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을 남다르게 맞이하는 문인들
취재 이혜정 시인
<본지 편집 기자>
2008년은 소설가 김유정, 시인 유치환 등이 태어난 해다. 또 김수영 시인과 조지훈 시인의 40주기이다.
박목월 시인과 박두진 시인은 각각 30주기, 10주기를 맞는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도 10주기다.
한편 고은 시인과 황동규 시인은 시력 50주년을 맞이하고, 소설가 한승원, 김지하·신대철·
강은교 시인은 등단 40주년이다. 이들은 한국문단 안팎에 기념비적인 각종 풍성한 행사를
안겨주는 2008년의 주역들이다.
◇김유정·유치환 등 탄생 100주년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소설가 김유정·김정한·이무영, 시인 유치환·임화·김기림,
평론가 최재서·백철 등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한국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은
2001년부터 매년 5월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열어왔는데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하다.
◆김유정 탄생 100주년
출생 - 사망 :
1908년 1월 18일 (강원도 춘천) - 1937년 3월 29일
학력 :
연희전문학교 문과 (중퇴)
데뷔 :
1933년 제일선 '산골 나그네'
수상 :
1965년 서울시 문화상
경력 :
1935년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노다지' 당선
1933년 구인회 조직 활동
소설가. 본관은 청풍(淸風). 강원도 춘성군 출신. 아버지 춘식(春植)과 어머니 청송심씨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갑부의 집안이었으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향을 떠나 12세 때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
1929년에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이듬해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했으나 중퇴,
1932년에는 고향 실레마을에 금병의숙(錦屛義塾)을 세워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또 한때는 금광에 손을 대기도 하였다.
1935년 단편소설〈소낙비〉가 《조선일보》에,〈노다지〉가 《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올랐다. 그 뒤 후기 구인회(九人會)의 일원으로 김문집(金文輯)·이상(李箱) 등과
교분을 가지면서 창작활동을 하였다. 그는 등단하던 해
〈금 따는 콩밭〉〈떡〉〈산골〉〈만무방〉〈봄봄〉등을 발표하였고,
그 이듬해인 1936년에 〈산골 나그네〉〈봄과 따라지〉〈동백꽃〉등을 발표하였으며,
1937년에는 〈땡볕〉〈따라지〉등을 발표하였다.
그는 불과 2년 남짓한 작가생활을 통해서 30편 내외의 단편과 1편의 미완성 장편,
그리고 1편의 번역소설을 남길 만큼 왕성한 창작 의욕을 보였으나, 39세에 죽었다.
작품집으로는 1938년에 나온 《동백꽃》이 있고, 1968년에 《김유정전집》이 출간되었다.
김유정의 소설은 그의 체험적 소재에 따라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고향 실레마을 사람들의 가난하고 무지하며 순박한 생활을 그린
〈봄봄〉〈동백꽃〉등의 계열로서 그의 작가적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난 일면이다.
다음은 그의 금광 체험에서 얻어진 것으로, 민족항일기의 가난 속에서 일확천금의 꿈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사는 사람들의 생태를 그린 〈노다지〉〈금 따는 콩밭〉등의 계열,
그리고 도시에서의 가난한 한 작가인 자신의 생활을 투영시킨 〈따라지>〈봄과 따라지〉등의
계열이 그것이다.
그의 문학세계는 본질적으로 희화적(戱畵的)이어서, 냉철하고 이지적인 현실감각이나
비극적인 진지성보다는 따뜻하고 희극적인 인간미가 넘쳐 흐르는 게 특징이다.
등장인물들의 우직하고 순진한 모습,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肉談的)인 속어의 구사 등으로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었다.
어리숭한 사람들을 해학적으로 다룬 것은 그의 애상적 인 성격에 대한 반동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대표작 〈동백꽃〉은 사춘기 남녀가 애정과 개성에 눈떠가는 과정을 전원 서정 속에 특유의
해학적 수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의 짧은 29년 생애는 가난, 질병, 실연으로 불우했다. 하지만 그는 짙은 향토 정서와
탁월한 언어 감각으로 30년대 한국문학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했다. 김유정 탄생 100주년인
올해는 작가의 고향인 강원 춘천을 중심으로 기념 행사가 활발히 열릴 예정이다.
2006년 김유정 탄신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를 발족, 올해를 준비해온 춘천시는
김유정문학촌을 비롯한 지역 문화예술단체가 총출동하는 연중행사를 마련했다.
한국작가회의, 대산문화재단 등도 관련 행사를 준비 중이다.
◆유치환 탄생 100주년
한국의 시인이자 교육자. 교육과 시작을 병행, 중·고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통산 14권에 이르는 시집과 수상록을 간행하였다. 대표작으로는 허무와 낭만의 절규를 노래한 《깃발》을 비롯하여 《수(首)》 《절도(絶島)》등이 있다. |
|
호 | | 청마 | 활동분야 | | 문학 | 출생지 | | 경남 통영 | 주요수상 | | 시인상, 예술원공로상, 부산시문화상, 서울시문화상 | 주요저서 | | 《청마시초(靑馬詩抄)》(1939), 《생명의 서(書)》 | 주요작품 | | 《깃발》,《수(首)》,《절도(絶島)》 |
호 청마(靑馬). 경남 통영 출생. 유치진의 동생으로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야마[豊山]중학에서 4년간 공부하고 귀국하여 동래고보를 졸업,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1년 만에 중퇴하였다. 정지용(鄭芝溶)의 시에서 감동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 1931년 문예월간지에 시 정적을 발표함으로써 시단에 데뷔, 그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시작을 계속, 1939년 제1시집 청마시초를 간행하였다.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허무와 낭만의 절규 '깃발'을 비롯한 초기의 시 53편이 수록되어 있다. 1940년에는 일제의 압제를 피하여 만주로 이주, 그곳에서의 각박한 체험을 읊은 시 '수' '절도' 등을 계속 발표하였다. 이 무렵의 작품들을 수록한 것이 제2시집 생명의 서이다. 8·15광복 후에는 고향에 돌아와서 교편을 잡는 한편 시작을 계속, 1948년 제3시집 울릉도, 1949년 제4시집 청령일기를 간행하였고, 6·25전쟁 때는 종군문인으로 참가하여 당시의 체험을 '보병과 더불어' 라는 종군시집으로 펴냈다. 그후에도 계속 교육과 시작을 병행, 중·고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통산 14권에 이르는 시집과 수상록을 간행하였다. 그의 시는 도도하고 웅혼하며 격조 높은 시심(詩心)을 거침 없이 읊은 데에 특징이 있는데, 이는 자칫 생경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기교보다도 더 절실한 감동을 준다.
제1회 시인상을 비롯하여 서울시문화상·예술원공로상·부산시문화상 등을 받았다.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사후에 그의 오랜 연고지인 경주에 시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시조시인 이영도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 중 200통을 추려 모은 서간집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1967)가 있다. |
청마(靑馬) 유치환(1908~1967)이 14일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그는 1930년대 서정주,
오장환 등과 더불어 현실 세계에 대한 대결 의식을 직정하게 드러내는 생명파 시풍을 주도,
한국 서정시를 풍요롭게 했다. 중ㆍ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교육자였던 그는
6ㆍ25전쟁 종군문인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통영 지역 예술계에선 그의 대표작
‘깃발’을 소재로 한 깃발축제 등의 탄생 100주년 행사를 열 계획이다.
작년 10월 ‘친일 산문’ 발견으로 재점화된 청마의 친일 행위 논란도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한국의 시인.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서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했으나, 4·19혁명을 기점으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발표했다. 시집 《달나라의 장난》, 《거대한 뿌리》등의 시집을 내었고 참여시인 마지막 작품인 《풀》로 유명하다. | | 활동분야 | | 문학 | 출생지 | | 서울 | 주요수상 | | 시협상(1959), 금관문화훈장(2001) | 주요저서 | | 《달나라의 장난》(1959) 《거대한 뿌리》 《시여 침을 뱉어라》 | 주요작품 | | 《의용군》,《풀》등 |
|
1921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선린상고를 거쳐 도일, 1941년 도쿄상대[東京商大]에 입학했으나 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하여 만주로 이주, 8·15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시작(詩作) 활동을 하였다. 김경린(金璟麟)·박인환(朴寅煥) 등과 함께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여 모더니스트로서 주목을 끌었다. 6·25전쟁 때 미처 피난을 못해 의용군으로 끌려 나갔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그 후 교편생활, 잡지사·신문사 등을 전전하며 시작과 번역에 전념하였다. 1959년에 시집 '달나라의 장난' 을 간행하여 제1회 시협상을 받았고, 에머슨의 논문집 '20세기 문학평론' 을 비롯하여 '카뮈의 사상과 문학' '현대문학의 영역' 등을 번역하였다. '거대한 뿌리'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 등 2권의 시집과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 '퓨리턴의 초상' 등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에 간행된 것들이다.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서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했으나, 4·19혁명을 기점으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쓴 그는 1945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한 뒤 마지막 시 '풀'에 이르기까지 200여 편의 시와 시론을 발표하였다. 이 시인이 가진 작품의 시사적(詩史的) 맥락에 대해 평론가 김현은 “1930년대 이후 서정주·박목월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재래적 서정의 틀과 김춘수 등에서 보이던 내면의식 추구의 경향에서 벗어나 시의 난삽성을 깊이 있게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공로자”라고 말하였다. 사망 1주기를 맞아 도봉산에 시비(詩碑)가 건립되었고(1969), 미완성의 장편소설 《의용군》이 《월간문학》(1970)에 발표되었다. 민음사(民音社)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김수영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수상하고 있다. 2001년 10월 금관문화훈장이 사후에 수여되었다. ‘풀’의 시인 김수영은 60년대 이후 한국시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김수영 문학상’을 주관하는 민음사는 40주기가 돌아오는 6월에 맞춰 김수영 헌정 시집을 내놓을 계획이다. 김행숙 시인 등 후배 시인 40여명의 참여로 꾸며진다. 민음사는 또 김수영 육필원고로 이뤄진 시집 발간도 계획하고 있다. 아울러 김수영이 남긴 원고와 사진 등을 전시하는 추모행사를 기획 중이다.
◇조지훈시인 40주기 조지훈 (조동탁) 출생 - 사망 :1920년 12월 3일 (경상북도 영양) - 1968년 5월 17일 학력 : 혜화전문학교 문과 데뷔 :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 등단 경력 : 1968년 한국 시인 협회장 1962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소장 취임 1950년 문총 구국대
1956년 정음사(正音社)에서 간행되었다. 182면 5권 분량의 구작(舊作)에서 발췌한 작품을 엮은 것으로 제1부 〈지옥기(地獄記)에서〉에 《길》 《지옥기》 등 16편, 제2부 〈풀잎 단장(斷章)에서〉에 《밤》 《그리움》 등 14편, 제3부 〈달밤에서〉에 《꽃새암》 《마을》 등 12편, 제4부 〈산우집(山雨集)에서〉에 《파초우(芭蕉雨)》 《낙화 1》 등 15편, 제5부 〈고풍의상(古風衣裳)에서〉에 《고풍의상》 《봉황수(鳳凰愁)》 등 13편, 모두 70편이 수록되었다. 모두가 동양적, 한국적인 전통적 정서를 노래한 작품들이다. 제1부의 시는 현실에 대한 절망과 분노를, 제2부에서는 대자연의 질서를 응시하고 인간과 자연과 우주의 교감을, 제3부에서는 정적미(靜寂美)와 아어미(雅語美)를 바탕으로 선(禪)과 화해의 미학을 구현하였다. 제4부에서는 흐름·떠나감의 이미지 등 소멸의 상상력에서 오는 미적 긴장을 촉발시켰다. 제5부에서는 국권 상실의 시기에 민족혼을 확립하고 민족어를 완성하는 길을 모색하였다. 그의 민족적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현실 참여의식의 발로이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은 학자이자 논객으로도 높은 명성을 쌓았다. 고려대 국문과는 기일인 5월17일에 맞춰 그의 삶과 문학을 조명하는 세미나를 연다. 조지훈은 62년부터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장으로 재임하며 후학을 길렀다. 또 ‘지훈상’을 운영하는 나남출판사는 기념선집 발간을 검토 중이며 그의 고향인 경북 영양에 세워진 조지훈문학관도 시 낭독회 등 관련 행사를 준비 중이다. |
|
1933년 4월 11일 전북 군산 출생. 본명은 은태(銀泰), 법명은 일초(一超). 군산중학교 수학 중
한국전쟁 발발. 1952년 입산, 효봉선사의 상좌가 됨. 이후 10여 년 동안 수선(修禪)과 방랑생활을
하다 1962년 환속. 1956년 [불교신문] 창간. 1958년 『현대문학』에 <봄밤의 말씀>, <눈길>,
<천은사운>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7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 :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장,
민주회복국민회의 중앙위원,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민족예술인총 연합회 의장등을 역임.
한국문학작가상 수상(1975), [고은 전집] 발간(1988), 제3회 만해 문학상 수상(1989),
장시집 [만인보] 발간(1989), 중앙문화대상 예술상 수상(1991)
◇ 등단 50주년을 맞는 고은시인
등단 50주년을 맞이하는 고은시인은 1958년 조지훈의 천거로 '현대시'에 '폐결핵'을
서정주의 추천으로'현대문학에' '봄 밤의 말씀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으며,
올 봄 '만인보' 30권 완간과 더불어 꿈으로 간직했던 화가의 기질을 보여주는 직접 그린
서예작품과 서양화를 인사동에서 작은 그림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그의 시력(詩歷)은 상처 많은 한국 현대사와 겹쳐진다. 초기의 탐미적이고 허무적인 시세계는
문학과 예술 자체에 대한 탐닉이라기보다 전쟁으로 순정이 찢긴 시골 청년이 갈 수 밖에
없던 길이었다. 1962년 제주도행 배 위의 하룻밤. 1970, 80년대 저항의 시기에는 현실에
대해 치열하게 발언하기 시작했다. 자유실천모임협의회 결성, 1987년 6월 항쟁 중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대표,
민족문학작가회의(현재 한국작가회의) 창립…. 그때가 가장 기억난다 하며..
이 시기 그는 네 번의 감옥 생활과 잦은 구금, 연금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았다.
“당시 받았던 탄압과 감옥, 그리고 온갖 불이익은 차라리 축제였다”고 기억하는 때다.
1990년대 이후 동양적이고 불교적인 선시(禪詩)의 세계로 접어들며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시세계이기도 하다. 이 변화에 대해 그는 “모순의 끝에 존재하는 조화에 대한
깨달음의 결과”이라며 “‘동지들끼리의 무도회’가 아니라 낯선 것들과 만남으로써
큰 조화를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2006년 말 시집을 냈을 때도
“갈등을 품을 수 있는 중도가 모자란다. 좌우는 얘기하는데 중도가 설 자리가 없다”면서
‘조화’와 ‘중도’를 강조하기도 했다.
50주년을 맞이하며 세계적인 시인은 올해도 분주하다. 2월에 스페인의 말라가 시청 광장에
세워질 자신의 시비를 보러 가고 3월 중 ‘만인보’ 완간을 계획하고 있으며 4월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국제시인대회에 참가한다. 6월에는 그리핀공로상을 수상하기 위해
캐나다를 방문한다.
“많은 사람이 ‘스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머무는’ 문화를 보여 주고 싶습니다. 사유만으로 살 수 없는 시대임이 분명하지만
사유가 우리 영혼을 견디게 해 주는 힘이란 걸 알려 주고 싶다" 는 그는
"시를 문학에서 독립시키는 것이 후기 생애에서 내가 할 일" 이라며 "시가 문학의
한 장르가 아니라 문학에서 떨어져 나와서 오히려 철학과 가깝고,
세상의 울음과 가깝고, 세상의 꿈과 가까운 것이었으면 좋겠다" 는 바람을 전했다.
1938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영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영국 에딘버러 대학
등에서 수학했다.
1958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한 이래 <어떤 개인 날>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풍장><외계인><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등
11권의 시집과 산문집 <겨울 노래><젖은 손으로 돌아보라> 등을 펴냈다.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등단 50주년을 맞는 황동규 시인
황동규 시인은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는다. 반 세기 동안이나 그는 우리말을 정갈하게
빚었고 우리말의 숨결을 세세하게 보살펴 고아(高雅)하게 했다.
놀랍게도 ‘즐거운 편지’는 황동규 시인이 1958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그의 데뷔작이다.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과 ‘편지’ 등에서 낭송되어 뜨거운 사랑을 받은 이 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의 원 제목도 ‘즐거운 편지’였다고
한다. 이제 이 시는 한국인의 애송시가 되었다.
만남과 이별의 회전 속도가 이처럼 빠른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는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고. 여전히 막막하게 하고 있으며. 헤어져 돌아가던
옛사랑의 뒷모습을 보게 하는지 잠시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를 써본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하늘이 먹먹하게 어두워지고 주먹눈이 막 내리는 날이면 어디 먼 산골이나 바닷가
민박집에라도 가고 싶어진다.
작은 넝쿨에 말라붙는 붉은 열매 같은 눈빛을 하고서 눈이 내리는 그 시간을 살고 싶어진다.
눈이 그치면 순백의 설원과 설원 위를 유행(遊行)하는 바람의 노래를 듣고 싶어진다.
그리고 멀리 두고 온 사람을 ‘가까스로’ 떠올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적막한 시간에
나를 선택하지 않은 사랑을 떠올리는 일은 아주 사소한 일이 될 것이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이 될 것이다. 너무 사소하여서 손을 놓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사소하여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그렇게 이 세상에서
잊혀진 듯 살 것이다. 폭설에 갇힌 순한 산짐승처럼 우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대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이별의 말은 나의 가슴에서 깨끗하게 씻어낼 것이다.
겨울 하늘에 뜬 달이 천강(千江)을 비추어도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말라.
그대가 나의 사랑을 다시 받아 안는 날이 와도 내가 아직 저 산골짜기 깊은 산막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하는
그런 아주 짧은 후일에도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말라.
황동규 시인은 “시간이 나면 시를 한편이라도 더 쓰는 게 우선”이라며 시에 대한
변함없이 식지 아니한 열정을 드러냈으며,
이러한 그를 위해 서울대 영문과 제자들과 동료 문인들이 조촐한 기념행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카페 게시글
▒---한비문학 내용보기
한비문학 2008년 2월호 문학계 소식_<이혜정 시인>
成南김영태
추천 0
조회 90
08.02.12 17:15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