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산 지 2010년 11월 호
시에라 네바다, 빛의 산맥을 걷다.
글 \ 사진 이상은 대전주재기자
“또 비빔밥이야? 그래도 오늘은 추석인데, 너무하잖아” 황무지 같은 골짜기에도 달은 휘영청 밝아왔다. 존무어트레일의 공식적 출발지인 ‘해피아일즈’를 떠나온 지도 십 여일. 그간 우리의 주식이었던 고추장 비빔밥과 버섯비빔밥의 고마움은 이제 지겨움이 될 지경이었다. 입안 내내 감도는 끈적하고 달짝지근한 고추장맛이 아닌 칼칼한 청양고추의 매운맛이 그리웠고, 그도 아니면 차라리 맑은 국물이 당겼던 것이다. “짜잔~ 추석맞이 특별식 등장입니다” 이택건씨가 준비한 특별식은 건조미역, 다시다 한 스푼, 소금 한 스푼, 그리고 시레이션(건조비빔밥)에 들어있는 참기름 몇방울과 마지막 남은 떡을 넣어 맑게 끓인 미역떡국이다. “후아~ 한 그릇 더 주세요.” 한국에서 이렇게 끓이면 과연 맛있게 먹을까 싶지만, 시에라컵으로 두 그릇씩 먹으니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았다. 가진 건 많지 않았지만 존무어트레일 중에 우리는 몸과 마음의 풍요를 느낄 수 있었던 특별한 기억을 서로에게 선물해 주고 있었다.
자연보호 운동가 존 무어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져 존무어트레일은, 미국 자연보호 운동의 대부인 존 무어(John Muir)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존 무어는 100년이 넘는 역사와 60여 만 명의 회원을 자랑하는 미국의 자연보호 시민단체 ‘시에라클럽’의 창설자이다. 그는 시에라네바다, 유타, 알래스카 등의 빙하와 숲을 관찰한 후, 요세미티 계곡의 장관이 빙하의 침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증명한 학자이며, ‘산을 오르는 것은 곧 마음의 본질을 등반하는 것이다’라고 한 진정한 등반가였다. 또한 인간이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산이 인간을 허락하는 것임을 일깨워준 위대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의 깨달음을 따라 길을 걷다보면 그가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했던 대자연의 위대한 의지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게 된다.
존무어트레일이 지겹지 않았던 이유는 고개 너머마다 만날 수 있던 빛나는 호수 덕분이었다. 에벌루션 레이크 전경
358km의 존무어트레일은 무게와의 싸움이고, 식량과의 승부이다. 약 60끼니를 곰통에 다 넣어 갈수가 없으니 무게와 부피는 최대한 줄이고, 트레일 중간지점에서 식량을 나누어 공급받아야 한다. 보통 레드 메도우(Reds Meadow), 투알름 메도우(Tuolumne Meadow)에 식량을 데포시켜 놓고, 뮤어 랜치(Muir Ranch)로 식량을 부치기도 한다. 일행은 산을 좋아하는 LA교민 전석훈씨가 보급투쟁을 해주었는데, 며칠을 건조식품과 라면으로 살다가 그의 도움으로 김치와 고기, 맥주를 맛 볼 수 있었던 날엔 그는 우리들의 천사로 추앙받았다. 미역은 무게와 부피 면에서 최고의 점수를, 국수는 3천m에서 잘 익지 않고 풀어지지도 않아 최악의 점수를 받았다. 라면스프는 다용도 조미료로써 송어매운탕을 끓일 때도 단연 으뜸이었다. 일상에서 사소했던 것들이 귀하게 쓰여 그 가치를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두 팔을 위로 쭉 펴면 품안 가득 들어오는 하늘과 별과 달, 그리고 한 번도 때 묻지 않은 듯한 공기가 세포 하나하나의 숨구멍으로 스미는 듯했다. 존무어트레일 구간은 6월부터 8월까지 야생화가 아름답고 초록이 싱싱한 반면, 모기와의 전쟁이 기다린다. 9월부터는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라서 꽃은 찾아보기 어렵고, 호수에 뛰어들기에는 너무 춥지만 모기가 없다. 건조한 기후에 아침저녁으로 보온용 의류가 꼭 필요한데, 주로 얇은 우모복을 준비하면 좋다.
하프돔 올라가는 길에 만난 나무. 둘이 한마음이라면 세상 어디서라도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캘리포니아주의 휘트니 포탈에서 요세미티까지 약 358km 고도가 낮은 북쪽 요세미티를 출발한 일행들은 남쪽으로 미국 본토 최고봉인 휘트니(4418m)까지 걸어서 이동했기 때문에 고소증세 없이 고도적응을 자연스럽게 마칠 수 있었다. 하프돔, 투알룸 메도우, 에블린 레이크, 도나휴 패스, 써전 아일랜드 레이크, 쉐도우 레이크 등 고개를 넘으면 신비한 모습의 호수들이 어김없이 펼쳐진다. 어찌나 맑은지 호수에 비쳐지는 산이 실제보다 더 또렷할 지경이다. 게다가 호수에는 건조식품에 질린 몸을 단백질로 보충해 줄 송어가 퍼덕이고 있었다. 휘트니봉 바로 아래 3천m가 훨씬 넘는 기타레이크까지도 한 눈에 조망해 볼 수 있었다.
화강암으로 된 둥근 박을 반으로 쪼개놓은 듯한 하프돔 전경. 절개면으로는 클라이밍해서 올라오고, 이쪽 둥근면은 두 줄로 쇠줄을 박아놓아 일반인들도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고갈된 체력과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풍경에의 호기심 중 무엇이 이길까.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트레일 내내 끝없이 펼쳐진 길, 산, 호수를 지나면서 ‘설마, 저기 저 끝을 간다고?’ 자문해 보곤 했다. 걸으면서 깨달은 것이 ‘설마는 가능성이다’라는 것이었다. 설마하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할 수 있으리란 걸 몸으로 안다.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설마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데 어찌 포기할 수 있으랴. 험하고 긴 여정이 외롭지 않았던 건 함께 걷는 좋은 이들이 있어서였다. 똑같이 배낭을 메고,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내내 뛰어다녔던 강철체력 KBS1TV 수요기획 방송촬영팀 김석원PD, 기획과 준비를 깔끔하게 준비한 신영철씨, 가장 무겁게 메고 늘 여유롭게 후배들을 아낌없이 챙겨주신 에드워드씨, 현지에서 합류하여 웃음과 맛난 음식을 모두 챙긴 이택건씨, 무거운 짐을 메고도 GPS를 보며 앞장섰던 최고의 서포터즈 배재민씨, 막내로서 잔일을 마다 않고 뛰어다닌 김우성씨, 배려 깊은 여행생활자 유성용씨, 일정 때문에 중간에 나가야했던 성격 좋은 모델 이선진씨, 항상 큰 웃음이 시원한 이창현씨, 먼 길 마다 않고 운행과 보급을 맡아주셨던 전석훈씨 모두 고마웠다. 덕분에 가장 행복한 길을 걷다가 돌아올 수 있었다. 영혼의 생기를 되찾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존무어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국내 최초로 방송에 공개되는 장쾌한 존무어트레일은 11월 3일 KBS 1TV 수요기획에서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
끝없이 펼쳐진 존무어트레일 전경. 11월3일 KBS 1TV 수요기획에서 생생한 존무어트레일을 만날 수 있다.
자.. 그럼 만나 보셔야죠?? |
첫댓글 첨부터 끝가지 다 보고 잡니다,,,,,ㅎㅎ구미가 땡기지만,,민밋한게,,,순례자의 길 같습니다,,,정말 20일이라는 긴 여정이군요,,,
480시간을 함게 동고동락뿐아니라 생사고락을 함께하려면,, 너무 길어 팀구성이 관건으로 보입니다,,,,
대장님,,위 동영상을 복사하려면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가르켜주세요,,,^^배우고 싶습니다,,^^
스피커 그림 왼쪽 한자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