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날 집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에 또 황당한 경험을... 란저우발 상하이착 비행기를 타느라 아침을 못 먹어서 호텔에서 준비한 도시락이다. 납작한 팩에 든 우유와 귤 바나나 그리고 삶은 계란 정도가 다였는데 비닐 봉지를 두 겹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 타져서 호텔 로비에 귤이 굴러다니는 사태 등이 발생하였다. 중국이 많이 발전한 것은 사실로 인정해야겠지만 세부적인 면에서는 아직 좀 더 많이 가다듬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 중인 버스. 이번 여행에서 새벽 버스를 탄 것이 몇 번이던가?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하거나 캄캄한 새벽에 이동한 것이 모두 일정의 절반이 넘는 세 차례나 되었다. 그래도 돈황에는 새벽에 도착하여 식사는 제대로 하였지만...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 긴 여행에 조금은 지친 듯한 표정도, 집으로 돌아간다는 안도의 표정도, 벌써 여행이 끝났나 하는 아쉬움의 표정도 느껴지는 것 같다.

새벽을 달리는 차량은 거의 없었다. 웬 일인지 오늘 따라 아무도 없는데 기사는 신호를 잘 지켰다. 다른 차들은 몇 대 안 되었지만 신호를 무시하고 휙휙 잘도 지나가더니만...

드디어 도착한 란저우 중추안 국제공항. 사진이 많이 떨렸다. 이 비행장은 오는 날은 낮에 도착하여 가는 날에는 새벽에 떠나게 되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즈음에는 그래도 날이 밝았지만...

이곳은 중추안 국제 공항역이다. 기차를 이용할 수만 있다면 편리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에서는 기차도 두 번이나 이용을 하지 않았던가?

청사 앞 모습. 아직 캄캄한 밤이고 공항까지 올 때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일단 도착을 하고 보니 그래도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발권 수속을 하는 가이드 임광산. 가이드와의 인연도 이곳이 마지막이다. 돈황의 유일한 가이드니만큼 다음에 또 실크로드 쪽을 간다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이제는 보기 드물어진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의성 출신 교포 3세인데 사람이 괜찮았다.

발권 수속. 수하물 탁송을 하고 있다. 일단 푸뚱 공항까지 가서 다시 부산 김해행 비행기로 바꿔 타야 하는데 다행히 수하물은 연계가 된다고 하여 홀가분해졌다. 몸만 움직이면 되었으니...

사람들이 짐을 부치는 동안 공항의 한쪽에 앉아서 기다리는 일행. 마지막날이 되니 대부분 정이 들게 되었고 또 각별히 친해진 사람들도 많았다. 삼삼오오 모여서 지난 이야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래서 더 아쉬운 게 여행의 마지막 날인 것 같다.

탑승 수속을 하는 조인숙 선생. 왼쪽의 기계는 ID식별기다. 이곳 공항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신분증을 갖다대면 통과할 수가 있다. 권 사장은 내가 수속을 밟는 사진을 찍다가 제지를 당했다. 이 사진의 가치가 올라가는 순간이다.

공항의 면세점에서 파는 기념품. 이곳은 마답비연의 고장이다. 11년 전에 이민용 선생이 맹부에서 기념품을 추천해달래서 마답비연을 추천했는데 부인이 dust collector(집진기)라고 놀렸다고 한다. 그러나 수속에 시간이 좀 걸렸는지 우리 일행이 가장 늦어 통과를 하자마자 부리나케 비행기로 달려가야 했다. 나는 비교적 앞쪽에 있어서 이런 것이 그래도 눈에 들어왔지만 디른 사람들은 핀잔을 들어가며 비행기에 탑승하였다고 한다.

그래도 감숙성을 대표하는 것은 조그마한 마답비연보다는 돈황임을 보여주는 비행기의 그림. 기차와 마찬가지로 '현려감숙'이란 글자를 적어넣고 비천상의 그림을 그려넣었다.

비행기가 란저우의 청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여행을 다니면 다시 가고 싶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는데 이곳은 정말 다시 한번 와보고 싶은 곳으로 길이 기억될 것이다.

비행기가 하늘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밑에는 구름이 끼었고 위로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이번 여행에서 단단히 일조한 날씨에 고마움을 느낀다.

우연히 보인 구름은 색깔만 황색이었다면 돈황 명사산에 두고온 모래 언덕을 생각케 했다. 바람에 날려 고운 결이 진 모래가... 다음에 오게 된다면 낙타도 타고싶고 썰매도 타고 싶고... 그러나 힘들여 올라간 모래산을 순식간에 썰매를 타고 휙 내려오려면 또 고민 갈등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란저우에서 상하이 노선의 기내식. 햄버거와 빵 과일 등이 들어 있었다. 중국의 노선에서는 처음 보는 형식의 것이었다. 대부분은 비벼먹는 밥 비슷한 것이 나오는데... 빵은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므로 주머니에 넣지 않고 바로 입으로 넣었다.

다시 상하이에 도착. 당초 홍챠오 공항에 내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틀렸다. 가만 보니 수하물을 연계해서 바로 실어준다는 말을 했을 때 알아들어야 했는데...

란저우에서 상하이 갈 때는 반대 비행보다 시간이 거의 1시간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유인즉 비행기가 편서풍의 기류를 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남아도 이제는 갈 곳이 없어서...

비행기가 정지하고 수하물을 부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손 하나 안 되어도 부산으로 갈 비행기에 그대로 실어주니 별 할일이 없었다. 너무 편해도 심심한 느낌이 드는 듯...

트랩에서 내리니 제법 쌀쌀한 기운이 느껴졌다. 쌀쌀하다기보다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렇게 느껴진 것. 다시 공항 청사로 들어가니 더워져서 옷을 다 벗어야 했다.

이곳서도 공항 내의 셔틀 버스로 이동을 하였다. 신호등은 없었지만 중간에 비행기 두 대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당연히 공항서는 비행기가 우선이 되어야겠지...

다시 3층의 국제선 청사로 갔다. 비행기 발권 수속은 란저우에서 이미 동시에 다 해놓은 상태여서 이곳서 별도로 할 일은 없었다. 시간이 제법 남았지만 공항 내에서 바로 탑승구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설명을 하는 이 분은 여행사에서 나온 분이다. 올 때의 그 가이드가 너무 불친절하대서 손원장이 못 나오게 하여 대산 나온 사람인데 척 보기에도 직급이 더 높아보였다. 친절하게 짧은 시간이나마 이동을 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주었다.

더이상 할일이 없고 식사는 밖에서 하기가 그렇고 하여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에게 중국돈 100원씩을 주고 각자 점심을 해결하라고 했다. 돈을 주는데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나는 배도 그다지 고프지 않았고 비행기를 타면 기내식을 또 주므로 그간 고생했던 방졸 환이에게 100원을 다 주었다.

이곳 푸뚱공항은 실내공사가 한창이었다. 게다고 탑승수속을 하는데 국제도시답게 늘어선 줄이 장난이 아니었다. 일찌감치 들어가서 기다리기로 한 결정이 옳았다. 일단 들어가서 인원 점검을 한번 하고 각자 식사를 한 후 시간이 되어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탑승구만 확인하고 끼리끼리 식사를 하러 구경을 하러 다시 다 나갔다.

혼자만 탑승구에 있었더니 일행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되었다. 밥 안 먹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1시간 조금 넘는 시간을 혼자서 무료하게 보내야 했다. 나의 여행 법칙 중 하나인 읽을 것은 가급적 가져가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야 하나 하는 심한 고민에 빠져들게 된 순간이었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동방항공 및 대한항공 그리고 한 군데 더 연계되었다. 그래서 비행편 이름의 수가 3개였다. 오른쪽 제일 밑에 있는 순간부터 왼쪽의 상단에까지 옮겨가는 동안 계속 혼자 앉아 그간 찍은 사진 등을 돌려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한 시간남짓이 지나자 이행이 슬슬 다시 나타났다. 란저우에서 상하이로 올 때는 시간이 매우 촉박하였는데 이곳에서는 남는 것이 시간이었다.

우리가 탈 비행기까지 데려다 줄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같은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이 계속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이제는 당분간 잊고 살아야 할 중국을 이렇게 하나씩 스쳐지나간다.

우리를 부산까지 태워다 줄 비행기. 셔틀 버스는 도착을 했지만 비행기 청소가 아직 끝이 채 나지 않아서 버스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청소하는 아줌마들이 내리고 나서야 버스문이 열렸다. 짧은 시간이 더 무료하게 느껴졌다.

비행기가 푸뚱공항의 청사를 뒤로 하고 서서히 활주로를 향하여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정말 비행기를 많이 탄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부산서 다시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탈 일이 없어서 좋았다.

이번에는 차창쪽에 앉지를 못하여 바깥 풍경을 제대로 구경할 수가 없었다. 그저 이렇게 한 다리 건너서 비행기 창이 다 보이는 상태서 바깥을 구경하는데 그쳐야 했다.

이번에는 비행기의 꽤 앞쪽 자리를 잡았다. 내 옆줄에 앉은 홍계한 선생과 둘이서. 우리 앞에는 두 줄 밖에 없었고 바로 앞으로 퍼스크 클래스 좌석이 보였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기내식은 오무라이스를 만 듯한 것이었다.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아주 간단히 나와 나중에 수거할 때는 쓰레기 봉투를 들고 거두어갈 정도였다.

다시 한국에. 외국 갔다가(주로 일본과 중국이지만) 돌아오면 항상 반가운 것이 더 환영한다는 인사말이다. 한글이 그렇게 반갑게 느껴지는 경우가 잘 없는데 말이다. 역시 외국에 나가봐야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도착 시각을 말해주고 있다. 오후 5시 4분 현재 란저우에서 실어보냈던 짐이 이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나오고 있는 중이다. 짐도 상당히 먼저 찾은 편이다.

짐을 차는 일행. 가장 젊은 일행인 환이와 미스터 "쓰" 권오관 사장이 짐을 내리고 있다. 여행사의 꼬리표가 붙은 것은 내것 네것 가리지 않고 다 내렸다.
입국이라 쓰인 곳으로 나오는 일행들. 나오지 마자 새로운 이별이 진행된다. 이곳서 경주로 2명, 부산으로 1명, 서울로 6명이 떠나게 된다. 대구로는 불과 21명이...

해단 선언을 하는 단장님. 사정이 많이 달라져 갑작스레 단장을 맞게 된 이영환 선생이 간단한 마무리 인사와 함께 해단 선언을 하고 있다. 참으로 애를 많이 쓰셨다. 이번이 두 번째인 만큼 앞으로도 잘 해주시리라 믿는다.

대구행 버스에 오르는 일행. 부산으로 가는 이민경 선생이 가장 먼저 떠났고 경주 팀이 부랴부랴 떠났다. 서울팀은 7시 비행기여서 우리거 떠난 후에도 1시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했다.

공항에서 고속도로로 향하는 길은 퇴근시간하고 맞물려서인지 상당히 밀렸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오래지는 않았다. 금방 정체거 풀리고 고속도로에 올리자 속도를 내기 시작하였다.

이번에 돈황서 본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래도 내 조국 산하의 저녁놀이 또 아름다웠다. 대구는 7시가 채 못 된 시간에 도착하였고 2호선 대공원역과 어린이회관 두 곳서 나누어 내렸는데 나는 대공원역에서 내렸다. 함께 내린 일행이 꽤 있었다.
첫댓글 해외답사에서는 귀도 입도 不疏通인 聾啞이지만 우리말로도 고마운 마음을 不知所言입니다.
앉아서 수천리 밖을 볼 수있는 눈을 주신 사월선생님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주신 책도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돋보기 도수를 2 단계 올리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거움과 고통을 동시에 드렸다니 묘한 기분이 드는군요.
별말씀을요!
대강 보지 못할 글들이었기에 안경 도수를 높인 것입니다.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거듭 감사합니다.
궁금한게 하나 있습니다.
카메라 뭐 쓰십니까?
렌즈는요?
삼발도 쓰시는 것 같은데~~
전 밝은 사진을 좋아합니다.
카메라는 니콘 D800입니다. 렌즈는 50mm 단렌즈와 28
300mm 줌렌즈를 씁니다. 단렌즈가 해상도가 훨씬 뛰어나지만 여행에서는 후자를 주로 쓰는 편입니다. 
각은 슬릭이란 제품인데 그리 탄탄한 편이라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사이즈가 좀 작고 비교적 가벼워 휴대하면서 쓰기에 괜찮은 듯합니다. 그래도 남들은 모두 많이 무거운 것이라 걱정해주지요. 사진은 역광이 아니면 거의 P를 놓고 찍는 편입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수동(M)으로 놓고 그때그때 노출과 셔터 속도를 맞추지만... P모드로 놓으면 사진이 약간 어두워 보이게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인 색감은 괜찮은 편입니다.
@沙月 작년 여행때 황하에 카메라들고 잠수한 이귀옥입니다.. 긴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다른여행과 겹쳐서 못 가 아쉬웠는 데 같이 따라 간 듯 잘 보았습니다.. 다시는 안 산다고 다짐했던 카메라를 다시 샀습니다. 안 그래도 렌즈를 무얼 쓰시나 궁금했는 데 정확한 대답 또한 참고가 될 듯... 여행기 감사드립니다^^
@이귀옥 함께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명사산에 두고 온 모래언덕"이란 표현이 이번 여행의 느낌을 다 말하고 있습니다
놓친 것들 다 챙겨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지요. ㅎㅎ
칭찬을 다... 같이 갔다오셨으니 감
이 새롭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