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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안삼 (작곡가 ,칼럼리스트)
지금의 나를 낳게 하신 은사 김동진 교수님의 비보를 조금 전 중앙일보 김호정기자의 전화를 받고 알게 되었다 김동진 스승과 나의 인생에 대한 인연 그리고 잊지 못할 기억을 담으며 아픔 마음 담는다 1961년 서라벌 예대 기악과에 입학했던 당시 스승은 화성학 지도를 담당 하셨다 문제를 풀어가며 지도 받던 1학년 1학기 말 쯤 랫슨이 끝난 후 작곡과로 전과 하라우! 그 한 마디에 2학기 작곡과로 전과 이 후 경희대로 떠나 나는 다시 스승을 따라 경희대 편입 했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 있듯 나는 늘 선생님을 존경 하며 따랐으나 스승은 거의 말씀이 없었다 엄격한 가르킴 만이 있었다 잔 정도 웃음도 칭찬도 없었다 언제나 고개만 끄덕였다 묵묵히 지도만 하셨다
당시 스승의 의복과 신을 나는 눈 여겨 보았다 이유는 변화가 없었다 언제나 단벌 인듯 늘 그렇게 입고 계셨다 음악과 모습은 판이했다 예술가 다운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1961년 여름 우기때 신은 짧은 고무 장화는 그 해 가을까지 신고 다니셨다 비가 그쳐 햇빛이 쨍쨍 한 여름 부터 가을까지 무던히도 참고 있는듯 보였다 아! 작곡가가 가난 하다드니 저렇게 어렵게 사시는구나 ! 내가 이 다음 작곡가가 되면 스승같이 고무 장화에 두어 벌 양복으로 견뎌야 할까 ? 이 후 어느날 스승집에 다녀가라는 기별있어 찿았다 조금 이외였다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셨다는 것을 알았다 큰 이층 양옥이었으며 2층은 100 여명이 연습할 수 있는 공간과 피아노가 놓여져 있었으며 1층 넓은 거실은 검 붉은 비로도 커텐이 드려져 있었다 당시 베토벤 합창 교향곡 리허설을 직접 지도하고 계셨 이 후 나는 시골에서 교사로 오랜 세월 근무 하던 중 1980년 뉴욕으로 떠났다 2000년 나는 서울 영상아트 홀에서 스승을 모시고 작곡 발표회를 갖게 되었다 수십년 세울이 흘렀다 이 후 나는 한국예술가곡을 창립 했으며 100인 창작음악회를 만들었고 포럼.우리시우리음악단체를 창립 하면서 가곡단체를 활성화 하는데 주력 했으며 이후 4인 작곡가 (최영섭 이수인 임긍수 이안삼) 활동을 개시 하였다 당시 스승은 이미 90세를 훨씬 넘겨 기력이 쇠약 해 지므로 가끔 자문을 구하기만 했다 스승은 내게 그래 잘 했어 열심히 하여라고 당부 하셨다 스승의 말씀 중 몇 가지 기억을 요약 해 보면 참 스승의 아름다운 세계를 엿 볼 수 있다 90세 되든 해 서초구민 회관에서 사무실에서 만났다 내가 스승께 말했다 선생님 이번 MBC 가곡제 선생님 작품 곡명을 알려 드렸더니 스승은 내개 이렇게 말씀 하셨다 아니 이 봐 ! MBC 가곡제는 왜 내 작품을 해마다 넣는지 모르겠어 ? *아니 젊은 작곡가 많는데 새로운 작품을 알리려 들지 않고 왜 내 작품을 자꾸만 연주 하는지 모르겠어 ! *협회 신작 작품 선곡 후 출연료 예산을 보구선 이게 왜 이렇게 많은 출연료를 성악가에 지불 하느냐? 작곡가 신작 작품을 노래 하는데 시인 작곡가 들이 돈을 내어 공연 하는 마당에 무슨 출연료를 준다는게야 예술가 들이 무슨 돈이 있어 ! 작곡가 작품은 그냥 돕는게 맞지 않은가 ? *한국예술가곡 연합회 회의 마친 겨울 밤 9시 넘은 캄캄한 밤 귀가 길 스승께 택시로 모실려고 차를 새웠다 스승 말씀 ! 이것 봐 나는 혼자 갈 수 있어 타지 않겠어 전 철을 이용 하겠다 몇 분간 신간 하다 결국 전철 타고 귀가 . * 포럼.우리시우리음악 회의 후 나를 불러 선물 하나 하겠네 받아 본즉 스승께서 60세쯤 녹음하신 음반 한 장을 받았다 직접 노래 하셨다며 건낸 음악 놀라운 작품 발견 *의복은 30년 여년 전 입으셨던 오바코트 퇴색되고 낡은 의복 수 십년 전 입었던 오리털 잠바 , 오바코트 즐겨 입고 계심 * 소식가로 음식 남으면 강아지 먹인다며 비닐 봉투에 싸 호주머니 넣어 귀가. * 선생님 가고파 원본 갖이고 계십니까? 대답 않음 *회의 시작 부터 끝 날때까지 당신께서 발언 한 적 지금껏 한번도 없음 * 한 평생 술.담배 하지 않음 * 바이올린 실력 뛰어 나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으나 제자 앞에 연주 한적 없음 * 학교 (경희대) 렛슨 하다 조율이 정밀 하지 않으면 손수 조율 해 사용함 * 창 달린 운동모 즐겨 씀 수년간 사용하다 보니 창이 우거러 짐 * 회의때 참석 하시는데 사모님께서 돈 많이 소지 하면 위험 하다며 전철비 쓰라며 언제나 1만원만 주심 * 94세 되든 해 모처럼 축사 부탁 드렸더니 20 여분간 꼿꼿 한 자세로 한국 가곡의 정확한 방향제시 놀라운 기억력에 감탄!
작품성향 *서정적이며 낭만 . 희망의 메세지 담고 있으며 고향그리는 그리움 배인 선율 짙게 내려져 있음 *이은상 시인의 작품 즐겨 사용 하였으며 음악의 효시라 일컽는 홍난파 이후 근대 가곡사 거목으로 마감. *민족적이며 고전적 내용 담긴 소재로 접근 확대 하며 근대 음악 기법으로 승화 시키는데 성공 하였으나 현대 음악.조성없는 무조 기피 .전통 화성학 기초둔 민족주의 음악 지향 *가곡: 자유시를 즐겨 쓰며 형식 구애 받지 않고 작품 중 조성 변화 즐겨 사용
대표작 가곡 : 가고파.목련화.수선화. 비롯 수 백곡의 작품 남김 국민가곡: 조국찬가 군가 : 육군가 비롯 많은 수 많은 작품 남김 경희대 음대 학장 .예술원 회원으로 가장 존경 받는 한국 작곡가로 자리 매김 향년 96세 일기로 2009년7월30일 서거
제 1 회 울림 예술 대상 수상자 좌에서 4번째 Ten 박세원(성악부문.서울대교수) 허방자(합창작곡부문,숙대교수) 이안삼(가곡작곡부문)박신화(합창지휘부문 ,이대교수) 이혜자(합창지도부문)
출처: 이안삼카페 글: 이안삼 http://cafe.daum.net/ansamlee/QIXV/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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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시대의 큰별이셨던 선생님의 명복을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