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수현 기자
',event)"> |
벨기에 맥주 전문점 <버진> |
처음 눈길을 끈 것은 스타 셰프 에드워드 권이었다. 에디스 카페라는 대중적인 식당으로 모국 시장을 처음 공략했던 그가 지난 5월 야심 차게 준비한 시그너처 레스토랑 '더 스파이스'의 문을 연 장소는 강남이 아닌, 이태원 제일기획 위쪽, 한강진 역에 조금 못 미친 곳이었다.
섹스 위에 형성된 자유의 자기장
"지금 뉴욕에서는 일본식 달콤한 디저트인 스위츠에 사케를 곁들여 먹는 게 유행이에요. 한국 사람들은 단 것과 술의 매치를 생소해 하지만 교토푸에서 한번 제안해 보고 싶어요."
"부처스 컷은 오리지널 스테이크 하우스입니다. 다른 상권과는 달리 지역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현지 그대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한남동을 택했어요."
"진짜 제대로 만든 체코 굴라쉬를 먹고 싶으면 캐슬프라하 이태원점으로 가세요. 홍대점에서는 한국인들이 고기 요리에 채소 한 점 없다고 불평하지만, 이태원에서는 채소가 들어가면 정통 굴라쉬가 아니라는 걸 알거든요."
이태원은 서울 유일의 열린 문이다. 동양의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한국인들은 아직도 피 섞임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상당하다. 최근 안산과 동대문, 그리고 농촌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는 다문화 사회를 향한 경계와 혐오는 한국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태원은 그 견고한 성곽에 난 유일한 틈으로, 혼혈의 역사는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임진왜란 당시 한양을 점령한 일본군은 무차별로 이 나라를 짓밟던 중 이태원 지역의 비구니들이 모여 사는 절을 습격해 여승들을 집단 윤간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이태원은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과 왜군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자들, 그리고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되었는데, 이 때문에 다를 이(異), 태반 태(胎) 자를 써서 이태원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그 후로도 임오군란을 진압하기 위한 청나라 부대, 일제시대의 조선사령부, 광복 이후엔 미군부대 등등 이태원은 내내 자의든, 타의든 이국을 향해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이 동정보다는 경멸의 대상이 된 이유는, 성을 갈취당하고 사고 판 비극적인 역사를 애도하기보다 '섞였다'라는 사실 자체를 이 나라가 못 견뎌했기 때문이다. '내놓은 자식'이 된 이태원은 성의 치외법권으로 인정(?) 받으면서, 자유와 혼재, 다양함의 문화가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했다.
사회가 받아주지 못한 게이와 트랜스젠더, 흑인, 이교도들을 이태원이 용서해 주었다. 후커 힐(hooker hill: 기지촌)과 이슬람 사원이, 대한민국 최고의 부호들과 재개발 구역의 극빈층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존했다.
"이태원에는 제한이라는 것이 없어요. 이미 모든 것이 다 섞여 있고 허용돼 있는데 무슨 짓을 하든 누가 신경 쓰겠어요."
미술과 건축의 결합을 주제로 공간 해밀톤에서 전시를 했던 정소영 작가의 말이다. 남자가 여자로 변하는 곳에서 터부라는 게 존재할까? 거기서는 어떤 전위 예술도, 다원주의도, 술 안주로 케이크를 먹어도, 고깃국에 야채 한 점 없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홍대의 저항 정신, 삼청동의 전통과 현재의 조화가 예술가들을 끌어들이는 힘이었다면, 이태원의 에너지는 섹스가 열어젖힌 다양성, 그 안에서 일어나는 충돌이다.
그 화끈하고 대담한 기질은 이웃인 한남동 길의 성격에도 당연히 영향을 끼쳤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서울 최고의 부촌 중 하나인 한남동답게 가격에 대한 터부도 없다는 것.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과 값비싼 명품 매장이 대로변을 채워가고 있지만 이것들이 정체성의 실체는 아니다.
"사람들이 이곳에 기대하는 건 단순한 럭셔리가 아니에요."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작업 중인 벨기에 작가 로랑 페리에라는 창문 밖으로 행인들을 관찰해 왔다.
"최근에 강남 사람들이 이쪽으로 많이 놀러 와요. 외제 차를 탄, 이른바 패션 피플들이죠. 하지만 예술, 그것도 실험적이거나 대안적 예술에 대한 욕구가 있는 사람들이에요. 새로운 것과 외래 문물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된 사람들이죠."
이 거리를 점령하고 있는 카페나 바들은 술, 음식을 파는 일 외에도 작품 전시, 그리고 작가들의 커뮤니티를 위한 공간의 성격이 강하다. 하나같이 갤러리에 갇힌 파인 아트를 거부하며 생활밀착형 예술을 추구한다. 벨기에 맥주 전문점 버진에서는 네덜란드 작가 아드리안 리스가 만든 재떨이가 탁자마다 올라와 있다.
작가의 기존 작품을 갤러리에 들여온 것이 아니라 버진의 요청으로 작가가 벨기에 맥주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도자기 작품이다. 물론 담배를 피운 후 재를 떨어도 된다.
"아드리안 리스는 원래 공공미술을 주로 하는 작가에요. 본인의 스타일을 살려서 공간에 맞는 소품을 디자인한 거에요. 작가들로서도 새로운 경험이죠. 버진에서는 이런 식의 협업을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있어요."
작가들이 지역의 공간과 부딪히며 만들어가는 이런 작업들 때문에 한남동 길에는 저 아래쪽 이태원 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지금'의 문화가 살아 있다.
"이태원 지역을 조금만 들여다 보면 다문화 사회이긴 한데 그 껍질만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나이지리아든 오스트리아든 지금 그 나라에서 공유되고 있는 문화라기보다는 수십 년 전의 것들인 경우가 많아요.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에요."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최서연 디렉터는 관광특구 이태원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들르는 곳이 설렁탕 집과 태극 부채를 파는 기념품 집뿐이라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에는 현대미술 작가들이 상주하며 작품을 만든다. 작가들의 아이디어는 그들의 작품뿐 아니라 메뉴, 서비스, 커뮤니케이션 방식 등 카페 구석구석에 수용된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공간에 들어섰을 때 양질의 한국 컨템포러리 문화를 소개하고자 기획한 것이다.
서울 안 작은 용광로 이태원, 그 안에서 제련된 순수한 자유가 한국의 작가들과 조우하는 곳, 그곳이 바로 한남동 길이다.
[이태원의 재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