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네 나이 10여세 때 이야기 라서 젊은이 들에게 는 흥미
없을 것 같으나 어쩐지 과거가 잊혀지지 않는 병 때문에 적어도 60
년 전 고향의 모습을 그려 보는 구나...늙은 탓인가 과거를 먹고 살게??
의흥읍내 동사를 아시분 몇인가..하마 세월이 이만큼 간건가..
친구 “매호”가 보내온 소식에 동사 이야기가 있어서 돌연
그 시절로 사고가 옮겨가고 마음이 그리로 달리는 구나..
그렇지 동사 가 있었지 그 때는 어려서 그런줄 로만 알았는데
그건물 현판이 四靈閣이라 . 즉 고로학산리 용아. 인각기린. 거북산의
거북. 배리앞학덤 학 .이렇게 四靈을 기리는 누각이라고만 座上선배
의 증언외에 누각사용에 대한 아무런 자료나 증언을 얻을수 없구나.
라고 적혀 왔다...나도 역시 전연 몰랐고 다만 동사 라고만 알았지
이 洞舍 추억이 살며시 고개를 든다..지금 의흥장터 쌀전 앞 쯤 되는 위치
에 있었고 건물 앞은 동내에서 제일 큰 수양버들 이 널어져 있고
그 옆은 탱자나무(프라타나스) 그늘이 깊은 곳이며 장날이면 장꾼 들
의 장짐을 싣고 온 말구루마 들이 널어서고....
특히 기억에 남은 동사 건물모습 은 목조 한옥 으로 지었는데
이 집이 2층 한옥이라..아랫층은 살람집 그리고 사무보던 공간이며
칸수로는 4~5칸 이고 2층은 난간을 대고 나무로 마루를 놓은 넓은 공간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당초 나무 였어나 낡아서 철판 으로 개조 했지..
여름 이면 시원하기가 이를대 없었으며 특히 논매기 철이면
온 마을 일꾼 들이 오수를 즐기던 곳도 되고 노인네들 쉼터 역할도 하고
아마 지금의 마을 회관 같은 역할을 하던 곳이 였어며 우리가 놀러가서
떠들다가 쫒겨 나기도 한 탐나는 공간 였지..기를 쓰며 동사 2층 오르던 추억..
동사 아래층 에 사던 권xx 선배..우리동기 이xx. 힘이 장사던 이XX선배
아침이면 학교 길 동무되어주던 선배들이 계셨고 한 울타리 별체에는
이북(북한)에서 내려오신 사람들 그 당시에는 이북네기 라고 철없이 불렀지
이처럼 나그네 주인 구분 없이 받아주던 동사..그 동사가 그립다
지금은 간간이 2층 한옥도 짖지 만 그 당시에는 2층 한옥이란
찾기가 어려운 희귀한 건물이 였는데 건축연대 나 그 건축 사연을
찾을 수 있으면 이건 훌륭한 향토사 의 제료가 되는 것인데..
아직은 알 수 없음이 아쉽구나..애석 한 지고
여기에 올린 2층 한옥 사진은 웹서핑 하다가 얻은 것인데
이릴 적에 보던 동사와 흡사하여 올려 보았으며 이곳은 아마
계룡산 부근 어떤 마을 로 기억 된다
이처럼 고향의 여러 자취들이 세월에 묻혀 잊혀지는 것이 안타 깝지..
군위 문화원 홈페이지 에 가 봐도 없어..
소소한 고향의 이모 저모는 군위 닷컴 군위문화원.. 자주 들락 그려도
정작 찾아야 할 정보는 더물고..
모두들 살기가 바쁜 세태지만 고향에 대한 관심도 좀 가져 줫어면..
그늘 및 말 다갈(말신발) 갈아주는 가지야 방 말묵는 고정틀이
마치 낮은 평행봉 같이 서 있고 말다갈 박으려고 말발톱 지지는 노랑내음
발톱을 지지고 갈아서 쇠로된 말 신발(다갈) 쇠못 박는 소리 다각 다각
수건 질끈 이마에 동여매고 사람좋게 웃음지며 일하시던 가지야 상
가지야 방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어리라..가지야 방은 쉽게 말해서
철공소 같은 곳으로 구루마 를 만드는 것이 주업이 였고..기타
말 신발 갈기..쇠로된 공구 만들기 등을 하던 곳이며 가지야 상은
이 가지야 방 주인이고 당시에는 드문 기술자 로 대접 받았 어며
특히 말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서 일하는 말도 가지야 상 손을 거치면
달리는 주마가 되고 가지야 상은 안장도 없이 마데 하나 말등에 얹고
그침 없이 타고 달렸으며 날마다 쇠를 다루다 보니 힘이 장사급이며..
유모어 가 항상 넘치는 제주 다양하신 어른 이 셨지...
권XX 선배와 하XX 선배 코피 터지고 입술 찢어지며 피튀는 맞짱 뜨기
입치기 먹으면 입술이 터지고 입이 돌아가고 코앞에 주먹데고 눈 부릅떠고
니가 세다 내가 세다...드디어 맞짱 으로 번지고 우리는 구경한다 신나고
피나고 터지고 쩨져도 돌아서면 그만...그만 씩씩 대며 웃고 다시 만나던 시절
한참을 지났고 풍경 인심 모두 변했어도 오늘을 사는 나는
지난 그 시절이 정말 그립구나..구레이 물고 등교하면 행복 했고
자랑인양 교실에서 잉크와 펜을 쓰던 그 시절..연습장은 시커먼 선화지
미농지 창호지는 제기 만들고 더 큰것은 연 만들고...잉애실 자사
동사앞 고로집 일본집 도우감 나무 와 포푸라 나무..펌프수도
철없던 소년 시절은 모던것이 귀하고 어려웠어나 마음은 풍족한 부자
고무공 조막 만 한거 하나에 수십명이 축구하고 아니면 돼지 오줌보도 쓰고
그리 신나던 시절이 있었는데...아!!!가버린 순수의 자욱 들이여....江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