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우리가 - 본서에서 '우리'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드로아에서이다.. 이 '우리'라는 형식과 관련하여, 바울 일행이 빌립보로 갈 때에 동행한 빌립보 주민이 있었다는 점과 그 사람이 누가였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이 '우리'라는 표현이 빌립보에서의 사역에 관한 기사 이 후에는 멈추어져 있다. (2)두번째 '우리'라는 부분이 전도자들의 3차 전도여행 중, 빌립보를 재방문할 때 시작되어 있다.
(3)본장에서 빌립보에서의 사역이 매우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편 본문과 관련하여, 바울이 드로아에서 의사 누가와 상면하게 되었다고 추론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러나 이 주장은 근거없는 억측일 따름이다. 곧 - 여기서는 다음날 아침을 뜻한다. 하나님 앞에서 바울의 순종하는 모습이 돋보이는 단어이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지녀야 할 으뜸가는 태도는 '순종'이다. 인정함이러라 -
[롬 1:4]"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성결의 영. - 이것은 헬라 원어 "프뉴마 하기오쉬네스"나, "성령"이란 말 "프뉴마 하기온"과 구별된다. "성결의 영"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학계의 견해는 여러 가지가 있다. ⑴ 예수님의 영혼을 가리킨다는 학설, 이 학설은 합당치 않다. 그 이유는 이 의미를 취한다면, 이 구절에 말한 예수님의 부활이 예수님의 영혼으로 말미암아 되었다는 의미가 되는데, 이것은 롬 8:11과 맞지 않는다. ⑵ 예수님의 신성을 가리킨다는 학설, 이 학설도 합당치 않으니, 그 이유는, 다음에 말한 제 5 학설이 정당하기 때문이다.
⑶ 그저 성령, 곧, "프뉴마 하기온"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학설, 그러나 "프뉴마 하기오쉬네스"란 말은 여기에 한 번만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그 많은 다른 명칭과 같은 의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 ⑷ 창조 또는 개조의 능력 있는 신성을 가진 성령에 대한 칭호라고 하는 학설 ⑸ "프뉴마 하기 오쉬네스"는, 예수님이 받으시고 그와 함께 계시는 성령을 가리킨다.
이 견해가 정당하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 밖에서 새로 들어오시는 성령의 역사로 된 것이 아니요 이미 그에게 내재하시는 성령님의 활동 결과였다. 죽은 가운데 부활하여. - 이 말의 헬라 원어는 "죽은 자들의 부활로서"란 의미를 가진다. 이 말씀에 "죽은 자들"이라고 복수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여, ⑴ 또 어떤 학자들은 말하기를 여기 이 말이 나사로의 부활과 같은 부활도 포함시킨 것이라고 하나, 이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⑵ 여기 복수가 쓰인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이 모든 신자들의 부활을 성립시키신 부활의 새 시대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 "하나님의 아들"이란 성호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아들은 삼중 의미의 성호니, ⑴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⑵ 메시야적 하나님의 아들. ⑶ 화육 관계의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나뉠 수 없는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영원하신 아들이 아니고는 아버지 하나님을 계시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실 메시야가 되실 수 없으며
아버지 하나님을 계시하시는 메시야는 화육을 필요로 한다. 화육이 없이 어떻게 계시와 구속의 메시야 사역을 행하실 수 있을까? "인정되셨"다는 말은 헬라 원어로 "호리스텐토스"인데, 그 의미에 대하여 ⑴ 바르트는 말하기를 "인정함"은, 역사적 행동이 이니고 원역사적행동이라고 하였다. 이 견해는 계시의 역사적 의미를 거의 무시한데 가까운 위기 신학의 사상이다. 우리는 이와 반대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 역사 그것은 계시를 유효하게 파악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능력에게 복속된 그 역사는 그리할 수 있다고 한다. ⑵ "인정되셨으니"란 뜻은, 예수님께서 부활 이전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부활이 후에야 인간의 인식에 완전히 인정되셨다는 뜻이라고도 하고, ⑶ 이것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인식에서 인정된신 사실을 말함이 아니고, 부활하신 후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얻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뜻이라고 한다.
[롬 3:28]"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그러므로 - 어떤 사본에는 접속사 '가르'가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개역성경과 같이 본절에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가 사용되면 27절에 종속되어 부가적인 설명이 된다. '믿음의 법'에 대한 변호를 위해서 본절은 독립적으로 해석되기보다 종속적으로 해석되는 편이 타당하다. 율법의 행위 - 20절 주석 참조. 우리가 인정하노라 - 여기서 '우리'라는 것은 '예수를 믿는 자'를 의미하며 바울 자신을 포함한 모든 성도들을 가리킨다.
'인정하노라'에 해당하는 헤라어 '로기조메다'는 '생각하다' '추론하다' 또는 '결론을 맺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로기조마이'의 현재 중간태로서 '그러므로'가 지시하는 두 가지의 요소를 확고 부동하게 인식한다는 뜻이다. 바울이 성도들과 더불어 확실하게 결론을 맺은 두 가지는 (1)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이며 (2)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누구든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다음 구절에서 '누구든지'라는 사상을 다시 한번 반복한다.
[롬 4:8]"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 - 본절은 7절의 중복으로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사유하시는 은혜를 보다 강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앞절에서는 '불법이 사함을 받는 것', '죄가 가리움을 받는 것' 정도로 언급했으나, 본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죄인으로 규정되는 '죄'조차 없는 것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이 강조되었다. 바울이 이신 칭의에 대해 설명할 때에 본 구절은 결정적인 논리의 뒷받침이 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행위와는 상관없이' 그 사람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고 할 때 논리상 믿음이 의로 여겨지는 중간 과정이 생략되었다. 그 논리의 틈을 본절이 메우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는 사람이 의로 여김을 받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 사람이 행한 죄악이 어떻게 여겨지게 되는 가에 대해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7절과 본절의 인용 구절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후 10:18]"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 본절 '자랑'에 관한 주제의 핵심이 드러나고 있다. 바울은 진정으로 자신을 통해 인정받아야 할 분이 누구인지 알고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대자들이 자기들이 만든 기준을 가지고 자신들을 자랑하는 행위가 어리석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므로, 결코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참으로 주님께 인정받는 사도는 자신이 언젠가 심판대 앞에 선다는 것을 알아자중하는 자이며 사람들로부터 안정받기보다는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원하는 자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들 앞에 전개되는 일들을 똑바로 보아야 하며 이러한 기준에 의해 바울과 적대자들 중 누가 진정으로 권위있는 사도인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딤후 2:15]"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 '진리의 말씀'은 어떤 특정한 말씀이나 교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가르침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한편 '옳게 분변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르도토문타'는 '바른'을 뜻하는 '오르도스'와 '자르다'를 의미하는 '템노'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 '바르게 자르다'를 의미한다.'오르도토문타'는 잠 3:6과 10:15에서 '곧은 길을 취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것은 숙련된 기능공이 연장을 사용하여 똑바로 자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분석하면서 이단의 거짓 교리에 단호히 대처할 수 있도록 적용하고 가르치는 것을 시사한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인정된'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키몬'은 문자적으로 '시험을 거친 후 받아들여지는'이라는 의미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임무를 잘 감당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여 애쓰라고 명령한다. 디모데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애써야 할 것은 말씀을 잘 분석하고 이해해서 거짓 교리를 전하는 자들을 대적하고 양들을 잘 보호하며 인도하는 것이다.
[약 1:12]"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시험'에 해당하는 혤라어 '페이라스몬은 2절에서 사용된 '페이라스모이스'와 동일한 것으로 믿음의 연단을 위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본절이 2-11절과 연결된 것이며 13절 이하의 '시험'과는 차이가 있음을 나타낸다.한편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표현은 유대의 지혜서와 묵시 문학적인 표현 방법으로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었으며 예수께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축복을 말하였다.따라서 야고보는 이러한 표현법에 익숙하였음을 밝혀 주고 있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 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 본절은 '호티'로 시작하며 시험을 참는자에 대한 결과를 설명하는 목적절이다. '인정하심을 받은'의 헬라어 '도키모스'는 3절에서 사용된 것처럼 '금이나 은을 제련하여 귀금속이나 동전으로서 자격을 얻는 것'과 같은 인정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시험의 과정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시험의 과정을 통과하는 자에게 순수함이 인정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됨을 시사한다.
여기서 '면류관'은 운동경기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는 면류관으로 시험과 박해 속에서도 끊임없이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 지는 '생명의 면류관'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