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장, 어머니와의 마지막 일기
'근데, 그 중요한 시기에 뭘 했길래 이토록 기록이 없는 것일까?'
인야는 깜짝 놀라며 한탄을 하고 있었다. 고심을 거듭한 끝에 막 글 작업에 돌입하려는데, 앞이 콱 막혀왔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내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는데......' 하는 자조까지 했을까.
평생을 일기를 쓰며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인야였음에도, 두어 차례 이런 기록 단절의 시기가 있었다는 것도 떠올려진 순간이었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시점에.
군대 시절 첫 휴가를 나왔을 당시 보름 정도의 황금 같았던 기간에, 뭘 했는지 단 한 줄의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자대로 복귀했었다. 그리고 나이들어 그 기록이 필요해 찾았을 때, 그 어떤 기록도 없다는 걸 확인한 뒤... 자기 자신에게조차 배신감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 경우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의 위급상황에 아무 정신없이 한국으로 돌아온 뒤, 어머니께서 어느 정도 의식을 찾으실 때까지는 그 어떤 기록도 없었던 것으로... 물론, 너무 경황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게 분명했던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달랑 이 글 한 단락이 전부라는 건... 너무 한 것 같네......
막막함이 인야의 전신을 흘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우리 어머니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쌔근쌔근 잠을 자거나, 잠에서 깨어나 몸의 통증을 느낄 때는, "나, 여기가 아퍼!" 하거나, "오줌 마려..." 하면서 그 표정마저도 순진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시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내가 거꾸로 부모가 된 것 같이 안타까움과 사랑스러움도 함께 느낀다. 이제 탄력마저 다 잃어 쭈글쭈글한 얼굴과 손이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비단보다 더 부드러운 어머니의 손을 잡으면서... 나는 그것 역시 '사랑'이리라고 느낀다. 이제, 이 못난 자식에게만 매달리려는 아무 힘도 없는 왜소한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가슴 아픔보다도 더 씁쓸한 인생에 대한 생각도 해본다. |
날짜 기록까지 생략된 그 짧은 한 단락의 기록.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그나마 다행히 섬에 들어간 뒤부터는 정상적으로 기록을 남겼으니, 거기에 기대어...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밖에.
인야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마음을 다잡고 자판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I. '관리도' 일기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거 독일에서 귀국했던 인야에겐 무엇보다도 집이 필요했다.
이제 약간의 치매기도 있고 더구나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삶의 마지막 단계일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께서 막무가내로 인야와 함께만 지내고 싶어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이 마흔이 넘은 이 날까지 집이 있나, 차가 있나, 재산이 있기를 하나... 말 그대로 당장 자기 한 몸 들이밀 방 한 칸도 없는 무일푼 떠돌이였던 그가 무슨 수로 갑자기 집을 마련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모든 초점을 어머니께 맞춰야만 했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화가인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림을 파는 것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내 그림을 사간단 말인가?’ 하는 생각만 앞섰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할 게 불을 보듯 빤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특별한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그나마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믿는 또 다른 재주를 이용해 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 재주라는 것은, 어릴 적부터 국어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들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로부터 공인되지 않은 '글재주'였다.
요즘 서점가의 베스트셀러가 정식 작가가 아니라 해도 자신의 독특한 경험담을 재미있게 책으로 내서 성공한 사례가 많다고 하니, 인야 역시 멀쩡하게 다니던 교직을 때려치우고 스페인으로, 그 뒤론 멕시코에 독일까지 날아가 좌충우돌 살았던 전력이 있는,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니... 그 생생한 진실에 근거를 두고, 화가라는 이점을 살려 그림과 함께 묶은 얘기를 책으로 펴낸다면...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도 있을 거라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더구나 자신은 평생을 일기를 쓰며 살아온 사람이라 자료는 얼마든지 있으니, 거기서 자신의 일생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했을 스페인에서의 몇 년간의 생활에서 절실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끄집어내면... 한 덩어리의 글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는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이 세상에 통할 수 있을까 하는 주저함이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틈도 없는 처지였고... 만약 책이 잘만 된다면, 허다 못해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
독일에서 귀국하자마자 인야는 어머니가 입원해 계신 군산의 병원으로 달려갔다.
사흘 만에 의식을 찾은 어머니가 병원이 싫다며 집으로 옮겨달라고 하셨기 때문에, 형제들과 상의를 거쳐 군산의 작은형 집으로 모셔갔다.
그런 뒤 어머니가 웬만큼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도 혼자 다니실 수 있으실 때까지 보름 정도를 인야는 줄곧 어머니 옆에서 자리를 지키며 간병을 했다. 그리고 이제 그 일을 형수님께 맡긴 뒤, 글을 써보자는 이유로... 뱃길로 세 시간을 달려 군산 앞바다 고군산 군도의 한 섬인 '관리도'에 들어왔다.
그사이 혼자서 뭔가를 끼적일 여건이 안 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머니 간병을 하느라 혼자 머물 수 있는 공간도 없었고, 그럴 만한 조건도 안 되었으니... 그 기간에 남아있는 기록이 단 하나뿐이라는 것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인야가 머물게 된 집은 형의 가까운 친구 집이었다.
관리도에 내려 선착장을 따라 움푹 산으로 둘러싸인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로 들어오는 첫 번째 집으로, 그 집안 식구 모두가 군산으로 나가 살고 있어... 지금은 비어 있었다.
글을 쓸 공간을 찾던 중, 형이 자기 친구와 상의 끝에 마련해 준 곳이었다.
거실의 창으로 이 섬의 한 부분인 튀어나온 산이 보이고 조그만 암초 하나가 운치를 더해 주었다. 그 뒤에는 희미하게 이름도 알 수 없는 몇 개의 섬들이 어렴풋하게 겹쳐 보이기도 했다.
앞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해는 가을의 오후를 알리듯 밝지만 힘차지는 않고, 인야는 시계 초침 소리만 들리는 집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 쓸 태세를 갖추었다.
지난 9월 말 급하게 한국에 돌아온 이래 이제야 혼자가 되었는데, 무엇보다도 이렇게나마 한갓지게 일을 할 여건이 주어진 상황에 감사했다.
사실 인야는 허다 못해 군산의 시립도서관에라도 다니면서 글 작업을 하려고 했는데, 그 의도를 눈치 챈 형이 자기 친구와 의논한 끝에 이 공간을 마련해 주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 섬까지 들어와 있는 자신의 운명이 우습기도 했다.
저녁은 감자와 달걀을 삶아 먹었다. 물 사정이 좋지 못한 섬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불편해서 앞으로 밥을 제대로 해 먹게 될지도 의문이었지만.
저녁 식사 후 소화라도 시킬 겸 방파제에 나가 보니, 썰물 때라 그런지 오후 한때는 머무는 집 거실 창 바로 아래까지 차 있던 물이 개펄만 드러낸 채 한 50여 미터 멀리까지 빠져 있었다.
돌아와 다시 일을 하려고 탁자에 앉았는데, 시커먼 모기들이 극성스럽게 달라붙었다. 얼굴과 손을 빼고는 다 옷이나 양말로 덮여 있는 몸인데도, 놈들은 옷을 뚫고 쏘아대기까지 했다.
‘섬모기라 더 독한 것인가. 더구나 지금이 가을도 깊어가는 시월 중순인데, 아직도 모기가 이토록 극성이라니......’
밤 9시 뉴스를 보는데, 강력한 태풍 '제브'가 한반도를 비켜갔다고 했다. 그렇지만 바다에는 파도가 높다고 하는데, 파도 소리가 들려 밖을 내다보니... 가로등 불빛이 가까이까지 반사되어 비쳤다.
그 정도로 물이 들어오는 모양이었지만, 뉴스처럼 높지만은 않았다.
잠시 쉬려고 밖에 나갔는데, 낚시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바로 관두고 말았다. 외딴 섬에서 그것도 밤에 혼자 낚시를 한다는 게 어쩐지 겁이 나서였다. 그러다가,
‘차라리 일을 하자, 할 수 있을 때 가능하면 많은 일을 해놓아야 한다!’ 하며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인야는 거실의 커튼을 열어보았다.
하늘엔 구름이 끼어 있었고 바다엔 물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맑은 정신에 일을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문 여는 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웬 노인 한 분이 서 계셨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야가 인사를 하자,
"누구신가?" 하고 물었다.
"저, 최 00씨 먼 친척 벌인데(섬 주민들이 누구냐고 물어오면, 그렇게 얘기하라고 형 친구가 사전에 알려주었었다.), 개인적으로 조용히 할 일이 있어서, 어제 들어왔습니다."
"혼자인가?"
"예, 혼잡니다."
그러자, 다소 안심이 되었다는 표정으로 노인은 인야를 훑어보았다.
"보일러는 되는가? 기름이 있는지......"
"예. 그런 준비는 이미 다 하고 왔기 때문에 불편한 것은 없습니다."
"언제까지 머물 건가?"
"글쎄요, 열흘 쯤? 어쩌면 이달 말까지는 있을 것 같습니다."
"기왕에 들어왔으니, 겨울을 다 보내고 돌아가도 될 텐데......" 하고 어느덧 노인은 염려 섞인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나도 최 00이 하고는 남이 아녀." 하는 말로, 자기가 괜스레 인야에게 심문(?)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심어주기라도 하는 듯,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이 섬에는 자신의 많은 친척이 사신다는 얘기도 들어... 저도 알고는 있습니다." 하면서 인야는 뒤돌아서는 그 노인에게,
"물이 어떨 때 나가고 또 어떨 때 들어오나요?" 하고 물었는데,
하루에 두 차례씩 들어왔다 나가는데, 하루에 약 반시간씩 늦어진다고 했다. 그러니까 물때는 하루에 30분 정도 늦어져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낚시에 대해서도 묻자,
썰물이거나 밀물이거나 관계없으니, 아무 때나 선착장 방파제에 가서 하면 된다고 했다.
인야는 안으로 들어와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휴식 시간엔 낚시를 했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새우 한 주먹을 가지고 선착장으로 나가 낚시를 던졌다. 처음 몇 차례는 언제 미끼를 채 먹는 줄도 모르게 허탕을 쳤다. 그러다가 한 순간, 묵직한 느낌이 들어 낚시를 건져 올렸는데, 제법 큰 생선 한 마리가 달려 나오다가 몸부림을 치니까 낚시가 송두리째 떨어져 나가버렸다.
짧은 순간의 환호성이 한숨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가버렸고, 처음으로 비늘이 예쁜 납작한 놈을 잡아 올리게 되었는데 인야는,
"미안해!" 라고 말하는 자신이 스스로도 우스워서...
'그러면서 무슨 낚시한다고?' 하고 혼자 머쓱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전에 흐렸던 하늘이 차츰 개어갔다.
날씨가 맑아 거실에서는 어제는 보이지 않았던 섬 너머의 다른 산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거기가 군산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은 만조시간인 듯 물이 코앞까지 들어와 있었다.
그날 오후, 인야가 군산에 전화를 했는데, 어머니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대번에,
"막둥이냐?" 하고, 평소처럼 전화를 받으셨는데, 그 순간 인야는 너무 고맙고 또 좋아서,
"예, 어머니!" 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괜찮여?" 하고 섬 생활에 대해 물으시기에,
"그럼요!" 하고 맞장구를 치면서, "조용히 일... 시작했어요." 하고 아이가 일러바치듯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몇 마디를 나눈 뒤 어머니께서는 천천히, 서울의 형님이 왔는데... 멋대가리 없이 흘끗흘끗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돌아갈 때가 되어서야 다시 오겠다고 인사를 했다면서, 돈들이며 자꾸 왔다 갔다 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보내셨다고 했다.
"하 하 하 하...... 그러셨어요, 어머니?" 하고 인야는 여전히 밝은 음성으로 받았는데, 어머니도 웃으시면서,
"참내, 자식이 많다 보니, 별 자식이 다 있다!" 고, 아들 넷 중 서울 형의 흉을 보시는 것이었다.
"하 하 하 하...... 그래도 어머니도 다 아시면서 그래요? 형님이 겉으론 그래도, 속 마음은 얼마나 깊다는 걸... 어머니가 더 잘 아시면서요. 하 하 하 하......"
어머니도 인야도 웃었다. 어쨌거나 그런 우스갯소리도 하실 만큼 심신이 회복되신 것이라, 인야의 입장에서는 그게 얼마나 좋고 또 안심스러운 일인지... 하늘에 감사라도 드리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섬이 춥지는 않고, 무섭지 않어?" 하고 물으시기에,
"어머니! 제가 앤가요?" 하고, 역시 평소처럼 약간 퉁명스럽게 쏘아붙이기도 했지만... 이 대목에서 모자는 또 다시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행복인지......
섬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하루하루 이어졌다.
낮에는 글 작업을 하고 저녁 무렵이면 낚시를 나가고, 밤에는 방파제까지 산책을 다녀오는 일과였다.
어느 저녁 무렵엔 방파제 옆 바위 위가 뭔가로 반짝이고 있었다. 인야가 다가가 보니, 웬 조그만 고기들이 바위 위에서 팔딱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버린 것처럼......
이상했다.
오후에는 배도 들어오지 않았고, 이쪽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지도 못했는데, 웬 산 고기들이 버려져 있는지......
그런데 또, 방파제의 한쪽 모서리에는 반짝이는 그들의 비늘 뭉치가 물결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비늘뿐만이 아니라 한 무리의 그 놈들이 바위와 물의 경계 지점에서 역시 팔딱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그 바위 위로 내려가 인야는,
가져갔던 비닐봉지에 물을 담고는, 그 놈들을 비닐 봉지에 주워 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혹시, 얘들이 멸치 아닌가?' 하다가,
"맞아. 맞은 거 같아!"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그 놈들을 주워담았다.
평생 시장 같은 데서 마른 멸치만 보고 대하다가 그렇게 싱싱하고 아름다운 산 멸치를 보니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더구나 낚는 것도 아닌 줍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 이 세상 모든 시름도 다 잊은 채, 인야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뛰놀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허공에는 갈매기들이, 인야의 눈치를 봐가며 모아둔 멸치를 도둑질해 가는 게 아닌가.
기가 막혔다.
그 짧은 순간 그리 넓지 않은 방파제에서도 몇 가지 자연 현상이 얽히고설켜가며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런 이 세상에서 인야는 돈을 벌어 어머니를 모시겠답시고 이런 섬까지 들어와서, 여태까지는 알지 못했던 세상살이를 직접 느끼고 겪어보는 중이었다.
섬에서의 날들이 쌓여갔다.
글 작업을 하는 사이사이 뻘에 나가 바지락을 캐오고, 홍합을 따다 구워 먹기도 했다.
인야가 섬에 들어온 지 1주일이 넘어갔고, 낚시를 나갔을 때였다.
선착장에 나갔는데 마땅한 미끼가 없어서 그냥 낚시를 포기하고 돌아오려는데, 마을 사람 하나가 망둥어 한 마리를 건네주면서 고기를 낚으면 둘이 나눠 갖자고 웃으며 말하며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낚시를 시작했는데, 추가 바위에 걸린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낚시 끈을 다 풀고 다시 준비를 해 낚기 시작하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갑자기 묵직한 느낌이 손끝에 전달돼 왔던 것이다.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더니,
웬걸?
거무튀튀한 생선 한 마리가 힘차게 튀어 올랐다.
잘은 모르되, 그게 '우럭' 같았다.
"이거, 웬 횡재람?"
인야의 입에선 혼잣말이 절로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열심히 낚으려고 정신을 집중했을 때는 아무 것도 안 물리더니, 줄이 바위에 낀 것 같아 느슨하게 풀어놓고 준비하는 사이에 고기가 물렸던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닌, 여기 와서 처음 잡아보는 제법 커다란 우럭이었다.
낚시도 할 줄 모르던 어설픈 자신에게 이런 일도 생기다니.
'아, 살다 보니 이럴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주변에 세 명의 낚시꾼들이 있었고, 그들에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기에... 괜스레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어, 두 마리의 우럭을 낚았던 인야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덧 섬에 들어온 지 열흘이 넘어가고 있었다.
전화 통화에서 어머니는 인야더러 언제 나오느냐고 물었다.
'아, 어쩌면 어머니는 날마다 나만을 기다리고 계신지도 모른다. 어린 아이가 어머니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런 어머니께 나는 지금 충실한 아들일까? 글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보람 있는 일이라면... 그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나는 나쁜 아들이 될 것이다.' 하면서 인야는,
'허지만 어머니! 저는 저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저는 어머니께 부끄럽지 않은 자식이 되려고 애쓰고 있답니다.'
글 작업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어느 화가의 그림이 있는 이야기'(가제)는 스무 개의 소제목 에피소드로 채워질 것이고, 그 정도면 적지 않은 양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섬 뒤켠으로 나갔던 인야는 제법 많은 양의 홍합을 딸 수 있었다.
바위 틈에 붙어있던 홍합을 따면서는 위험하다는 생각 대신,
'섬에서 나가자마자 어머니께 구워드리면, 맛있게 잡수시리라......'하는, 설렘과 기쁜 마음이 우선이었다.
저녁 무렵엔 군산에 전화를 걸었는데,
"어머니, 그런 대로... 일을 끝내긴 했는데요." 하고 어머니께 보고를 하자,
"그려? 우리 막둥이, 수고혔다!" 하고 기쁜 음성으로 좋아하셨다.
앞으로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인야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어머니께 부끄럽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관리도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이유로, 글 쓰는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 했다는 이유로, 인야는 소주 한 잔을 했다. 혼자서.
그리고 마지막 밤 산책을 나갔다.
매일 밤마다 나가곤 했으니까 그날도 나가야 할 것 같아서였다. 아니, 그날은 더욱 나가야 했다. 섬에서의 마지막 밤이었으니까.
기분이 달랐다. 걸음걸이도 달라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바람은 없었고 상쾌하지도 않았다. 섬의 건너편 산도 잘 보이지 않도록 엷은 바다안개가 끼어 있었던 것이다.
가로등이 비치는 곳으로 다가가는데, 웬 새 한 마리가 날아갔다. 갈매기인지 다른 새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야는,
‘저 새도 나처럼 이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산책을 하나보다......’ 하는 생각도 했다.
물은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잠시 머물다 집에 돌아오니 홍합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까 저녁에 홍합을 구울 때 집 안에 찬 냄새가 빠져나가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인야는 창을 활짝 열어젖혔다. 제법 늦은 밤이었지만.
그러면서 낮에 그렸던 그림을 다시 하나 베꼈다.
낮에는 연필로 밑그림을 그린 뒤 수채화를 했는데, 밤에는 펜으로 밑그림을 그린 뒤 역시 수채로 그렸다.
그렇게 두 그림을 벽에 기대놓았는데, 어느 것이 더 좋은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사실은, 낮에 그렸던 그림이 너무 맘에 들어... 그 그림을 이 집 주인에게 감사의 뜻으로 선물을 하게 되면 나에겐 남는 게 없어서(?), 내 몫으로도 하나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에 또 다른 걸 그린 건데......'
그렇게 인야는 자신의 그림 욕심도 많은 화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