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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굿 2 - 천재 요절 가수 김정호의 예술혼
천세진
지난 글에서 남도의 무속은 세습무를 큰 특징으로 하며, 무계와 예술계가 한 나무와 같다는 얘기를 했다. 그 거대한 예술 나무가 만들어낸 불꽃 같은 영혼이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수 ‘김정호’ 다.
*김정호의 풋풋했던 시절, 이젠 그를 노래로만 만날 수 있다.
그는 1985년 서른 넷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과 결별했다. 군 시절(1987~1990년) 내무반 소등을 하고 난 후에 잠들기 전까지, 나는 이어폰을 꽂고 마이마이(카세트)를 통해 늘 김정호의 음악을 들었다. 고단했던 군생활 중 김정호의 음악은 영혼의 안식이었다.
이런 기억도 있다. 밤 늦게 근무를 끝내고 내무반으로 돌아올 때 고참들이 노래를 시켰고 그때 첫 곡은 언제나 <이름모를 소녀>였다. 처음엔 졸병 노래나 듣자는 거였는데, 들을만 했는지 밤근무에 걸릴 때면 늘 <이름모를 소녀>를 부르게 되었다.
아무튼 당시에 닳아지도록 듣던, 20년도 더 된 테잎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이름 모를 소녀> 1974년 작, 그가 말과 곡을 붙였다.
버들잎 따다가 연못위에 뜨워놓고
쓸쓸히 바라보는 이름모를 소녀
밤은 깊어가고 산새들은 잠들어
아무도 찾지 않는 조그만 연못속에
달빛 젖은 은빛 물결 바람에 이누나
출렁이는 물결속에 마음을 달래려고
말없이 바라보다 쓸쓸히 돌아서서
안개속에 사라져간 이름모를 소녀
*그의 앨범 재킷.
청바지에서 그 시대의 징표를, 그 얼굴에서 남달랐던 사색적이고
깊이 있는 그의 세계를 읽어낼 수 있다. 재킷에 하얗게 반짝이는 것이
<이름 모를 소녀>의 가사에 나오는 '은빛 물결'인지 모르겠다.
가수도 부류가 있다. 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고, 노래를 하는 싱어송 라이터가 있고,
남이 만들어준 노래를 뛰어난 가창력으로 빛내주는 싱어가 있다. 물론 요즘엔 남이 만들어 준 노래를 신통치 않은 가창력으로 소화하는 새로운 가수 부류도 생겨났다.
김정호는 당시 막 싱어송라이터의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한 197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의 별이었다. 단순히 형태적인 싱어송라이터로서가 아니라, 정한(情恨)적이면서 독창적인 음악에 더하여 한 편의 詩라 할 수 있는 주옥같은 가사들을 선보인 독보적인 존재였다.
1970년대는 김정호 외에도 김민기, 조동진, 신중현, 정태춘, 산울림 등의 싱어송라이터들이 있었지만, 첫 앨범이나 데뷰 시기로 보면 김민기와 조동진이 1970년, 김정호와 신중현이 1974년, 산울림이 1977년, 정태춘이 1978년이다.
산울림과 정태춘의 활동 개시 시기가 70년대 후반이니 김민기, 조동진, 김정호, 신중현을 비교해 보면 좋을 것 같다. 4 인의 음악세계는 상당히 달랐다. 김민기와 신중현의 음악세계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고, 조동진은 도회적 분위기의 세련된 음악세계를 보였다.
김정호의 음악세계는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우리 민족의 정한적 세계관을 대중가요라는 현대적 그릇에 담아내고 있었다.
김정호의 그러한 음악세계는 어디에서 왔을까. 김정호의 음악세계는 바로 남도와 깊은 연을 맺고 있다. 그의 뿌리가 남도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의 뿌리가 남도의 무속, 예술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남도의 정과 한이 그의 가슴에 접맥되었으리라. 요즘과 같이 부박한 노래가 판치는 때에 그의 노래는 영혼을 울리는 마음의 거문고, 즉 심금으로 남아 있다.
‘씻김굿’의 저자 이경엽 교수에 따르면 남도의 무계는 전통예술 계보라 할 수 있다.
김정호의 내력을 찾아가면 서편제 판소리의 한 계보가 나온다. 박유전의 법통을 이어받은 전남 담양 출신의 명창 이날치의 소리는 능주의 김채만에게 이어지고, 김채만의 소리는 박동실에게 이어지는데, 박동실이 바로 김정호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박동실은 담양 출신 명창으로 20세기 현대 판소리사에서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이날치-김채만으로 이어 온 서편 소리를 오늘에 이어준 서편 소리의 대부로 평가된다.
박동실의 가계도를 보면 명인 명창들이 많이 발견된다. 외조부 배희근과 부친 박장원은 명창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들이고, 동생 영실도 소리꾼으로 활동했다.
박동실의 딸 수길과 숙자도 소리를 익혔으며, 둘째딸 숙자에게서 난 아들이 바로 김정호다. 조카 박종선은 아쟁의 명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그의 아들과 딸과 사위 등이 민속음악의 대를 잇고 있다 한다. (관련 내용 출처 이경엽 교수 저서 ‘씻김굿’)
김정호의 대표곡인 <이름 모를 소녀>, <하얀 나비>, <작은 새>, <푸른 하늘 아래로>, <외길>, <저 별과 달을>, <님>, <인생>,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 등은 지금도 포크송을 대표하는 전설이 되어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호는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사랑하는 뛰어난 천재였지만,
대부분의 요절한 천재들의 삶이 그러했듯 그의 짧은 생애도 순탄치 않았다.
1975년 윤형주, 이장희, 신중현, 김추자, 김정호, 등 기라성 같은 음악인들이 1차 대마초 파동 사건으로 된서리를 맞는다.
5년 후 활동을 재개했지만 이미 김정호의 영혼과 육신은 피폐해진 뒤였다.
1983년 발표한 ‘님’은 그의 운명을 예감한 듯한 노래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님’에는 남도의 정한적 세계가 더할 수 없는 깊이와 애절함으로 그의 절창 속에 녹아들어 있다.
아직도 김정호가 병상에서 처음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줬다던 ‘님’의 절규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하얀 나비> 1975년작, 역시 그가 노래말을 지었고 곡도 붙였다.
음~생각~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우~그리워 말아요
떠나간 님인데
(후렴)꽃잎은 시들어도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피고 서러워 말아요
음음음음음~음음음음음~
음~어디로 갔을까
길잃은 나그네는
우~어디로 갈까요
임 찾는 하얀 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