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와 "상주불멸"로 주지하는 문답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마디 걸쳐둔 업이 있어서
두분의 이해 속에서 배운 저의 이해와 상을 여기 놓고 가겠습니다.
제가 경전이나 그 밖의 선지식들에 대한 공부가 깊거나 넓지 않아
논거가 미천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
제 이해하고 있는 바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보고자 병病을 의인하였음을 유념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날짜 :
나 너 우리를 병病이라 또는 환患이라 하고
게중에 病을 病으로 깨닫고 건강健康을 본見 이者를 의醫라 한다면,
病을 안고 살고죽는다는 病생살이란 당연하여
보통은 참고견디며 病을 잊고 그 病을 '나'로 세우며 보듬고 순간 순간에 떨어져 살아간다.
그러다간 간혹 간혹 통감하는 아픔pain으로부터 진정 나, 病은 무엇인가? 의심하며
믿음과 이해를 새로이 찾아보기도 한다.
그런데,
세계에는 수많은 병종病種 병류病類가 있고
그 기후와 풍토, 전통적인 맥에 따라 민간요법에서 과학적인 치료법까지
다양하게 그 해법이 전해져오고 있었다.
그 중 '만병통치약'에 대한 조제법과 믿음이 큰 흐름을 타고 분기하며
이적과 기적으로 회자되는 만큼 그 탈취와 세勢에 따라 오히려 더 큰 病流를 이루기도 하였다.
시종始終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듯한 땅에서 쑥 불거져나온듯한 만병통치약,
그 약藥의 신화身化만큼 病의 身들도 면면하게 변종하고 변이해왔다.
그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발전해온 病身에 준해서
만병통치약도 더욱 새롭게 해석되어 더욱 합리적 과학적 캡슐 속에 위생적으로 포장되어야 했고,
그 조제의 기원이나 법칙에 대해선 감히 언급할 수 없는 금기시 되기도 하였었다.
이에
"불가 불가"를 외치며 "견犬고go 견見고苦" 외치며
관례를 의심하고 그 답습을 딛고 홀로 선 醫가 있었으니
불가 불가 견고 견고 그 마디 마디 4성제聲制요
불 가 불 가 견 고 견 고 그 음절 하나 하나가 8정도正到로 한결같이 외치는 바
연기緣起 로다!
나란 무엇인가?
병病(무명無明)이요 몸身(오온五蘊)이요 건강健康(불성佛性)이로다
몸이 부조화로 제한적으로 갇힌 것을 병病이요 (고苦)
몸이 조화로와 자유자재한 것을 건강健康이라 (열반涅槃)
건강과 병이 몸과 떨어져 따로이 병이랄 것도 건강이랄 것도 없느니 (중생과 부처가 一處)
나我란 이병 저병이었다가 건강을 향하는 (갈애와 발심)
몸身(심心)이 짓는 인因과 연緣의 삼사화합三事和合(근경식 호발 根境識 互發) 업상業相이다.
이 삼사화합을 일러 의타기성이요
그 호발의 업상을 일러 변계소집성이라
이 업상을 업상으로 보고 그 이면의 근경식 호발을 삼사화합으로 즉,
상과 그 상의 인과 연을 여실히 보는 것을 일러 원성실성이라 한다.
이 원성실성은 병(환幻)과 건강(실상實常)을 보는 견見인 동시에 체體이니 환患(무명)을 여읜 몸身(마음心)이다.
깨달은 병病도 깨닫지 못한 병생病生도 다 몸으로부터니 의醫와 환患이 몸으로 하나다.
직지병신直指病身 견의성강見醫成康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병病(연심緣心)이 오고감도 의醫(성불成佛)를 터득하고 행함도 다 몸身(견見)으로부터니
몸身(마음心)은 병病의 있고없음을 떠나서 지고의 의처醫處(견처見處)라
이 몸(마음, 견見)을 일러 우리가 연기에 계합하는 체體라 하나니
이 몸身, 연기체緣起體는 신해이전信解以前의 묘유妙有로소이다.
그 어떤 관념으로 세울 수도 가르킬 수도 없는 언어도단의 실상이로소이다!
진여眞如 진아眞我로소이다.
그러나,
병(무명無明)은 몸(마음心)이고 몸(마음心)의 본원이 건강(견見과 성性)으로 이를 일러 나(참나)라 하니
그 나를 견見한다는 것은 진실로 연기화신緣起化身으로 연기의 체에 계합된다는 것이지만
건강健康(열반涅槃)은 몸身(견見과 성性)이되 항상하고 일정한 어느 몸身(마음:견見과 성性)이 아니고
인因과 연緣의 몸身(마음)이다.
이것이 연기체의 본연이고 그래서 '나'(참나)라 할 것도 '병'(무명)이라 할 것도 '건강'(열반)이라 할 것도 없고
그 각각은 제각기 그 연과 인에 대한 호칭일 뿐 한줄기 한뿌리이며
그 한줄기 한뿌리라 할 것도 없이 오로지 연기만이 상相아닌 법法이로다.
연기체에 계합하는 법을 일러
병등명病燈明 의등명醫燈明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병을 떠나 따로 고정된 몸이라는 것이 없다.
병마다 제각기의 처방이 있고 오로지 한가지 시술만이 전부라 하는 것이 병폐로서
대의무문大醫無門이로다. (대도무문大道無門)
하여 연기체 몸을 알고자 견하고자 한다면
병 따로 몸 따로가 아니니 먼저 지금 이 자리 병(나)으로부터 몸을 찾아가며 밝혀야하리 이를 병등명.
그 병에 맞는 처방전을 찾아 투약하고 시술하고 실천해야하리 의등명.
즉 무명도 삼사화합이요 열반도 삼사화합이되
무명은 그 삼사화합의 업상에 떨어져 환幻의 인과 연에 매이는 것이요
견성성불은 그 삼사화합의 업상이 인과 연의 철리임을 견하여
그 인과 연의 맥과 고리를 풀고맺을 수 있음이로다.
헌데, 그 풀고맺음도 하나 하나의 업일진져
풀고자함도 맺고자함도 없이 나도 없고 너도 없는 그 여실한 인과 연에 걸림이 없는
무아의 경지가 열반이라고...
병病도 의醫도 다 인因과 연緣의 치治이듯
중생도 부처도 다 연기緣起의 법法이지 부처라고 해서 그 행함이 연기緣起를 벗어날 수는 없다.
다만 걸리지 않을 뿐이다.
왜? 상이 없으니까 무아니까.
이상이 제 지금 이해의 틀을 비유하면서
괄호( )안에는 그 비유의 대상이 된 의미를 나름대로 이해를 돕기 위하여 표시하였습니다.
.
처음 직지인심 견성성불에서 불교의 매력을 느끼고 입문했다면
부라흐만이나 아트만과 불성이 어떻게 다르냐는 물음에서 충격을 받았고
흑묘든 백묘든 쥐만 잡으면 될 것이 아니냐? 하며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라
이름에 호칭에 끄달리지 않고자...
이해에 대해서도 이해란 헤아림이고 추론으로서 미루어 짐작해서 수긍하는 것일 뿐
실천적 공부라하기엔 미흡하였고 화두나 위빠싸나가 제대로 된 공부라 여겼습니다.
그러던중 이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듣게 되었고
그 이면을 흐르는 연기법에 대하며 이마를 탁 치게 되었지요.
더불어 아함중도체계를 보면서 무아와 십이연기 오온 등을 견문하곤
이해와 무아 연기 나에 대한 깊이를 더하였습니다.
이해가 헤아림과 추론 만이 아닌 연기 속의 실천적 명상과 둘이 아닌 공부임을 안게 되었지요.
다만, 견해에 떨어지지 않고자 하고 이해가 딸리지 않고자 하면서 견해를 세움없이 이해를 적극 수용합니다.
지금 저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헌데, 보명님께서 올려주신 능엄경에서의 "見" "상주불멸의 나"를 만나곤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아서 곤혹스럽습니다.
_()_
Re:믿음 의심 이해
날짜 :
믿음
내 공부는
어느 변에서
맴
도
는
듯
순환의 궤도를 그리고있다
다만, 하나
이해한 대로만
행
하
라
이해하고 이해하여 행하고 행할수록
궤도는
나선형의 무한중력
블
랙
홀
가없는 우주를 열리니 그저 멈춤없이 돌리라
- 2005. 11. 10. -
아래 "무아無我와 견성見性에 대한 저의 信解"에 대한 답글을 예 올려놓고 갑니다.^^
_()_
결과에 대한 [확실한 지식]은 부처님만 아십니다.그것을 [일체종지]라 합니다.
그러므로 "추론하지말라"는 것입니다.자신이 머릿속으로 "이럴것이다"하고
분별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견해]라는 것입니다.
禪에서 말하는 견성은 [이치]면에서 부처님과 같이 깨치는 것이니,
[불법의 이치에 통달했다]하는 것이며,[바른견해]를 증득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낱말의 뜻을 이해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위 보명님의 지적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禪이 脈을 짚거나 질러가는 정문일침의 核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見에 관해서 아래 능엄경에서 말씀하신 상주불멸의 마음이라는 데에는
연기와 매치가 되지않아 곤혹스럽습니다.
이해없는 믿음만이라면 자기최면의 함정에 걸릴 수 있음이라고 저는 경계하고자 합니다.
이해라는 말은 보명님께서 지적하시는 견해와는 또 다르다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자기반성이고 진단이며 의심으로 믿음을 다져가는 것이라 불퇴전의 믿음을 쌓아가는 실천행으로 부여합니다.
자칫 이해가 헤아림이나 추론에 떨어지는 길인 것 같지만 그것은 견해라고 한다면 저만의 억지이겠습니까?
이해는 헤아리기 위한 헤아림이나 추론을 위한 추론이 아니라고
그래서 견해와 구별되는 실천향이 절로 스며있다고 여깁니다.
이해란 바로 "여시아문 如是我聞"이고 자등명自燈明이라고 생각합니다.
깨침이 홀연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고 화두든 지관이든 이해든 그 부단한 인과 연의 연기법에서의 깨침아닌가...
다만 이해한 대로 믿는 바 대로 행할 뿐 고집하려거나 세우고자 함이 아닙니다.
능엄경으로 마주한 제 곤혹스러움을 서산대사님의 선교결에서 더욱 증폭시키며
앞서가시는 님들의 공부를 청해봅니다.
보명님,
님께서 올려주신 능엄경의 '[상주불멸의 마음]과 [연기]는
서로 어떠한 의미인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명님과의 필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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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멋지네요^^*
청향님, 좋아서 하나 가져갑니다. 고맙습니다. 늘 평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