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실‧부정 선거’ 사태에 대해
-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와 ‘의회주의적 진보정당’운동을 동일시해왔던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역사를 매듭지어야 한다!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 부정사태!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고 한다. 통합민주당 당권파의 그간 행태를 잘 아는 이들의 탄식이다. “몰상식하다”고 한다. 경선에 부정이 있었음에도 조사과정이 부실하다는 데에만 얽매인 비상식적 논리라는 비판이다. “안이한 사태인식”, “무책임한 태도”라고 한다. 부정사태의 원인을 ‘다른 조직 문화’로 돌리거나, 위기 국면에 처하고도 상황을 모면하는데 급급하는 당권파의 모습에 대한 질책이다. “진보정치의 절망”에 대해 얘기한다. 민중들의 배신감과 분노를 바라보지 못하고 정파간의 음모나 당원들의 명예문제로만 바라보는 당권파들의 어리석음과 ‘정치적 맹목’에 대한 힐난이다.
우리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과정에서의 부실․부정사태가 ‘총체적인 부실․부정’인지, 아니면 ‘경선과 조사과정에서의 부실’ 문제인지의 쟁점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5월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5월 5일 전국운영위원회의 의결권고안을 받아들여 수습될 지, 아니면 당권파가 ‘비민주적 패권집단’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기득권을 지키려 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대립과 갈등의 늪으로 빠져들어갈 지도 핵심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그들’ 내부 정치역량의 문제이고, ‘그들’이 온전히 감당하고 짊어져야 할 몫이다.
우리는 통합진보당의 사태가 ‘진보정치의 위기’라는 진단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 위기를 ‘당내 민주주의의 위기’로 한정하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 이번 사태로 드러난 ‘진보정치의 본질적 위기’는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의회주의 진보정당운동과 동일시해온 것에 있다.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노동자 출신의 국회의원 배출’로 협소화시킨 그들은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노동자를 선거 때 돈이나 내고 표나 찍는 동원 대상으로 취급해왔다. 2008년 분당 이후에는 노동자 중심성을 더욱 약화시켰다. 급기야 2011년 11월 반노동자적 참여정부 출신이 주축인 국민참여당과 통합함으로써 ‘진보성’마저 탈각시켰다. 2012년 1월에 발표한 ‘5대 비전’에서는 끝내 노동을 버렸다. 이어 4월 총선과정에서 민주노총 상층지도부의 ‘배타적 지지’ 강행을 통해 노동을 강제 동원하려 했지만, 그 결과는 노동운동과 노동정치의 메카라는 울산과 창원에서 통합진보당 후보의 탈락이라는 현장노동자들의 외면이었다.
따라서 현 통합진보당 사태로 드러난 진보정치의 위기는 ‘야권연대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려했던, 진보정당의 정치적 전망의 위기’이고, 이런 의회주의적 진보정당에 기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위기’이다. 더불어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 강행에서 드러났듯 ‘노조상층부 중심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위기’이다. 비례대표 경선과정에서의 부실․부정사태와 뒤이은 대립과 갈등은 이런 위기의 집약적 표현일 뿐이다.
통합진보당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지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는 ‘의회주의 진보정당’, ‘자유주의 세력에 기댄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전철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쓰라린 교훈을 주었다는 점에서만 의미가 있다.
이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와 ‘의회주의 진보정당’운동을 동일시 해왔던, 지난 15여 년의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역사를 매듭지어야 한다. 노동현장의 노동자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서, 반자본․사회주의적 정치적 전망을 가지고, 생산현장과 거리와 일상생활과 의회에서 투쟁과 정치를 결합시켜나가는, 새로운 ‘노동자 계급정치’의 가능성을 현실화시켜내야 한다. 그런 정치역량, 조직운영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우리 노동자계급에게는 통합진보당 사태로 ‘계급정치’에 대해 냉소하거나 회의해서는 안된다. 그럴 여유도 없다. 이제 비로소 시작일 뿐이다.
2012년 5월 9일
사노위(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