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소 떼라던가 양떼...
말이라던가 개 그리고 마차,
괭이, 삽 장화... 대륙 , 평야 그런것이
내 취향에다 헐리우드의 영향이 겹친것 같다.
'로-하이드라는 카우보이 영화를 동경하고, 빠져 들었던...
중학 때 부터
동네 아이들과 토끼를 공동사육해 보고
아버지가 하시던 양계업에다 양돈으로 이어지면서
내 스스로 수 마리의 토종닭을 백 여마리로 늘려 보기도 했던
자연스레 동물을 좋아하게 되었던 나는 지금도 동물의 왕국이나,
네쇼날 지오그래픽의 아프리카 이야기는 봤던거 또 보고 보고 해도 재미있어 한다.
도시에 살면서도
잠재되어 있던 그런 취향이
비봉 출판사의 "한국 농업 이 길로가야 한다"를 탐독하고는 불이 붙어
경실련에 가입하고 할동하면서 김성훈,장원석, 김완배등 혁신 농학자들을 존경하게되고
방송대 농학과에 입학하고는 이어서 귀농본부에 교육도 받고,이러한 일련의 진행 중에서...
전라도 변산의 유기농 생산 단체에서
농산물 운반차를 운전하면서 실무를 볼 수 있는
간사를 구 한다기에 그 곳에 투신하기로 결정을 했다.
물론, 주위의 반대는 심했지만, 월급을 받으면서 어릴 부터의 꿈을
실현 할 기회를 만들어 보자고 했던 것이다.
돈도 땅도 없는 나에게는 귀농 연착륙을 시도 함이라...
그 곳에,
생산자와 소비자들과 상견례를 가지고
다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마뜩지 않던 그들이지만,
어디 시골서 박봉에 일 할 사람이 흔하기야 하겠는가 무난한 승락에
안산 살림을 정리하게 되었다.
근 한 달 정도의
그 쪽 빈 농가의 수리며 무엇이며 하면서
두 아이를 거닐고 변산반도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두려움과 생소함에도 빠르게 적응해 갔고 특히나
딸 아이는 잘 왔다 싶을 정도로 시골생활을 즐기기 조차 하였다.
단체의 실무를 인수 받는 중에,
동네의 품을 팔면서 그 쪽 사람이 되어가는 한 여름 어느날,
농일을 마치고 술이 취해서 자는 밤중에 걸려온 전화 한 통화가
나의 귀농생활의 첫 시련이자 가장 어려운 현실을 안겨 주는 계기가 되고야 말았다.
느닷없이 밤 중에 전화를 건 사람은
귀농본부에서 교육을 받았던 교육동기였다.....
첫댓글 자기를 내보이는 것이 쉽지 않음에도 그럴수 있는 것은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런 흐름이자 삶이기에 가능하지 않나 생각합니다.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아 보입니다.귀담아 듣겠습니다. 그리고 재미도 있습니다. 2편이 기대됩니다.
저도 스케치북에다 내 꿈을 살며시 그려놓은적이 있습니다. 어렸을적 울 엄마가 그냥 집뜰에다가 닭을 키웠었지요 겨울에는 한방에서 병아리랑 살았죠. 추운겨울날 따뜻한 부뚜막에 어미닭이 계란을 품고 있었죠. 추울까봐 엄마가 그리 키웠죠. 아직 실천못했지만 조만간...
조만간 꿈을 이루기 바랍니다. 풀 띁는 풀밭의 염소들 쭈그려 앉아서 맑디 맑은 눈망울 바라다 보면, 대화가 이루어지요. "새꺄~ 뭘 쳐다보고 그래에~ 먹느거 보고 그러면 울메나 쪽 팔리는지 아냐? 시간만 나면 붙어 앉아요. 가서 일해라 일! 애구 요기 맛나는 쥐손이 풀 있다! 냠냠 쩝쩝~" 평화! 그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