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주 교수의 세계사여행]
유럽통합 운동 : 역사와 의미
경제강국 공동 대응 '유럽의 결속' 의기투합
2002년 유로 화폐로 통일…단일경제체제 마련
냉전 종식 후 동유럽 국가 가입 허용, 현재 총 28개국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히트 시가지 모습.
유럽연합 가입국 현황. 필자 제공
유로화 화폐와 동전.
‘유럽통합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 모네(왼쪽)와 유럽통합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안한 로베르 슈망의 기념우표.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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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2월 11일, 유럽공동체의 12개 회원국 정상들은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히트에 모여 유럽인들의 결속을 강화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이른바 ‘마스트리히트 조약’이다. 이 조약의 성사로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이 탄생했다. 이로 인해 1993년부터 유럽연합 내부에서는 화폐와 사람, 상품과 서비스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2002년 유로화가 발행돼 개별 회원국들의 화폐를 대체함으로써 유럽인들은 명실상부한 단일경제체제를 갖게 됐다. 2010년 10월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서 유럽은 우리에게 더 가까운 이웃이 됐다.
지난 200, 300년간 세계를 주름잡았던 유럽인들은 왜 하나로 뭉치려고 했을까? 그 과정에서 개별 국가들 간의 차이와 갈등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원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에우로페(Europe)’에서 그 명칭이 유래한 유럽은 유라시아 대륙의 북서쪽에 돌출해 있는 작은 대륙(약 1050만㎢)이다. 여기에 라틴족·게르만족, 그리고 슬라브족이 서로 화합·갈등·충돌하는 역사적 파노라마를 형성하면서 삶을 영위해 왔다. 자연스럽게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국가들이 출현, 부침을 거듭해 왔다.
유럽인들이 단결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였다. 두 번에 걸친 대규모 ‘골육상쟁’으로 세계사에서 유럽의 위세는 그 빛을 잃게 됐다. 상대적으로 미국과 소련이 새로운 초강대국으로 대두, 이른바 냉전체제를 구축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국제적 발언권도 상실한 유럽에서 옛 위상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전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윈스턴 처칠, 유럽 결속 처음 제기
대전 후 유럽의 결속을 처음으로 제기한 인물은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었다. 1946년 9월 스위스 취리히를 방문한 처칠은 ‘유럽합중국’ 창설을 제안하는 연설을 했다. 전후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이 결속해야 한다고 역설했으나, 그 이면에는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우선시하려는 속셈이 깔려 있었던 탓에 그의 외침은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구체적인 시도는 1·2차 대전의 실질적 수행자이자 국경을 맞대고 있던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심정적으로 결속의 물꼬를 튼 사람은 독일 초대 총리였던 아데나워와 프랑스 경제학자이자 외교관으로 ‘유럽통합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 모네(Jean Monnet)였다. 양국의 화해를 통해서만 유럽의 질서 구축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처칠에 대해 장 모네는 이를 실현할 출발점으로 유럽의 철강 및 석탄 관련 산업의 공동관리 방안을 제기했다. 이러한 호혜적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슈망(Robert Schuman)은 1950년 5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안했다. “독일과 프랑스가 석탄과 철강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협정을 체결하자”는 내용의 슈망계획에 대해 유럽의 다른 국가들이 호응하면서 마침내 유럽 통합의 첫걸음인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1951. 4)가 최초 6개국을 회원국으로 출범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일단 물꼬를 트자 유럽 통합의 열기가 더욱 고조됐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의 성과에 고무된 회원국들은 더 결속력이 강한 연합체를 모색하게 됐다. 1957년 3월 이탈리아의 로마에 모인 회원국 대표들은 이러한 필요에 공감하고 조약을 체결했다. 이때 태동한 것이 바로 유럽경제공동체(EEC: European Economic Community)로서 회원국들 간에 관세를 철폐하고 공동 정책 및 법안을 마련키로 합의함으로써 대규모 유럽시장 출현의 초석을 놓았다.
그런데 유럽 국가들이 공동으로 운용하는 기구가 3개로 늘어나면서 효율성 차원에서 통합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래서 1967년 7월 1일 서유럽 정치·경제 협력기구인 유럽공동체(EC: European Community)가 탄생했다. 이는 기존 유럽석탄철강공동체와 유럽경제공동체, 그리고 로마조약에 의해 1958년 설립된 유럽원자력공동체 등을 브뤼셀에 자리 잡은 집행위원회로 통합한 것이다. 1973년 영국의 가입을 시작으로 가입국 수도 점차 증가해 1986년까지 총 12개국에 이르게 됐다.
한편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의 대표 국가들이 주도하는 유럽공동체에 대항해 스웨덴·노르웨이·오스트리아 등 유럽 7개국은 1960년 1월 이른바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을 결성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표방하면서 경제적으로는 냉전체제 하에서 동서 양 진영에 양다리를 걸쳐 상당한 어부지리를 얻었으나, 1989년 냉전체제 종식과 더불어 하나둘씩 유럽공동체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유럽공동체 결성 후 경제적 통합은 간혹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으나 순조롭게 진행돼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비해 정치적 통합은 반대세력의 방해 때문에 느리게 진행됐다.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경제적 통합과의 괴리 현상이 심화되면서 정치적 통합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특히 냉전체제 종식 후 소련이라는 한 축이 사라지면서 세계 초강대국으로 남게 된 미국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동시에 중국·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약진하는 등 세계정세의 변화는 망설이던 유럽 국가들을 움직이게 했다.
유럽 12개국, 네덜란드서 조약 체결
마침내 유럽 12개국의 수뇌들은 1991년 12월 초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히트에서 조약을 체결, 정치적 통합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이들은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외교·국방 분야를 아우르는 진정한 통합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명칭을 ‘유럽공동체’ 대신 통합의 강도가 강하게 느껴지는 ‘유럽연합’으로 변경했다. 유럽중앙은행 설립과 단일통화 사용(2002년 유로 화폐로 통일), 공동방위체제 구축, ‘유럽시민’ 제도 도입 등에 합의함으로써 유럽의 결속력은 더 커질 수 있었다. 냉전 종식 후 소련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동유럽 국가들에게도 1997년 이래 가입이 허용돼 오늘날 유럽연합은 말 그대로 유럽 대륙의 거의 대부분 국가들(현재 총 28개국)을 포괄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유럽인들이 서로 뭉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통합된 유럽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통합의 실현을 표방하나 결속 추구의 진정한 속내는 경제 논리라고 볼 수 있다. 세계화 시대의 도래에 미국이나 일본 등 경제 강국들에 공동 대응하려는 방책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궁극적 통합을 지향하는 유럽의 미래가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국가적 특성의 소멸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남아 있으며, 무엇보다도 개별 국가의 권력은 축소됐으나 개인의 정체성 귀속 대상으로서의 국가 역할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즉 통합유럽의 제도적 형식을 결속의 정도가 높은 ‘연방제’로 할 것인지, 아니면 ‘정부 간 협력체’ 차원에 머물도록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Songs From a Secret Gard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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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가든: Songs From a Secret Garden
Secret Garden 1995–present
No.1 - Noctur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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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Title: Songs From a Secret Garden - Secret Garden
Studio/Live Studio Mono/Stereo Stereo Audio CD (April 16, 1996) Label: Polygram Records / PHILIPS (P) 1995 PolyGram A/S Norway (C) 1996 Philips Classics Marketed in the UK by Philips 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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