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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2009년이여 ! 愚公移山(우공이산) 우공이 산을 옮기는 것이 어리석은 일 같아도 끝까지 밀고 나가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목적을 달성한다. 功虧一簣(공휴일궤)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높은 산을 쌓지 못하게 된다.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실망함으로써 힘들여 쌓아온 공적이 수포로 돌아가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한다.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 새해는 더욱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 이글은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열자(列子)는 약 2500년전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도가(道家) 사상가로 전설(傳說)의 인물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긴다는 뜻입니다. 우공(愚公)이 사는 동네 앞에 태형(太形)과 왕옥(王屋)이라는 두 산(山)은 둘레가 700리나 되었습니다. 우공(愚公)의 나이 90세가 되어 인근 마을에 나들이를 갈려면 이 두산이 가로막아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두 아들과 의논하여 산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하였습니다. 산에서 파낸 흙을 발해만(渤海灣)까지 운반하는데 한번 왕복에 1년이 걸렸습니다. 이것을 본 친구들이 웃으며 어리석은 짓이라고 만류하자 우공(愚公)은 정색을 하고 “나는 늙었지만 나에게는 자식도 있고 손자도 있다. 그 손자는 또 자식을 낳아 자자손손 한없이 대를 잇겠지만 산은 더 불어나는 일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언젠가는 평평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친구들은 말문이 막혔지만 이 말을 들은 산신령(山神靈)은 산을 파내는 인간의 노력이 끝없이 계속될까 겁이 나서 옥황상제께 이 일을 말려 주도록 호소하였지만 그러나 옥황상제는 우공의 정성에 감동하여 가장 힘이 센 과아씨(誇娥氏)의 아들을 시켜 두 산을 들어 옮겨 하나는 삭동(朔東)에 두고 하나는 옹남(雍南)에 두게 하였다고 합니다. 사는게 마음대로 안 되고 힘들지만 우리의 부모들이 흙을 파 옮기던 삼태기를 우리가 물려받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쓰던 삽과 삼태기를 자식 손자들에게 물려 줄 것입니다. 경제가 어렵고 세상 돌아가는 것이 마음에 안 들지만 그렇다고 흙을 파서 옮기는 일을 중단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산을 파면서 돌아가지만 결국에는 직선으로 뚫린 탄탄대로를 걸어갈 것입니다. 팔자는 길들이기 나름입니다. 2009년을 활기찬 도전의 해로 맞이합시다 ! -농월- |
장엄한 일출(日出)에 바라는 소망 銀海誰藏赤玉盤(은해수장적옥반)-은빛 바다에 누가 붉은 옥쟁반을 감췄나 六龍擎出火雲端(륙용경출화운단)-육룡이 불 구름 위로 불끈 올라오는구나. 須臾忽闢乾坤暗(수유홀벽건곤암)-순식간에 천지의 어둠을 열어젖히니 東海高懸萬國看(동해고현만국간)-동해 위에 높이 솟아 온 나라들 바라본다. 권상하(權尙夏) 새로운 것은 희망과 기대와 기쁨을 갖게 한다. 경제가 어려워 사는 것이 힘들고 마음이 위축된 속에서도 새해 첫 아침에 떠오르는 일출(日出)을 맞으려 동해(東海)로 서해(西海)로 높은 산으로 지평선으로 소망(所望)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왜 새해 아침 떠오르는 태양(太陽)에게 소망을 비는가!
태양은 변함이 없다 태양은 사사로움이 없다. 태양은 생명 그 자체다. 붉게 이글거리며 솟아오르는 태양 앞에는 절망 갈등 원망 좌절은 눈처럼 녹아 없어진다. 태양은 2009년 아침에만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어제도 떠올랐고 내일도 변함없이 대지를 비출 것이지만 기축(己丑)년 새해아침의 태양은 새로운 꿈과 용기를 약속받기 때문이다. 태양이 다시 뜬다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의 영속성(永續性)을 확인 시키는 증거이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일이다. 가난한자에게는 부자 되는 꿈을, 병든 자에게는 건강의 희망을, 젊은이에게는 내일의 포부를 늙은이에게는 지속되어온 생명에 대한 감사함을 ---- 이제 지나간 세월에 대한 한탄과 원망과 미움 후회의 “탓”은 하지말자. 정치인의 탓도, 부자에 대한 저주도, 지식인에 대한 미움도 갖지 말자 우리에게는 이런 부정(否定)과 배타(排他) 남의 탓을 하는 사치스런 넋두리에 소비할 헛된 시간이 없다. 심장이 뛴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하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어떤 역경에서도 삶을 이어왔고 또 앞으로 천지가 다 할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 순간까지도 “살아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경이롭다.
인간이 태어난 이유는 권력자도 부자도 지식 있는 학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살아가는 동안 부수적인 산물에 불과 한 것이다.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면서 밥 먹고 숨 쉬고 살아가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에 두 손을 모으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생명지속(生命持續)의 기원인 것이다 조용히 생각해보면 한 알 단세포(單細胞)에서 움튼 이작은 생명체를 발육(發育)하기 위해 온 우주(宇宙)가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 중심에는 태양(太陽)이 있다. 새해 아침에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실존(實存)의 태양(太陽)에 소원(所願)을 비는 것은 당연한 천리(天理)인 것이다. 다 잘될 것이다. -농월-
집착(執着) 하지 말고 1-5 靑山兮要我以無語(청산혜요아이무어)-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창공혜요아이무구)-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惜兮(료무애이무석혜)-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여수여풍이종아)-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나옹 화상(懶翁 和尙) 위의 노래는 고려 31대 공민왕의 왕사(王師)이며 다인(茶人)이었던 나옹(懶翁) 스님의 불교 가사(歌詞)이다. 고승 나옹은 인생을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는 것이라고 읊었다.
기독교 구약성경 <사무엘 상 l6장>과 <열왕기 상 2장> 및 <역대기 상 11∼29장>에 고대 이스라엘의 다윗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다윗왕은 이스라엘의 제2대 왕으로서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애급에서 탈출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맴돌다가 지금의 팔레스타인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가나안 지방을 아직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하고 각 부족들은 여러곳에 산재하며 적당한 위치에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통일된 중앙집권 기관이 없고 왕도 없었던 시절에 각 부족의 수장(首長)인 사사(士師)들이 정치를 하던 시대가 있었다. 약 3000년 전 이야기다. 우리가 잘아는 힘센 삼손이나 거인(巨人) 골리앗이 모두 이 시대 사람들이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가자 지방에서 전쟁을 하는 것도 3000년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정복전쟁하는데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이 일으키는 중동의 영원한 전쟁은 그 책임이 영국 프랑스 미국에 있다. 이것은 영국외상 밸포어 선언이 잘 말해 주고 있다. (필자 주) 그 후 사울이 제1대 왕이 되고 다음에 제2대 왕으로 다윗이 집권하면서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의 통일 왕국을 세워 반석위에 올려놓은 인물로서 이스라엘 역사에서나 기독교 성경 속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사람이다. 이 다윗왕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가 미드라쉬라는 유대교 문헌(文獻)에 나오고 있다. 미드라쉬는 유대인들이 성경 전체를 설명하거나 랍비(rabbi율법선생) 들의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 문헌집이다.
다윗 왕이 어느 날 보석을 만드는 세공인을 불러 자신을 기리는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라고 지시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내가 큰 승리를 거둬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교만 할 때 그 감정을 다스릴 수 있고, 반대로 절망에 빠졌을 때 다시 용기를 북돋워 줄 수 있는 글귀 하나를 반지에 새겨 넣어라.” 보석세공인은 최고의 보석으로 좋은 반지는 만들었지만 다윗왕이 주문한 두 가지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글귀를 생각해 낼 수 가 없었다. 고민 끝에 지혜롭다고 소문이 나 있는 다윗왕의 넷째 아들이며 후에 이스라엘의 제3대 왕이된 왕자 솔로몬을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 하며 도움을 청하게 된다. 보석세공인의 이야기를 들은 솔로몬 왕자는 빙그레 웃으며 반지에 새겨 넣을 글귀를 가르쳐 준다.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 솔로몬 왕자는 설명하기를 “왕이 승리에 도취한 순간 그 글귀를 보면 영광이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이순간이 지나면 영광도 따라 사라지는 것이므로 자만심이 금방 가라앉을 것이고 절망 중에 그 글을 보면 절망역시 이 순간에 지나가기 때문에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사란 즐거움이던 괴로움이던 우리 곁에 항상 머무르지 않고 물같이 바람같이 떠나가고 있다. 사랑도 자식도 친구도 재물도 “모두 지나 가는 것이다” 이 유명한 문구는 3000년전 다윗 왕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특히 돈과 권력에 눈이 어두워 5년을 500년으로 착각하고 사는 우리나라의 소인배 정치인들에게 꼭 필요한 문구이다. 하심(下心) ! 집착(執着)한다고 머무르지 않는다. 권력도 돈도 학벌도 자랑하고 어시대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다. 물같이 바람같이 다 흘러가는 것이다 -농월-
제문수기우도(題文殊騎牛圖) 소를 타고 느릿느릿 1-6 長裾垂地獨騎牛(장거수지독기우)-긴 옷자락 땅에 늘어뜨리고 혼자 소 타고 鬚末淸風滿天地(수말청풍만천지)-수염 끝 맑은 바람은 하늘과 땅에 가득하다. 放下繩頭緩緩歸(방하승두완완귀)-머리 묶고 고삐 놓은 채로 느릿느릿 돌아오니 溪橋碧草煙華膩(계교벽초연화니)-시냇가 다리의 푸른 풀은 연기에 살짝 가렸네! 박서생(朴瑞生) 지난세월 소똥냄새를 그립게 하는 기축(己丑)년 소의 해다. 소똥냄새가 그립다하면 지금 젊은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고 “별것이 다 그립다”고 할 것이다. 소외양간과 죽통, 소죽을 끓이는 무쇠솥, 반질반질 윤이 나는 소멍에, 그리고 소똥으로 만든 두엄에서 나는 향기(鄕氣?)는 우리의 삶 그자체인 숭고한 대지(大地)의 체취(體臭)였다. 첨단 과학의 시대에 사는 지금도 컴퓨터의 해 비행기의 해 로켓트의 해라는 말은 없고 12가지 동물을 여전히 한해의 상징물로 이름 짓는 것을 보면 인간과 자연의 하나 됨을 알 수 있다. 소의 해는 木의 소해(乙丑), 火의 소해(丁丑), 土의 소해(己丑), 金의 소해(辛丑), 水의 소해(癸丑)등이 있는데 올해 기축(己丑)년은 흙과 소로 짝지어진 해다. 기(己)는 천간(天干)으로 흙(土)을 뜻하고 축(丑)은 지지(地支)상으로 소(牛)를 의미한다. 즉 기축(己丑)은 소가 쟁기로 대지(大地) 가는 형상이라 할 수 있다. 땅의 빛깔은 누런 황소의 색과 같다. 누런 황토색은 우리나라의 한우(韓牛)색이다. 황토색은 중심(中心)을 의미하고 위장(胃臟)을 상징하며 인체에 영양을 공급하는 원동력이 된다. 요즘 사람들은 사람과 가까운 동물이라면 애완견(愛玩犬)을 머리에 떠올리고 소는 쇠고기나 햄버거 스테이크 등의 영양공급의 육류(肉類)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4~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80%가 농업에 종사하고 또 농사일의 큰일은 소가 담당하였다. 소는 가축 이전에 한 가정 노동력의 기둥이요 재산이요 가족이었다. 그래서 끼니마다 먹는 여물도 콩 콩깍지 쌀겨 고구마 넝쿨 등으로 소죽을 정성스럽게 쑤어 소를 먹였다. 개는 그냥 있으나 마나하는 존재로 오죽해서 “이삿짐 뒤에 깨 따라간다” 고 하였겠는가 농부가 소를 위하는 정성은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그 이상이었다. 소설 대지(大地)로 유명한 미국소설가 펄벅 여사가 1963년 출간한 “살아 있는 갈대(The Living Reed)” 책의 첫머리에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극찬한 글이 있다. 이것은 1960년 초겨울 한국을 방문 했을 때 시골에서 지게에 볏단을 짊어진 농부가 짐을 싣지 않은 소달구지를 타지 않고 곁에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는 것이다. 보통 주인을 위하여 희생(犧牲)한 동물로는 개를 들 수 있다. 여러 지방에 의견비(義犬碑)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전북 임실군 오수면(獒樹面)의 의견비와 전남 광주 양림동 충견비(忠犬碑)기 유명하지만 소가 주인을 위하여 몸을 던진 이야기는 흔치 않다. 경북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 명문 영천이씨의 이민환 선생이 쓴 의로운 소 무덤 의우총(義牛冢)의 글이 있다. 일선(一善선산의 옛이름)에 무덤이 하나가 있고 무덤 앞에는 비석이 있는데 의우총(義牛塚)이라 하였는데 의로운 소에 대한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 어떤 한 농부가 소와 밭을 갈다가 호랑이를 만났는데 호랑이가 소를 놓아두고 사람을 위협하였다. 이때 소가 크게 울며 뿔로 받으며 호랑이와 싸워 할퀴고 물려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도 물러서지 않았다. 농부는 이를 틈타 도망을 칠 수 있었다. 고을 사람들은 이소를 의(義)롭다고 여겨 무덤을 만들어주고 비석을 세우며 정려문(旌閭門)을 만들어 기리고 있다고 한다. 또 13~4년 전에 경북 상주시에서 임봉선 씨의 암소 누렁이가 갑자기 고삐를 끊고 자취를 감춘 사건이 있었다. 평소에 이웃집 김보배 할머니가 암소 누렁이를 사랑해주었는데 이 할머니가 죽자 누렁이 암소가 무덤을 찾아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집에 돌아와 할머니 영정에 문상도 했다는 것이다. 이 소가 19년의 삶을 마치고 숨을 거두자 동네에서 꽃상여를 마련하고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루고 이 누렁이의 무덤을 의우총(義牛塚)으로 지정됐다는 이야기가 신문에 실렸다. 대지(大地)와 황소는 근면과 성실 포용력의 상징이다. 소는 온순하고 부지런하고 지구력이 있고 속이 깊은 동물이다. 따라서 2009년은 모든 면에서 성실하고 지구력이 있고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해이다. 춘원 이광수(李光洙)의 대표수필 중에 소의 덕(德)을 칭찬하는 우덕송(牛德頌)이 있다. 사람을 위해 일생을 봉사하다가 죽은 후까지도 살과 뼈와 가죽을 사람에게 내어 주는 소를 통해 인간이 반성하고 수행해야 할 미덕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새해 들어 호시우보(虎視牛步)니 우보천리(牛步千里)하는 사자성어가 세인(世人)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생각은 범처럼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마음은 조급하게 먹지 말고 소처럼 우직하게 한걸음씩 내딛으라는 바람인 것 같다. 매사에 냄비에 깨볶는식으로 호들갑 떨지 말자 소 앞에 부끄럽다 ! -농월-
심우(尋牛) 소를 찾아 나서며 茫茫撥草去追尋(망망발초거추심)-망망한 수풀을 헤치고 소의 자취를 찾노니 水闊山遙路更深(수활산요로갱심)-넓은 강 험한 산길은 더욱 깊도다. 力盡神疲無處覓(역진신피무처멱)-힘과 기력이 떨어져 지쳐 찾을 길 없는데 但聞楓樹晩蟬吟(단문풍수만선음)-다만 숲속 나뭇가지엔 매미 우는 소리만 들리네. 심우십도(尋牛十圖) 종교(宗敎)속에서 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유교(儒敎)에서 소는 의로움(義)을 상징하고 있다. 중국 역사서인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 부여조(夫餘條)에 有軍事時亦祭天殺牛觀蹄以占吉凶蹄解者爲凶合者爲吉 유군사시역제천살우관제이점길흉제해자위흉합자위길 이라 하여 전쟁과 관련된 일이 생기면 소를 잡아 하늘에 제사 지내어 흉사(凶事)를 멀리하고 길사(吉事)를 빌었다고 하였다. 이 기록에서 소는 단순히 농경을 돕고 양질의 단백질을 제공하는 가축이상의 의미가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를 신성한 제물(祭物)로 쓰이는 전통을 이어 왔다. 고려시대에는 장생서(掌牲署) 조선시대에는 전생서(典牲暑)라는 관청을 두어 농사의 풍년을 빌어 선농단(先農檀성북동에 있음)을 모으고 농사의 신(神)인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 에게 제사를 지낼 때 소를 제물로 드렸으며 여기에서 연유한 설농탕(설렁탕)이 오늘날 까지 전하고 있다. 그리고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에 쇠고기 산적(散炙)을 으뜸으로 여기고 있다 이 기회에 드리고 싶은 말은 “희생(犧牲)”이라는 한자(漢子)의 말을 기독교에서는 성경에서 나온 말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 알고 있다고 본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제사지낼 때에 양(羊)을 드리면서 “희생(犧牲) 양(羊)”이라하는데 이것은 성립이 안 되는 말이다. “희생(犧牲)”의 본래의 의미는 의(義)로운 소를 제물로 바친다는 뜻이다. 기독교에서는 양(羊)으로 제사 지내면서 소를 죽이는 희생(犧牲)이란 말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성경(聖經)이란 말도 기독교의 주장으로 보면 맞지 않는 말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천경(天經)이나 그냥 바이블(Bible)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에서는 성경을 축자무오류(逐字無誤謬)라 하여 “성경 에는 어떤 종류의 오류도 없다” 고 하지만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본다. BC2세기경 로마의 프톨레미2세 황제의 명에 의하여 이른바 셉투아진타( Septuaginta)라는 72인역이 헬라어로 성경이 번역 완성된 후 약 1800년 동안 내용이 많이 변경되었고 1810년에 중국 한자로 번역되고 또 한글로 번역된 후 2007년까지 무려 13회의 개정판이 나오면서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에 견해 차이가 있으며 이해 못할 한자(漢子)표현이 있는 것 등 성경의 번역에 대한 문제점은 신학자나 역사학자 기독교계에서는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필자 주). 도교(道敎)에서 소는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 없이 조용하고 편안한 삶인 유유자적(悠悠自適)을 의미한다. 노자(老子)가 주(周)나라 강왕(康王) 때 난세(亂世)를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뜻을 펴려고 했으나,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 저지당하자 모든 것을 털어 버리고 떠나갈 때 푸른 소(靑牛)를 타고 유유히 종적을 감추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장자(莊子)또한 인간은 모름지기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갓 태어난 송아지는 무심히 눈을 뜨고 있을 뿐 아무 것도 마음에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수주 변영로의 수필집 명정사십년(酩酊四十年) “백주에 소를 타고”에서 지금의 성균관대 뒷산에서 공초 오상순, 성제 이관구, 횡보 염상섭 등과 함께 술에 취해 비에 젖은 옷을 벗어버리고 벌거벗은 알몸으로 소를 타고 시내로 들어온 기상천외의 스트리킹(streaking) 이야기는 세속에 얽매이지 않은 당시 지식인들의 일면을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여기서도 무위자연(無爲自然)속에 소를 등장 시키고 있다. 절에 가면 대웅전 3면에 심우십도(尋牛十圖)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일반인들은 예사로 보겠지만 불교를 상징하는 중요하고 아주 재미있는 그림이다. 불교에서는 소를 불교를 깨달은데 중요한 캐릭터(character)로 등장 시키고 있다. 성북동에 있는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尋牛莊)도 같은 의미로 지은 당호(堂號)이다. 기독교의 양떼와 목자와 같은 관계로 볼 수 있다. 심우도(尋牛圖)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목동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 묘사한 것이라 한다. 그림에는 소와 목동인 동자가 등장하는 모두 10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행자가 본성(本性소)을 잃어버린 뒤 그것을 찾아 헤매는 그림부터 소를 찾은 후 다시 중생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모습으로, 곧 선(禪)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는 순서를 소에 비유하여, 소를 찾고 얻는 과정과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심우도는 목동과 소를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추구하는 선종의 교의(敎義)를 부합시킨 종교그림이지만 이 그림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선승(禪僧)들뿐만 아니라 산문(山門) 밖 시정(市井)의 선비, 시인 묵객들이 즐겨 심우도를 그려 감상하고 있다. 다음에 절을 찾는 기회가 있는 친구들께서는 대웅전 3면에 있는 심우도를 한번 보시기 권한다. 10면(面)으로 되어 있는 심우도尋牛圖)그림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서 소개한다.
①심우(尋牛)-동자가 소를 찾기 위해 산 속을 헤매는 장면으로 불심을 알고자 함이 다. ②견적(見跡)-동자가 소 발자국을 찾은 그림으로 불심을 어렴풋이 느끼는 장면이다 ③견우(見牛)-동자가 멀리 있는 소를 발견하는 그림으로 불교의 본성을 눈앞에서 보는 뜻이다 ④득우(得牛)-동자가 소를 막 붙잡아서 고삐를 끌고 가려는 그림으로 선종(禪宗)에 서는 견성(見性)이라고도 하는데 불심을 찾았다는 뜻이다 ⑤목우(牧牛)-거친 소를 자연스럽게 놓아 가야 할 길을 갈 수 있게끔 길들이는 장면 이다. ⑥기우귀가(騎牛歸家)-동자가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본래의 고향(본성)으로 돌아 오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⑦망우존인(忘牛存人)-집에 돌아와 보니 애써 찾은 소는 간데없고 자기만 남은 상태의 그림이다. 불교는 피안(彼岸극락)에 도달했으면 그동안의 수단 방편은 버리라는 뜻이다. ⑧인우구망(人牛俱忘)-소와 자신도 잊어버린 상태를 묘사한 그림이다. 완전한 깨달 음은 텅빈 공(空)을 의미한다. ⑨반본환원(返本還源)-주객(主客)의 구별이 없는 경지 속에 자연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치는 그림이다 산은 산, 물은 물 그대로의 모습을 터득한 경지를 상징화한 것이다. ⑩입전수수(入廛垂手)-동자가 지팡이에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많은 곳을 향해 가는 모습의 그림이다. 이때의 큰 포대는 중생들에게 베풀어 줄 복과 덕을 담은 포대로서,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 제도에 있음을 상징화한 것이다. -농월-
동백꽃(冬柏花) 1-8 雪裏冬靑樹(설이동청수)-겨울 눈 속에 푸르른 나무 寒花爛熳開(한화난만개)-싸늘하게 찬란한 꽃(동백) 衆生如早識(축생여조식)-만약 중생의 아픔을 일찍 알았다면 紅錦未應栽(홍금미응재)-응당 빨간 꽃을 심지 않았을 텐데 조태채(趙泰采) 지금쯤 여수 오동도에는 동백꽃이 새악씨의 연지처럼 아름답게 피어 있을 것이다. 겨울에 피는 꽃으로 한란(寒蘭)이나 복수초 현호색등 야생화들이 다수 있지만 뭐니 해도 동백꽃(冬柏)이 으뜸이다. 지금쯤 여수 오동도나 해남 대흥사(大興寺)의 두륜산(頭輪山)에서 불타는 듯 아름다움의 극치(極致)를 이루는 동백(冬柏)이 눈에 선 하다. 동백은 비련(悲戀)의 꽃으로 상징되고 있다. 동백의 특징은 다른 여러 꽃들은 질 때 꽃잎이 한 장 씩 떨어지나 동백꽃은 꽃 전체가 한꺼번에 떨어져 버린다. 이 때문에 동백 부근에 개울이 있는 곳은 꽃이 질 때면 개울은 온통 동백꽃잎으로 새빨갛게 물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순결을 짓밟히고 사랑에 배신당한 비련(悲戀)의 여인과 비유되기도 한다. 동백에 대한 이야기나 문학에는 대부분 슬픈 내용이 담겨 있다 1960년대에 발표하여 히트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도 슬픈 노랫말이다. 1848년에 “창부의 사랑과 비극” 을 다룬 프랑스 소설가 뒤마의 춘희(椿姬마르그리트)는 원래제목이 “동백꽃을 들고 있는 부인”이다. 춘희(椿姬)는 눈 오는 거리에서 폐병으로 피를 토하고 쓸쓸히 죽어간다. 1936년 발표한 김유정(金裕貞)의 “동백꽃”은 소박하면서도 건강한 농촌 소년과 소녀의 애정 형성 과정을 스케치한 내용이지만 이 소설을 발표한 다음해 1937년에 작가는 심한 생활고와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만다. 겨울에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는 추위에 곤충이 없는데 어떻게 꽃가루받이를 할까? 동백나무에는 동백의 꿀을 좋아하는 작은 동박새가 꽃가루를 옮겨 열매를 맺게 해준다. 이름도 생소한 조매화(鳥媒花)라는 새다. 꽃의 중매쟁이 새라는 뜻이다. 동백은 여인과 사랑과 매우 연관이 있는 꽃이다. 여인의 머리를 빗는 얼레빗은 동백나무로 만들고 열매에서 짠 기름은 동짓달 긴긴밤을 밝히면서 임을 기다리는 등불 기름이며 옛 여인들의 삼단 같은 머릿결을 윤기 나고 단정히 하는 머릿기름으로 으뜸이다. 조선 단종왕은 “동백기름은 너무 귀하여 백성들이 생산하기에 너무 고생을 하니 임금에게 진상하지 말도록 하라”하였고, 중종 임금도 “진상하는 동백기름을 모두 줄이도록 하라” 는 기록이 있다. 동백기름은 이처럼 왕실에서조차 아껴 쓰는 고급 머릿기름이었다.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 “아득한 옛날 대춘(大椿동백)이란 나무가 있었는데 8000년 동안은 봄이고 다시 8000년 동안은 가을이다’ 라는 구절이다. 뼈를 깎는 한겨울의 모진 추위를 견뎌내야만 장수(長壽)와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동백꽃을 볼 수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도 “8000년을 살려거든 동백 숲으로 가라!”는 말을 했다. 동백은 눈 속에서 꽃이 피어 곱게는 보이지만 그 많은 날을두고 하필 추운 겨울에 피어나그 모진 괴로움을 감내(堪耐) 하는 것은 아마도 전생의 모진 업보(業報) 탓이 아닐까? 이 업보의 꽃을 심지 않았다면 이처럼 추운 겨울에 환생(還生)하여 아름다운 인고(忍苦)를 격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대를 위하여 무슨 위로를 하리요 한설(寒雪) 속에서 핀 동백이여 ! 울컥 목울대를 타고 쏟아지는 저 선지피 같이 떨어지는 붉은 꽃잎이여 어느 못 다한 사랑의 한(恨)을 위로하고자 차가운 오동도 물결에 네 넋을 흘리고 있느냐 아니면 두륜산(頭輪山)아래 대흥사에 사랑하는 비구(比丘)라도 있단 말인가 ! -농월-
아이고 저기 눈 아이가? 家翁每却魚(가옹매각어)-아버님이 항상 물고기 반찬 마다시는 것을 無或失鹽豉(무혹실염시)-혹시라도 양념이 부족해서 그러신 건 아닌지. 窈料長者心(요료장자심)-어른의 마음 깊이 생각해 보니 怕兒近水戱(파아근수희)-손주놈들 물가에 노는 것을 염려함이었네. 작자미상(作者未詳) 아들은 어느날 가족 형제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시골에 집을 하나 마련했다. 서울 사는 치매 걸린 어머니와 함께 살 집이었다. 아들 생각으로는 평생을 시골에서 사신 어머니의 정서에 맞는 집을 찾은 것이다. 아들은 귀도 멀고 대소변도 잘 못 가리는 여든여섯의 어머니가 계실곳은 일 년 내내 밥만 받아먹고 대소변을 같이 해결하는 두평정도 되는 서울의 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시는 것은 어머니의 남은 인생을 우리 속에 가두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들은 시골의 오래된 빈집을 구해 지붕을 새로 손보고 화장실도 새로 만들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집을 짓되 집의 구조는 전적으로 늙으신 어머니가 사용하기 편리한 기준으로 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파란하늘, 바위와 나무, 비와 눈, 구름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 철따라 피고 지는 꽃과 바람결도 느끼시게 하고 싶었다. 이집에 처음 왔을 때 어머니는 대소변을 못가릴정도로 치매가 심하였다. 요양원 전문 강사들과 전문 의료진들도 “차라리 시설 좋은 노인병원에 입원 시키지” 하였다. 그러나 시골온후 날이 갈수록 어머니는 건강을 되찾았다. 얼굴이 환해지고 기억력이 또렸해졌다. 눈이 펄펄 내리던 어느날 밖을 내다보시던 어머니가 “저기 눈 아이가? 눈이 다 내리네! 이기 몇 년 만이고” 아들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여러 해를 햇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고 하늘은 손바닥만 한 창문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형광불빛만 의지해 사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막혔다” 날씨가 좀 풀려 어머니와 같이 밖으로 나갔다. 따뜻한 양지에 돋아나온 나물을 사투리로 일일이 말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생기가 났다. 평생 시골에서 사신 어머니에게 흙과 풀은 가장 자신 있고 친숙한 친구였다. 도시의 세련된 집에서 느끼지 못한 정서였다. 대소변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멀쩡한 사람을 감금해 두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 집을 찾지 못하는 치매노인의 심리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종종 마당도 쓸고 배추도 심고 수제비로 밥상을 차리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요즘 나 밥값 하제?” 하고 농담도 하였다. 들에 겨울 나물을 캐러 갔다가 어머니 바지가 축축해서 “어머니 오줌 누셨네요. 했더니 “뭐 어때 어차피 집에 가서 씻을 낀데” 하면서 여유를 보였다. 어느날 아들은 일부러 양말을 찢어 구멍을 내어신고 방에 누운 어머니 쪽으로 발을 살그머니 뻗었다. 그걸본 어머니는 “양말 그거 벗어 이리 줘라. 누가 보믄 지 에미도 없는 줄 알겄다” 하시면서 구멍난 양말을 깁는다. 어머니는 이제 환자가 아니다. -- 줄곧 힘들다는 자식을 보고 “그러면 너랑 어머니랑 바꿔서 살아 볼래” 하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렸다. 옷에 똥을 누는 사람보다 그 똥을 치울 수 있는 사람이 몇 배는 다행한 줄 알라는 소리도 뒤따라 들려 왔다. 똥을 쌌는지 된장이 끓는지도 모르는 사람보다 아직은 멀리서도 똥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잊지 말라고도 했다-- 이글은 치매 어머니를 위해 시골생활을 택한 어느 아들의 일기를 보고 감동하여 소개하는 것이다. -농월-
약육강식(弱肉强食) 큰 벌레는 작은 벌레를 잡아먹고 1-12 大蟲食小蟲(대충식소충)-큰 벌레는 작은 벌레를 잡아먹고 强者飽弱肉(강자포약육)-강자는 약자 고기로 배를 불리네! 呑啖世界內(탄담세계내)-먹고 먹히는 이 세상에서 物物相殘賊(물물상잔적)-만물은 서로들 남을 해치네. 强者豈常强(강자개상강)-강한 자라고 어찌 늘 이기리오. 有時遇勁敵(유시우경적)-어느 때 더 강한 자와 마주 치나니 任力力無盡(임력력무진)-힘으로 할양이면 힘은 한이 없고 任智智相百(임지지상백)-지혜로 한다 해도 여러 가지라. 至人斷人我(지인단인아)-지인(至人)은 남과 나를 끊고 心與虛空廓(심여허공곽)-그 마음은 허공처럼 넓어진다. 虛空不勝物(허공부승물)-허공이 만물을 이기지 않고 物亦勝不得(물역승불득)-만물 또한 허공을 이기지 못한다. 장유(張維 1587∼1638)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영원한 전쟁 지금 중동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가자지역 전쟁으로 수많은 귀중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세계가 경제 불황으로 먹고 살기에 정신이 없는데 이곳에는 경제 따위는 안중에 없다. 팔레스타인은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평생 전쟁터로 변하였을까? 필자는 신앙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도 아닌 평범한 시정인(市井人)의 한사람으로서 평생을 들어온 중동전쟁을 성경과 지중해의 그리스 로마역사 및 중동지역의 고대 문헌의 자료를 통하여 요약된 내용을 매우 객관적으로 정리하여 보고자 한다. 지금의 이스라엘 예루살렘 북동쪽 예리코 갈릴리 호수근처에서 발굴된 기원전 2300년 전의 청동기 시대 유물에 의하면 카난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도시 국가를 세워 고대 이집트, 시리아, 페니키아와 메소포타미아의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살았다고 한다. 그 후 기원전 1250년경에 남부 그리스에서 필리스틴인들이 들어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필리스틴인들의 정착 국가를 이어 온 것이다. 가나안은 팔레스타인 이전(以前)의 이름이다. 이 세상에 “페스트나 전염병이 없는 곳은 있어도 종교가 없는 곳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지구상에는 곳곳에 수많은 종류의 종교를 가지고 있다. 고대 중동지방에서도 많은 부족과 유목민들이 여러 종류의 신(神)들을 믿고 있었다. 예를 들어 바알신 야훼신(여호와) 엘신 아세라여신등 로마 그리스의 신들을 합치면 그 수가 엄청나다. 이중에서 유대 유목인들은 야훼신을 믿었다. 야훼 신 하나님은 유대민족들에게 다른 신은 믿지 말고 야훼신만 믿으라고 하였다. 모세가 광야의 시나이산(山)에서 받은 십계명의 제 1계명이 “너는 나 외는 다른 신들을 절대로 믿지 말라”고 구약성경에는 기록되어 있다.(출애급기 20장 3절) 그대가로 여호와신은 유대민족에게 가나안땅(지금의 팔레스타인)을 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급 강에서부터 그 큰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라. 이 땅들은 <겐족속 그니스 족속과 깃몬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창세기 15장 18절~21절) 생각하면 참 황당한 이야기다. 다른 민족이 잘 살고 있는 남의 땅 가나안을 야훼신이 유대인들보고 “내가 이 땅을 너희에게 줄 테니 가서 싸워 빠았으라” 하는 것이다. 즉 억지로 빼앗는 강탈(强奪)을 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성경의 글 몇 자에 따라서 가나안을 자기나라라고 주장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슬람의 “알라”신이 영국 연합왕국의 영토인 웨일스를 “내가 이 땅을 알라신을 믿는 이슬람인 에게 주노라” 하면 영국이 이 말을 받아들이겠나? 어린이들도 자기 과자를 빼앗아 가면 운다. 이처럼 고대 중동지방의 여러 민족들은 자기네들이 믿는 신들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며 살았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내용을 정리 하여 본다. 성경 창세기에는 기독교의 중간 시조(始祖)라 할 수 있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등장한다. 이중에서 아브라함이 오늘날 중동전쟁의 원인제공 인물이다. *아브라함의 본처(本妻)인 사라는 애기를 낳지 못하고 그녀의 애급사람 여종 하갈을 취하여 아들을 낳게 한다. 이 아들이 장자인 이스마엘이다.(창세기 16장 1절 15절) *그 후 아브라함의 본처(本妻)인 사라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이삭이라 했다. 아브라함의 둘째 아들이다.(창세기 21장 3절) *아브라함이 본처인 사래가 아들을 낳자 하녀에게서 난 장자 이스마엘과 어미인 하갈을 집에서 쫓아낸다. (창세기 21장 14절) *쫓겨난 이스마엘과 어미는 방성대곡하며 이를 갈며 원한을 갖게 된다. 이 이스마엘이 지금의 이슬람교의 뿌리이다.(창세기 21장 16절) 아브라함이 장자인 이스마엘을 쫓아냄으로 인하여 이슬람과 기독교의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신학자들은 이스마엘이 아랍민족의 조상이고 그리고 이삭은 유태인들의 조상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들과의 끊임없는 전쟁을 이삭과 이스마엘 자손들의 형제지간의 싸움이라고 보고 있다. 하나님이 아들을 준다는 약속을 끝까지 믿지못하고 하녀를 통해 이스마엘을 출생시킨 아브라함의 죄때문에 그 자손들이 평생을 전쟁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성경상의 예수 족보를 보면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아브라함이 22대 이삭이 23대 야곱이 24이며 예수는 77대이다. 이중 23대 야곱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야곱에게는 본처 레아에게 출생한 아들6명, 둘째아내 라헬에서 출생한 아들 2명 셋째 아내 여종 빌하(라헬의여종)에서 출생한 아들2명, 넷째아내 여종 실바(레아의여종)에서 출생아들 2명등 총 12명의 아들이 있다. *야곱은 노년에 얻은 라헬의 아들 요셉을 장자인 르우벤보다 더 사랑하여 다음 상속자로 은근히 생각하고 사랑하여 비단옷을 지어 입혔다 (창세기 37장 3절) *아버지 야곱이 장자 순서를 어기게 되니 11명의 형들은 동생인 요셉을 미워하여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20개에 팔았다. 상인들은 요셉을 데리고 애급(이집트)으로 가서 이집트에 종으로 팔았다(창세기 37장 28절) *애급 왕궁에 노예로 팔린 요셉은 애급왕 바로 앞에서 애급 땅에 일어날 7년 동안 흉년을 예비하면 흉년을 막을 수 있고 멸망치 아니하리라고 꿈을 해석해 주고 그 공로로 총리대신이 된다. (창세기 41장 36절) *바로왕이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급 온 땅을 총리(總理)하게 하노라 바로왕의 인장과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니라.(창세기 41장 42절) *아버지 야곱이 살던 이스라엘의 세겸땅에 흉년이 들어 가족을 이끌고 요셉이 총리로 있는 애급으로 이사를 하여 430년간 나일강 유역에서 이집트의 노예로 생활한다.(창세기 46장 7절) *애급에서 이스라엘 자손중 레위 족속의 한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모세다.(출애급기 2장 1~10절) *모세라는 걸출한 인물이 태어나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간의 애급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키고자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급을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가기 위하여 광야로 나온다(출애급기 13장 18절) 야곱의 후손 70명이 애급으로 이주한 뒤 430년이 지나 애급을 탈출할 때는 남자 60만명, 여자와 아이까지 140만명 도합 2백만명 이상의 대민족이 되었다. *모세가 가나안으로 거의 다 와서 가나안이 바로 보이는 모압땅에서 120세의 나이로 죽는다.(신명기 34장 5절) *모세의 후계자로 지정된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고 정착하여 지파별로 땅을 나누어 준다.(여호수아 13장-19장) (BC 1200) *그 후 이스라엘은 사울왕, 다윗왕, 솔로몬왕까지 통일왕국을 이룩하고 3대를 끝으로 통일 왕국이 끝난다.(BC1020-1000) *이스라엘은 솔로몬왕이 죽자 기원전 922년에 북 이스라엘왕국과 남유다왕국으로 분열되었다. *먼저 북 이스라엘왕국은 호세아 왕 9년에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하다(기원전 722년), (열왕기하17장 23절~24절) *남유다왕국은 시드기야왕때(기원전 598년)에 바벨론(신바빌로니아)에 의해서 멸망한다. 이때 시드기야왕은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두 눈을 파낸다.(열왕기하 25장) *BC 538년에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다리무스왕때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에 돌아와 유대국과 유대교 성전을 재건하였다. *BC 3세기 유대왕국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의 통치하에 들어간다. *BC 1세기 이스라엘은 로마에 정복된다. *서기 26~36년경에 갈릴리 나사렛에서 예수가 탄생한다. *서기 66-70년경에 예수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이 로마에 저항하다가 멸망하여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진다. *서기 570년에 마호메트가 탄생하여 이슬람교를 창시한다. *로마에 멸망한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 각국에 흩어져 2000년 동안을 나라 없는 민족으로 살면서 디아스포라(Diaspora 이산민족)신세가 되어 끊임없는 박해를 받았다. *19세기 후반부터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 유대민족주의 운동인 시오니즘(Zionism시온주의)운동이 데이비드 벤구리온에 의하여 시작되면서 산발적으로 팔레스타인 땅에 이주하여 살게 되었다. 이때부터 기존 팔레스타인과 이주한 유대인과 마찰이 시작되었다. *1914년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의하여 제1차 세계대전 시작되어 4년간 계속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10월에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 A.H.맥마흔이 아랍국가에 대한 지원을 얻기 위하여 팔레스타인에게 전후(戰後) 아랍인의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기로 약속한 선언을 한다. 이것이 맥마흔선언(McMahon Declaration)이다.
*그러나 1917년경 전쟁이 독일에게 유리하고 연합군에 불리하자 돈이 많은 유대인들에게 대규모 전쟁비용을 지원받기 위하여 이번에는 유대국가 성립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완전히 이중 플레이를 한다. 이것이 나치 독일이 600만 유대인 학살 이유 중 하나이다. *이 이스라엘 건국 지원 약속이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무장관 밸푸어선언(Balfour Declaration) 이다. *1947년 11월29일 UN은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고 있던 팔레스타인 땅의 약 56%를 유대인들의 국가에 주는 팔레스타인 분할을 결의한다. 힘센 국가들이 강제로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아 이스라엘에 준 것이다. 2천년 동안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살아오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다. *1948년 5월14일 텔아비브 미술관에서 유대 국가건국위원회 의장 “벤 구리온”이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한다. *1948년 5월16일 이집트를 요르단, 시리아 등 아랍 연합군 2만 명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진입함으로써 제 1차 중동전이 발발한다. *1956 이집트 나세르대령 수에즈운화 국유화 영국 프랑스와 전쟁 *1967 이스라엘 6일전쟁 *1978 캠프데이비드 협정 *1979 이집트 이스라엘 평화조약체결 30년전쟁 종결 *1982 이스라엘 레바논 침공 PLO 단체 괴멸 *1994 이스라엘 요르단 평화 협정 *2002 이스라엘 레바논침공 *2006 이스라엘 레바논 침공 *2008 현재 가자 전쟁 *그리고 지구가 멸망하는 날까지 중동전쟁은 계속된다. 결론적으로 중동을 전쟁터로 만든 책임은 영국과 미국에 있다. 인간이 사는 이 지구상에는 종교다 윤리다 도덕이다 평화다 라고 말은 하지만 힘 있는 강자만이 생존하는 사회다. 남의 나라를 빼앗는 이스라엘을 미국 영국은 돈과 무기를 지원하여 대리전쟁을 시키면서 중동지역을 무력으로 장악하면서 세계평화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돈과 무력으로 아랍 여러 나라를 분열시키고 이간질 시키고 있다. 중국의 티벧침공, 러시아의 체첸 그루지아 침공, 일본의 조선 강점등은 강한자들의 폭력 행사의 전형이다.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기독교 유대민족의 문제점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았다는 선민의식(選民意識)이다. 이것은 유대민족이 이방인이라 부르는 팔레스타인과 끊임없는 전쟁을 계속하는 원인이다. 이것은 소위 유대민족이 하나님과 약속했다는 구약(舊約) 즉 “옛 약속” 에 의한 것이다. 구약의 잘못된 율법주의적인 폐습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마틴루터가 “믿음 소망 사랑”을 표방하고 기독교 종교개혁을 하여 “신약(新約)”을 다시 약속한지가 600년이 되고 있지만 종교혁명은 말뿐인 공염불이 되고 있다. 지금 세계가 FTA WTO GATT global 등으로 마치 국경 없는 세계처럼 보이지만 결국 불리하면 자국민을 위한 민족주의(民族主義) 내셔넬리즘(nationalism)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인간세계의 화평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가 바로 “종교”라는 문화 현상이다. 종교가 제 각기 사랑과 자비와 은혜의 원천이라고 선언하면서 인류를 구원한다고 외치면서 인류를 가장 억압하고 대규모의 잔악한 살상을 자행하고 노예를 만들고 질투와 배타와 저주를 하는 것이 종교다. 성경속에서도 여러 가지 명목으로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을 죽이고 있다. 십자군전쟁 마녀사냥등 세계 전쟁사의 5분의 4는 종교 전쟁이다. 어떤 명목이던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 생명을 죽이는 것은 종교가 아니다. 지구상에 종교가 존재하는 한 평화는 있을 수 없다. -농월-
어머니 안계시면 된장도 안 담글래요 我以出時母腹於(아이출시모복어)-내가 어머니의 뱃속으로부터 나온 때부터 一時無不受旣其(일시무불수기기)-한 순간도 사랑을 받지 않은 적 없었네 我無敢現其太愛(아무감현기태애)-나는 그 큰 사랑을 감히 표현할 수 없네! 若海爲墨天爲紙(약해위묵천위지)-바닷물을 먹물 삼고 하늘을 종이 삼는다 해도 작자미상(作者未詳) 종갓집 종손인 우체국장 김영곤은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자전거도 제대로 운전 못할 정도로 급하게 집으로 달려간다. 봉춘봉 이장집 혼자된 며느리 승주도 눈이 사발만 해져서 친정집으로 달려간다. 과수원에서 일하던 둘째아들 재곤이도 가지 치던 가위를 팽개치고 바람같이 집으로 달려간다. 집에서는 손주며느리가 눈을 홉뜨고 표정이 갖가지로 변하면서 부엌으로 마당으로 안절부절 어찌 할 줄을 모른다. 오후 늦게 쯤 종갓집 큰 며느리 명희가 시내 볼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마을 동네의 감초할머니 양산댁을 만난다. <아이고 종아 어머니 오디 갔다 이제 오요. 집에 이야기 못들었어예?> <누구집 말이에요?> <누구집은? 집에 어머니가 쓰러져서 지금 날린데 모르고 있어예? 아이고 참내> <아니 어머님이 쓰러지시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게 무슨 소리야 사람이 급하면 다리에 힘이 빠져 걸음을 제대로 못 걷는다. 가까스로 집에 도착하여 대문을 들어서니 집안은 쥐죽은 듯 고요하고 마루 앞에 신발들이 어지럽게 늘려져 있다. 방문을 엉거주춤 열고 들어서며 움칠 놀란다. 온 식구가 아랫목에 누운 어머니를 중심으로 삥 둘러앉았다가 눈길이 전부 종부 쪽으로 쏠린다. 아랫목에 누워계신 시어머니가 눈을 가만히 떠서 바라본다.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보건소 의사가 청진기를 거두고 종아와 같이 일어서면서 <겨울철에 갑자기 혈액 순환이 안 되어 일과성 어지럼증으로 쓰러진 것이므로 조금 안정되면 회복 될 것입니다 염려 마세요.> 한다. 눈오는 날 종갓집 할머니가 장독대에 된장떠러 갔다가 쓰러진 것이다. 할머니가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왜들 표정들이 그래?> <어머니 !> <뭐 이상할 것 없어. 이제 나도 저세상으로 갈 때가 되었나 보다. 예전 같이 않으니--> 식구들은 전부 입을 벌리고 “말도 안 된다”는 표정들이다.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큰 며느리 명희가 시어머니를 향해 눈물을 글썽이며 항의조로 말한다. --이글을 쓰면서 필자는 약 30년전 기억을 떠올린다. 전남 광주에 근무시 숙모님 부음(訃音)을 받고 집안사람과 상사(喪事)에 가는 버스 속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지금까지 내 앞에는 저승가는 길을 막아주는 방파제가 있었는데 이제 그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고 없으니 다음은 우리 차례인 것이요> 하고 말한지가 어그제 같은데 이제 내가 그 나이에 가까워 왔다.-- 종갓집 할머니는 종부 큰 며느리 명희를 조용히 불러 앉힌다. <얘야 이제 부터는 이것 네가 간직해라> <어머니 이것이 무엇이예요?> <응 이것 내가 이집에 종부로 시집온 후로 지금까지 살면서 집안의 대소사를 기록한 내용이다. 이제는 네가 받아 이어 가거라> <그런데 이걸 왜 저한테 주세요?> <이제는 아마 네가 받을 때가 되었나 보다> <싫어요. 어머니 저는 이것 못 받아요. 아니 받기 싫어요> <아니 얘가. 왜 못받아?> <저는 아직 된장도 못담가요> <그거야 차츰 배워가면서 하면 되지. 나도 세월이 가면서 배우며 살았다> <꼭 된장 때문만이 아니예요. 저요 어머니와 떨어져 산다는 것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어요. 어머니 저 종부 때문도 된장 때문에 산게 아녜요. 저의 친정어머니가 돌아 가셨을 때 어머님이 저의 손을 붙잡고 하신 말씀 기억 안 나세요? “얘야 이제 내가 너의 어머니가 되어 줄게” 하신말씀-- 저는 어머님과 평생 같이 있어야 해요. 이딴 공책 저에게는 필요 없어요. 어머님 도로 거두세요. 어머님이 안계시면 저는 종가도 필요 없고 된장도 안담글래요> <아니 이 얘가! 내가 네옆에 평생있을줄 아느냐?> <예 그럼요 어머님은 평생 저와 같이 있어야 해요. 다른 사람 다 돌아가셔도 어머님은 돌아가시면 안돼요. 아예 떨어지실 생각 마시고 빨리 기운 차려 일어나세요.> --지금 세상이 변하여 자식들이 부모 생각을 하느니 안하느니 하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이야기다. 우리 집 자식 놈들이나 식구들은 “아버지는 항상 건강하고 아프지도 않고 병도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가족이 아프고 집안에 무슨 일 일어나도 아버지가 계시니 걱정 없다는 것이다. 자식 놈들 나이 사십을 바라보면서도 아버지는 평생 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인 모양이다. 다른 사람은 다 죽는데 나라고 안 죽을까? 내가 자식 놈들을 잘못 키운 것은 아닐까? 내 자식만의 생각이 아니다. 우리들의 자식들은 우리가 평생 살줄 알고 있다.-- 종갓집 할머니와 며느리가 밥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다. <얘야 밥좀 비벼서 먹자구나> <예 어머니 그동안 누워계시면서 허기 지셨죠. 많이 드세요> <응 그래 네 하는 것 보니 내가 지금 죽어서는 안 되겠다. 며느리까지 본 네가 아직도 나없이는 못산다하니 언제 철들 것이냐?> <네 어머니 제 철들려면 아직 멀었어요. 그리고 철 들고 싶지도 않아요. 어머니 옆에 영원히 어린 며느리로 있고 싶어요!> --그렇다. 대다수의 자식들은 우리들 부모를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신으로 생각하고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안내하는 하나님의 불기둥으로 생각하고 있다. 남들은 다 죽어도 우리 부모는 안 죽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 자식들에게 너무 일찍 실망을 주지 말도록 우리가 오래 살아야 한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자식들은 부모 앞에는 언제나 어린애 들이다. 때로는 자식들이 마음에 안들 때도 있지만 그것은 아버지 어머니를 너무 믿고 어른 응석을 부리는 것이다. 늙어서 돈은 보태주지 못할지언정 너무 빠른 실망을 주지 말고 건강하고 오래도록 이 자리를 지켜주자.-- 이이야기는 KBS 수요 드라마 “산 넘어 남촌에는” 어느 날의 이야기다. -농월-
설악산(雪嶽山) 흘림골을 다녀와서 1-14 棧橋林間望奇隆(잔교림간망기융)-잔교 숲사이로 보이는 봉우리는 기이하게 솟았고 山一逕裏瞰絶璧(산일경리감절벽)-좁은 산길 다리 아래는 깎아지른(天涯천애) 절벽이구나! 遠看嶺外中靑容(원간영외중청용)-멀리 산마루 넘어 중청봉(中靑峰) 모습이 아련히 보이고 吾欲己去遊愉鵲(오욕기거유유작)-내 마음은 이미 가고 싶은데 까치가 여유로이 노는 秋色靑紅旣半楓(추색청홍기반풍)-가을빛은 푸르고 붉게 이미 반은 단풍이 들었네. 深碧隱立裸娥曲(심벽은입나아곡)-짙은 푸름 속에 은밀히 서있는 벗은 아름다운 곡선이여 願留是景時莫動(원유시경시막동)-원컨대 이 경치에 머물고 싶으니 시간이여 가지 마오 復來眞難心哀益(복래진난심애익)-다시 오기는 진정 어려우니 마음 더욱 애닲구려. 오복님(吳福任) 위의 한시를 쓰신 오복님(吳福任) 여사는 필자가 익히 아는 지인(知人)입니다. 지금도 경희대학교 한시(漢詩) 창작(創作)교실에서 활발한 시작 활동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작자가 설악산을 등정(登頂)한 소회(所懷)가 너무 간절하고 아름다워 소개 합니다. 사람은 누구든 문학(文學)의 공기 속에 숨 쉬고 있지만 그것을 밖으로 나타내어 표현하기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한시든 현대시든 시(詩)를 창작(創作)하는 일도 다른 어떤 일에 비하여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인생의 삶의 지혜는 번갯불같이 떠오르는 돈오(頓悟)도 있지만 인고(忍苦)의 긴 여정을 하루하루 밟고가는 돈수(頓修)도 있습니다. 이런 점철(點綴)된 삶의 알알을 몇자안되는 글자로 한정된 그릇 속에 담아 보는 것은 매우 소중하다 하겠습니다. 인생의 행복과 아름다움이란 가시적(可視的)이고 물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하루 이틀 흐르고 깍기어 가는 세월을 그냥 지나지 않고 나만의 생활 속에 곱게 쌓아가는 것도 매우 소중합니다. 이것이 시를 쓰고 일기를 쓰는 의미라 생각합니다. 설악산(雪嶽山)은 장엄하고 수려(秀麗)한 비경(秘景)을 갖인 명산(名山)입니다. 설악산은 신성(神聖)하고 숭고(崇高)한 산이라는 뜻에서 예로부터 설산(雪山),설봉산(雪峰山),설화산(雪華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 왔습니다. 그러나 설악산은 아쉽게도 아름다운 산이면서 금강산 명성 때문에 오랫동안 소외당한 산입니다. 일제 강점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쓰여진 산행(山行)의 기행문(紀行文)은 거의 다 금강산(金剛山) 기행문입니다. 명색이 글줄이나 읽었다는 지식인 묵객(墨客)들은 한결같이 금강산만 노래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 기록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12 종산(宗山)에도 설악산은 빠져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4대 명산(名山)도 동쪽은 금강산(金剛山) 남쪽은 지리산(智異山) 서쪽은 구월산(九月山) 북쪽은 묘향산(妙香山)이라 기록 되어 있습니다. 최남선(崔南善)이나 이광수(李光洙)전집에는 모두 장문(長文)의 금강산 기행문만 실려 있습니다. 방랑시안 김삿갓도 금강산만 노래하였습니다. 설악산은 일제 때까지도 찾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다만 조선왕조 때에는 김시습(金時習)이 한때 머물렀던 탓으로 매월당(梅月堂) 선생을 만나러 왔던 사람이 설악산의 경승(景勝)에서 느낀 바를 글로 적어 세상에 알렸던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6.25 동란후 휴전선으로 금강산 길이 막히자 설악산을 찾는 사람이 많아져서 우리에게 친근한 산이 된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설악산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것은 1930년 일제 때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선생이 10여 일에 걸쳐 설악을 샅샅이 뒤지고 쓴 글이 장문의 “설악행각(雪嶽行脚)”입니다. 그때 설악(雪嶽)이라는 명산(名山)이 강원도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0일 간을 설악산의 전모를 샅샅이 뒤진 끝에 계조암(繼祖庵) 앞에 있는 동석(動石)인 “흔들바위”도 찾게 되어 설악이 금강산 못지않게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는 산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아쉬운 것은 필자가 견문(見聞)이 좁고 독서의 범위가 넓지 못해서 설악산에 관한 한시(漢詩)도 많이 접하지 못했고 고전(古典)이 될 만한 기행문도 노산의 “설악행각(雪嶽行脚)”이외는 설악산을 알리는 특별한 자료를 보지 못했습니다. “설악행각”의 내용은 너무 방대하여 이곳에 소개 하기는 적당치 못하여 다음기회로 미룰 가 합니다. 설악산 한시는 연산군때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으로 인하여 무오사화로 처형된 문신(文臣)인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이 쓴 귀설악(歸雪嶽) 두수가 있고 최근의 창작(創作) 한시 몇 수를 제외하고는 설악산의 한시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문인들로부터 외면당한 설악산을 노래한 오복님(吳福任) 작자의 창작시(創作詩)는 귀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로 우리나라의 동맥이라 할 수 있는 서울을 한강(漢江)을 노래한 한시도 이규보(李奎報) 이색(李穡) 변계량(卞季良)외에 창작 한시가 몇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제는 말로만 “설악산이 최고다” “한강이 아름답다” 하지 말고 시(詩)로 노래해야 합니다. 이글을 쓰면서 느끼는 감회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 강산을 잘 보존하는 것은 나무를 심고 거름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속에서 울어나는 진솔한 자연 사랑을 글로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됩니다. -농월-
연(鳶) 날리던 추억 連日兒郞不在家(연일아랑부재가)-날마다 아이놈은 집에 있질 않아 瞥看雙頰似丹砂(별간쌍협사단사)-단사같은 붉은 뺨을 잠깐 보이고는 今朝制楚還無奈(금조제초환무나)-아침에 회초리를 만들어 두었으나 又不歸來到日斜(우불귀래도일사)-해지도록 돌아오지 않으니 어쩔 수 없네. 유덕공(柳得恭) 오늘은 영국 소설가 H.G.웰스의 타임머신(Time Machine)을 타고 50여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하고자 한다. 2009년에는 음력과 약력이 같은 정월(正月)이다. 50여년전 정월 이맘쯤 제일 재미있는 놀이는 연(鳶)날리기 놀이다. 필자는 연(鳶)날리는 기술에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연을 띄우고 조종하는 기술뿐만 아니고 연을 만들고 얼레(자새)를 제작하고 연줄에 사를 먹이는 작업은 매우 수준급이다. 연 날리는 놀이는 민속 풍습이기 때문에 지방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진주 지방에서 우리 어렸을 때는 상대방의 연줄을 끊어먹는 놀이가 주종이었다. 수백미터 하늘에 연을 띄워 바람을 타게 한 후 마치 비행기 조종사가 곡예비행을 하듯 전후좌우 상하를 자유롭게 조종한다. 다른 사람의 연줄을 끊기 위해서는 연을 옆으로 눕혀 빠른 속도로 후려 이동하여 상대방의 연줄 위에 걸친다. 연줄이 확실히 엉겼다 생각되면 자새를 통하여 연줄의 탄력 감각을 느끼면서 연줄을 풀면 어느 시점에 가면 상대방의 연줄이 끊어져 창공에 곤두박질치며 천장만장 날아간다. 사뜩 ! 이 탄성은 상대방 연줄이 끊어질 때에 나오는 소린데 무슨 의민지 모르겠다. 그 순간 승리의 쾌감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연줄을 걸때에 내 연줄이 상대방의 연줄 밑에 들어간다거나 걸린 연줄을 감아 들이면 승산이 없다. 연줄 끊기의 승산은 “연줄에 사”를 얼마나 잘 먹이나에 달려 있다. 가늘고 질긴 무명실을 아교와 부레 치자를 넣고 끓인 냄비에 담그고 한쪽에서 실을 뽑아내면서 3명이 헝겊으로 감싸 쥐고 아교풀을 닦아낸다. 아교풀을 먹은 실은 표면이 단단하게 처리되어 요즘의 낚싯줄처럼 맨질맨질해진다. 이 작업을 건조를 시켜 가면서 3회정도 한다. 4회째 실을 뽑을 때는 헝겊으로 3명이 닦고난후 마지막에 밀가루 같이 부드러운 유리가루를 입힌다. 그리고 약 3일간 말린다. 유리가루를 먹인 연줄은 손가락도 베인다. 추운 겨울에 연줄에 사 먹이는 일을 끝내고 나면 꼬락사니들이 가관이다. 흘러내린 누런 코에 온 얼굴과 손은 숯검정과 아교풀에 범벅이 되어 있고 때가 낀 손등은 얼어 터져서 피가 나고 어떤 놈은 바짓가랑이가 불에 탄 놈도 있다. 그래도 무슨 대단한 일이나 한 것처럼 뿌듯한 기분이다. 집에 가면 부짓갱이든 어머니가 기다리는 것은 생각 못하고-- 연줄에 사 먹이고 연 만드는 일, 자새 제작하는 과정을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다. 연(鳶)은 1300년 전 삼국시대부터 역사적 연원(淵源)이 있기 때문에 긴 이야기를 다 쓸 수 가 없다. 연(鳶)자를 분석(파자破字)해보면 <창 과(戈)+새 조(鳥)= 솔개 연(鳶)자이다. 연(鳶)자는 “솔개를 창으로 찌른다”는 뜻이다. 솔개는 매과 새로 하늘 높이 나른다. 그 하늘높이 나는 새를 찌르는 “창”도 높이 나는 무기이다. 연도 높이 날고 솔개도 높이 날고 창도 높이 난다. 연비어약(鳶飛魚躍)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에는 솔개가 높이 날고 물 위에 고기가 뛴다는 뜻이다. 높이 날고 뛰는 것은 희망과 도약(跳躍)을 의미한다. 이 조화(調和)는 자연(自然)의 오묘(奧妙)한 이치이다. 올해는 연(鳶)에다가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 써서 날려 보내자 액운을 보내고 복이 오기를-- 지금 경제가 어렵지만 이 고난도 “다윗의 반지”처럼 “다 지나간다” 힘들 때일수록 정부를 중심으로 화합하고 가정으로 중심으로 화목해야 한다. 어려울 때 반목하고 불화하면 다른 나라는 좋아하고 우리에게는 불행만 온다. 서로 웃고 격려하면 2009년에는 대한민국의 “아라연(鳶)”이 바다건너 세계위에 높이 날 것이다. ※참고 단사(丹砂)는 붉은색의 천연 광석으로 주사(朱砂)라고도 하며 한약재에 사용하는 광물질이다 -농월-
백발을 다시 검게 만들 수 있다 해도 白髮勢如昏星生(백발세여혼성생)-백발 돋아나는 것이 초저녁 별 뜨는 것처럼 初來只見一星呈(초래지견일성정)-처음엔 별 하나 나타나지만 須臾二星三星出(수유이성삼성출)-금세 별둘 별셋이 나오고 三星出後衆星爭(삼성출후중성쟁)-별셋 뒤엔 뭇별이 다퉈 나오듯 하네! 的的歷歷紛錯亂(적적력력분착란)-깜빡깜빡 반짝반짝 어지럽게 빛나 應接不暇棋滿枰(응접불가기만평)-헤아릴 틈도 없이 바둑판알 처럼 그득해지네. 去年頷下一毛變(거년함하일모변)-작년에 턱 밑의 수염 하나가 새었더니 南來倏忽添二莖(남래숙홀첨이경)-남쪽으로 와선 어느새 둘이 더 자랐네. 自知此事禁不得(자지차사금부득)-내 이제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겠으니 且休鋤拔安其萌(차휴서발안기맹)-그냥 뽑지 말고 돋아나게 놔두어야지. 細瑣何論魚鯁刺(세쇄하론어경자)-가늘고 촘촘하기로는 생선 가시보다 더 하니 茂密將見蔥鬚縈(무밀장견총수영)-파뿌리처럼 무성한 모습 곧 보게 될 테지. 旣無婢妾供鐵鑷(기무비첩공철섭)-족집게 대령할 여종도 없는데 詎有仙客遣黃精(거유선객견황정)-황정(노인보약) 가져다줄 신선인들 있겠나. 白髮可使有還黑(백발가사유환흑)-백발을 다시 검게 만들 수 있다 해도 此心已枯難再榮(차심이고난재영)-이 마음은 이미 말라 다시 꽃피우기 어려우리. 정약용(丁若鏞) 기축년 신년을 맞이한 지가 어제 같고 새해의 문턱을 넘는 보신각 파루(罷漏)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2009년 정월이 반을 넘어섰다. 참빠르다. 구랍(舊臘)의 어수선함에 이어 신년 정월 하순에 잡은 친구들의 모임도 서서히 시작이 된다. 한 달 만에 만나지만 햇수로는 1년만이다. 만나면 대부분 하는 말이 “이제 올해 몇이지?” 하는 나이 이야기가 화제로 많이 등장한다. 그만큼 새해 초가 되면 나이에 대한 감회가 새롭게 마련이다.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어 먹고 싶은 센베(과자이름)도 마음대로 사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센베는 잊어버리고 세월만 흘러갔다. 위에 다산 선생의 한시는 나이 먹는 것을 너무나 잘 표현하여서 달리 덧붙일 말이 없다. 그렇지 안 해도 한 살 더먹어 심난한 심경을 더 처량하게 만들고 있다. 인라인을 타고 등산을 하고 헬스클럽에 간다고 해서 꼭 오래 살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건강하게 좀 천천히 늙고싶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것도 부질없다. 고려 말의 문신으로 역동선생(易東先生)으로 불리는 우탁(禹倬)은 그의 가곡원류(歌曲源流)에 기록한 시조에서 어떤 방법도 늙음은 막지 못한다고 한탄한 시조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한 손에 막대 들고 또 한 손에는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을 막대로 치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새해 정월이 다 좋은 날은 아니다. 청춘에게는 새싹이 돋지만 고목에는 움이 터지 않기 때문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아버지 이곡(李穀)은 정월 초하루가 유감이라는 한시에서 어그제 같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원일유감(元日有感) 兒童共喜見新春(아동공희견신춘)-아이들은 새봄이 왔다고 모두 기뻐하며 竹爆桃符辟鬼神(죽폭도부벽귀신)-죽폭과 복사꽃 부적으로 귀신을 쫓는다. 笑我異時如汝輩(소아이시여여배)-우습구나, 예전에는 너희들과 같았는데 而今却怕得年頻(이금각파득년빈)-지금은 도리어 나이가 드는 것이 두렵구나 우리 늙은이들은 가끔 회춘(回春)을 꿈꾸기도 한다. 비아그라도 먹어보고 정력에 좋다는 삼지구엽초도 달여 먹는다. 백발이 검게 된다는 하수오(何首烏)도 먹는다. 그러나 다산은 <백발을 다시 검게 만들 수 있다 해도 마음이 이미 말랐으니 다시 꽃피기 어려우리>라고 한다. 다산(茶山)의 말처럼 머리를 검게 만드는 것보다 마음을 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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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대단하십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소서...
한 줄 한 자 읽어보니 참으로 박달하심에 놀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