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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주관(一. 마음이 몸을 주관하는 것이 자아주관의 기본이다)
아버님은 천주주관 바라기 전에 먼저 자아주관하라고 누누히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 역시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셨습니다.(마 16: 26, 막 8: 36)
우리가 자아주관이라고 하면 아주 고차원적인 심령과 영적 세계의 주관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신앙의 급이 높아 심령 세계와 영적 세계를 주관하는 것이 자아주관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아주관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선 가장 기본적인 생활 속에서 자아주관의 길을 어떻게 밟아갈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본인은 생활 속에서 어떻게 자아주관의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도록 합니다.
一. 마음이 몸을 주관하는 것이 자아주관의 기본이다
자아주관의 가장 기본은 마음이 몸을 주관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몸과 마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몸과 마음 중에 마음이 주체이고 몸이 대상인 것은 창조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주체인 마음이 대상인 몸을 주관하는 것이 자아주관의 가장 기본이 될 것입니다.
내 마음이 육신의 욕구에 따라 살다보면 자아주관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는 바로 대상이 주체를 주관하는 역 주관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했습니다.(롬 8: 3-6)
마음이 몸을 주관하지 못하면 영적으로 사망하게 되고 육적으로도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하지만 마음이 원하는대로 몸을 움직여 산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란 사실을 누구나 실감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위를 생각해서 그만 먹어야 하는데 입은 더 먹으라고 하고 그(육)에 주관을 받아 과식을 하다보면 위가 쉬이 망가지고 건강까지 나쁘게 되는 사례는 허다합니다.
또한 잠자는 것도 주관하고 싶은데 그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버님은 낮잠을 주무실 때도 5분이면 5분, 10분이면 10분 시간을 정해놓고 주무시고 정확히 당신이 정해진 시간이 되면 깨신다는 간증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먹는 것이나 잠자는 것을 비롯하여 모든 생활 속에서 마음이 원하는대로 육신을 움직일 수 있어야 자아주관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궁극적으로 본심(양심)이 원하는대로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여 마음이 몸을 주관하는 경지에 들어가야 심령이 발전하고 영계도 개척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주체이며 영계를 닮아 있습니다. 당연히 몸은 대상이고 육계를 닮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몸을 주관한다는 것은 곧 주체 세계인 영계가 대상 세계인 육계를 주관할 수 있게 하는 길인 것입니다.
이렇게 심령의 급을 높여 마음이 몸을 주관하는 훈련을 잘 함으로써 영계까지 주관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님께서는 꿈도 주관을 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꿈을 주관하면 이는 곧 영계를 주관할 수 있다는 뜻도 되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악몽을 꾼다는 것은 영적으로 괴로운 일입니다. 그리고 잡다한 꿈에 시달리면 피곤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인체가 병들고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아주관의 훈련을 통해서 마음이 몸을 잘 주관하는 내가 되어 영적 세계인 꿈의 세계를 주관해서 영계까지 주관할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생활 속에서 사소한 일에서부터 하나하나 자아주관을 하는 훈련을 함으로써 진정한 심령의 발전을 가져와서 나중에 심령 세계를 주관하고 영계까지 주관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아주관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고 깨는 데서부터 생각하고 말하는 사소한 모든 행동거지를 본심에 비추어 살아가는 내가 될 때 자아주관의 길이 개척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자아주관의 길을 걸어서 심령 세계와 같은 영계까지 주관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근본 주체이신 하나님이 내 마음 속에 임재하시게 해야 완전한 자아주관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원리에서는 직접주관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내 심령 가운데 직접 운행하시어 나의 심령을 이끌어 가실 때 완전한 자아주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아주관이 이루어진 내가 되었을 때 하나님과 동고동락하여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영적 세계까지 주관할 수 있는 자아주관의 길을 어떻게 개척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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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경>
4) 인간본성의 참된 생활
① 마음에 동화된 생활을 해야
자기의 제일 가까운 선생이 누구냐 하면 자기 마음입니다. 제일 친한 친구보다도 귀한 것이 자기 마음이고,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더 귀한 것이 자기 마음입니다. 마음한테 물어 보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는 하나님이 들어와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됩니다. 그 자리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불교로 말하면 자성을 맑혀야 된다는 말입니다. 석가모니가 말한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란 내가 나한테 물어보면 나에게 하나님이 들어와 있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133-178)
1424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희생하려고 합니다. 양보하려고 합니다. 주고도 또 주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돈이 100억이 있어 길가에 나가서 전부 다 나눠주었다 해도 세계 인류를 못 도와주었기 때문에 돈이 더 있으면 더 나눠주고 싶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입니다.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측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자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일을 했더라도 마음한테 물으면 '더해야 되지!' 이렇게 답변한다는 것입니다. (133-180)
자기 마음을 맑혀야 됩니다. 마음을 맑혀야 됩니다. 마음이 선생보다 나은 것입니다. 마음은 영원한 내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사(邪)된 마음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리에 속한, 공적 자리에 선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133-178)
어떤 사람을 척 보면 그 사람이 어떻다는 걸 마음은 대번에 압니다. 벌써 그걸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가까운 선생이 자기 마음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을 괴롭게 하지 말라 이겁니다. 마음을 슬프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요, 천주의 주인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내 일생의 주인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슬프게 하는 건 내 일생의 주인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길을 가야 됩니다. (133-180)
마음하고 즐기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으로 보게 되면 외로운 자리 같지만 마음하고 친구 되는 시간입니다. 마음하고 앉아서 명상이라도 해보라는 것입니다. 깊은 기도의 자리로 들어갑니다. 남모르는 깊은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133-180)
② 심신일체 이루어야 완성인간
통일교회에서는 심신일체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일체화시키느냐 하면 바로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 만든다는 것입니다. 관념과 실제에 대한 문제도 들어가 보면 여러 가지 배후가 있습니다. 그것을 해명해 들어가면 바로 이 길이 정당한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건 체휼해 보면 증명되는 것입니다. (227-7)
양심이 바르다, 행동이 바르다, 심신일체권을 이루고 있다 할 때, 그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말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행동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심신일체권의 결착점은 어디냐? '우선 90도가 되라. 90도가 되는 데는 모든 세상 가운데 수평으로서 중심이 될 수 있는 기준을 세워라. 서양에 가더라도, 동양에 가더라도 연결될 수 있는 표준적인 인간이 되어라. 그래서 역사적으로 현재와 미래를 통해서 보더라도 그것은 틀림없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야 된다.' 이게 결론입니다. (205-27)
1425 인간의 귀중한 가치를 만점으로 만드는 것은 참사랑과 일체가 될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심신일체는 양심과 육신이 공명권에 서 있는 것을 말합니다. 소리굽쇠의 주파수가 같을 때, 하나를 땡 치면 그 반대의 소리굽쇠가 울립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참사랑으로 양심을 치면 육신이 울리는 것입니다. 참사랑으로 육신을 땡 치면 양심이 공명권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그 한가운데 들어가면 가르쳐야 될 모든 것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223-342)
통일교회의 용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심신일체권(心身一體圈)을 이루어야 됩니다. 이 생애 동안에 심신일체권을 어떻게 이루느냐?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자가 사랑을 생각하고 이상을 생각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천운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완성한 자기 자신을 지향하는 거기에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연결되는 것이지, 그냥 그대로의 기준에 있어서는 새로운 희망의 천국에 연결되는 길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205-27)
심신일체를 어떻게 이루느냐? 역사를 통해서 심신이 분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셨다고 하면, 그런 하나님은 인간의 적입니다. 자기가 그런 입장에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 가지고, 하나님께 '하나님 자체의 마음과 몸이 인간 같이 싸웁니까?'라고 물어 보면, 하나님이 어떻게 대답할까요?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사람 있어요? 하나님도 인간과 같이 양심과 육신이, 심신 일체되지 않고 싸우고 있느냐고 물어 보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십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경지에 도달한 적이 없으니까 모를지 모르지만, 통일교회 교주로서는 그런 경지를 언제든지 연결할 수 있는 길이 있으니까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심신일체가 되어 있습니다. (223-342)
종교생활은 몸을 주관하는 것입니다. 3년 내지 5년 이내에 습관성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고 불편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할 때는 심신일체를 아무리 바라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제1 목표는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통일권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아무리 세계를 뛰어다녔다 하더라도 자기와 관계를 가질 길은 절대 없는 것입니다. (222-328)
1426 인간의 몸은 사탄의 혈통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양심은 아담과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 성장할 때까지 있었던 하나님의 양심의 기준까지 성장해야 됩니다. 그건 신념입니다. 그것과 반대되는 사랑의 힘에 의해, 이 양심 이상의 힘으로 인해 사탄에게 속아 버렸습니다. 양심도 육신의 방향에 따라야 했던 것입니다. 양심 쪽에 더 힘을 줘야 됩니다.
훨씬 더 많은 힘을 주게 되면, 육신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양심이 육신보다 약하면 현재의 상태보다 더 밑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 두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금식이라든가 냉수 목욕을 하고 희생과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 외의 길은 없습니다. 여러분들 그래요? 이 길 가고 있어요? 죽더라도 희생과 봉사를 하겠다고 맹세합니까? 그래서 죽을 각오를 하고 반대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의 갈 길, 그것은 굴복의 길입니다. 심신이 싸우는 그 이상의 굴복의 길입니다. 그 길을 가지 않고는 심신일체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222-328)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오래됐다고 해서 죄를 묻어 두면 안 됩니다. 그것을 청산지어야 됩니다. 수속을 밟아 청산해야 됩니다. 내 생애의 모든 것을 백지화시켜서, 거기에서 새로이 부활되어 에덴동산에서 죄 짓지 않고, 하나님이 만들어 놓았던 몸 마음이 완전히 참사랑과 하나될 수 있는 본연적인 나라고 자각할 수 있는 남성 여성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알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고향에 못 갑니다.
여러분은 고향집을 찾아가야 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본연적 부모가 계시고, 본연의 우리 집이 있고, 황족권 생활을 중심삼고 만국을 처리할 수 있는 장자권 국가의 후손들이 살아야 할 곳이니, 그곳이 새로운 내 고향집입니다. 자기가 난 그 고향이 아니라 새로운 내 고향집, 본연의 집을 찾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고향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내 자신이 심신일체가 돼 가지고 통일권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33-127)
암만 잘못했더라도 '하나님, 나 이렇게 잘못했어요!' 이렇게 솔직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본연의 마음이 이렇고, 애비의 마음이 이렇고, 스승의 마음이 이렇고, 나라의 백성의 마음이 이렇게 되어야 할 것이 아니오? 이러한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시키려고 충효하는 내 마음이 변치 않을 것이오. 그런 마음을 긍휼히 보시사 오늘 되어진 그 마음 앞에 모든 것을 용서해 줄 수 있겠지요?' 이러면 하나님이 '음음'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방법도 알아야 됩니다. 아시겠어요? (149-9)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사시는 곳은 도대체 어디겠어요? 하나님은 가장 가치 있는 사랑에 정착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남자 여자의 두 사람이라고 하면, 하나님은 어디에 있겠어요? 하나님은 일체화되고 변하지 않는, 통일된 사랑의 가장 밑바닥에 수직으로 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뭔가 하면 남자 여자가 하나된, 그게 중심점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신비한 기도의 경계, 영적 체험권에 들어가서 '하나님!' 하면 뱃속에서 '왜 부르느냐? 여기 있다, 여기!'라고 대답합니다. '여기'라는 것은 자기의 마음 가운데입니다. 심신일체가 된 사랑의 중심점, 수직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점을 수직이라고 보면, 이것은 영점이라는 것입니다. (224-124)
1427 심신일체가 되면 우주의 힘이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우주의 힘이 보호해 주는 몸 마음이 되면 부모도 우주의 인연을 가진 부모, 형제도 그런 인연을 가진 형제입니다. 모두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민족, 나라가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멋진 결론입니다. 그래서 나라를 넘어서 다른 나라에 가더라도 그런 일체권을 이루게 되면 거기서도 통합니다. 어디에도 통하는 것입니다. 축구를 할 때 볼이 굴러가다가 멈추면 어떻게 돼요? 그 표면 전체가 합할 수 있는 데는 수직선을 통합니다. 그래서 구형체를 이상적인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표면의 어떤 곳에서도 그 수직선이 안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굴러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신일체권, 90각도가 되면 어디든지 다 맞습니다. 서양사람과 동양사람, 과거의 사람과 현재의 사람, 미래의 사람 할 것 없이 어디든지 다 맞는 것입니다. (205-27)
③ 마음이 곧 스승이요, 가까운 하나님
마음은 누구냐? 내 주인입니다. 내 선생입니다. 마음은 누구냐 할 때, 마음을 닮은 몸뚱이를 낳았으니 내 몸뚱이의 근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면적으로 어머니 아버지 대신입니다. 마음은 부모 대신이요, 스승 대신이요, 그 다음에는 주인 대신입니다. (222-142)
여러분의 마음은 스승이 필요 없습니다. 마음은 제2의 하나님입니다. 스승을 따라가지 말고, 통일교회 선생님을 모시지 말고 여러분의 마음을 모시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때요? 새벽에 일어나 가지고 혼자인데, 쥐새끼 소리도 안 들리고 파리 소리도 안 들리고 조용한데,'아이구, 나 요런 것을 좀 해야 되겠다. 좋은 일을 해야 되겠다.'고 하면 마음이 '좋아! 좋아! 어서 해라! 하지만, 나쁜 생각하면 마음이 '이놈!'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알아요, 몰라요? 알지요. 그렇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잘 아는 것입니다. (138-70)
마음의 가치, 내게서 마음이 얼마나 비싼 것인가를 생각해 봤느냐는 것입니다. 마음은 몸뚱이가 잘못된 곳에 가려고 하면 언제든지 충고를 하고 이러면 안 된다고 다 제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몸뚱이는 언제나 마음을 공격하고 무시하고 밟아치우고 제멋대로라는 것입니다. 핍박을 당하면서라도 죽을 때까지 나에게 있어서의 전우와 같이, 스승과 같이 주체적 사명을 감당하기에 희생을 치러 나가는 것이 우리의 몸에 달려 있는 마음이라는 것을 생각해 봤느냐 하는 것입니다. (217-88)
1428 인간의 주인은 바로 자신의 양심입니다. 이 양심이 얼마나 여러분을 위해서 충고를 했으며, 밤이나 낮이나 나쁜 생각을 할 때는 '야 이놈!'하고 지치지 않고 끌고 고개를 넘고 강을 건너려고 얼마나 안달했습니까? 이처럼 마음은 참된 주인의 모습을 지니고 나를 보호하려는 데도 배반한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우주로부터 귀한 스승으로 점지하여 받은 선생님인데도 불구하고 이 선생님을 여지없이 천대한 이 몸뚱이, 또 내 본연의 사랑의 마음을 이어줄 수 있게 한 부모 대신 보내 준 양심을 여지없이 유린한 이 몸뚱이, 이렇게 마음의 원수가 된 이 몸뚱이를 여러분은 사랑합니까? 아닙니다! (201-339)
이제 우리가 누구의 말을 들을 때는 지나갔습니다. 어떤 진리보다도, 천만 배 훌륭한 스승의 말보다도 내 마음의 말을 듣고, 들어도 또 듣고 싶어 그 마음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나도 알 수 없는 무한대의 무엇이 나옵니다. 그것이 창조의 내용입니다. (7-173)
양심이 몸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당했습니다. 일생 동안 유린당하는 양심의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요? 밤이나 낮이나 나를 관리하기에 피곤한 것이 양심입니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몸이 나쁜 행동을 하려 하면 막는 것입니다. '그만큼 했으면 이제 그만두어야 할 것 아니냐. 내 말 좀 들어야 될 것 아니냐?' 고 합니다. 자기 앞에 제일 가까운, 부모 대신 하나님 대신 스승 대신의 존재가 양심입니다. 마음 자체에게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몸뚱이에게는 교육이 절대 필요합니다. (214-260)
여러분의 몸 마음을 중심삼고 볼 때 마음이 얼마나 불쌍해요? 마음은 하나님 대신입니다. 마음은 열조, 선조들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스승을 대표하고, 마음은 나랏님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이 마음을 얼마나 멸시하고 천대했어요? 우주의 중심으로서 참된 부모의 자리에 있고, 참된 스승의 자리에 있고, 참된 주인의 자리에 있는, 참사랑을 가진 주체로 계시는 분의 대신으로 있는 그 마음이 이 땅 위에 있어서 나 하나를 수습하기 위해 얼마나 희생했어요? 그렇게 희생하면서도 불평해요? 그저 천대받고 끌려다니면서도, 죽은 줄 알았는데 나쁜 생각을 가지고 새벽에 도둑질이라도 하게 되면 '야, 이놈의 자식아!' 하고 또다시 살아서 충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마음을 얼마나 농락했어요? 마음은 부모 대신이요, 마음은 스승 대신이요, 마음은 주인 대신입니다. 마음세계에는 공판이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 자신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제3자, 증인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209-116)
1429 나 자신에게 위대한 스승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마음은 위대한 어머니 아버지 대신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마음을 거슬러 훈시하는 법이 없습니다. 마음이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훈계할 때는 복종할 줄 알아야 됩니다. 이런 모든 질서적 환경에 있어서 기원이 될 수 있는 도의적인 결론이 안 나와 있습니다. 그런 공식이 안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잡아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중인격을 좋아해요? 마음은 선생 대신, 부모 대신, 하나님 대신입니다. 마음을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이 없습니다. (207-216)
모든 인간은 저마다 자신 속에 가장 소중한 스승을 일생동안 내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스승을 잘못 대우하고 짓밟고 남용합니다. 그 스승이 바로 인간의 양심입니다. 우리의 양심은 항상 우리 자신에도 도움이 되도록 말을 하며 우리를 참사랑과 연결시켜 주고자 합니다. 부모와 같이 우리의 양심은 우리로 하여금 선하고 비이기적인 사람이 되라고 촉구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도록 인도해 줍니다.
그러나 각자의 마음속에는 또한 양심의 소리에 항상 거역하는 반란자가 있습니다. 그 반란자는 바로 육체인 것입니다. (201-203)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하는 것이 도의 길을 개척하던 때의 표어였습니다.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세상만사와 어떤 연관을 갖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고 그랬습니다. 귀중한 3대 손님입니다. 주인이 될 수 있고, 스승이 될 수 있고, 부모가 될 수 있는 이분을 내 몸이 천년만년 모시고도 부족하다 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에 비로소 여기에 천운이 임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몸을 위하고 싶어하지만 몸뚱이는 마음을 위하지 않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문제는 내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사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201-137)
이처럼 마음은 참된 주인의 모습을 지니고 나를 보호하려는데도 배반한 이 몸뚱이, 우주로부터 점지해 받은 하나밖에 없는 귀한 스승인 데도 불구하고 이 선생님을 여지없이 천대한 이 몸뚱이, 또 내 본연의 사랑의 마음을 이을 수 있게끔 부모 대신 보내진 양심을 여지없이 유린한 이 몸뚱이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원수가 된 이 몸뚱이를 여러분은 사랑합니까? 아닙니다. 몸 마음의 싸움을 말리기 전엔 천국이 없는 겁니다. 어느 성인도 이런 것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201-137)
음과 양, 성상과 형상이라는 플러스 마이너스는 상대적이지 상충적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타락한 인간에게는 마음의 소리도 있고 몸의 소리도 있습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닮아서 태어나야 할 남자나 여자의 마음과 몸이 어떻게 되어서 갈라졌느냐 이겁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1430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서의 표준상인 몸과 마음이 절대적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전체 세계에 동화될 수 있고 하나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갈라졌느냐 이겁니다. 몸과 마음이 갈라진 것이 마음대로 되었다면 하나님이 없는 것이고, 이상이니 통일이니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것의 기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195-303)
하나님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속에 있습니다. 마음이 여러분의 주인이지요? 밤에 그저 나쁜 짓 하려 해도 나타나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고, 언제든지 나타나 주인 노릇하고 어디에서든지 어머니같이, 스승같이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놈의 몸뚱이가 원수입니다. (201-60)
하나님은 누구 닮았다구요? 남자, 여자, 우리 닮았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보이지 않지요? 마음 보고 싶소, 안 보고 싶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영적인 입장에서 보게 되면, 하나님도 체(體)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체가 없습니다. 아담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아 체가 지금까지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 같은 우주에 마음 같은 주인, 마음 같은 스승, 혹은 관리자, 마음 같은 부모로 있습니다. (197-9)
여러분, 몸과 마음이 하나 안 돼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됩니다. 기도할 때 몸과 마음이 가책하는 것이 있으면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할 때는 혼자는 안 됩니다. 동서남북을 갖춰야 됩니다. 자기의 제일 가까운 사람, 부모 앞에 통고해야 됩니다. 스승 앞에 통고해야 됩니다. 그 다음 자기 아들딸한테, 자기 제자한테 통고해야 됩니다. '나에게 이런 이런 일이 있는데 용서받을까?' 이래서 합심해서 후원할 수 있는 이런 길을 가야 됩니다.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184-192)
몸과 마음이 언제 통일될 수 있느냐? 그거 생각 안 했지요?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일생동안 몸과 마음이 싸움을 하는데 이 싸움을 말릴 자가 누구냐? 이게 문제입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못 말립니다. 임금도 못 말리고, 스승도 못 말립니다. 성인도 못 말립니다. 이 몸과 마음의 싸움을 말릴 수 있는 주인이 어디 있느뇨? 심각히 찾아봤어요? 그것이 참사랑이라는 겁니다. (184-192)
마음은 여러분의 파수꾼이 되어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여러분을 지켜 주고, 여러분을 쉬지 못하게 자꾸 '선한 일을 해라. 선한 일을 해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피로하겠어요? 난 그날부터, 의식을 생각할 수 있고 사회환경에 있어서 모든 제도를 분석할 수 있는 지능적 기원이 생기는 그날부터 일생을 따라다니면서, 자기 스승도 못 따라가고 어머니 아버지도 못 따라 주지만 난 그날부터 죽을 때까지 영원히 양심은 나에 대해서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1431 하나님 닮아라, 성인 닮아라, 애국자 닮아라, 효자 닮아라. 그와 마찬가지로 닮기를 바라는 것인데 '몸뚱이 너는 나를 닮아라!' 한다는 것입니다. (179-258)
여러분의 몸과 마음의 통일도 참사랑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몸을 위해서 희생하면서 또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대신한 입장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스승 중의 스승이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하나님이 당신을 대신해서 파송해 준 내 중심입니다. 종적인 나입니다. (226-7)
<말씀선집>
천국을 이루려면 자아주관부터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밥을 먹으나 어디를 가나, 일상생활이 하나님과 더불어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대상적 존재이지 주체가 아닙니다. 남편을 모시는 아내와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하고 부모를 모시는 자식과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거동을 할 때는 ‘ 아무 데 가서 이것을 하고 오겠습니다.’ 라고 부모 앞에 보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직접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생활을 떠나서는 신앙생활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집 46권 81-81쪽)
마음의 명령을 따라야 되고, 마음의 소리를 키워야 돼요. 수도 가운데 제일 빠른 길이 이 길입니다. 수도하는 방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바로잡아야 돼요. 마음 밭을 계발해야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참선 같은 것을 하는데 ‘ 마음이 무엇이냐?’ 하는 거예요. 마음을 몰랐어요. 마음이 뭐냐 하면 하늘로부터 종적인 혈통을 받아서 하나님의 직계 혈통을 받을 수 있는 본연의 자리 예요. 또, 마음은 뭐냐 하면 종적인 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부자지 관계에 있는 종적인 나라는 것입니다. 그걸 몰랐다는 거예요. 부자지 관계가 되는 것은 사랑의 혈통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핏줄 이 연결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의 핏줄을 받은 거예요. 아 담 해와가 타락해 가지고 아들딸을 낳았지, 타락하기 전에는 아들딸 안 낳았습니다. 그래,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난 조상의 후손이 되었다는 거예요. 쫓겨난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하고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쫓겨나지 않았을 때 본연의 하나님과 같 이 살 수 있는 마음은 천년 만년 같이 있고 싶은 심정이라는 것입니 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영계를 통하든가, 그런 경험을 하게 되어 가지고 ‘ 하나님이 어디에 있어?’ 하면 말이에요, 가슴속에서 대답한다 는 것입니다. 자기가 마음먹으면 응답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마음은 나침반과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알고 있습니다. 마음이 뭘 찾아가느냐? 사랑을 찾아가는 거예요. 사랑은 지남철과 같고 마음은 철과 같기 때문에 서로 언제나 찾아가는 것입니다. 최고 를 바라는 거예요. 마음의 욕망은 최고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의 주체라 하기 때문에, 그 주체를 근본으로 다 최고의 자리에 갖 다 놓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지켜서 키워야 할 것이 오늘 지상세계인 데 타락하지 않았으면 이걸 키울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완성해 가지고, 마음이 커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내가 완성할 수 있 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개인에서부터, 가정․사회․나라를 중심삼고 전부 다 자동적으로 도수를 맞춰 가지고 일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그걸 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 마음에는 스승이 없는 거예요. 마음에는 스승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양할 때는 마음을 계발해야 됩니다. 심전(心田), 마음 밭을 계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 문을 열잖 아요, 마음 문? 그 마음의 문을 여는 거예요. 그러면 마음도 이렇게 되 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몸과 마음이 둘이 회전하는데 이것이 딱, 기 어에 맞춰 가지고 회전하면 억천만 년이 전부 다 맞는다는 거예요. 이 게 기어가 제껴져 가지고 이게 마음대로 돌아간다구요. 그러나 어느 때 마음과 몸이 맞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언제냐? 기도 같은 것도 그래요. 마음 문을 맞춰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안 맞추더라도 땅이 맞아야 돼요. 서 있는 땅이 남쪽 되어 있느냐, 북쪽으로 되어 있느냐? 해 가지고 동서남북을 맞춰야 되는 겁니다. 안 그래요? 그 위치에 따라서 전부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문을 맞춰야 돼요. 그래, 자기들이 기도를 할 때, 기도가 잘 되는 시간이 있으면 절대 그 시간을 놓치지 말라는 것 입니다. 뭐 세상에 인사가 어떻고 회사가 몇 개 도망가든지 해도 그 시간은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회사야 누구든지 다 할 수 있지만 마음 을 바로 잡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잘 생각해야지요. 아버지가 하던 기준은 누구 든 상속을 다 할 수 있지만, 마음을 바로잡는 것은 아버지 자체가 해 야 되는 것입니다. 그 만큼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래, 예수님도 그랬잖아요? ‘ 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그건 전 부 다 이방사람이 원하는 것이니, 너희는 오직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한 것입니다. 그 나라가 뭐냐? 마음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 의가 뭐냐? 마음의 의예요. 사랑하는 사람 이상 하나님을 그리워해야 그래, 이 부분에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돼요. (선집 285권 20-22쪽)
왜 그래야 됩니까? 우리 인간은 타락함으로 사탄의 혈통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움직이게 될 때는 이 악한 피가 동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리관 같은 데 넣어둔 흙탕물과 같습니다. 잠을 자면 육신이 쉬기 때문에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맑은 물이 뜨는 것과 같습니다. 본래의 맑은 마음은 하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상징적이라든가 형상적으로 앞으로 갈 수 있는 것을 꿈 가운데 하늘이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꿈이 개꿈인지, 사탄이 가르쳐 주는지, 하나님이 가르쳐 주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압니까? 사탄이가르쳐 주는 것은 꿈의 방향성이 없습니다. 흘러가는 것입니다. 얼른 잊어버립니다. 그렇지만 하늘이 가르쳐주는 것은 체계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전번 꿈과 다음 번 꿈이 연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의 몽시 가운데서 연관성이 있을 때는 하늘의 계시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왜 안 잊혀지느냐 하면 본래 하늘과 인간은 영원히 하나 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 되어 있는 것은 잊을 수 없습니다. 사탄과의 관계는 얼른 잊어버립니다.
이렇게 영계의 지도를 받는 사람들은 전부 그런 사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악한 자리에 갈래야 갈 수 없습니다. 사탄세계에 가더라도 그것이 나타나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심리학자와 같은 사람들이 꿈에 대해서 말하기를 ‘잠재의식의 재현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얼른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생각지 않는데 잊혀지지 않는 꿈은 영적인 현상입니다. (91, 272-275,1977.02.27)
출처: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HsPJ/5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5장 죽음 이후의 삶과 영계)
(위 세계경전 말씀 말씀선집 원문을 발췌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꿈들이 다 있어요. 꿈 없는 사람이 없다구요. 꿈꿔 본 사람 손 들어 봐요. 꿈을 꾸었는데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꿈, 3년 이상 가도 안 잊혀지는 꿈은 하늘의 계시예요. 그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런 꿈꿔 본 사람 손 들어 봐요. 그렇다구요. (웃음)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오는 데도 레버런 문을 몰라보고 통일교회를 모르지만, 여러분들이 벌써 통일교회에 들어오기 전에 옛날에 동양 사람이 와 가지고, 뭐 오색 인종이 전부 다 모여 가지고 레버런 문을 따라가는 것을 봤다구요. 본 사람이 많다구요. 그런 사람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 이 많다구요. (박수) 그런 일들이 왜 벌어지느냐? 왜 벌어지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전부 다 영계에서 인간을 교육하기 위한 방법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그와 같은 단계에서 교육하기 위한 방법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 니다. 가르쳐 주는 방법도 하나님이 가르쳐 주느냐, 천사들이 가르쳐 주느냐? 계급에 따라 전부 다릅니다. 여러 계급을 통해서 가르쳐 줍니다. 자기 조상이 나타나서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것을 분간하기 어려운 거예요. 모르는 사람들은 이걸 분간하기 어렵다구요. 영계가 필요하지만 영계의 내용을 모르고 통하다가는 전부 다 돌아가는 거예 요. 자, 이제는 대개 짐작하겠지요? 「예.」 여러분들, 요즈음 노이로제 현상이 있어 가지고 괜히 혼자 쭝얼쭝얼하는 데, 그거 왜 그러는지 알아요? 그거 다 영계에서…. 이와 같은 관계, 이와 같은 계급에 있는 사람들이 혼자는 못 올라가니까 이 인간세계를 통해 가지고 그 놀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악한 영은 관이 없어요. 방향성이 없어요.
개체완성과 하나님의 뜻
선한 영은 방향성이 뚜렷합니다. (녹음이 약 2분간 끊김)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이런 말 처음 듣지요? 오늘날 심리학자나 이런 사람들이 꿈이 뭐냐 하고 꿈에 대해서…. 어떤 학자는 말하기를 ‘ 잠재의식의 재현이다.’ 이런 말을 하고 있다구요. 그런 것은 얼른 잊어버려요. 얼른 잊어버린다구요. 그러나 생각지 않는데 잊혀지지 않는 꿈은 영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여러분들이 철야기도 같은 것 하지요? 정신을 하늘로 전부 다 올리고, 세상물정을 다 잊어버리고…. 그 경지가 뭐냐 하면 자는 경지에 들어가자 그 말이라구요. 그런 경지 이상의 자리에 들어가자 그거예요. 이 육신의 찌꺼기가 전부 다 침체되면 맑은 물이 떠오르는 거와 마찬가지로 잠은 우리가 정신수양 해 가지고 정신을 올리고 나쁜 의식을 전부 다 내리자는 거예요. 자는 경지, 그런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여러분이 고단하고 그러면 잘락말락 잘락말락 하지요? 그런 때는 다 듣는다구요. 다 보인다구요. 듣기는 듣지만 확실히 듣지 않고 보기는 보지만 확실히 보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무엇이 벌어지느냐? 꿈과 같은 현상이 벌어져요. 그때 뭘 가르쳐 준다구요. 알겠어요? 그거 전부 다 이론에 맞아야 된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래서 철야기도를 하고 모든 육을 단절시키고 정신을 통일해 가지고 자꾸 올림으로 말미암아 장래에 자기의 갈 길이라든가 이런 것이 보여지고, 그다음에 그것이 습관화되게 되면, 전체를 조정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기도만 하면 눈 뜨고도 볼 수 있고 다 들을 수 있는 경지까지 들어갑니다. 두 가지를 보고, 두 가지를 듣는다구요. 그런 자리에 올라가려면 상당한 수련, 수양이 필요하다구요. 헌드레이징하고 다 이렇게 고단하게 다니는 사람들이 밴(van; 유개차) 을 타고 다니다 ‘꾸벅’할 때 ‘아이구, 오늘 무슨 일이, 가다가 무슨 사고가 생기는가.’ 하는 것도 보여 준다구요. 그 똑딱하는 순간에 10년, 일생 동안의 일도 가르쳐 준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체험이 있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많을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렇게 가르쳐 줍니다. 눈 뜨고 영계를 들어가서 다 보는 것을 묵시라고 합니다,
묵시. 사람이 그렇게 신비로운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구요. 다 알겠지요? 이렇게 영계 얘기 들어가게 되면 한정이 없다구요. 말하는 사람이 주류를 잊으면 안 되지요. 이건 다 지류라고 지류. 기초적 상식이 없으면 모르기 때문에 얘기해 주는 거라구요.
최후에는 메시아를 통해 모든 것을 가르쳐 주고 인류를 구원해 자, 그렇게 하늘은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 단계를 넘어야 할 때에 있어서는 수많은 사람이 여기에 머물고 있다는 거예요. (판서 하시면서 말씀하심) 이렇게 되면 불쌍하니까 하나님이 이것을 터쳐 주기 위해서 터쳐 주는 사명을 짊어진 사람에게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서 ‘야 이 놈아!’ 하고 깨워 가지고 명령하는 거예요. 그 사명을 진 사람이 예언자라 구요, 예언자.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를 들어 이것을 뚫고 올라갈 수 있는 한 대표를 세웠으면, 여기 있는 모든 영인들은 이 사람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습니다. (판서하면서 말씀하 심)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럴 때 그를 예언자라고 해요. 앞으로는 어떻 게 된다든가, 이렇게 된다든가, 전부 다 미래의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 사람은 영인이 아니에요. 사람이에요, 사람. 알겠어요? 이런 내용을 지닌 사람을 태어나게 해 가지고 선지자를 만들어서, 이 급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교화해 가지고 관계를 맺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 이 사람들이 이 사람을 따라서 올라가게 되면 죽은 다음에 여기에 올라간다는 거예요. 영인들도, 여기 상대급에 있는 사람들도 그를 따라가기 위해서 여기 이 사람들에 게 협조해서 이 사람 뒤를 따라가며 같이 올라가는 거예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왜 재림해야 되는지 알지요? 왜 다시 와서 해야 되느냐 하면, 땅에서 맺혔기 때문에 땅에서 풀어야 됩니다. 여기서 그 길을 풀어야 됩니다. 그래서 재림사상이 나온 거예요. (91권 271-2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