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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윌로우 크릭 구도자 예배
G.A.프리챠드 지음
서로사랑
1 윌로우 크릭의 목회방법 이해
1 새로운 목회방법
윌로우 크릭은 다르다
1990년 가을. 관객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막 1시간 정도의 주마등같은 드라마, 멀티미디어, 록음악을 통과했다. 그것은 교회창립 15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윌로우 크릭 작품 “얼마나 재미있는 여행인가!”였다. 이 작품은 참석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으며, 사람들은 시시각각 슬프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그리고 즐겁기도 하였다. 코트와 넥타이를 말쑥하게 차려 입은 날씬한 남자가 마이크를 달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는 빌 하이벨스였다. 그는 말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 교회는 15년째를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즘 들어서 자주 이런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도대체 윌로우 크릭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나는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윌로우 크릭은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그를 믿고 있습니다. 우리와는 상관없는 멀리 떨어져 있는 신으로서가 아니라, 살아 계시고 힘있고 우리와 관계된, 그리고 우리의 삶에 깊이 관여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윌로우 크릭은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윌로우 크릭은 사람에 관한 것입니다. 목적 없는 인생행로는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에 관한 것입니다.
자원을 모으고, 권력의 자리를 추구하고, 즐거움을 경험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 그것은 대단한 인생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멀리하는 삶은 삶이 아니며 단지 피상적인 것입니다.
26,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쇼를 보았고, 이 설명을 들었다. 아마도 반 정도가 교회 방문객들이었을 것이다. 이 설명은 어떻게 하이벨스와 윌로우 크릭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불신자들에게 알리는가에 대한 전형적인 것이다.
윌로우 크릭의 전략
윌로우 크릭의 철학에 관한 말에서, 하이벨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의 목적은 다른 많은 교회들과 같습니다. 모든 성경을 믿고, 교회의 성경적인 목적을 믿습니다. 즉 교회는 예배하고, 교육하고, 복음을 증거하고,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한 후, 하이벨스는 어떻게 윌로우 크릭이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했다.
“이 목적들을 성취하는 전략에 있어서 우리는 매우 다르다. 그 점이 바로 윌로우 크릭의 독특한 점이다.“ 윌로우 크릭 전략의 핵심은 불신자 해리 (또는 메리)처럼 전형적인 동기가 없는 불신자에게 초점을 두고 있다. 하이벨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신자 해리는 이런 사람이다. 그는 현재 거실에서, 발판에 발을 올려놓고, 손에 맥주 한 캔을 들고, 신문을 읽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윌로우 크릭의 전략은 하이벨스의 다음 말에 대한 반응이다. “당신은 어떻게 그 남자를 의자로부터 끌어내어 영적으로 성숙한 자리로 데리고 올 수 있는가?” 윌로우 크릭의 답은 “7단계 전략”이다.
1. 해리와 윌로우 크릭 성도간에 우정을 개발한다.
2. 윌로우 크릭 성도가 해리에게 자기의 간증을 나눈다.
3. 해리가 불신자를 위한 윌로우 크릭 주말 예배에 방문한다.
4. 해리가 주중의 찬양과 공부 모임인 “새로운 공동체”에 참석하기 시작한다.
5. 해리가 소그룹에 참여한다.
6. 해리가 봉사하는데 자신의 은사를 사용한다.
7. 해리가 그의 재정에 관한 선한 청지기가 된다.
다음은 이 7단계 전략에 간략한 개관이다.
1단계: 해리와 윌로우 크릭 성도간에 우정을 개발한다.
하이벨스는 만약 해리가 언젠가 교회에 오게 된다면, 그것은 친한 친구와의 관계 때문일 것이라 믿고 있다. 그는 “이 교회의 성도들은 불신자 해리와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이 관계를 “불신자 해리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주님을 위해서 그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다리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이벨스는 윌로우 크릭 성도들에게 불신자 해리와(혹은 메리)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라고 권면한다.
2단계: 윌로우 크릭 성도가 해리에게 자기의 간증을 나눈다.
하이벨스는 성도들에게 그들의 친구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믿음에 대해서 나누라고 권한다. 그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여러분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이해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해서 충분히 잘 이해하고 있습니까?” 4주의 전도 폭발 세미나는 참석자들로 하여금 이렇게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마련되었다.
3단계: 해리가 불신자를 위해서 고안된 윌로우 크릭 주말 모임에 방문한다.
주말 예배는 윌로우 크릭 그리스도인들의 개인적인 간증을 유지하고 보충하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음악과 드라마에서부터 마지막의 설교 말씀에 이르기까지, 모든 예배는 방문한 불신자 해리와 메리들에게 간단한 “기독교101”을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하이벨스는 불신자 해리와 신뢰성을 형성하고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하이벨스는 또한 불신자 해리들에게 기독교가 의미 있고 실지로 역사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기독교 101”을 가르친다. 이 예배의 궁극적인 목표는 해리가 믿음 안에서 복음에 반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4단계: 해리가 주중의 찬양과 공부모임인 “새로운 공동체”에 참석하기 시작한다.
교회 직원들은 주말 예배가 진정한 예배는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성숙에까지 성장하려 한다면, 하나님을 경배하고 좀 더 실제적인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 주중 예배에서는 이러한 윌로우 크릭의 목적(찬양과 교화)의 요소들이 충족되는 곳이다. 성경공부와 찬양 외에도, 한 달에 한번 친교가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5단계: 해리가 소그룹에 참여한다.
하이벨스는 그리스도인들이 소그룹에 참여하도록 꾸준히 권하고 있다. “나는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소그룹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윌로우 크릭 안내책자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소그룹 참여는 성도들에게 책임감, 제자훈련, 격려, 그리고 지원뿐만 아니라 교제를 제공한다.” 이런 소그룹에서 불신자 해리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본적 훈련들을 배우기 시작하고, 교회에 대한 그들의 책임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
6단계: 해리가 봉사하는데 자신의 은사를 사용한다.
7단계 전략에서 다음 단계는 해리가 4주간의 조직 세미나에 참가해서 그의 영적인 은사들에 대해서 배우고, 그런 다음에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이다. 하이벨스는 성도들에게 단지 관객으로서의 역할을 멈추고 봉사하라고 권한다. 그들이 봉사할 때, “그들은 더 이상 관람석의 구경꾼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손에 야구배트를 쥐고 야구장에 나와서, ‘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라고 말할 것입니다.”
7단계: 해리가 그의 재정에 있어서 선한 청지기가 된다.
해리가 성장하는 과정 중 이 단계에서만 재정과 같은 민감한 주제들이 거론될 수 있다. “청지기”는 돈 관리와 자신의 개인 소유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하이벨스는 “지난 수년을 걸쳐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제2의 전환을 이루도록 어떻게든 노력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소비자를 기부자로 전환시키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윌로우 크릭의 구도자 예배
공통적인 실마리는 아주 중요한 어떤 것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양이 없어졌습니다. 동전이 없어졌습니다. 아들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없어진 것 중 어떤 것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까?“
하이벨스는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 비유를 가르치시면서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계신다고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이해해 주겠니? 잃어버린 변덕스럽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비록 그들이 죄를 지었을지라도, 우리 아버지에게는 정말 중요하단다.’”
왜 윌로우 크릭 사람들은 전도를 위해서 구도자 예배가 필요하다고 믿고 있는가? 윌로우 크릭 사람들은 불신자 해리들이 기독교를 알 수 있는 중립적인 장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일반적인 불신자 해리와 전통적인 복음주의 교회 사이에 격차가 너무 커서 쉽게 좁힐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이벨스는 목사들에게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이 땅의 100개 가운데 99개의 교회는 이미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물론 그것은 예배이다. 단지 예배는 오래 동안 교회에 참여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기독교 용어들을 이해하고, 모든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예배이다.
마크 미텔버그는 이런 생각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설명하고 있다.
내가 전도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할지라도, 전도는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전도란,
․ 문화적인 차이를 좁히는 것
․ 복음을 명확하게 하는 것
․ 사람들이 전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없애는 것
․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불신자 해리들과 메리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윌로우 크릭 주말 예배의 주요 목표이다. 한 직원은 윌로우 크릭 신학을 불변하면서도 그 방법에 있어서는 탄력적이라고 말했다.
2 윌로우 크릭의 역사
손시티
1972년 8월, 빌 하이벨스는 일리노이주, 파크 리지 지역의 사우스 파크 교회에서 30명의 고등학생 그룹을 인도하기 시작했다. 9개월의 과정 동안, “손 라이프”라는 그룹은 75명의 학생들을 포함한 그룹으로 성장했다. 이 시점에서, 그룹은 안 믿는 친구들에게 전도하기 원했는데, 거기에는 몇 가지 장애물들이 있었다. 몇몇 학생들은 그들의 모임 환경(교회 지하실), 음악(“쿰바이아” “전하라” 등), 그리고 가르침(하이벨스의 길면서도 성경구절들로 가득 찬 설교)은 그들의 친구들에게 전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느꼈다.
이런 이유로, 1973년 5월에, “손 시티”는 믿지 않는 청소년들에 대한 전도활동을 시작하면서 환경, 음악, 그리고 설교를 관객들에게 맞게 각색했다. 그 다음 2년 동안, 그룹은 대략적으로 1,000명의 젊은이들로 성장했다. 돈 커즌스는, 1975년에 손 시티는 “교회 설립을 통해 어른들의 수준에서 똑같은 성경적인 원리들을 수행하게 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다.“고 적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윌로우 크릭은 그의 초기 철학과 방법들을 복음주의 청소년 사역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우리는 청소년 그룹이 교회에 끼친 영향력들을 여러 가지 면에서 볼 수 있다. 즉 그 모임 안에서 나온 지도력, 구도자 예배의 중요성, 자원봉사자들의 열심 있는 헌신, 영적인 은사들에 대한 강조, 팀의 중요성, 그리고 교제의 영향들이다.
지도력
윌로우 크릭 모델에서, 지도력의 필요조건으로 성품과 영성을 들고 있다. 이런 자질들은 장시간에 걸쳐 확인할 수 있다. 돈 커즈는 “사람의 성품이나 영성을 인터뷰를 통해서 판단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일하는 것을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윌로우 크릭은 그곳의 사역으로 자신의 성품을 검증하지 못한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손 시티 지도자들은 독특한 전략으로 독특한 사역을 했으며, 지도자가 되기 전에 이 전략들을 배워야만 했다. 그 결과, 손 시티의 지도력은 완전히 자가 생산적인 것이었다. 하이벨스가 윌로우 크릭을 시작했을 때, 그의 제자 돈 커즌스를 새로운 손 시티 책임자로 세웠다. 윌로우 크릭 지도자들은, 외부로부터 기용된 사람은 그 사역의 첫 해를 배우는데 할애할 것이며 제한된 역할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구도자 예배의 중요성
궁극적으로 이런 프로그램의 변화는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구도자를 위한 그들의 첫 모임에서 50명 내지 60명의 학생들이 주님께 헌신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학생들은 손 시티 지도자와 함께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하였다. 하이벨스는 자신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모임이 끝났을 때, 나는 교회 뒤쪽으로 가 빨간 벽돌 벽에 기대 혼자 복도에 앉았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이것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일 이었다. 우리가 만약 그들을 위한 예배를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그 모든 구도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었을까?
헌신과 열심
이 젊은 이상주의의 결과는 커다란 헌신이었으며 기꺼이 희생하려는 의지였다. 한 관찰자는 “전체적인 참여는 당연한 것이었다.”고 논평했다. 학생들이 이것을 표현하는데 사용한 유명한 문구는 “무엇이 필요하든지 간에”였다. 이런 종류의 헌신은 청소년 그룹에 아주 놀라운 양적 성장을 가져다주었다. 이 성장의 뿌리는 그들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었다. 한 손 시티 지도자는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과 이것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옳았다!”라고 말했다.
영적인 은사들
이 부서의 회원들은 손 빌리지라는 청소년 성경공부 그룹에서 계속적으로 함께 만났던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관심과 능력에 맞는 부서에 참가했다.
손 빌리지 프로젝트가 계획이 될 때마다, 일은 다양한 부서로 분배되었다. 한 지도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만약 수요일 밤에 큰 행사를 하려 한다면,
․ 미술부에서는 모든 장식과, 포스터, 그리고 붙여야 할 모든 것들을 담당했습니다.
․ 사진부에서는 행사 때 어떻게 사진을 찍을 것인가를 계획했습니다.
․ 연극부에서는 당연히 그 행사를 위한 연극을 준비했습니다.
․ 시청각부에서는 화면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 제작부에서는 음향 시스템과 조명을 생각했습니다.
팀의 중요성
빌은 청소년 그룹을 약 80명에 이르게 했으며 그는 곧 그들과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시점에서, 그와 다른 몇몇 사람들이 머리를 모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이 그룹을 해체하여 몇 개의 팀으로 나눕시다.” 그래서 그는 80명의 학생들을 4개의 팀으로 나누어 각 그룹마다 20명씩 만들었습니다. 각각의 팀은 첫 해에 약 80명으로 성장했습니다.
팀은 4명의 학생 지도자들, 즉 팀장, 부팀장, 서기, 그리고 부서기들이 이끌었다. 이 팀들은 팀 안에서 사실상 작은 청소년 그룹이 되었다. 한 손 시티 지도자는 “팀은 큼 조직의 내부 구조를 제공했다. 거기에는 팀으로부터 나오는 주인의식과, 충성, 그리고 소속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데이브 홀롬보
대학시절 홀롬보는 그의 유년시절의 근본주의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자신들에게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런 것들은 뭔가 맞지 않다. 교회에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모든 규정들과 어리석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을 버린 적은 없었다. 그는 곤경에 빠졌다. 그는 어떻게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음악이 결국 이 두 개의 세계를 묶는 끈이 되었다. 그의 “현실”세계와 교회 세계에서, 음악은 그의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부모님은 그가 여덟 살 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찬송가 대신에 비치 보이스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즐겼다. 최신 유행 음악에 대한 그의 사랑은 대학시절까지 계속되었다.
홀롬보가 근본주의로부터 멀어진 바로 그때, 그는 현대 음악을 사용하기를 원하는 사우스 파크 교회를 도와주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파크 교회는 그가 한때 몸담았던 근본주의 교회들이 자유분방하다고 인식하던 교회였다. 홀롬보는 사우스 파크 교회가 “조금 더 개방적”이라고 설명한다. 사우스 파크 교회의 목사는 현대적이고, 좀 더 비형식적인 아침 예배를 드리는데 관심이 있었다. 이 예배를 위해서 홀롬보가 사용한 음악에는 합창이 포함되어 있었고, 대중음악도 있었다.
음악에 대한 홀롬보의 은사들과 창조성이 이 새로운 무대에서 발휘되었다. 그는 사우스 파크의 청소년들로 구성된 찬양팀인 손 시티를 시작했다. 그는 음향적인 기타연주자가 필요했다. 머리가 긴 젊은 사람들의 모임에, 우연히도 그런 대로 기타연주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이 바로 빌 하이벨스이다. 홀롬보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기억했다. “그는 고용된 음향 기타연주가였다. 그는 말하자면 쿵작쿵작 기타를 연주했다.” 이것은 미래의 윌로우 크릭 팀의 시작이었다.
홀롬보는 청소년 그룹과 교회에 새로운 예술적인 방향을 창조해 낸 꿈꾸는 사람이었다. 손 시티, 즉 윌로우 크릭의 이야기는 홀롬보의 “현실세계”와 “교회세계”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부분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는 그의 교회 세계의 기본적인 신학으로“현실” 세계의 음악과 예술적인 사고들을 융화시켰다.
하이벨스가 가르침과 실제적인 전략을 제공하는 동안, 홀롬보는 독창적인 음악, 연극, 그리고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하이벨스가 사업을 향하려고 할 때, 홀롬보는 영적이려고 했다. 한 친구가 그를 이렇게 설명했다. “데이브의 발은 종종 땅을 밟지 않았다. 그는 매년마다 착륙했고, 막 재발사하려 했다.
사실 홀롬보가 하이벨스와 다른 점은 그룹의 기초적인 힘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을 이끄는 다양한 방법과 재미를 제공했다. 청소년 그룹이나 교회는 빌의 것도 데이브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상호협력적인 지도력은 학생들과 어른들에게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이런 재능과 개성들을 하나로 엮은 것은 두 사람이 가지고 있던 열정이었다. 린 하이벨스는 “그들은 교회가 과거에 어떻게 해왔는지에 대해서 공통적인 실망감은 나누었어요.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해 보자는 공통적인 열망을 함께 나누었지요.”라고 말했다
1979년 “열차충돌”
1978년 초, 이런 개방적인 구조의 애매모호함과 문제들에 대해 하이벨스는 모든 직원들을 소집하고 구조에 있어서 어떤 변화를 제안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원하는 어떤 종류의 구조이든지 간에 그 구조를 가질 수 있지만, 책임을 지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개인의 성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은사에 따라 이것을 결정합시다. 우리들 가운데 누가 가장 강력한 지도력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모든 사람들은 조용했다. 핀 떨어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이벨스는 마침내 자기 자신을 지명했다. “아마도 제가 그런 강력한 지도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윌로우 크릭 잡지는 10년 후에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명백한 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빌 하이벨스는 윌로우 크릭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었다. 본질적으로, 그는 자기 자신을 최고의 위치에 둔, 좀 더 공식적인 조직의 계층적인 권위 구조를 성공적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일련의 사건들을 불러 일으켰다.
드디어 교회는 이 위기로부터 벗어났다. 교회가 살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문제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여전히 주말에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말 관객들은 사실상 이런 혼란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에 참석하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 리더십의 공백들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처음 주말 예배에 참석을 했는데 피아노 반주자가 필요하다는 광고가 있었다. 다음 주에 그는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열차충돌”의 결과 교회 내에는 매우 중요한 변화들이 몇 가지 생기게 되었다.
․ 교회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달라졌다.
․ 교회의 구조와 관리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 관계에 대한 개인의 태도와 접근, 특히 지도자의 태도와 접근이 명백하게 바뀌었다
신학
하이벨스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너무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윌로우 크릭 잡지는 죄라는 단어가 “교회 초창기 시절에는 거의 들을 수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하이벨스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인간의 죄에 대해서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처음 참석하기 시작한 사람은 그가 들었던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빌이 한 첫 번째 말씀 중에서 그는 “우리는 복음에 대해서 지금 바로 설교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대해서 애매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여러분들의 귀를 즐겁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것이 싫으시다면 지금 떠나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관리
교회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다른 자원들이 사용되었다. 케네스 블랜챠드가 쓴 리더십과 1분 관리자라는 책이 모든 신입 직원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이 책은 관리자들이 자신들이 지휘하고 있는 직원들의 업무를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대한 개요를 제공하고 있다. 그 책은 어떻게 효과적이며 생산적인 사업관계들을 조직화 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영적인 모임의 청소년 그룹 분위기가 영적인 사업이 되었다.
관계와 충성
충성은 교회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미덕이 되었으며 반면에 불충성은 가장 나쁜 악덕이 되었다. 한 직원은 구도자에 대한 리더십의 중요한 질문은, “당신은 정말로 교회와 이 사역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까?”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이 주제를 조사했을 때 어떤 리더는 “당신 말이 맞습니다. 충성에 대한 필요가 매우 높습니다.”라고 인정했다.
빌리즈키안 박사
그가 하이벨스를 가르친 곳은 1972년에서 1974년까지 트리니티 대학에서였다. 하이벨스는 2년 동안 트리니티 대학에 다녔으며, 빌리즈키안의 수업을 2개 들었다. 기독교 교리와 고린도전서 강의였다. 하이벨스는 빌리즈키안의 가르침에 심취되었던 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빌리즈키안 교수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70년대에 미국에서 교회다운 교회들을 보지 못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건물도 보이고, 프로그램, 예산, 그리고 많은 활동들이 보인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생명을 볼 수가 없었다. 교회라고 불리는 모임에서 생기 넘치는 방법으로 그런 생명이 숨을 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눈을 들어 멀리 내다보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이런 구조가 무너질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목회 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고, 그들은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모든 공격들을 참아낼 것이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교회를 시작할 것이고 그 교회는 전 세계를 흔들 것이다.”
이 꿈은 젊은 하이벨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는 새로운 교회의 가능성에 대해 꿈꾸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다짐했다. 이것보다 내 삶을 바칠 수 있는 더 중요한 것이 있는지 잘 모르지만,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목표가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시기 동안, 하이벨스는 손 시티 청소년 그룹을 가르치고 지도했다. 그리고 그는 빌리즈키안으로부터 배운 많은 것들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고, 바로 그 주에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었다.
주일날 교회에 참석하는 것이 고통이 되었습니다. 나는 화가 치민 체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교회는 지겨움, 무력함, 평범함, 경직, 그리고 폐쇄적인 사고뿐인 것 같았는데, 그 모든 것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빌리즈키안은 그의 수업에서 전통적인 교회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실망감, 좌절감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의 신학적인 붓으로 그런 전통적인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그리곤 했다. 그는 하이벨스의 반응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다.
수업시간에 하이벨스는 매우 주의 깊다. 나는 그의 냉철한 감청색의 눈빛이 나에게 고정되어 있으며 마치 내가 그의 감시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곧 그가 나의 가르침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있으며, 엄밀한 조사 아래, 강의 내용을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분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흔히 사람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 칼빈주의의 5가지 요점을 사용한다. 이것은 빌리즈키안과 같이 칼빈주의에 근본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더릭 젤리마는 칼빈주의의 5가지 요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짧게 설명하고 있다.
․ 완전 타락 (즉 인간은 타락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선택할 수 없다)
․ 무조건적인 선택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행동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 제한적 구원 (그리스도는 선택된 자들만을 위해서 돌아가셨다. 그러므로 그들만이 구원받는다)
․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선택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없다)
․ 성도의 견인 (한번 선택받으면 반드시 구원에 이른다)
빌리즈키안은 자기 자신을 “1과 1/2의 칼빈파”라고 부른다. 빌리즈키안은 다섯 번째 요점인 성도의 견인에 동의한다. “일단 하나님이 약속을 하면, 우리의 구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또한 첫 번째 요점인 완전 타락의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는 이 신념을 이렇게 수정한다.
칼빈파들은 너무 지나치다. 찬송가에서도 “벌레만도 못한 나”라고 표현하고 있다. 아무리 타락한 사람이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물론 나면서부터 우리가 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칼빈파가 표현하는 그런 칙칙한 용어로 정의하지 않는다.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
대학에서 나를 놀라게 하는 교수님을 만났다. 그는 때때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는데, 마치 막 그 분과 함께 점심을 먹고 온 것 같았다. 나는 “영원하시고, 볼 수 없고, 매우 지혜로우시며,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에 계시는 하나님”과의 그런 관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관계를 원했다.
교회의 중요성
하이벨스는 대학 교실에서의 빌리즈키안의 강의를 이렇게 기억한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젊고 똑똑하고 잠재력 있는 학생 여러분들 중 몇 사람은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합니다.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을 유혹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천국을 위해서 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살아야만 합니다.”
하이벨스가 특히 영향을 받은 빌리즈키안의 교회에 관한 가르침의 두 가지 면에 대해서 빌리즈키안 교수는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기관이나 조직보다는 한 몸으로서, 한 공동체로서, 한 유기체로서의 교회 개념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교회가 자급자족하거나 언제까지나 영속하는 것이 아니라 매 주마다 사회에 들어가서 그리스도를 알리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공동체로서의 교회
이런 크리스천 개혁파의 네덜란드 사람들은 완고한 자존심과 독립심과 자기의존이라는 전통을 가졌다. 그들은 관계에 있어서 미숙한 감정에 회의적이었으며 완강한 금욕주의를 드러냈다. 그러나 1970년대 초의 대학시절 동안, 하이벨스는 친밀과 성실을 강조하는 반체제 문화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는 정직에 대한 강조가 매력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공동체로서의 교회라는 빌리즈키안의 강조는 하이벨스에게 그의 경험을 이해하는 수단이 되었다. 빌리즈키안으로부터 하이벨스가 얻은 것은 1970년 초에 유행한 “진정한” 관계에 대한 신학적인 정당화였다. 친밀감과 감정은 인생에 관한 새로운 접근의 축이 되었다. 진정한 관계가 교회 비전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교회의 사명
그와는 반대로, 하이벨스는 빌리즈키안에게서 교회는 현상 유지를 위한 조직이 아니라고 배웠다. 빌리즈키안은 교회는 “세상을 뒤집어 놓을”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하이벨스에게 그의 비전을 내부 중심의 유지가 아니라 밖으로 향하게 했다.
따라서 하이벨스는 영적인 성공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받아들였다. 영적인 성공에는 교회의 목표가 교회 외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뜻한다. 하이벨스가 빌리즈키안의 가르침을 회상하면서, “여러분들은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야만 합니다.”
로버트 슐러
슐러가 교회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슐러에 대해서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55년 슐러는 미국 개혁 교회의 야망 있는 28세의 목사였다. 그는 교단으로부터 캘리포니아주의 오렌지카운티에서 새로운 교회를 시작하라는 명을 받았다. 그러나 이 지역에는 그의 교단을 경험한 가족이 아무도 없었다. 슐러는 교회 설립의 이런 시도는 “교회 확장 철학에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변화이다. 일반적으로 교단은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는 한 교외지역에 지교회를 세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슐러가 이와 같은 일들을 했을까? 그는 먼저 35,000가구의 집들을 찾아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까?” 슐러는 “만약 그들이 아니라고 하면, 나는 그들에게 ‘좋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말했다.”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왜 교회에 안 나가십니까?”라고 물어보았다. 그들의 답을 듣고 난 후, 그는 또 질문한다.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도와 드릴까요? 나는 이곳에 새로 교회를 시작하려고 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당신을 교회로 오게 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사람들은 그들이 교회에 갈 수 있는 다양한 이유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만약 교회가 정치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는다면, 만약 교회에 십대들을 상담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만약 교회가 독신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교회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슐러의 전략은 이런 사람들의 말에 대한 반응이었다. “나는 그들의 답을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슐러는 가든 그로브 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들이 좋아할 미끼를 던져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방법
그는 “만약 당신이 교회 마케팅에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판매 원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의 책 “당신의 교회는 진정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에서, 슐러는 입증된 “성공적인 판매 원리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1. 접근성.“그들이 큰 어려움 없이 당신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2. 충분한 주차 공간. “만약 교회가 성장하려면, 충분한 주차 공간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3. 인물조사 기록.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들의 필요를 찾아내라. 그들이 입을 열어 말하기 전에 인가의 깊은 감정적인 필요들을 알기 위해서 심리학을 공부해야 한다. 심리학과 신학을 공부하라.”
4. 봉사. “교회 오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안녕하세요, 교회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어떠신지요?` 그들이 다시 돌아오기 전에는 소비자가 없다.”
5. 가시성. “당신이 거기에 있는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당신이 누구이며, 그들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자기 자신을 알려야 한다.”
6. 자금 확보. “확장하기 위해서 돈을 빌리기 전에, 갚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라.”
메시지
1982년에 그는 그의 책, “자존심: 새로운 개혁”에서 그의 전략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하나님을 믿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불신자들에게 영적인 실체에 대해서 전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들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전도자로서 신학적인 공격보다 인간적인 필요에 접근하는데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슐러는 교회 임무의 급진적인 변화의 영향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한다. “교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절실한 필요들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슐러의 대답은 자존심이다. 그는 “나는 자존심이 모든 인간의 행동, 부정적인 행동과 긍정적인 행동 모두에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슐러의 책들은 자존심을 중심으로 기독교 신학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이다. 예를 들어, 그는 죄를 재정의 하고 있다. “죄는 나 자신이나 또는 다른 사람들의 자존심을 빼앗아 버리는 행위나 생각이다.”
슐러의 영향
집회에서 빌은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교회에 모든 사람들이 앉아 있는데, 슐러가 빌을 주목하여 일어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이 사람이 우리가 이 집회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을 실제로 시카고에서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정말로 확신에 차게 해주었습니다.
하이벨스는 슐러와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1979년에 있었던 윌로우 크릭의 모금 행사 만찬의 연설을 슐러에게 부탁했다. 하이벨스는 교회 학교를 위해 매우 넓은 면적의 땅을 사라는 슐러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결국 하이벨스는 윌로우 크릭 학생 사역의 지도자로서 섬길 수 있도록 슐러의 직원 한 명을 고용하게 되었다. 윌로우 크릭이 성공을 하고난 후, 슐러는 하이벨스에게 다시 성공적인 교회 리더십을 위한 자신의 집회에 와서 연설해 줄 것을 부탁했다.
데이브 홀롬보는 슐러가 하이벨스와 윌로우 크릭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하고 있다.
방법
“왜 안 나가십니까?”에 대한 공통적인 답은 “교회가 항상 돈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대답들은 다음과 같다.
․ 나는 음악을 잘 모른다.
․ 나는 설교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 없다.
․ 교회는 나의 필요들을 채워주지 못한다.
․ 예배는 틀에 박혀있고 지루하다.
․ 교회는 나를 죄인처럼 느끼게 만든다.
슐러의 체제에서 전도단이 되는 첫 번째 단계는 전도대상이 되는 관객 또는 시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슐러는 그의 책 “당신의 교회는 진정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에서 목회자가 그의 지역에 대한 “자세한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적고 있다. 슐러는 목사들에게 “여러분은 지역의 모든 집들을 상세히 조사하려는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설문조사를 하려는 젊은 하이벨스의 열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새로운 스승이 그에게 그렇게 해야한다고 말해주었다. 대부분의 전략은 이 설문조사로부터 나왔으며 마케팅의 초점은 슐러 자신의 교회 전략과 매우 유사했다. 이상하게도 슐러의 시각에서 볼 때, 하이벨스는 슐러보다 더 슐러주의가 가능했다.
메시지
관중들의 필요를 이해하고 충족시키는 것에 대한 슐러의 초점은 자존심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러나 자존심은 그의 가르침 중의 심리학적인 분류의 하나일 뿐이다. 그는 신학이, 심리학이 발견한 진리들을 인식하지 않음으로 인해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믿는다. “신학은 20세기 심리학자들이 발견한 통찰력을 수용하고 적용하는데 실패했다.” 심리학에 대한 이러한 의존은 그로 하여금 크리스천 삶을 심리학적 범주 내에 두게 되었다. “나는 자존심의 신학을 쓴 첫 번째 신학자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신학적 메시지는 하나님 의 사랑을 강조하고 인간의 죄를 감추고 있다.
“열자 충돌” 후에 하이벨스는 불신자를 위한 전도단으로 슐러의 방법을 유지하면서도 슐러의 설교나 신학은 버리거나 과감히 수정하는 시도를 했다. 그의 고백을 회고해보자.
나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잘못 나타냄으로서 하나님을 실망시켰습니다. 나는 죄의 심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나는 스스로 어리석다고 느꼈을 뿐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받았고 창피했습니다. 나는 자주 하나님 앞에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절대적으로 옳습니다. 그것은 나의 잘못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정한 실체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보다 이 교회를 좋아하고, 교회의 한 일원이 되는 것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당신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당신의 실체를 왜곡시켰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말 예배 동안의 윌로우 크릭 가르침은 아직도 심리학적인 요소들을 사용하고 있다. 하이벨스와 윌로우 크릭의 심리학에 대한 의존은, 비록 슐러보다는 약하지만 아직도 실제하고 있다. 슐러가 “자존심”을 역설하는 동안에, 하이벨스는 “개인의 충족”을 강조했다. 슐러가 “인가의 필요”를 충족하는 범주를 사용하는 동안 하이벨스는 “기독교101” 또는 “사용자 중심의 교리”를 사용했다.
젊은 하이벨스는 새로운 목회 방법에 대한 슐러의 비전에 마음이 사로 잡혔었다.
이제 당신이 21세기의 교회를 지을 수 있다고 믿어라! 당신은 아주 위대하고 새로운 영감 있는 교회의 설립자와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어떤 독자는 미국에서 한번도 지어진 적이 없는 위대한 교회를 짓게 될 것이다. 폭풍의 나라에서 담으로 둘러싸인 드라이브 인(drive-in) 교회! 매일매일 활동하는 교회! 그것은 주님을 위한 사건이 될 것이다.
3 불신자 해리에 대한 이해
마케팅 조사
하이벨스는 그의 관객을 이해하기 위한 정보를 수집하는데 마케팅 분류와 도구들을 사용한다. 마케팅은 광고의 동의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마케팅은 그 이상이다. 사실 많은 전문가들은 마케팅을 사업의 창조적인 자질의 큰 부분이라고 보게 되었다. 톰 피터스와 밥 워터맨은 미국의 가장 성공한 기업들을 연구했고, 베스트 셀러인 “탁월성을 찾아서”라는 경영서적을 저술했다. 노우스웨스트 대학의 교수이며 마케팅에 관한 손꼽히는 권위자인 필립 코트러는 마케팅과 관련하여 그들이 찾은 것을 아래와 같이 요약하고 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모든 회사들이 공유하고 있는 기본적인 운영 원리들이었다. 그 안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 고객을 예의 주시하라 (“고객과 가까이 있어라.”)
․ 시장을 예의 주시하라 (“긴밀한 관계를 가져라.”)
․ 고객들을 위해서 최고의 질과 최고의 가치를 생산해내도록 고용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라.
마케팅은 사업을 고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고객은 왕이다.”는 유명한 마케팅 속담에 잘 요약되어 있다.
코트러는 마케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마케팅은 사업의 기능이
채워지지 않은 필요와 욕구들을 확인하고,
그들의 중요함을 정의하고,
어떤 목표 시장에서 조직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지 판단하고,
적절한 생산물과 서비스를 결정하고,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프로그램을 결정한다.
마케팅은 잠재적 시장을 이해하고 그 시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내는 매우 복잡한 수단이 되었다. 필요, 조사, 목표 시장, 시장 점유율, 목표 고객의 태도, 생산품에 대한 이러한 마케팅적 시각은 사실상 어떤 인간적 노력에도 적용할 수 있다.
바나가 어디에서 마케팅에 대한 식견과 열정을 얻게 되었는지를 관찰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는 “교회를 마케팅 하라.”의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나는 시카고 주변에 있는 윌로우 크릭 교회의 목사인 빌 하이벨스에게 은혜를 입었다. 그의 비전에 대해서 감사하고, 그 비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구체화되는 것을 보기 위해 냉정한 탐구를 할 수 있도록 해준 데 대해 감사한다.
일리노이주 휘톤 시에 있을 때다. 하이벨스 목사의 교회에 참석하는 동안, 나는 처음으로 전도와 교회 성장의 의미에 대해서 눈을 떴다.
만약 나에게 방법이 있다면, 이 나라에 십만 개의 윌로우 크릭 교회들이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아마도 우리는 이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제 바나가 우리의 시각 속으로 들어왔다. 그는 윌로우 크릭의 많은 마케팅 원리들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그의 설문 내용과 자료들을 덧붙여, 그 결과를 모든 복음적인 교회에 전도하려고 한다. 그는 연 4회 “크리스천 마케팅 시각”이라는 책을 발간하고, 교회 성장 마케팅 특별 세미나를 개최하고,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쓰는 것을 통해서 이것을 촉진시키려 하고 있다.
윌로우 크릭은 마케팅의 원리들을 열심히 채택하고 적용해서 경영대학원들과 출판업계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하버드 경영대학원은 윌로우 크릭을 유명한 사례 연구 중의 하나로 채택했다. 윌로우 크릭 협회의 회장으로 임명된 그 사례 연구자는, 윌로우 크릭 직원들은 “그들의 성공 원인은 대부분을 고객을 알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자는 간단한 개념의 덕분으로 돌리고 있다.”고 설명한다.
윌로우 크릭의 전략은 또한 포츈지와 월 스트리트 저널의 여러 면에서 논의되어지고 있다. 피터 드러커는 윌로우 크릭과 그 모방자들은 단순한 마케팅 아이디어를 쓰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마케팅 교훈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30년 동안 마케팅 과정을 들었거나 마케팅에 관한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런 것들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윌로우 크릭이 사용한 마케팅 이론들
표적고객
윌로우 크릭은 표적 고객을 정의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표적 고객은 기본적으로 교회 사역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다. 주말 예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윌로우 크릭이 선택한 표적 고객의 직접적인 반응이다. 예를 들어, 하이벨스는 그의 표적 고객이 좋아하는 것으로 유머를 꼽고 있다. 그는 목회자들이 어떻게 찰리 브라운과 루시의 유머를 사용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불신자 해리를 이해하기 위한 조사
일단 하이벨스와 윌로우 크릭이 주말 예배를 위한 표적 고객으로 불신자 해리를 선택한 후, 다음 단계는 해리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내는 것이다. 마케팅의 대가 코트러는 일단 사업의 임무가 설정되면, 다음 단계는 “외부 분석”이라고 주장한다. 윌로우 크릭은 불신자 해리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이해하기 위해 그가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하기를 원한다.
여론 조사원 바나는 “조사는 교회 마케팅을 위한 중요한 단계이다. 종종 우리는 관심을 요하는 필요들은 무시한 채 존재하지 않는 필요들을 충족시키려고 시도한다.”고 주장한다. 바나는 마케팅 조사는 자원과 시간의 신실한 청지기가 되기 위한 노력이라 믿고 있다. 그는 조사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효율성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 믿고 있다.
우리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객관적으로, 사실에 입각하여,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떻게 상처를 받았는지, 교회가 어떤 것들을 제공하기를 바라는지에 대해서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제공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가치가 없게 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불신자 해리들과의 관계
경영 마케팅 조사 전략들은 종종 판매에 직접 관여되어 있는 사람들의 이해를 얻도록 노력한다. 일반적으로 고객을 매일 보는 판매원들은 고객의 필요와 관심들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다. 마케팅 담당자 코트러는 이 전략을 “판매자 의견의 종합”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윌로우 크릭 직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은 그들의 불신자 친구들, 가족, 이웃 그리고 친분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특별한 교육을 받는다. 사실 교회의 7단계 전략의 첫 번째 단계는 불신자 해리들이나 메리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하이벨스는 그의 직원들이 불신자들과 서로 영향을 미치는 삶의 방법을 개발하라는 권고한다.
나는 수년 동안 윌로우 크릭의 목사는 윌로우 크릭 성도들의 진정한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한다고 제안해왔습니다. 그들의 관심사가 테니스, 골프, 조깅, 요트, 기계적인 일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들을 세속적인 영역에서 추구하도록 권했습니다. 교회의 야구부를 만드는 대신에, 지역의 팀에 참여하는 것은 어떨까요?
조사 재처리과정
사업조사는 명확한 사업이다. 모든 사업은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 다양한 조사 기법들을 채택하거나 개발한다. 어떻게 홀마크 카드회사가 적절한 카드를 선택하기 위한 조사에서 연구반을 형성하였는지는 위에서 언급하였다. 윌로우 크릭은 그들의 팀에 대한 개념을 적용하면서 조사 재처리과정의 독특한 기법들을 개발해 왔다.
하이벨스는 매년 3월에 사람들을 뽑아서 다음해 주말에 어떤 주제들이 다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제안들을 논의하는 재처리과정을 시작한다. 리 스트로벨에 의하면, 그 팀에는 “직원들, 평신도들, 직접 관계 있는 사람들, 교회를 참석하는 보통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교회내의 개인 사역도 함께 조사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프로그램 기획팀은 불신자 해리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연극, 뮤지컬, 콘서트 그리고 영화를 보러 갈 수 있다. 프로그램 기획팀 전원이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제넷 잭슨의 콘서트를 보러 갔다. 낸시 비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교회 밖에서 예술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역 밖의 어떤 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알기 위해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영화, 텔레비전 쇼, 연극 등 모든 것들을 뒤쫓고 있습니다.
그들은 해리와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그들의 프로그램 기획에서도 그것과 똑같은 방법과 생각들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전문적인 조사
회사는 그 외부 환경에 관한 전문적인 조사를 신뢰하고 있다. 코트러는 “조직의 생존과 성장의 열쇠는 기업의 전략을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시키는 기업의 능력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바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유능한 마케팅 담당자는 그의 계획과 전술을 최근의 정확한 정보에 근거를 두어야한다.” 따라서 바나의 시각에서 볼 때, 교회를 효과적으로 마케팅 하는 첫 번째 단계는 “소비자의 태도와 행동에 초점을 둔 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윌로우 크릭은 좀 더 믿을만한 조사를 하려고 노력했다. 윌로우 크릭은 바나의 회사를 고용해서 윌로우 크릭에 대한 중요한 조사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했다. 주말 예배에 참석한 약6.400명에게서 설문지를 받았다. 윌로우 크릭은 불신자 해리의 특징들을 자세하게 알아내기 위해서 바나와 다른 조사원들의 결과를 전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교육목사 리 스트로벨은 “조사원들은 일반적인 미국 불신자들의 총체적인 특징들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해 왔다.”고 적고 있다.
빌 하이벨스의 조사
대부분의 윌로우 크릭 전략과 같이, 윌로우 크릭 마케팅 조사는 그 뿌리를 빌 하이벨스에서 찾을 수 있다. 하이벨스는 초기의 설문조사팀을 지도했다. 하이벨스는 교회 참석자들에게 그들의 불신자 친구들을 이해하도록 장려했다. 하이벨스는 교회의 중요한 설문 재처리과정을 주도했다. 하이벨스는 그 재처리과정들의 결론들을 평가한다. 하이벨스는 이 모든 조사를 유용하고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불신자 해리에 관해서, 적어도 개인적으로, 그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는 불신자들이 결국에는 교회를 방문할 때, 그들의 감정을 알고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는 또한 그들을 너무나 잘 알게 되어서 특정한 관객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이 설명의 핵심 단어는 본능이라는 단어이다. 빌 하이벨스는 주말 모임의 주제들을 결정하는 그의 접근에 있어서 직관적이다 한 지원은 하이벨스가 “많은 사람들과 접촉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얻고 있는지에 대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 직원은 어떻게 다양한 주말 말씀들이 선택되었는지를 설명했다. “그 주제들이 선택되는 과정은 대부분 직관에 의해서다. 그러나 그것들은 알려진 직관이다.” 하이벨스는 다른 자원으로부터 얻은 조사 정보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의 최종 판단은 그의 본능과 설령이 그에게 원하는 것인가에 달려있다.
4 불신자 해리의 프로필
해리의 생활양식
기업들은 그들의 표적 고객을 묘사할 때, 당연히 독특한 생활양식적 특징에 초점을 맞춘다. 이와 유사하게 윌로우 크릭은 해리의 연령, 결혼여부, 학력, 그리고 직업에 대한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연령: 스트로벨은 “불신자 해리에 접근하는데 성공적인 교회들은 특정 연령 그룹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윌로우 크릭의 표적 고객은 25세에서 45세 사이의 연령 그룹이다. 바나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거의 60퍼센트의 윌로우 크릭 주말 관객들이 27세에서 45세로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다른 14퍼센트는 14세에서 26세로 베이비붐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다. 따라서 거의 75퍼센트의 윌로우 크릭 주말 관객들의 연령대가 14세에서 45세이다. 주말 참석자의 평균 연령은 36세이다.
결혼여부: 약 60퍼센트의 윌로우 크릭 주말 관객들은 결혼을 했고, 대부분 자녀들을 가지고 있다. 25퍼센트의 관객들만이 독신이며 12퍼센트는 이혼했다. 이런 가족 관계의 실체는 이 인구 그룹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필요들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학력: 시카고의 북서쪽 교외에 있는 윌로우 크릭의 위치를 감안한다면, 대다수의 주말 참석자들이 상당히 높은 학력을 가졌다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바나의 연구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약 50퍼센트를 구성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 다른 25퍼센트는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대학을 다닌 적이 있다.
학력의 요소는 참으로 중요하다. 대학 교육을 받았으며, 중산층으로서 안락하게 도시외곽에 사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띤다. 바나는 59퍼센트의 윌로우 크릭 참석자들이 자신들을 보수적이라고 말했으며, 12퍼센트만이 개방적이라고 말했다. 윌로우 크릭이 다가가려고 하는 관객은 매우 복잡하다. 하이벨스는 “대부분의 윌로우 크릭 사람들은 자신들을 깊게 사고하는 사람들이라고 여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요인들은 공개 프로그램들과 적절한 주제들을 선택하는데 사용되는 언어와 스타일에 영향을 미친다.
직업: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은 학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윌로우 크릭 참석자들의 대다수는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또한 실제로 직업을 가지고 있다. 국가적인 실업률이 7-8퍼센트였을 때, 설문조사에 의하면, 윌로우 크릭의 실업률은 단지 3.7퍼센트였다. 통계자료는 또한 높은 퍼센트의 자영업자들을 보여주고 있다. 윌로우 크릭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보수가 좋은 전문적인 직업에 그들의 학력을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중산층 동네에서 집을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벌고 있다. 비록 해리가 중산층의 동네에서 살 수 있을 만큼 수입을 얻고있지만, 그는 아직도 재정적으로 쪼들리고 있다. 바나의 연구에서 윌로우 크릭에 참석하는 사람들 중에서 58퍼센트가 매월 신용카드 빚을 갚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리는 재정적인 위기에서 살고 있으며, 여유 자금이 조금만 있을 뿐이다.
판매의 기본이 되는 필요들
바나는 이 마케팅 구조를 기독교에 적용시켰다. 어떻게 교회를 마케팅 할 것인가를 가르칠 때, 그는 단지 교회를 마케팅 담당자로, 제품은 복음으로, 필요들을 가지고 있는 관객들은 소비자로 간주하고 있다. “이것이 교회 마케팅에 관한 전부이다. 제품(관계) 공급을 사람들이 느끼는 필요들에 대한 해답으로 여긴다.
이런 시각에서 필요들은 판매의 새로운 문을 여는 열쇠이다. 바나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새로운 사람들은 교회가 그들의 개인적인 필요들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교회에 매혹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데 성공적일수록 성장의 기회는 더욱 많아지게 됩니다.
돈 커즌스는 직원들에게 “오래된 기업의 격언인, 필요를 찾고 그것들을 충족시켜라.”는 것에 대해서 가르쳤다. 그는 “소비자들의 필요를 확인하고 그것을 만족시키는 기업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의 수사학적인 질문에 대해서 그는 “번창하는 기업”이라고 대답한다.
문화는 개인의 욕구와 행동의 가장 근본적인 결정요인입니다. 하등 동물들이 대게 본능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반면에, 인간의 행동은 대부분 배운 것입니다.
사회 속에서 성장한 아니는 가족과 다른 주요 기관들을 포함하는 사회화의 과정을 통해서 가치, 인식, 선호, 그리고 행동의 기본적인 틀을 배우게 됩니다.
해리의 필요들
개인적인 성취
미국인들에 대한 연구는, 자아 성취를 위한 추구가 약 80퍼센트나 되는 미국 성인들의 대중적 현상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그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얀클로비치는 “나의 기업 연구에서 10명 중 7명(72퍼센트)의 미국인들이 그들 자신들을 생각하는 데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라고 말한다. 성취의 필요는 다른 많은 특별한 필요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해리가 소망을 달성했는지 못했는지를 결정한다. 만약 윌로우 크릭이 말씀을 전해서 미국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면, 우리는 해리가 그 말씀을 들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체성
베로프는 현대의 미국인들은 역할에 대해서 의심을 품고 있다. “정해진 역할과 신분은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마치 그것들이 속 사람, 본질적인 사람과는 다른, 심지어 반대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개인의 정체성은 점점 더 자생적으로 형성되었고, 따라서 다소 사소한 일이 되었다. 심리학적인 세계관은 이 주관적인 구조를 제공하기 위해서 보편화되었다. 베로프는 “남성과 여성이 그들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과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더 많이 심리학적이 되었다는 것은 자료로부터 명백하게 알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친구
많은 미국인들은 외롭다. 조지 갤럽 2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10명의 미국인들 중 4명은 자주 또는 때때로 매우 외롭다는 감정을 갖는다. 사실 미국인들은 이 세계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다.
바나는 외로움을 교회가 다루어야할 필요들로서 초점을 맞춘다. “지난 몇 년 동안 행해졌던 전국적인 조사들은 외로우이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바나는 외로움을 “교회가 알고 반응해야 할 사회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결혼
그러나 결혼은 또한 매우 깨어지기 쉽다. 성취를 위한 추구가 결혼에 내부적인 긴장을 제공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결혼을 개인적인 행복과 경쟁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아성취를 향한 추구를 동반하는 높은 수준의 자율은 친밀감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지난 30년 동안 자아성취와 친밀감간의 긴장은 급등한 미국의 이혼율로 나타난다.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다가 부부문제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종종 그것을 포기해 버린다.
고로 많은 사람들은 결혼으로 자신들이 직면하는 어려움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결혼이 또 다른 이혼 통계 자료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이런 고민은 윌로우 크릭 참석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선택하는 설문조사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두 번째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가족간의 친밀한 관계”였고, 그 다음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였다. 이런 필요에 반응하기 위해서, 윌로우 크릭은 일년에 한번씩 적어도 하나 이상의 관계에 대한 시리즈를 갖고 있다.
가족
자녀들을 잘 양육하는 것은 한창 아이를 키우는 시기(25세-45세)에 있는 불신자 해리들과 메리들에게는 특별히 강한 소망이다. 바나의 윌로우 크릭에 관한 연구는 “46세 이상의 93퍼센트가 아이들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해리와 메리는 교회를 그들의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고 있다.
이런 필요에 대한 이상한 점은 많은 무신론적인 불신자 해리들조차 그들의 아이들이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교육을 받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스트로벨은 “해리가 영적으로 민감하지 않다 할지라도, 그의 자녀들이 양질의 도덕 교육을 받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스트로벨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는 설문조사를 언급한다.
55퍼센트의 불신자 베이비붐 세대들은 앞으로 5년 동안 교회에 참석하려는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73퍼센트는 그들의 자녀들이 종교적인 교육을 받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스트레스 해소
불신자 해리와 메리는 괴롭힘을 당한다. 그들은 직업, 친척, 아이들, 그리고 결혼으로부터 압력을 느낀다. 전국적인 설문조사에 의하면, 89퍼센트의 미국인들은 자신을 많이 “바쁘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직업 때문에 교회 참석을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약속을 한다.”
의미와 도덕성
그러나 해리는 도덕적 지도 그 이상을 원한다. 해리는 분명한 목표와 운명을 바라고 있다. 스트로벨은 “해리는 결합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결합할 수 있는 목적에 대해 굶주려 있다.”고 말한다. 이점에 있어서 해리는 그가 신뢰하는 리더십을 받아들이는데 열려 있다. 스트로벨을 “해리는 권위를 불신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진실한 성경적인 리더십은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한다.”고 적고 있다.
윌로우 크릭은 불신자 해리를 영적인 소비자로서 접근하고 있다. 하이벨스는 “오늘날의 불신자들은 궁극적인 소비자들”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45세 이하 세대는 소비자 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레스토랑과 가게들을 단골로 다닙니다. 그리고 똑같은 이유로 교회를 참석하게 될 것입니다.
구도자가 윌로우 크릭에 참석하면, 하이벨스는 그를 새로운 가게에서 쇼핑하는 것처럼 본다. 윌로우 크릭 사람들이 해리의 필요를 겨냥해서 그들의 표적을 맞추기를 기대하지만, 큰 문제가 하나있다. 해리는 윌로우 크릭의 제품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다.
기독교에 대한 해리의 태도
스트로벨은 전문직들을 정직과 고결함의 수준에 따라 서열을 매기도록 하는 설문조사를 언급했다. 이 설문조사에서 텔레비전 복음전도자는 리스트의 거의 맨 끝에, 범죄조직의 두목과 창녀 사이에 있었다.
이처럼 조직화된 종교, 특히 복음주의적 기독교에 대해서 미국 대중 가운데에는 상당한 회의론과 냉소주의가 있다. 이것은 특히 윌로우 크릭이 다가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그러하다.
사실상 모든 분류에서 윌로우 크릭의 표적 고객은 일반적인 미국인들보다 종교에 대해서 더 부정적이다. 종교에 대한 미국인들의 태도에 관한 갤럽의 연구에서, 사람들은 “종교가 당신의 삶에서 어느 정도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다음의 비율은 윌로우 크릭 표적 고객의 반 이하가 종교는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 대졸학력의 48%
․ $30.000이상 소득자의 49%
․ 남자의 47%
․ 백인의 53%
․ 18세-29세의 42%
․ 30세-49세의 51%
표적 고객의 비율과 종교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비교해 보라 :
․ 고등학교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의 69%
․ $20.000미만 소득자의 61%
․ 여자의 62%
․ 백인이 아닌 사람들의 72%
․ 50세 이상의 68%
윌로우 크릭 표적 고객(교육을 받았고, 재정적으로 부유하고, 남자이며, 백인이고 젊다)은 특히 회의적이거나 적어도 동기를 부여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영적인 생각을 좋아한다. 그들은 심지어 하나님이라는 생각도 좋아한다. 전국적인 여론조사에서 변함없이 모든 미국인들의 90퍼센트 이상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 (76퍼센트)은 “기도는 매일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이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41퍼센트) 또는 “거의 동의한다” (35퍼센트). 이런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영적인 사람들 중의 하나다. 어떻게 이 이상한 영적인, 그러나 회의적인 사람들의 퍼즐을 맞출 수 있을까?
적대적인 해리들
“적대적인 해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가지고 있지만 대개 기독교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신실한 해리나 호기심 많은 해리는 지역의 교회를 알아보는데 관심을 가질 수 있지만, 적대적인 해리는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다수의 적대적인 해리들은 친구나 가족의 권유로 윌로우 크릭에 참석하도록 요청을 받을 것이다. 이 해리들은 윌로우 크릭에 대해서 적대적이다. 하이벨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은 교회에 와서 팔짱을 끼고 앉아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우선 알아야 할 것은 나는 항상 책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무슨 말이냐면, 성경은 나에게 감동적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호기심 있는 해리들
호기심 있는 해리들은 불신자라기보다는 절반의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그 사람들의 대다수는 기독교의 중심 교리와 실천들을 지지하고 있다. 바나의 연구에서도 52퍼센트의 불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개인적인 헌신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몇몇 직원들은 윌로우 크릭에 참석하고 개종한 사람들의 50%이상이 이전에 로마 카톨릭 신자였다고 말했다. 윌로우 크릭은 대부분 말씀을 이미 받아들인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신실한 해리들
일반적으로 이러한 과정은 적어도 주말 예배의 참석을 포함하고 있다. 교회 서점의 다양한 테이프와 책들이 이런 연구를 도와주기 위해서 제공되고 있다.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또한 기독교의 진실성을 다루는 4주의 “기초반”에 초청된다. 때때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성에 대한 토론 같은 특별 프로그램들이 관심 있는 구도자들을 위해서 열리고 있다.
이런 해리들의 특성은 진리를 위한 진지한 추구이다. 스트로벨은 신실한 구도자들은 “기독교가 매우 체계적인지 또는 임기웅변적인 기초 위에 있는지를 확인해보는 시도를 한다. 구도자들은 정직한 질문을 하도록 격려를 받는다.
믿음에 이르는 과정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해리는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일련의 변화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적대적인 해리들이 호기심 있는 해리들로 바뀐다. 호기심 있는 해리들은 진지한 구도자로 바뀐다. 진지한 구도자들은 곧 바로 기독교로 회심하게 된다. 윌로우 크릭은 적대적인 해리들을 즉시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다음 단계로 가기를 원할 뿐이다. 성금요일 예배에서 한 직원은 “영적인 여정에서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우리는 이것이 당신의 영적 성장을 자극하는 도구로서 유용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직원들은 적대적인 해리들이 “영적 성장의 단계”에 들어가서 주님께 헌신하게 되기까지 6개월 정도가 걸린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런 평가에서 절대적인 규칙이나 정해진 시간은 없다. 스트로벨은 주님을 따르기로 결정하는데 거의 2년이나 걸렸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처음 교회를 방문하여 주님께 헌신하기도 한다.
5 주말 예배 프로그램
빌 하이벨스는 목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
여러분은 원하는 만큼 경건해질 수 있겠지요.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단조롭고 생명력이 없는 말씀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엄청난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 합니다.”
네, 여러분 방식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내가 다루고자하는 사람은 그의 아버지와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 더 지혜로울 것입니다. 그는 그의 어머니와도 다릅니다. 그는 무기력하고 뻔하고 지루한 것을 경험하기 위해 이곳에 와 앉아 있는 것에 대해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이벨스는 좋은 예배란 흥미롭고, 창의적이며, 믿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서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재미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이벨스는 윌로우 크릭 교회에서 열린 지도자 집회에서 목사들이 배워야 할 세 가지 원칙이 있다고 말하였다.
창의적인 프로그램, 효과적인 설교, 전략적인 프로그램 요원들의 채용이 바로 그것이다. 하이벨스는 다른 스텝들에 보다도 프로그램 제작 스텝들을 먼저 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회의 스텝들을 채용하는 우선권을 농장에서 수확물을 거두는 사람들보다 씨 뿌리는 사람들을 먼저 고용하는 것에 비교했다. 하이벨스는 “만약 씨 뿌리는 사람이 충분하지 않다면 거둘 것도 없을 것이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여튼 간에 프로그램 제작은 윌로우 크릭 교회의 주말 예배(구도자 예배)의 창의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윌로우 크릭 교회의 물리적 환경
처음으로 방문한 해리가 윌로우 크릭 교회에서 받은 첫 인상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주황색 옷차림의 교통안전 요원들이다. 윌로우 크릭 교회는 첫 방문자들을 위해 의도적으로 가장 친절한 사람들을 이 교통정리 팀에 배치했다. 이런 이유로 어떤 방문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기도 한다. “첫째, 이곳이 교회라면 다른 대부분의 교회와 다르다는 것이고, 둘째, 이곳은 방문자들을 위해서 아주 훌륭한 운영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이벨스는 처음 방문한 해리가 교회로 들어오면서 여러 질문과 생각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너무 구식이 아닐까? 이들은 현대적인가? 아니면 너무 고전적인 것은 아닐까? 혹시 우리에게 인위적인 모습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교회는 아닐까?” 일반적인 교회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이 교회는 어떠한 기독교적인 상징물도 없다. 이 교회는 마치 어떤 회사의 중역실처럼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하이벨스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난 수요일 아틀랜타에 있는 IBM 중역실을 방문했는데 여기는 기본적으로 그곳과 다를 게 없다.” 편안하고, 안락하며, 쾌적한 곳, 바로 이런 곳이 우리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해리는 그가 들고 들어온 프로그램을 읽어보며, 조용히 흘러나오는 음악을 즐길 수 있으며, 무대 양편에 있는 커다란 유리를 통해 밖을 바라 볼 수도 있다. 대예배실 어느 자리에서나 그는 윌로우 크릭 교회의 아름다운 호수 주변에 노니는 캐나다산 거위들을 볼 수 있다. 돈 카즌은 스텝들에게 이러한 수준급의 환경을 만드는 것이 왜 중요한지 교육한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디즈니 월드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들은 그곳을 잘 돌봅니다. 그들이 기본적으로 말하는 것은 ‘그곳은 정말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제대로 했습니다. 그렇지요? 그들은 오락 공원은 어떻게 하고, 호텔은 어떻게 하며, 고용인들은 어떻게 대하고, 또 고용인들이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 주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프로그램까지 있습니다.
우리가 해리에게 매력적이고 친숙한 느낌을 줄 수 있는 환경을 더욱 잘 만들면 만들수록 더욱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가 그것에 대해 매력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윌로우 크릭 교회에서 이와 같이 능률적이고 아름다운 환경을 만드는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해리의 존경을 얻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해리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다.
프로그램 컨셉
패키지
주말 예배시간은 1시간 10분 정도이다. 설교자는 대개 35-40분간 설교한다. 음악이나 드라마, 그리고 성경 봉독과 같은 프로그램 패키지는 대략 35분 정도의 길이를 갖는다. 이와 같은 이벤트가 배치되는 순서는 매주 바뀐다. 낸시 비치는 “우리가 준비한 기본 요건을 바탕으로 매주의 프로그램 순서를 잡는다.”라고 말했다.
플로우
“모퉁이를 도는 것”은 이런 연결 고리들 중 특수한 형태이다. 매우 심각한 주제를 다룬 드라마가 끝난 후에, 비치는 바로 이어서 가벼운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팩키지의 순서 상 어떤 감정에서 다른 감정으로 넘어갈 때, 프로그램은 청중의 감정을 이끌 수 있도록 짜여진다. 그것이 바로 “모퉁이를 도는 것”이다. 그것은 전주곡부터 마지막 기도까지 계속된다.
프로그램 요소들
회중 찬양과 인사
프로그램 팀은 해리와 같은 불신자들이 그러한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윌로우 크릭 예배에 참석한 해리와 같은 불신자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는 예배 중에 악수하는 것이 몹시 싫다고 하였다. 내가 낸시 비치에게 해리와 같은 불신자들이 이처럼 느끼는지를 물었을 때,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것은 성격과 많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외향적인 타입은 그러한 방식도 좋아합니다. 만약 우리가 인사하는 절차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정말로 외향적인 사람들은 “그 교회는 내가 본 교회 중 가장 친근감이 없는 곳이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6 예술의 사용
윌로우 크릭은 그들이 얼마나 이런 일에 관심이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교회를 방문하는 해리를 위한 즐겁고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하이벨스가 주장하는 바는 이것이다. “이 세대는 TV를 보면서 자랐다. 우리는 그들에게 창의적이고 시각적인 방법으로 종교를 제시해야 한다.”
하이벨스는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윌로우 크릭의 최초의 폭발적 성장에 진정으로 기여한 요소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 오랫동안 고심한 후에, 나는 현재와 과거를 되돌아보니 소수로 구성된 소그룹 안에,
․ 국내적으로 인정받는 음악인
․ 국내적으로 인정받는 방송인
․ 국내적으로 인정받는 연극인이 있었으나
․ 우리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아주 신나는 일이 윌로우 크릭 극장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커뮤니케이션 혁명
텔레비전은 커뮤니케이션 변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텔레비전의 기본적 원리는 개념보다는 이미지를 더 부각시킨다. 현대 속담이 말하듯이 “하나의 그림은 천 마디의 말만큼 가치가 있다.” 그리고 개인들의 관심을 유지하려면, 이러한 그림들에 정기적으로 변화를 주어야 한다. 맥닐-페리어 뉴스 시간의 공동 앵커와 실무 편집자인, 로버트 맥닐은 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들은 “모든 것을 간단히, 그리고 누구에게도 그들의 집중을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으면서, 그 대신 변화, 새로움, 활동, 그리고 움직임을 통해 계속되는 자극을 제공하게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커뮤니케이션 혁명의 한 예로는 지난 두 세기 동안 대통령 선거 토론의 비교이다. 아브라함 링컨이 스티븐 더글러스와 토론할 때, 더글러스는 한 시간 동안 이야기했고, 링컨은 그의 의견을 한 시간 삼 십분 동안 논박했다. 그리고 그 후 더글러스는 반시간 동안 반박할 시간을 가졌다. 1988년 대통령 선거 토론에서는, 조지 부시와 마이클 두카키스는 기자들의 질문에 2분 동안 대답하였고, 1분 동안 반박할 시간이 있었다. 일반적인 시청자의 집중 시간이 긴 형태의 토론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의 결과 개인들은 시간이 갈수록 논조에 따라가거나, 비판적으로 생각하거나, 또 시각적, 청각적, 자극 없이 한 자료에서 정보를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윌로우 크릭은 불신자는 해리들에게 현대 매스컴의 도구를 사용하여 의사 전달을 한다.
그들이 현대 커뮤니케이션을 도입한 한 가지 예는 드라마의 사용이다. 윌로우 크릭의 드라마 사용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이벨스가 처음 손 시티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전도 집회를 제안했을 때, 한 학생이 드라마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하이벨스는 그의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솔직히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미시간 주에 있는 칼라마주 출신이다. 우리에게는 한 개의 채널밖에 없었다.” 하이벨스와 선 시티는 모험을 했고, 곧 안 믿는 학생들을 전도할 때, 드라마는 필수적인 분야가 되어버렸다.
윌로우 크릭 드라마의 목적
주말 예배 때 보여주는 짧은 드라마들은 아주 구체적인 목표들이 있다.
․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들을 드러내고,
․ 윌로우 크릭 사람들이 불신자는 해리와 공감할 수 있게 해주고,
․ 해리에게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 해리의 자기 방어들을 낮추는 것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 들어내기
윌로우 크릭 드라마인 “위대한 기대들”에는 몇 년 동안 아기를 가지려고 하는 한 부부가 등장한다. 그들은 입양을 하려했는데, 결국은 아이를 받기 바로 직전에 와 있다. 마지막 순간에 입양은 불가능해지고 그들은 엄청나게 실망한다. 부인은 하나님에 대한 분노를 폭발해 버린다. 남편은, 그 자신도 깊이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인을 위로한다. 드라마는 부인이 남편의 팔에 안겨 우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가슴 아픈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마술 같은 대답은 없었다.
희극적 드라마
그리고 윌로우 크릭은 해리를 웃게 만들고 싶어한다. 이것은 해리가 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즐거운 프로그램의 목적을 만족시킨다. 하지만, 심리학자 로버트 올리버는 유머 사용의 더 깊은 이유는 “관객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적대감이나 의심의 장애물을 없애고, 듣기를 자청하도록 만드는 것”이라 하였다.
웃음은 관객으로 하여금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세로 만드는 효과적이고도 부드러운 방법이다. 이것은 설득력 있는 논리들이 나중에 건너 갈 좋은 친교의 다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머리 위에 헬리콥터 날개가 돌아가는 큰 소리가 난다. 위에서 무대로 밧줄이 떨어진다. 전투복을 입고 기관총을 들고 있는 람보 아버지는 야성적으로 총을 쏘며 줄을 타고 내려온다. 아들이 람보 아버지께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다고 말할 때, 람보 아버지는 (그의 기관총을 야성적으로 다시 쏘면서) “나의 아들은 공산당의 언어를 배울 수 없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결과는 어떨까? 관중들은 당연히 세심하지 못하고 밀어주지 않는 아버지의 풍자에 크게 웃는다. 유머 있는 연극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해리의 벽은 낮추어졌다. 이제 프로그램 뒤의 메시지에서 사랑과 관심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동적인 드라마
의심 많은 스트로벨은 하나님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감동을 받았다. 프로그램 팀원 중 한 명이 말했듯이, “드라마는 느끼는 것이다, 보는 것이다, 말해 주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가 그날의 문제를 명백히 하는 데 도움이 된 후, 관객은 프로그램의 다음 단계를 볼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전략은 기독교계에 작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7 설득의 프로그램 기획 원리
음악과 드라마
비치는 “불신자 해리가 영화와, 텔레비전, 연극을 통하여 우수성에 노출되어 왔고…그는 매우 우수한 것을 보아 왔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그는 모든 이 우수성이라는 필터를 통하여 평가한다. 윌로우 크릭은 그 자신을 해리의 뛰어난 오락물과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Sesame Street과 Disney World는 오늘날 소비자의 마음속에 높은 기준이 되었다.” 윌로우 크릭은 이러한 기준을 그들의 음악과 드라마에서 접목하려 시도해왔다.
해리에게 익명성 부여하기
해리는 불안하다
해리를 익명인 채로 남아있게 함으로 윌로우 크릭 사람들은 해리가 긴장을 완화하고 설교자와 프로그램을 경청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익명성의 배려가 윌로우 크릭이 해리를 돌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상은 그 반대이다.
효과적인 목회는 이 사람을 편하게 해 주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에게 읽기 쉬운 프로그램을 건네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에게 어디에 주차하고, 어디로 걸어갈 것이냐에 대한 안내를 해 주어야 하고, 어디에 앉을 것이냐 하는 평범한 생각까지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볼 수 있도록 그를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이 다음에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지?”라고 두려워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해리는 어느 정도 사회적 거리를 원한다
이처럼 익명성을 허용하는 것은 윌로우 크릭의 특성이다. 초기에도 윌로우 크릭은 많은 참석자들을 불러 들였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방문객들은 당혹감을 적게 느꼈다. 그들은 그 누구도 몇 백의 심지어는 몇 천의 참석자들 전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트로벨의 회상에 따르면 “내가 처음 갔을 때 윌로우 크릭에는 이미 흥미를 끌만한 몇 사람들이 있었다.” 이 경험은 대규모 음악회나 큰 규모의 야외 영화극장 에 참석하는 것과 비슷하다. 해리들은 그들만의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다가가거나 질문하지 않는다. 그들은 익명적이다.
해리에게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윌로우 크릭 사람들은 행사위주의 접근이라고 불리는 것에 반대하여 과정의 창의성을 강조한다.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세속적 세계관 아래에서 20년, 30년 혹은 40년 동안 살아온 사람들에게 “당신은 영원한 미래에 대해 결심을 해야 할 이 예배의 마지막 몇 분만을 남겨두고 있다.”고 말한다. 윌로우 크릭 사람들은 “대부분의 해리들은 빠른 시간 내에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전도 담당자인 미텔버그는 한 복음주의자가 그에게 했던 말을 회상했다. “만일 당신의 구도자 예배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한 것이라면 당신은 그들에게 매주 기회를 주겠습니까? 당신은 아마 오직 한 번의 기회만을 줄 것입니다.” 미텔버그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프로그램의 구성은 비 위협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도록 고안되었다. 그 자신의 페이스로 기독교를 조사할 수 있는 자유는 해리와 메리에게 잠시 동안 복음을 외면할 기회를 준다. 예를 들어 한 불신자 메리는 그녀의 세례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첫해에 나는 거의 팔짱을 끼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한 채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포함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것이 모두 쇼나 과대선전이라고 생각했는데…그런데 점차적으로 내 아들과 남편이 변화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수준에서 자라났습니다. 나도 마침내 다른 시각을 갖고 경청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것은 아마 8-10개월 후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주말 예배의 많은 부분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재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비치는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매우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그들이 보다 균형 있는 시각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특성 가운데 여러 측면들을 보여 주려고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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