겨울을 나는 나무는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생존에 필요한 휴식을 취하며 위쪽만큼이나 아래쪽으로 자란다.“(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인생의 의미』, 더퀘스트, 191쪽). 나무에게서 아래로 자라는 영성을 배웁니다.
에릭센은 ”느림은 규칙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시들어버리는 삶의 근육이다.“라고 말합니다. 느림의 근육을 키우는 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천천히 읽고 암송하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또한 깨달은 말씀을 글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저는 날마다 성경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중에 느림의 근육을 키웁니다. 조금 속도를 늦추십시오. 느림의 근육을 키우십시오. 느림을 통해 더욱 친밀한 교제를 나누십시오. 더욱 깊은 맛을 음미하며 사시길 빕니다.
목양실에서 강준민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