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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화의 길, 생명의 길, 사람의 길(평생사랑)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해와달
<16일차 소식> 버스는 빠지고 더운 날씨에 물은 동나버렸습니다. 한 걸음 걷고 한걸음 걸어 하늘에 기도합니다. 땀으로 온통 범벅이 된 몸을 땅에 뉘이고 대지의 기운에 감사드립니다. 달팽이 한 마리, 지렁이 한 마리 기어가듯 소리 하나 없고 오직 생명의 발걸음과 평화의 마음만 있을 뿐입니다.
<또 하루가 지나고> 늦은 밤. 남원 대복사의 도움으로 사찰에 숙소를 잡은 순례단이 모두 곤하게 잠을 청합니다. 나뭇가지에 걸린 달은 환하게 빛나고, 그 주위에는 구름이 떠나고, 풀벌레 소리 요란합니다. 한 밤중 고요한 산사의 사찰은 순례단의 마음을 맑게 해줍니다. 지금은 이렇게 산사의 밤 모습에 마음을 가라앉히지만, 오늘 하루 정말 힘든 날이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던 가을날은 도로 위를 기어가는 순례자의 몸을 달구고, 지나는 차량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달구어질 대로 달구어진 도로의 열기에 땀은 비가 오듯 하였습니다. 아침에는 순례단의 25인승 버스 사고가 있었습니다. 숙박하였던 곳을 청소하고 길을 나서던 순례단. 모두 순례 버스에 탑승하고 이동하려는 순간, 갑자기 버스가 기우뚱합니다. 모두 놀라 차량을 멈추고 살펴보니, 순례단이 탑승한 상태에서 후진하던 버스의 뒷바퀴가 배수구에 빠져버렸네요. 아침부터 황당한 일을 당해 당혹스러웠으나, 다행히 차량 위치를 조금씩 조정하면서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순례단 버스는 평상시는 이동용으로 사용되지만, 숙박장소가 없는 지점에서는 야간에 숙박용으로 사용되곤 합니다.
아침에 버스로 한바탕 소란을 겪고 출발장소에 도착하였습니다. 19번 국도 남원 방향에 있는 주유소 출구 지점에서 하루의 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19번 국도는 정말 위험하더군요. 순례단의 뒤쪽에서 안전을 위해 차량을 통제하던 경찰차마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접근하던 대형트럭에 의해 사고가 날 뻔 하였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접근하는 트럭에 놀란 경찰관이 5m 이상을 급히 피해가는 상황에, 차량을 통제하던 경찰관뿐만 아니라 순례단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가하면 너무나 빠르게 차량이 왕래하는 이 도로에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위험천만하게 접근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순례단 진행팀이 발견하여, 출발 장소의 주유소로 안전하게 피신시켰는데, 아마도 길을 잃었던 모양입니다. 아침 8시. 순례는 매일 같이 이 시간에 시작됩니다. 오늘은 출발과 함께 순례자 두분의 거친 호흡이 시작되었습니다. 출발 22분이 지난 시각. 2번째의 휴식시간. 문규현 신부님 얼굴에 땀이 가득하고, 수경스님은 그 상태 그대로 진언을 외우고 있습니다.
날은 참 덥더군요. 불볕더위라는 말을 가을에도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덥더군요.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너무나 푸르렀습니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 원망스럽더군요. 가만히 서 있기에도 땀은 차오르고, 너무나 강한 햇살은 몸을 통과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더위에 두분의 순례자는 말없이 오체투지를 진행합니다. 죽비소리에 화들짝 놀라 일어서고, 비 오듯 옷은 땀으로 젖어드는 상황에서도 다시 대지와 하나 되는 오체투지를 계속 반복할 뿐입니다. 오직 한 번의 절과 한 걸음에만 집중할 뿐입니다. 5~10분 진행 이후 의복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고, 짧은 휴식 시간마다 순례자의 달구어진 몸의 열기를 낮추기 위해 노력합니다.
짧은 구간을 진행하는 순간에 도로 위 서 있는 진행팀의 등줄기로 땀이 흐르고, 강한 햇살에 드러나 팔뚝은 따갑기만 합니다. 간혹 부는 바람 한줄기가 몸을 감싸면 더 없이 자연의 순환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출발 1시간 30분이 된 시각. 짧은 휴식 이후 몸을 먼저 일어선 문규현 신부님이 수경스님과 ‘누가 먼저 일어섰는지, 갈길 먼데 어서 가자며, 권투 자세를 취하며’ 순례단에 웃음을 줍니다. 너무나 피곤한 두분이 오히려 진행팀과 순례단을 격려합니다.
오전 출발 이후 3시간이 되는 시각. 신부님과 스님이 번갈아가며 신음소리를 냅니다. 다리를 지나는 순간 트럭이 지나가며 다리가 요동칩니다. 곡선 구간의 도로에서 당하니 너무나 무섭기만 하더군요. 하지만 두분은 여전히 오체투지를 이어갈 뿐입니다. 그렇게 상황이 어찌되든 단 한 번의 절과 발걸음에 모든 것을 집중할 뿐입니다. 그 과정 하나 하나에 온 정성을 다할 뿐입니다. 오후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후 구간 첫 100미터를 진행하고 난 이후, 몸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고, 점심시간에 말라버린 상의는 또다시 땀으로 젖어 있습니다. 오후에 약 20분간의 중간 휴식시간. 다행히 주유소 인근에 공터를 만났습니다. 너무나 더웠던 가을날에 준비하였던 물은 동나고 한 평의 그늘도 없었습니다. 차량으로 그늘을 만들고, 급하게 물을 마련하여 함께 나눕니다. 단 한 잔의 시원한 물에 세상 근심이 다 사라지는 듯 합니다.
오늘 순례는 이렇게 26번의 출발과 26번의 휴식을 반복하였습니다. 26번의 쉼과 출발 속에서 우리의 희망을 새롭게 찾고 이야기하며 대지를 모시고, 우리 시대 희망의 촛불을 한번씩 기억하고 모셔갑니다. <늙은 형님 신부는 오늘도 순례를 기록합니다.> 한 사람이 길에서 울고 있습니다. 동생과 같은 두 순례자의 기도수행을 기록하겠노라며 먼 길을 달려온 한 늙은 사제가 순례단과 멀리 떨어진 길 위에서 눈물을 보입니다. 차마 순례자들 앞으로 와서 그 광경을 볼 수 없노라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가 울면 순례에 참여한 사람들도 덩달아 눈시울이 불거집니다. 그의 슬픔이 순례 참가자들에게도 전염이 됩니다. 기록 장비를 손에 든 늙은 사제는 울지 말자 다짐하였다고 말씀하시면서도 두 순례자의 앞에만 서면 눈물을 보이려고 합니다. 달구어진 아스팔트 차도의 열기를 견디기 어려워 쉬지도 못하고 바로 일어서야 하는 두 순례자를 보며, 진행팀에게 일정을 짧게 조정하자고 조릅니다. 두 순례자가 기어이 그 길을 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짧은 휴식시간마다 조금 더 쉬라고 재촉합니다. 길 위에 목숨을 내어 놓은 늙은 동생 신부와 그의 도반이 되어가는 늙은 스님의 모습을 말없이, 때로는 소리 없는 울음으로 기록하곤 합니다. 오후 중간 휴식 시간 아스팔트 열기에 누워버린 두 순례자를 보기 힘들다며 멀리 떨어져 담배만 피우는 그의 눈에 눈물이 보입니다.
한평생을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였던 문정현 신부님. 길 위의 신부라 불리는 그가 그렇게 눈물을 보입니다. 동생과 같은 두 순례자의 고행이 마음 아파서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지난한 어려움에 가슴 아프기 때문일 것입니다. 너무나 메말라버린 우리 사회에 생명과 평화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더욱 가슴 아파 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희망의 작은 촛불이 살아나고, 그 선한 기운이 우리 사회를 공존의 땅으로 만들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순례에 대한 기록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오늘도 순례를 기록하고 함께 나누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고 있습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오체투지 순례단이 지리산을 내려오던 날부터 평화의 인사를 나누던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순례단의 발걸음이 가벼워지도록 매일 같이 기도하시며, 누구보다 먼저 순례 현장에 도착하여 여러 일을 도맡아 도와주셨습니다. 구례 ‘수평교회’의 김광철 목사님은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이라는 문구가 참 좋은 문구”라며, “종교가 다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는 것은 종교인이라 할 때 사람(人)이라는 가치가 우선시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며, “그 다음에 종교적인 가르침인 생명과 평화라는 문구가 나오기에 적절하고 좋은 문구 ”라며 순례의 주제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김광철 목사님은 “계속 참여하면서 마음의 변화도 생겼습니다. 현재는 살면서 놓친 부분을 생각하면서 걷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을 낮출수록 땅위에 관심이 향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갑갑한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조지 오엘은 ‘혁명은 실패 한다’라고 했습니다. 현 시대에 그 어떤 지도자가 나와도 시대적 흐름에 편승하기 때문에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바꾸지 않는다면, 혹은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세상은 바꿀 수 없다.”며 우리 스스로의 삶과 가치관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오늘 참여하신 분 중에는 전주에서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문규현 신부님이 계시는 전주 평화동 성당의 신자들은 매주 월-수-금에 함께 모여 순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황의옥 님은 “두 분이 고행의 길을 가야만 하는 시대 상황이 안타깝다”며,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겠지만 하필 성직자들께서 이 길을 가시는 것이 안타깝고 부끄러울 뿐”이라며 땅만 바라보셨습니다. “문제는 사회적 갈등입니다. 갈등은 모든 평화를 깨뜨리며 악순환의 굴레를 만듭니다. 이러한 갈등을 정치권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어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민초들이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평화동 성당에서 함께 참여하신 박혜정 수산나 님은 “오늘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 신부님께서 힘드실 텐데 참으로 애잔한 마음이 생겼어요. 하지만 작은 몸짓이지만 전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특히 생명 경시 사상이 난무합니다. 또 위정자들이 없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지만, 두 분은 이런 문제를 껴안고 생명과 평화를 위해 몸을 던지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에 부응하려면 각자의 역할과 본분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말없이 두 분을 지지하며 기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밝히고 움직이는 것은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자신들만의 산성을 높게 올린 특정한 몇몇 사람들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가진 것은 없고 권력은 없으나, 더불어 살기 위해 노력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이 밝게 움직이도록 자신의 직분을 다하고, 그 자리에서 평화의 기운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세상의 주인입니다. 그들이 주인으로서의 자기 권리를 이야기하고, 주인으로서의 자기 삶의 결정권을 온전히 가질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생명평화의 세상일 것입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송희철, 정재권, 유병희(서울) / 박장건(구미) / 염경석 외 2명(전북인터넷신문 참소리) / 서기홍(남원) / 김광철 목사(구례 수평교회) / 강순애 외 4명(남원 선원사) / 진여화(실상사) / 김영란 외 1명(남원 생협) / 임경화, 김명숙(화계사) / 김희택(광주 윤함봉 기념사업회) / 황의옥 외 20명(평화동 성당) 등이 함께 순례를 진행하였습니다. <일정 안내> ● 9월 20일(토) : 남원시 고죽동 고죽로터리 1km 전방(시작) - 고죽동 17번 국도(경유) - 광치동 광리초터리(태양원룸 인근. 종료) ● 9월 21일(일) : 휴식 ● 9월 22일(월) : 광치동 광리초터리(태양원룸 인근. 시작) - 춘향터널(경유) - 오리정 휴게소(종료. 예정)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전북 인터넷 신문 참소리에서 마음을 모아 후원해 주셨습니다. - 광주 들불기념사업회에서 생수와 얼음, 과일 등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 평화동 성당 황의옥님께서 마음을 모아 후원해 주셨습니다. - 전주 평화동 성당에서 생수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 남원의료원 병리실장 조성호님께서 음료수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 서울 화계사 신도님들께서 음식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 남원 도통동 성당에서 음료수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 남원 경찰서의 순례단 안전을 위한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 도보순례 참가 일정과 수칙은 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8. 9. 19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진행팀 문의 : 010-9116-8089 / 017-269-2629 / 010-3070-5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