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세례 (1655)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스페인의 미술사를 보면 17세기가 스페인 예술의 황금기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스페인은 정치와 경제와 문화에 있어서 빛나는 영광을 누렸고,
스페인 문화는 다가올 세계 예술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e Esteban Murillo, 1618-1682)는
세비야를 대표하는 바로크 화가로 30년 동안을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머물며
하느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을 드러내주는 종교화의 영역에서 두각을 보였다.
그가 1655년경에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는 신실한 신앙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에 발을 담그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처럼 흰 수건만 걸치고 있으며,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세로 양손을 가지런히 가슴에 모으고
머리를 숙여 세례를 받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굳이 하지 않으셔도 될 일을 하고 있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 새로 태어남의 세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비유대로 깨끗이 몸을 씻었는데 또 씻는 것과도 같다.
이처럼 굳이 하지 않으셔도 되는 일들이 복음서 곳곳에 등장한다.
예수님께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도 그렇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도 그렇다.
예수님의 세례뿐 아니라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모두 역행이며 전복이다.
이러한 역행이나 전복은 스스로를 믿고 하느님 행세를 하려는
인간의 자만을 각성시키는 자비롭고 겸손한 초대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며 하신 말씀처럼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요한 13,15)이다.
극도의 낮아짐으로 인해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감행하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겸손을 통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보여주는 행위였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머리 위에 물을 부어 세례를 주고 있다.
광야 생활을 했던 요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고,
요한의 왼손에는 갈대로 만든 십자가가 들려 있으며,
갈대 십자가에는 “Ecce, Agnus Dei”(보라, 하느님의 어린양)라고 쓴
흰 두루마리가 매달려 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보다 높은 곳에 서 있지만 가볍게 머리를 숙이고,
오른쪽 발을 앞으로 살짝 내디디며 예수님께 경의를 표한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하기 때문이다.”(요한 3,30)
황금빛으로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구름 사이로 나타나고 있으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는데,
하늘에는 “Tu es Filius Meus Dilectus.”(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는
황금색 글씨가 쓰여 있다.
이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가리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 하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진정한 겸손과 사랑은 인간이 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알아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부하지 않으셨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셨기에
하느님께서 대신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고 그분을 높여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