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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7년 전 이민부 교수가 한 해의 여명이 밝자마자 굴업도를 학술탐방 후 작성한 글이다. 아주 세밀하고 재미있다.
굴업도의 생태, 지리, 절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굴업도산 음식과 이장 부인의 맛깔스런 솜씨가 입에 침을 고이게 한다. 출발 전 다같이 읽어보자!
단. 이멜로 받아 복사해 올렸는데 사진이 안나온다. 미안!
굴업도(掘業島)답사기
이민부
2009년 1월 4일(금요일) 3박 4일 일정으로 경기도 옹진군 덕적면의 섬 굴업도를 다녀왔다.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약 90km, 덕적도에서 약 13km 떨어져 있다. 인천연안부두에서 아침 9시 30분에 출발하는 쾌속선(스마트호)으로 약 50분을 가서 덕적도로 가서 임대한 낚시배(18명 승선)으로 바꾸어 타고 다시 50분 정도 서쪽으로 더 가서 굴업도로 들어갔다. 미리 예약한 어선이었으므로 쾌속선이 덕적도에 도착하자 바로 인근에 대기하여 바로 굴업도로 갈 수 있었다. 선착장에 내리기 전에 미리 약속한대로 섬에 바싹 붙어서 섬 해안 한 바퀴를 돌면서 해안 지형들을 관찰하였다.
결론은 사람의 손이 많이 타지 않아 잘 보존된 다양한 해안 지형들과 섬의 생태계는 말하자면 “생태관광”, “자연관광”의 보고라 할 만하다는 것이다. 굴업도에서 인천으로 나올 때는 덕적도까지 낚시배로 나갔고, 덕적도에서는 자동차도 싣는 규모가 매우 큰 훼리선인 ‘대부훼리5호’를 타고 나왔다. 덕적도에서 우리 일행(나를 포함하여 3명은 미리 나왔다)을 태운 배는 인천으로 오는 중에 이작도, 승봉도, 자월도 등을 들리면서 2시간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이번 답사는 지난해 여름 한국지형학회에서 이상영 박사(가람생태연구소장)과 공동으로 발표한 굴업도 지형에 대한 글을 발표한 바 있는데(그 내용은 우리 홈피 지리이야기 179에 소개함), 당시에는 본인이 바빠서 굴업도 답사는 못하고, 이상영 박사의 답사와 기록에 대한 본인의 이론 검토만으로 공동 발표되었던 것이다. 이번 답사는 본인의 직접 해안지형에 대한 확인과 계속적인 연구를 위한 전초에 해당하는 것이다. 직접 관찰과 기록과 논문발표를 위한 일이다. 앞으로 몇 차례 더 갈 예정이다. 이 번 답사에서 우리 지리학 전공자 일행은 4일 오후와 5일 오전 동안, 대략 8시간 동안 해안 지형과 산지 지형들을 최대한 조사하고, 관측하고 기록하였다. 사진도 많이 남겼다. 배로 해안을 일주한 것은 대략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바다에서 해안 가까이 관찰하는 일은 바다가 잔잔해야하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섬의 주요 해안지형들은 2008년 7월 3일자 “나도 한마디” 난에 “지리이야기179 굴업도 지형”으로 사진과 함께 이흥재 동기의 도움으로 이미 올린 바 있다. 흥재 동기에게 다시 고마움을 전한다. 주요 해안지형들은 해식애(절벽), 파식대, 해식 동굴, 해식 절리(갈리진 틈), 해식 풍화(타포니: 다양한 크기의 구멍들이 숭숭한 바위의 모양), 시스택(외돌개 행태로 홀로 서 있는 촛대형 바위들), 그리고 군데군데 발달한 사빈(해수욕장) 들이다. 협소하게 굵은 자갈로 된 해안도 보인다. 거의 대부분 해안은 암석해안으로 파식애, 파식대, 파식동굴, 파식 선바위 등이 잘 발달하고 있다. 아름다운 지형들이다.
대략 12시 30분 정도 섬 선착장에 도착하여 굴업도의 서인수 이장이 운영하는 민박집으로 갔다. 굴업도에는 8곳의 민박집이 있는데, 겨울철에는 서인수 이장 한 집만 민박집을 운영한다. 이 분의 집은 이 동네에서 가장 현대적인 건물이며, 비교적 큰 방 2개(아쉬운 대로 각 방에 5명은 들어감), 작은 방 1개(무리하면 3명)이 있고, 나머지는 이장댁의 안방으로 이루어진다. 모두 전기보일러로 가동되어 방은 따뜻했지만 차가운 섬의 공기로 우풍이 약간 있었다. 이 때 한반도에는 서서히 한파가 밀려오기 시작하는 때였다.
민박집의 반찬을 참으로 맛이 좋았다. 이곳에서 나는 돌김, 돌굴(크기가 작음), 토종닭(백숙, 국) 참게(맑은 장, 무침 장), 자연산 생선 졸임, 자생하는 고사리 등이 인상적이었다. 말하자면 모두 자연산이었고, 이장댁 부인의 요리 솜씨도 일품이었다. 인터넷과 전화, 휴대폰이 잘되었다. 그러나 016은 안 터지는 곳이 많았다. 기지국은 011 회사 것만 산정에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지리학자 3명(본인, 이상영 박사, 주철 교수(연변대 전임강사로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박사과정))과 이상영 박사 지인으로 시인이자 두루미 관찰 전문가와 중국어번역가(모두 여성) 두 분이 있었다. 약간 늦은 점심 후에 바로 섬의 생태와 지형과 인문환경에 대한 답사에 나섰다. 답사 당시 섬에 상주하는 주민들은 이장 내외와 군에서 운영하는 굴업도 태양광 발전소 직원 2명(옹진군청 소속)이 전부였다.
이 섬에 주민등록이 된 주민들은 몇 십명이 되지만 겨울철에는 덕적도, 인천시 등에 나가 살고, 겨울에도 이 섬을 지키는 이는 이장 내외와 발전소 직원뿐이다. 발전소는 옹진군에서 가동하는데, 겨울철에는 태양광 발전만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여름철에는 민박, 낚시, 해수욕 등으로 사람들이 많아지면 태양광 외에도 기름 발전기를 가동하여 보충한다고 하며, 관리하는 직원은 원래 1명인데, 최근 2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12채 건물의 유일한 마을 굴업리 해안인 굴업해수욕장 뒤 편 양지바른 남향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살만한 섬은 섬의 크기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물이 나와야 한다. 굴업도에도 지하수 형태로 좋은 물이 나온다. 이장댁에서는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할 수 있다. 한 때 이곳에는 민어가 많이 잡혀서 파시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섬을 방문하는 인원수도 저절로 제한된다. 그것은 덕적도에서 굴업도로 오는 배편수가 한정되고 낚시배라 정원이 작아서(우리가 타고 오고간 배는 덕근호(배가 작았지만 훌륭한 GPS를 장착하고 있었다. 이것은 주요 섬과 수로, 그리고 깊이가 매우 상세하게 나와 있었고, 배의 위치, 움직이는 방향, 그리고 배 위치의 위도와 경도가 바로 표기 되었다. 총 승선 인원이 18명이다) 여름철에 가장 많아야 80명이라고 한다.
섬의 형태는 동북동-서남서(동서 방향에서 약간 기울어짐) 방향으로 길게 누워 있는 형상으로 섬의 이름이 굴업도(掘業島)인데 그 뜻이 사람이(혹은 노인이) 엎드려서 일을 하는 모습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쓴 지리서 “대동지지(대동지지)”를 보면 굴압도(屈鴨島)로 표기되고 있는데, 그 뜻을 보면 오리를 잡고 있는 모습, 엎드린 오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해안가 바위에 수많은 굴(石花)들이 붙어있고, 실제로 주민들이 이 굴을 따서 먹는다. 우리 일행도 매끼니 이 굴을 먹었고, 양식 굴보다 그 크기가 작았지만, 맛이 좋았다. 해안 답사를 하면서 굴업도의 어원으로 이 바위에 붙은 수많은 굴과 관련이 없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섬의 최대 길이는 동서로 3.7km, 남북의 최대 길이는 1.5km이며 총면적은 1.17km2(약 52만평)이다. 섬의 봉우리는 대략 17개 정도가 확인되는데, 100m 이상의 봉우리가 5개이며 최고봉은 가장 동쪽에 위치한 128m이다. 작은 섬이지만 이들 봉우리와 해안의 백사장, 선돌에 이름을 붙였으면 하고 원래의 주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이름들을 만들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간된 1:2,5000 지형도에도 지명이라고는 굴업도라는 이름과 함께 굴업해수욕장 외에는 없다. 북쪽 해안은 특히 절벽의 높이가 크고 수직으로 잘 뻗어 있다. 그 다음으로 남서쪽 해안도 절벽이 많다. 멀리서 바라보는 절벽 자체도 절경이다. 해안절벽 아래에 동굴과 타포니가 많이 보이는 곳은 남쪽 해안들이다.
우리나라 해역에서 가장 간만의 차가 심한 해역인 경기만의 가장 서쪽에 있는 바, 조차가 커서 대략 6-8m 정도이다. 자세한 측정은 못했지만, 간조가 되어 물이 빠지면 마을 앞 굴업해수욕장의 길이가 600m에서 200m 정도가 늘어나고 폭도 바다 쪽으로 적어도 50m 이상 늘어난다. 이 섬의 모래들은 어디서 온 것인가? 섬의 암석들은 대부분 중생대 화산암들인 응회암이 대부분이고, 더러 갈라진 틈을 따라서 화강암 계열의 암석들이 관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화산 폭발 시에 굵은 자갈과 암설들과 모래, 자갈들이 범벅이 되고 뭉쳐져서 만들어진 응회암이 침식을 받아 부서진 모래들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들 모래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 등 경기만으로 접어드는 하천에서 유래된 것, 즉 육상 기원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그 기원지에 대한 정밀한 연구가 더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남쪽으로 분리된 토끼섬(혹은 작은 굴업도)은 본 섬과 붙어서 걸어서 이 작은 섬으로 갈 수 있다. 과거 토끼를 방목으로 많이 키워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섬의 매와 같은 맹금류들에게 많이 잡혀 먹이면서 토끼 키우기가 실패했다고 한다. 간조가 되면 걸어 다니면서 해안 쪽으로 물에 잠겼던 많은 동굴과 타포니와 선바위(제주도 외돌개와 같은 시스택, sea stack) 등도 많이 볼 수 있고, 물에 잠겨있던 굴도 채취할 수 있다.
현재의 굴업도 마을은 80-100m 정도 높이의 산지들이 둘러 싸인 정남향의 분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름철 비가 많이 올 때 흐르는 작은 개울도 마을을 지난다. 마을 바로 앞에는 굴업해수욕장이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가 간도시에도 약 600m이다. 외딴 섬으로 바람이 매우 강하여 해수욕장의 사빈들이 건조할 때 바람에 날려 사빈 뒤, 따라서 마을 앞에는 사구(砂丘, sand dune, 모래언덕)이 형성되어서 마을을 바람으로부터 막아주고 있으며 사구에는 소나무숲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뒷산이 북서풍을 막아주고, 사구와 방풍림이 바람을 막아주지만 강풍이 불 때는 회돌이 치는 바람으로 마을 집들에도 심하게 몰아친다고 한다.
사빈 뒤쪽인 사구 앞에는 배에서 사용하다 버린 수많은 어구들과 냉장고, 깡통, 스치로폴 등이 잔뜩 쌓여 있다. 이것은 만조시 폭풍우에 큰 물에 따라 밀려와서 쌓인 것 들이다. 해안의 다른 쪽 작은 만에도 이들이 쌓여 있다. 파랑의 움직임과 해안의 파도의 방향에 따라서 해안에 닿고 편안한 곳으로 들어가면 쌓인다. 군이나 면에서 주기적으로 인력을 동원하여 처리를 한다고 한다. 바다나 해안에서의 인간의 활동이 얼마나 많은가하는 점과 해양에서의 해류와 파랑의 움직임이 넓은 바다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육지나 도서의 많은 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멀리 떨어진 도서도 예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나마 굴업도는 덜한 편이다.
굴업도는 52만평의 비교적 큰 섬이라고 하지만, 원래는 두 개의 섬이 모래 백사장 사빈으로 이어져서 크게 되었다. 동쪽 섬(동섬)과 서쪽 섬(서섬)인데, 서섬은 동섬의 두배 정도가 된다. 동섬과 서섬을 잇는 백사장은 그 길이가 1km에 달한다. 이 백사장은 남쪽 해안에서 발달한 사빈과 북쪽 해안에서 발달한 사빈이 등을 대면서 붙고, 이렇게 양안에 발달하여 붙은 사빈이 동섬과 서섬을 잇는다. 말하자면 연도(連島) 사빈(island-tied beach)이다. 간조시에 물이 많이 붓게 되면 이 사빈이 물에 잠기면서 섬이 분리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모래는 계속 쌓여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동섬과 서섬을 잇는 이 사빈의 가장 높은 사빈등(沙濱登)(both-sided beach berm) 위로 발전소에서 동섬의 마을로 연결되는 전봇대들이 설치되었는데, 이 전봇대를 파묻을 정도로 모래가 계속 쌓여가고 있고, 마을 쪽에는 사구까지 형성되고 있다. 현재 이 마을은 부서진 건물과 집터만 남기고 폐허가 되었다. 사빈연도 남쪽 백사장과 동쪽 해안 백사장에는 어선들의 닻이 줄지어 놓여 있다. 성어기가 아닐 때 닻을 쓸 일이 없어 내려놓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연도 사주 북쪽 해안에는 지도에는 암석해안으로 나와 있지만 그 일부는 인공 방파제이다. 간조 시에 물이 빠지면 방파제 안쪽은 비어버리지만 만조가 되면 물이 차서 배가 닿을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자연석 석축으로 방파제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뒤 폭풍으로 파괴되고 최근 다시 만들었다. 지형도 상에는 이 방파제 안쪽이 사빈에 의한 석호(lagoon) 형태의 호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호수는 아니고 사빈이며, 사리 때의 만조 시에 물이 가득차면 연도 사주까지 잠긴다.
굴업도 서섬의 동쪽, 연도 사빈의 서쪽 약간 움푹한 위치에도 과거 마을이 있었다. 지금은 집터와 집 뒤에 있었던 대숲이 그대로 있고, 대숲 아래에는 조개묻이(언제인지는 미확인)도 발견된다. 이 곳의 사빈과 암석 해안이 만나는 곳에 어구 창고, 연료 가스 탱크, 해안 도로와 선착장이 만들어져 있다. 말하자면 이곳 마을의 유일한 관문이며, 보급로이다. 서섬의 동향 해안에도 규모는 약간 작지만 붉은 색의 사빈이 보인다. 이 곳 주민들이 붉은 모래 해안으로 부르는 곳이다. 이 사빈은 이 지역의 암석의 산화 철(혹은 알루미늄) 성분이 모래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동서로 누워있는 굴업도 섬 전체의 산릉을 따라 길이 나있으며 여기에는연도 사빈의 등까지 포함된다. 이 길을 모두 걸으면 약 5km 정도는 충분히 되면서 섬 산들을 둘러 볼 수 있다. 과거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지금은 버려져서 갈대와 초지로 이루어져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묵은 땅콩밭이 있다. 섬에서 계단형으로 보이는 것들은 대게 과거 밭들이었다. 한 때 소 방목도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이러한 방목은 일제 강점기부터 있었다고 한다.
지금 이 섬 곳곳에서 흑염소 무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숲이나, 갈대밭이나, 초지, 해안의 암벽, 해안 사빈 등 어디든지 보인다. 이들은 3-4, 5-6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가끔 어린 염소들도 보인다. 우리 일행이 답사를 하는 동안 무리에서 이탈된 것으로 보이는 아주 어린 염소가 같은 무리로 알고 따라와 잡아서 마을에 키우도록 할까 하니 이장이 힘들다하여 그냥 놓아 주었다. 이들 염소들은 인위적으로 키우다가 방목을 하다가 그냥 버려두면서 야생화한 것이라고 한다. 이 섬에는 사슴과 함께 야생적으로 번식을 하고 있는 염소들이 많다. 이들은 풀과 어린 나뭇잎들을 먹는데, 일부 나무들은 잎이 전혀 없는데, 이것은 염소들이 먹어치우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염소를 포획하기 위하여 놓여진 올무가 동섬에서 보았는데, 부드러운 나이론 실로 만들어진 것으로 아마도 이장이 설치한 것 같았다.
주민들은 이 염소를 잡아다가 민박하면서 염소 고기를 팔기도 하지만, 잡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한다. 일부 잡아 키우기도 한다. 현재 키우고 있는 것은 토종닭이다. 반찬으로 닭백숙과 닭국이 나왔는데, 그 맛이 참으로 좋았다. 가끔 이곳을 매 종류가 토종닭을 공격하여 먹이로 삼는다고 한다. 운이 좋게도 이 장면을 엉성하게나마 촬영하였다.
섬의 식물상을 보면 참나무숲, 소나무숲, 갈대밭 초지, 동백나무군락(드뭄) 등이 보인다. 참나무류는 자생인 것으로 보이고, 소나무는 방풍림과 방사림으로 식재한 것으로 보인다. 갈대밭이나 초지는 자연 식생이 아니라 방목장을 만들기 위하여 숲을 제거하여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한 때 소를 방목하였지만, 높은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여러 어려움으로 이 섬에서는 더 이상 방목은 없고, 야생화 상태로 있다.
이 섬의 몇몇 곳에 측량 표지가 있다. 두 곳을 보았다. 이 곳 산릉 초지에 미국방성 지도국에서 지도 측량을 위하여 조사한 조사표지(Survey Mark)도 남아 있다. 1982년에 설치한 것이다. 이 측량과 표지 설치를 위하여 머문 건물터도 남아 있다. 미국은 전 세계 모든 해안 수로를 측량해왔고, 그 일환으로 보인다.
이 섬은 한때 핵폐기물 처리장으로 이용하고자 했으나 단층선이 많이 지나고 있어 포기된 바 있고, 이로 인하여 주민과 행정 기관이 곤욕을 치른 바 있다. 현재 이 섬은 CJ 그룹에서 섬 전체 면적의 90%를 매입하였다고 한다. 이 기업은 이 곳에 골프장과 함께 휴양지 사업을 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 환경영향평가가 진행 중이라고 하는데, 일부 주민과 환경단체에서 이 사업에 대해 반대를 하고 있다. 주민들도 일부 찬반으로 갈라져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머문 동안에도 ‘생명의 숲’이라는 환경단체에서 이 섬을 방문하고 자연환경을 둘러보았다. 섬은 토양의 발달이 미약하고 해안이 길어서 폭이 좁고, 해안에는 거의 절벽으로 이루어져 섬 전역을 개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자연환경은 인간의 활동을 용인하고 도우는 환경용량 혹은 생태 용량이 있다. 오랫동안 자연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환경용량을 고려해양한다. 섬의 식생, 섬의 토양, 섬의 기후 조건 등을 고려하여, 인간의 활동의 정도를 받아 들여야 한다. 섬 지리학(island geography)은 자연환경에 바탕을 둔 인문환경에 대한 분석이다. 자연환경은 다시 섬 생물지리학(island biogeography)로서 살펴보아야 한다. 이 분야는 기후와 지형과 토양에 바탕을 둔 생물(식물과 동물)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다. 여기에 바탕을 둔 생물의 구조와 분포를 남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섬에서 다윈이 연구하여 진화론을 발표하였다. 가능하면 자연환경과 자연적인 생물을 많이 남기면 그것이 자원이 될 것이다.
굴업도는 교통이 불편한 관계로 사람의 손이 덜 타서 해안 지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해안지형이라고 해도 다양한 암석해안들이 파도의 침식을 받아서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아름다우면서도 아주 잘 보존되어 있다. 천연적인 자연지리와 지형과 지질의 학습장이다. 백사장도 아주 아름답고 길고, 모래도 곱다. 여유 있게 지낼 수 있는 날이 며칠이 허용된다면 언제든지 찾아가서 해안의 자연과 함께 편안하게 깔끔하게 지낼 수 있는 참으로 한적한 곳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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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굴업도 전경, 파랑이 강한 북서쪽에서는 사빈이 잘 발달. |
사진 2. 해식동과 해식애. 해식에 의하여 연속된 흠이 만들어지고, 위에 덮인 부분은 붕괴하여 낙하하면서 후퇴하고, 파식대가 확장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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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해식애~해식동 붕괴 발전 과정의 해식지형. 파도가 주로 타격하는 부분은 동굴 형식으로 굴식을 한다. |
사진 4. 해식동. 절리면을 따라서 굴식을 당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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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해식과 염풍화(소금가루가 끼어서 풍화) 타포니 - 코끼리 바위. 해식을 받고 남은 형태로 sea stack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코끼리 코를 닮았다. |
사진 6. 섬 동쪽 해안 타포니. 입자나 작은 암편 형식으로 떨어져 나간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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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서쪽섬 선단부. 가운데 잘린 부분은 해식에 의해서 침식을 받아서 파식대로 발전한 것. |
사진 8. 서쪽 해안 파식면 절리. 절리는 파식에 상대적으로 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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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 헤드랜드가 파식으로 된 섬 - 토끼섬 |
사진10. 동쪽 섬 헤드랜드의 단층 - 거북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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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1. 섬 중앙부 기반암 풍화 |
사진 12. 섬 중앙부 사구에 묻힌 전봇대 - 1980년대 설치. 엄청난 모래들이 불려와서 쌓였다. |
(사진은 주로 이상영박사의 작품이다)
(2009년 1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