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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조이 선(joy sun)'이다.
고고학적으로만 추리가 가능했던 태고 시대의 인류역사가, 아리랑과 알파벳의 뜻이 해석됨
으로써, 언어를 통해 보다 확실하게 다음과 같이 밝혀지게 되었다. "빙하기가 끝나고 기원전
5000년경을 전후하여 중앙 아시아의 아랄 해(Aral Sea) 일대로 모여든 동서의 원시 종족들이
수메르 인(쓰리랑)과 아리아 인(아리랑)이란 두 거대 집단으로 성장했고, 이들이 이동하여
세계의 거의 모든 고대 문명들을 탄생시키는 주체가 되었다."
수메르인과 아리아인의 이동은 너무나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어서 그들의 역사는 이주지에서신화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각국의 건국 신화에는 수메르인 이나 아리아인의 역사가,또는 이 두 종족의 역사가 함께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건국 신화인 단군 신화에도 이들의 이동 역사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근거하여 "단군 신화에 나오는 환웅의 무리는 아리아인이고, 웅녀는 수메르인이다."라고 보게 되면, 단군 신화는 자연스럽게 역사로 환원된다. 너무 의외의 일이어서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뿐이지, 이것은 부정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란 것이 언어를 통해 증명된다.
다음은 고려 때 일연(一然)이 편찬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단군 신화'를 요약한
것이다. (주 3-1)
【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나간 2천년 전에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는 이가 있어 아사달
(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고 하였으니 고(高)와 같은 시기였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내려와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檀樹) 아래 이르러 여기를 신시(神市)라 했다. 이 분이 환웅천왕(桓雄天王)이시다. … 그 시절에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에 살면서 신령스런 환웅에게 사람으로 화하게 해 달라고 늘 빌었다. … 환웅이 신령한 쑥과 마늘을 주고,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형체로 되리라 하였다. 곰과 범은 그것을 먹고 스무 하루[三七日] 동안 기(忌)를 하여, 곰은 여자의 몸으로 되었으나, 범은 기(忌)를 못해서 사람의 몸으로 되지 못하였다. … 환웅이 웅녀(熊女)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 분이 단군왕검(檀君王儉)이시다. 그는 …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조선(朝鮮)이라 일컬었다. 또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는데 여기를 궁홀산(弓一作方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하니 …" 】
환인(桓因)은 '카인(Cain)'이다.
환인의 서자 환웅이 무리 3천을 거느리고 내려왔다는 기록은 그들이 어딘가에서 이주해
왔다는 뜻이다. 그들은 어디서 왔고, 어떤 종족이었을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단군 신화는 신화의 굴레를 벗을 수가 없다. 대전제를 역사적 사실로 보면, 환웅의 무리는 수메르 인이거나 아리아인이다. 그러므로 수메르인과 아리아인의 자취를 세계의 신화와 역사 속에서 찾아 그것을 환웅의 무리에 연계시켜 보면, 환웅의 무리가 어떤 종족이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가 있을것이다.
(1) 메소포타미아의 갈대아(Chaldea) 우르(Ur)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한 아브라함(Abraham)은 아담(Adam)과 이브(Eve)의 셋째 아들 셋(Seth)의 후손으로『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갈대아 우르는 수메르 인의 도시 국가였고, 아브라함은 수메르 인들의 도시 국가들이 멸한 뒤에 가나안으로 이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수메르 문명을 일으켰던 수메르 인의 후손일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수메르 인은 셋의 후손이다.
(2) 셋의 후손들이 쓴『성경』에 나오는 인명·지명들 중에는 한국어와 뜻이 연계되는 것들이 있다. 이것은 셋의 후손들 중의 일부가 한국으로 이동했다는 증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반도로 이주한 셋의 후손은 쓰리랑 즉 수메르 인이다. (주 3-2)
(3) 이집트의 통일 신화에 나오는 셋(Seth)은, "수메르인이 세계 4대 고대 문명들을 창건했다."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아랄에서 이동한 수메르인이다. (84쪽 참고)
위와 같이 아담과 이브의 삼남 셋(Seth)이 수메르인이라면, 수메르인과 아리아인은 아랄
지역에서 태어났으므로, 장남 카인(Cain)은 아리아인이다. 이것은『성경』「창세기」에
아랄의 역사가 압축되어 있다는 뜻이다.『성경』에 기록된 '카인·아벨·셋'의 이야기를 역사로복원시키면 다음과 같다.
장남 카인은 농사하는 자로 기록되었다. 장남이란 기록은 카인 족이 제일 먼저 아랄 지역으로 이주하였다는 뜻이고, 농사하는 자란 기록은 일찍부터 비옥한 삼각주 일대를 차지하고 농경을 시작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카인은 지중해 일대에서 빙하기를 지내다가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아랄 해 일대로 이주한 백인계였다고 볼 수 있다. 카인의 후예들이 아리아인이다.
차남 아벨(Abel)은 양치는 자이며 카인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되었다. 이 기록은 아벨 족이 두 번째로 이주했고, 유목민이었으며, 아리아인이 아벨족을 쫓아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아벨족은 아프리카에서 아랄 지역으로 이주한 흑인계였다고 볼 수 있다. 아벨족의 일부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일본의 아이누(Ainu)가 되었고, 아이누가 흑인계였다고 볼 수 있는 언어의 자취와 유전학적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177쪽 '흑해', 279쪽 '아이누는 아프리카 인의 후예다.' 참고)
삼남 셋은 아벨이 카인에게 죽임을 당한 뒤에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셋은 동북아시아에서이주한 동방계 종족이었다고 볼 수 있다. 셋의 후예들이 수메르인이다.
이상은 추리에 불과하지만 당시의 상황과 연계시켜 보면, 역사성이 충분하다. 당시 아랄 해의남쪽 산악 지대는 원시 상태였기 때문에 남쪽에서의 인구 유입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아랄에서 가까운 지중해 일대에서 살았던 백인계인 카인족이 제일 먼저 이주했다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 계인 아벨족은 거리가 멀어 유입된 수가 적어 카인족의 힘에 밀렸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다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동북아시아계인 셋 족은 제일 늦게 이주했지만 계속 유입되었기 때문에 카인족과 대치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구의 증가로 종족들간의충돌이 빈번해지면서, 셋 족 즉 수메르 인들은 기원전 3500년경부터 세계로 이동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단군 조선이 건국된 '지나간 2천년 전'은 기원전 2000년경이다. 이 시기에아랄에서 이동한 종족은 아리아인이므로, 환웅의 무리는 아랄에서 동쪽으로 이동한 아리아 인으로 볼 수 있다. 또, 환웅의 아버지 '환인'은 '카인'과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으므로, 환웅은 수메르인이 아니고 아리아인이다. '환인(桓因)'이란 말은 동쪽으로 이동한 아리아 인의 기록이고, '카인(Cain)'이란 말은 메소포타미아로 이동한 수메르인의 기록이어서 발음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둘은 알알 문명의 신화에서 기원한 동일체라고 할 수 있다
'환인(桓因)'이라는 말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하늘의 신이라는 말인 '하느님'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불교의 영향을 받아, 산스크리트 어의 'Sakrodevendrah'를 한자로 옮긴 '석제환인다라(釋帝桓因陀羅)'의 '환인(桓因)'이 어원이라는 설도 있다. 이 설들도 일리는 있다. '환인'과 '카인(Cain)'은 '하느님'과 소리가 비슷한 점으로 볼 때, 이 어휘들은 어원이 같다 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석제환인다라'의 '환인'은 인도로 이동한 수메르 인들과 아리아 인들이 갖고 간 아랄의 종교에서 전해진 천제 '카인(Cain)'이란 말을 한자로 음역한 것이라고 볼수 있기 때문이다.
환웅(桓雄)은 시르 다리아 강 출신의 아리아인 이다.
'환인의 서자 환웅'이란 기록에서 '서자(庶子)'란 말은 없어도 될 것 같은데, 떼어버리지 않고 남겼다는 사실이 단군 신화의 역사성에 힘을 더한다. '서자 환웅'이란 말에는 '시르 다리아 강 출신의 아리아 인'이란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 다리아 강의 아리아인은 기원전 3500년경부터 시르 다리아 강의 수메르인을 밀어내기 시작했고, 수메르인이 이동한 뒤에 아리아 인의 일부가 시르 다리아 강으로 이동하여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 후에 아무 다리아 강의 아리아인은 환인의 적자로, 시르 다리아 강의 아리아인은 환인의 서자로 지칭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자'란 기록이 이렇게 해석됨으로써, 알타이 어계종족들과 경계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들과의 충돌이 심했다고 볼 수 있는 시르 다리아 강 유역의 아리아인이 먼저 세계 각지로 이동하게 되었고, 그 일부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주장이 역사성을 갖게 된다.
한국어와 영어에 어원이 같은 어휘들이 최소한 200여 개 있다는 것은 고조선을 건국한 종족은 아리아인이고, 그들의 언어가 한국어의 한 뿌리가 되었다는 증거다. 한국어가 인도유럽 어족의 언어들 중에서 영어와 가장 친근한 까닭은 한국으로 이동한 환웅의 무리와 영국으로 이동한 아리아인이 같은 언어권에서 제일 먼저 이동했고, 새로운 이동에 밀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끝 반도와 서쪽 끝 섬으로 각각 이주했기 때문이다.
단군(檀君)은 다곤(Dagon)과 어원이 같다.
'단군'의 어원은 가나안 지방의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인 '다곤(Dagon)'과 기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알알 문명의 신화가 종족의 이동과 더불어 여러 이주지에 파종되었기 때문에 기원이 같은 이름들이 그들의 이주지 곳곳에 있는 것이다.
'조선(朝鮮)'의 뜻은 '좋은 태양 [joy sun]'이다.
『삼국유사』에 朝鮮(조선)은 국호로, 阿斯達(아사달)은 도읍지로 구분되어 기록되어 있다. '조선'과 '아사달'은 무슨 뜻일까? '朝(조)'는 아침으로 해석되지만, '鮮(선)'은 해석이 어렵다. 그런데도 '아사'는 아침의 고어이므로 '아사달'의 뜻은 '아침의 나라'아침의 땅'이고, '조선'은'아사달'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는 억지가 통용되고 있다. 이것은 아리아 인의 일부가 한반도로 이동한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생긴 실수다.
고조선이 건국된 기원전 2000년경에는 한자가 없었으므로 조선과 아사달의 한자 표기는
나중에 생긴 것이다. 따라서 조선과 아사달의 원래 소리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조선과 아사달의 뜻이 같다는 해석에는 문제가 있다. 왜냐 하면, '아사달'의 뜻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朝鮮(조선)'이라면, 건국 당시에는 '조선'이란 국호가 없었고 이런 말조차 없었다는 주장이 되어, 이것은『삼국유사』의 기록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조선'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조선'이란 표기가『사기』에 있는 것으로 볼 때, 기원전2세기 이전에도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전의 기록은 없지만, '조선'이란 국호가 건국 당시부터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삼국 시대 초기까지의 국호·지명·촌장의 이름들은 한자의 뜻보다 소리에 원 뜻이 있다고 볼 수 있다. (133, 144쪽 참고) 이름들에 쓰인 한자의 소리들을 아리아 어로 해석하면 서로의 뜻들이 연계되면서 역사성이 살아나지만, 한자의 뜻으로 해석하면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성을 제치고, 최초의 국가 명칭인 朝鮮(조선)만이 원래의 소리가 아니고 아사달의 뜻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주관적이다.
(2) 아리아인 들이 세계로 이동하여 세운 나라들의 국명이나 도읍지의 명칭에는 당시의
종교와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선'과 '아사달'에도 당시의 종교와 철학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특징을 무시하고 '아사달'과 '조선'을 한데 묶어서 '아침의 나라'라고 해석하는 것은 주체성을 잃은 발상이고, 너무 감상적이다.
(3) 일본을 통일한 '야마토 조정[大和朝廷]'은 일본의 야마토 지역으로 이주한 고조선계
아리아인 들이 세운 나라였다고 볼 수 있는 언어 증거들이 일본의 전통 어휘들 속에 있다.
따라서 '大和朝廷(대화조정)'은 '야마토 조선'을 음역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조선(朝鮮)은 한자의 뜻과는 무관한 아리아 어 어휘였다고 할 수 있다.
(4) 아사달은 일본의 아스카[飛鳥, 明日香]와 기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아사'와 '아스'는
'아리아 인'을 줄인 말이고, '달'과 '카'는 장소를 뜻하는 말인 '들'과 '곳'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사달'과 '아스카'는 먼저 이주한 아리아 인들이 새로 이주해 오는 자기 종족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붙인 지명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아사달'은 영어로 '아리아 인 의들'이란 말인 'Ar's dale'과 어원이 같고, '아스카'는 영어로 '아리아 인의 안뜰'이란 말인 'Ar's court'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사달'의 뜻은 '아침'과 무관하다. (266쪽 '아스카' 참고) '飛鳥(비조)'의 원래 읽는 소리는 무엇이었을까? '飛鳥(비조)'의 일본식 한자음은 '아스카'가될 수 없고, '明日香(명일향)'만이 '아스카'라고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전통적으로 둘 다 '아스카'라고 읽는다. 飛鳥(비조)를 아스카라고 읽는 이유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주 초기의 이름이므로 고대 한국어로 보고, '飛鳥'를 한국식으로 '비조'로 읽으면 영어로 곰의 복수형 표기인 '베어즈(bears)'와 소리가 비슷해진다. '베어'라는 말은 '부여(扶餘)'라는 국명·지명에서 볼 수있듯이 아리아 어였다고 볼 수 있으므로, 飛鳥(비조)는 부여계 아리아 인들이 일본으로 이주하여 세운 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은 국호였고 '아사달'은 도읍지였듯이, '비조'는 국호였고 '아스카'는 도읍지였다. 그렇다면 왜 飛鳥(비조)를 '아스카'라고 읽게 되었을까?
일본 천황의 시조는 대가야 출신이다. (248쪽 참고) 일본은 이런 사실들을 숨기고 천황을
신격화하는 것이 지배 체제의 유지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천황의 뿌리가 한국인
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飛鳥(비조)'를 한국식으로 '비조'라고 읽지 않고 '아스카'로 읽었다고 볼 수 있다.
(5) 아리아 인들은 태양신을 섬겼기 때문에 '좋은 태양'이라는 말인 '조이 선(joy sun)'을 나라이름으로 정했다고 볼 수 있다. '조이 선'을 한자로 표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글자 중에서 朝鮮(조선)이 선택된 것은 '조이 선'의 뜻과 소리에 朝鮮(조선)이 가장 잘 어울렸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으로 이주한 아리아 인들은 飛鳥(비조)가 곰이란 말인 베어즈(bears)의 소리를 살리며 동시에 자신들의 원주지 아랄 지역에 새가 많다는 사실과 잘 어울리는 표기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한자 표기들 중에서 飛鳥(비조)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볼 때, '좋은 태양'이란 뜻인 '朝鮮(조선)'의 원래 소리는 현재의 음인 '조선'이나 '조이 선(joy sun)'과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헤어진지 4천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朝鮮(조선)'과 'joy sun(조이 선)'의 발음에 별 차이가 없는 점으로 보아, 원형이 잘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평양(平壤)은 '알파'와 기원이 같다.
'평양'은 신라의 촌장 이름인 '알평', 유럽의 '알프스(Alps)', 고대 바빌로니아의 수신(水神)인 에아(Ea)의 신전 이름인 '아프스(Apsu)', 그리스 문자의 첫 글자 '알파(alpha)' 등과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평양'의 어원은 영어로 '평화스러운 아랄'이라는 말인 '피스 알(peace Ar)'과 같고, '알프스·아프스·알파'의 어원은 영어로 '아랄의 평화'라는 말인 '알 피스(Ar peace)'와 같다고 보면, 각 단어들의 뜻이 상통하기 때문이다.
태백산(太白山), 백악산(白岳山)
'태백산(太白山)'의 '태백'은 그리스의 '테베', 이집트의 '테베', '티베트 고원'의 '티베트' 등과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태백·테베·티베트'는 '텃밭'과 어원이 같고, 그 뜻은 '터가 되는 밭' 즉 '종족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백악산(白岳山)'은 '곰 산'이라는 뜻인 '베어 산(Bear 山)'의 어원이 되는 아리아 어를 음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흰 백(白)'자를 쓴 것은 시르 다리아 강 출신의 아리아 인들이 백곰을 토템으로 하였던 백인계 종족이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영어의 '베어(bear)'에 '참다·낳다·곰'이라는 뜻이 있는 것으로 보아, 'bear'의 어원은 'be + ar'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문장이 한 단어로 쓰이는 포합어의 티가 'bear'에 있다고 볼 수 있다. 'be + ar'은 '알이다'라는 뜻이어서 'bear'에 '낳다'라는 뜻이, 출산은 인내를 요구하므로 'bear'에 '참다'라는 뜻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알'을 생명의 기원으로 보게 되면서, '곰'을 종족의 기원인 '알(ar)'로 보고, 곰을 '알 이다(be + ar)'라고 부른 종족이 있어, 'bear'에 '곰'이란 뜻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궁홀산(弓一作方忽山), 금미달(今彌達)
'궁홀산(弓忽山)'은 갓(god)의 홀(hall)이 있는 산, 제사를 지내는 신전이나 임금의 궁궐이 있는산이라는 뜻이다.'방홀산(方忽山)'의 뜻은, '바알(Baal) 신(神)의 홀(hall)이 있는 산'이라고 할 수 있다.
'금미달(今彌達)'은 '가미들' 즉 '곰[熊]의 들'이라는 뜻이다. 궁(방)홀산과 금미달은 '검은 곰'을 토템으로 했던 수메르 인의 지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수메르 인의 궁(방)홀산과 금미달이 아리아 인에 의해 백악산과 아사달로 개명되었다고 볼 수있다.
곰과 범
환웅이 웅녀와 혼인하여 낳은 단군 왕검이 조선을 건국했다는 이야기를 역사로 환원시키면,
환웅 족이 곰을 토템으로 하는 종족과 손을 잡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곰은 어떤 종족이었을까?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은 동쪽으로도 이동했고, 환웅은 아리아 인으로 볼 수 있으므로, 아리아 인보다 먼저 이주한 수메르 인의 이야기가 단군 신화에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굴에 사는 곰과 범 중에서 어느 하나는 수메르 인이고 다른 하나는 원주민일 것이다. 수메르 인들의 이주지에 곰과 연관된 지명들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곰은 수메르 인을, 범은 원주민을 뜻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단군 왕검의 탄생은 아리아 인과 수메르 인이 손을 잡았다는 뜻이고, 이것은"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랄이가 났네."란 노래의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고조선 촌장들의 칭호는 아리아 어다.
단군 신화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고조선을 건국한 사람들의 언어가 아리아 어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어휘들이 기록에 있다. 여섯 단어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가 크기 때문에 이 어휘들을 통해 '조선'의 뜻이 '조이 선(joy sun)'과 같다는 심증을 더욱 굳힐 수 있다. 『삼국사기』'신라본기 시조'조에 "이보다 먼저 조선의 유민들이 와서 이곳 저곳 산골짜기에 나누어져 살면서 육촌(六村)을 이루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신라 시조 혁거세왕'조에 기록된 여섯 마을과 촌장들의 칭호는 다음과 같다.
양산촌(楊山村)의 알평(謁平)
고허촌(高墟村)의 소벌도리(蘇伐都利)
대수촌(大樹村)의 구례마(俱禮馬, 仇禮馬)
진지촌(珍支村)의 지백호(智佰虎)
가리촌(加利村)의 지타(祗 , 只他)
고야촌(高耶村)의 호진(虎珍)
촌장들의 칭호는 고조선 초기부터 있었을 것이므로, 아리아 어에서 기원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자의 뜻보다 소리에 원 뜻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각을 갖고 이 소리들의 어원을 영어와 고대 그리스 문자에서 찾아보면, 이 이름들의 뜻이 다음과 같이 밝혀진다. 이것은 고조선이 망하고 고조선의 촌락들이 각각 무리를 이루고 이동했기 때문에 촌장의 이름들이 옛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왕위가 세습되었듯이, 촌장의 직위도 세습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알평(謁平)'의 어원은, 27쪽에서 이야기하였듯이, 영어로 '아랄의 평화'라는 뜻인 '아랄 피스(Aral peace)'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알평'은 그리스 문자의 첫 글자 '알(Alpha)', 유럽의 '알프스(Alps)' 등과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알평'은 고조선의 도읍지인 '평양(平壤)'과도 뜻이 통한다. '알평'은 촌장의 우두머리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벌도리(蘇伐都利)'의 '소벌'은 영국의 '솔즈베리'·고구려의 '졸본'·신라의 '서벌'·백제의 '소부리'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고, '도리'는 게르만 신화에서 천둥·농업·전쟁의 신인 '토르(Thor)'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소벌'과 '솔즈베리·졸본·서벌·소부리'의 원 뜻은 죽은 사람의 '사리를 묻는 곳' 즉 '영혼이 묻히는 곳'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아리아 인들은 죽으면 유골을 아무 곳에나 묻지 않고 수도인 소벌에 묻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소벌은 살아서는 종족의 중심지였고 죽어서는 영혼이 묻히는 곳이었다. 이러한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소벌'은 수도를 뜻하는 말로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37쪽, '서울'은 '소울(soul)'이다. 참고)
삼한 시대에 제사장 관할 구역이었던 '소도(蘇塗)'는 '소벌도리'의 약칭이었다고 볼 수 있다.『삼국사기』에 는 여섯 마을 촌장의 이름들 중에서 유일하게 '고허촌장 소벌공(蘇伐公)'이란 기록이 있다. '소벌도리'의 '도리'가 '공(公)'으로 기록된 것으로 볼 때, '도리'는 직책이나 존칭으로도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대 게르만 인들은 질병이나 기근이 닥치면 토르(Thor)에게 제사를 지냈다. 영어로 목요일'서즈데이(Thursday)'는 '토르의 날'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소벌도리'는 '솔즈베리'에서 '도리'를 섬기며 제사를 관장한 촌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구례마(俱禮馬, 仇禮馬)'의 '구례'는 '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달아 난 수염)과 '구렛들'(바닥이 낮아 물이 늘 있거나 물길이 좋은 기름진 들)의 '구레'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구례마'의 '구례'는 영어로 위대한이라는 뜻인 '그레이트(great)', '마'는 암말이라는 뜻인 '메어(mare)'와 어원이 같다. 따라서 '구례마' 즉 '그레이트 메어(great mare)'의 뜻은 영어로 '위대한 암말'이다. 하지만, 한국어에서 말(馬)은 암수를 합한 뜻이므로, '구례마'의 원 뜻은'위대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백호(智佰虎)'의 '지백'은, '구례마'의 '구례'가 '마'를 수식하듯이, '호(虎)'를 수식한다고 볼수 있다. 따라서, '지백'은 영어로 '무서워 벌벌 떨다'라는 말인 '쉬버(shiver)'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지백호'는 '무서운 호랑이'라는 뜻이었다고 볼 수 있다. 쉬버(shiver)는 '시베리아'의 '시베'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시베'의 '베'는 '백곰'이란 뜻이어서, '시베'에서 기원한 '쉬버'에 '무서운'이란 뜻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지타(祗 , 只他)'는 '치타(cheetah)'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말과 호랑이가 촌장의
이름에 사용된 것으로 보면, 지타도 동물의 이름이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치타는 서남
아시아와 인도 북부 및 아프리카의 초원 지대에 사는, 표범 비슷한 동물이다. 동물들 중에서
가장 빨리 달린다는 것이 특징이다. 옛날에 서남 아시아 지역에서는 치타를 길들여 사냥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호진(虎珍)'의 '진'은 혼령(魂靈)이란 말인 '진(jinn)'과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호진'은 호랑이의 모습이 되어 인간에게 마력을 부리는 신령이란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 는 여섯 마을 조상들의 원주지가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런데『삼국사기』는
"조선 유민(朝鮮遺民)들이 육촌을 이루었다."라고 기록했다.『삼국사기』가 '朝鮮遺民'이란
기록을 남긴 것은 의미가 크다. 이것은 정사가 고조선의 존재를 인정한 최초의 기록이기 때문이다.『삼국유사』에 기록된 여섯 마을 촌장의 이름들이 영어와 상통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더라도, 그들의 조상이 조선 유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면, 여섯 마을 촌장의 이름들이 이처럼 가치를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두 기록이 있음으로써, 고조선을 건국한 환웅의 무리는 동쪽으로 이동한 아리아 인이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이런 역사가 있었기에 "아리랑 아리랑 아랄이요."란 노래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역사가 없었다면 이런 노래가 전해질 리가 없다.
'서울'은 '소울[soul]'이다.
『삼국사기』'신라본기 시조'조에 "국호를 서나벌(徐那伐)이라 하고, 21년에는 수도에 성을
쌓아 금성(金城)이라 이름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신라 시조 혁거세왕'조에 "나라 이름을 서라벌(徐羅伐) 또는 서벌(徐伐)[지금
민간에서 경(京)자를 훈독하여 서벌(徐伐)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이라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 ] 속 글의 뜻은 신라 사람들이 수도를 '서벌'이라고 불렀던 연고로 지금고려에서도 경(京)자를 훈독하여 '서벌'이라고 읽는다는 것이다.
위의 두 기록으로 볼 때, 서라벌은 국호이었고, 서벌은 수도를 지칭하는 이름이었다. 그래서수도를 뜻하는 '서울'이란 말은 '서벌'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서벌'·'서울'은 무슨 뜻일까? 신라의 수도이었던 '금성(金城)'의 이두 음인 '쇠울'이'서울'로 되었고, '쇠울'의 뜻은 '쇠 울타리'이므로, '서울'의 뜻은 '쇠 울타리'라는 설이 있다. '서울'의 뜻이 '쇠 울타리'라면, '서울'의 어원으로 보는 '서벌'의 뜻도 '쇠 울타리'여야 한다. 하지만 '서벌'의 뜻을 '쇠 울타리'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그래서 '서울'의 뜻이 '쇠 울타리'라는 설은 정설이 될 수 없다.
'서벌'은 무슨 뜻일까?
동쪽으로 이동한 아리아 인들이 고조선을 건국했듯이 신라·고구려·백제도 아리아 인들이
건국의 주축이었다고 볼 수 있는 언어 증거들이 있다. (144쪽 참고) 따라서, 삼국은 같은 언어와 전통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라의 '서벌(徐伐)', 고구려의 첫 도읍지 '졸본(卒本)',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의 옛 이름인 '소부리(所夫里)'·'사비(泗 )' 등은 아리아 어에서 기원했다고 볼 수있다. '서벌'·'졸본'·'소부리'·'사비'는 소리가 비슷한 것으로 볼 때, 어원이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원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아리아 어에서 기원한 인도유럽 어족의 여러 언어들 가운데 한국어와 친근성이 가장 큰 영어에서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는 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영국의 솔즈베리(Salisbury) 평원에 선사 시대의 유적인 스톤헨지(Stonehenge)가 있는 것으로보아, '솔즈베리'는 오래된 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솔즈베리'는 아리아 어에서 기원한 '서벌·졸본·소부리'와 소리가 비슷하므로, 이 일대는 영국으로 이주한 아리아 인들의 초기 수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솔즈베리의 뜻을 알면 서벌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서벌의 뜻을 잃어버렸듯이 영국도 솔즈베리의 뜻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한국어와 영어로 서로를보완하여 서벌과 솔즈베리를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Salisbury'는 'Salis'와'bury'의 복합어고, 'sali'는 '사리(舍利, sarira)'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고, 'bury'는 영어로 '매장하다'라는 뜻이므로, '솔즈베리'의 뜻은 '사리를 묻는 곳'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산스크리트 어에서 기원한 '사리'라는 말은 화장(火葬)한 뒤에 나오는 작은 구슬 모양을 가리키지만, 원래는 주검을 화장한 뼈를 이르는 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솔즈베리의 스톤헨지에서 화장된 뼈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이곳에서 사리를 매장하는 의식이 행해졌다는 뜻이다. 스톤헨지 외곽에서 밖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큰 흙무더기는 사리를 묻은 곳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제물로 바쳐진 희생자나 유공자의 사리는 스톤헨지 내부에, 일반인들의 사리는 외부에 묻었던 것이 아닐까? 이런 점들로 볼 때, 솔즈베리는 종족의 중심지였고, 구성원들이 죽으면 그 뼈가 묻히는 곳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랄 지역에서부터 아리아 인들은 그들의 중심지를 '솔즈베리'라고 불렀고, 솔즈베리는 구성원들의 뼈와 영혼(soul)이 묻히는 곳이었기 때문에, 한국에 '졸본·서벌·소부리'가 있고 영국에 '솔즈베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수도를 중심으로 구성원들을 결속시켜 큰 집단을 구성하려는 철학이 종교와 어울려 이러한 전통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서울'이란 말은 언제 생겼을까?
고려 시대의 노래로 알려져 있는 '서경별곡'에 "서경(西京)이 셔울히 마르는"이라는 구절이
있다. (184쪽, '서경별곡' 참고) 이 구절이 고려 시대 그대로의 기록이라고 한다면, '서경별곡'의가사에 담긴 분위기로 볼 때 '셔울'은 신체의 중심을 빗댄 말이므로, 여기서 '셔울'은 국가의 중심인 수도를 이르는 말인 '서울'의 고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고려 시대의 서경 사람들은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이 서경으로 개명되었어도, 고구려 사람들이 평양을 '셔울'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서경(西京)'을 옛 그대로 '셔울'이라고 불렀다는 증거가 된다.
조선 시대에도 수도 '한성(漢城)'을 당시 사람들이 '서울'이라고도 불렀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기록이 있다. 영국인 하지(John Weekley Hodge)는 1900년 초에 주한 영국 성공회
인쇄소에서 'Seoul Press Express'라는 제호로 남아프리카 전쟁에 관한 전문(電文)을 인쇄하여 판매했다. 하지는 1905년에 'Seoul Press Weekly'라는 주간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주 3-3) 이 두 기록으로 볼 때 '서울'은 옛날부터 수도를 이르는 일반 명칭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수도의 명칭이 한자로 금성(金城)·평양(平壤)·서경(西京)·한성(漢城) 등으로 바뀌었어도 '서울'이라고 계속 불러온 전통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서울이란 말의 기원은 삼국 시대 이전인 아랄 시대로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일제 때 이름인 '경성(京城)'이 해방 후에 '서울'로 개명됨으로써, 옛날부터 수도를 이르던 일반 명칭인 '서울'이란 말이 처음으로 공식 명칭으로 되었다. '서울'이란 말이 해방 후에 생겼다고 보는 것은 '서울'의 유래를 모르는 잘못이다.
한자로 된 공식 지명들을 한자의 소리로 부르지 않고, 본래의 소리로 불러온 전통이 지난날에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기록이 있다
한국 최초의 카톨릭 신부인 김대건(金大建 1822∼1846)은 신부가 되기 위하여 선서문에 서명
하고, '충청도 밋내 솔매'라고 주소를 기록했다. 이 주소는 당시 이 지역의 공식 명칭이었던
'충청도(忠淸道) 면천군(沔川郡) 송산면(松山面)'을 이 지역 사람들이 부르던 방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밋내'의 어원은 '만남의 내'라는 뜻인 '밋내[meet 川]'로 볼 수 있고, '밋내'는 지금의 '삽교천'이라고 할 수 있다. '밋내'는 고조선의 유민들이 지금의 삽교천 일대를 만남의 장소로 정했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밋내'는 이 지역 사람들의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지명이 한자로 되었어도 한자의 소리로 말하지 않고, 옛날의 소리로 말하는 전통이 이어졌었다고 볼 수 있다. (주 3-4) 이러한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서울'이란 말을 비롯하여, 수 천년전의 역사인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랄이가 났네."가 지금까지 온전히 구전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서울'은 무슨 뜻일까?
아랄 시절부터 종족의 중심지를 '서울'이라고 불렀다면, 영어에도 소리와 뜻이 '서울'과 같거나비슷한 단어가 있을 것이다. 영어의 '소울(soul)'은 '서울'과 소리가 비슷하다. '소울(soul)'은 영혼·핵심이란 뜻이므로, 나라의 중심인 수도를 이르는 말인 '서울'과 뜻이 통한다. 아스라하니 먼 옛날 아랄 시절에 야생 소들을 잡아다 울타리를 친 울에 넣고 공동으로 기르던, '소의 울'을'소울'이라고 불렀다고 볼 수 있다. '소울'은 종족의 중심지이자 사후에는 뼈를 묻는 즉 영혼이 묻히는 곳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소울'은 한국어에서는 수도를 뜻하는 말로, 영어에서는 영혼·핵심이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소울'에서 구성원들의 사리를 묻는 종교 행사가 자리를 잡게 되면서, '사리를 묻는 곳'이란 말인 '서벌'·'솔즈베리'가 수도를 뜻하는 말로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소울'이란 말이 '서벌'·'솔즈베리'와 공존하게 되면서, 아랄 시절에 이미, '소울'은 수도나 중요한 뜻을 이르는 일반 명사로 쓰였고, '서벌'·'솔즈베리'는 수도를 이르는 공식 명칭으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솔즈베리'가 지명으로 '소울(soul)'은 영혼·핵심이란 뜻으로 쓰이고 있고, 한국에서는'서벌'은 재래 종교의 몰락과 더불어 사어가 되었지만 '소울'은 수도를 지칭하는 말로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무 다리아 강을 옥서스(Oxus), 시르 다리아 강을 야크사르테스(Jaxartes)라고 불렀다. 영어로 소란 말인 '옥스(ox)'는 '옥서스(Oxus)'의 '옥스(ox)'와, 멍에라는 말인'욕(yoke)'은 '야크사르테스(Jaxartes)'의 '야크(jax)'와 소리가 비슷하다. 아무 다리아 강 즉 옥서스 강의 아리아 인들은 소를 토템으로 했기 때문에 두 강을 이렇게 불렀다고 볼 수 있다. 인도의 힌두교에서 소를 신성시하는 것은 인도로 이동한 옥서스 출신의 아리아 인들이 소를 토템으로 하였던 전통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소'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는 영어 어휘는 없지만, '옥스(ox)'의 '스'는 '소'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울'은 한국어에서 '울안에 갇히다', '울이 세다(족속이 많고 번성하다. 떨거지가 많다)' 등의'울'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라는 말은 '울'과 기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어원은 '울이' 즉 '같은 울안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 되기 때문이다. 영어에도 '울'이란 말의 자취가 있다. 영어로 '도시의'라는 단어 'urban'은 'ur'과 'ban'의 복합어다. 'ur'은 '울'과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ban'에는 '금지·결혼 예고·소집된 가신단' 이란 뜻이 있다.
그러므로 'urban'은 '울안에 사는 가신단' 또는 '우리 반(班)'이란 뜻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ban'은 한국어 '반(대)하다·(미모에)반하다·반열' 등의 '반'과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한국어의 '반'과 영어의 '반(ban)'이 갖고 있는 3개의 뜻은 한자의 '반(反·반(頒)·반(班)'과도 뜻이 통한다. '반'이 갖고 있는 이 유사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언어권에서 출발한 종족들이 영국, 중국, 한국으로 각각 이동하여 각각의 이주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종족 이동에 의하지 않고, 전파된 어휘들이 이처럼 짝을 이루고 남아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울'이 '소울(soul)'과 어원이 같다는 것은 아랄 시절부터 종족의 중심지를 '소울'이라고
했다는 뜻이므로, 청동기 시대 이전, 쇠란 말이 없었던 시절에도 '소울'이란 말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금성(金城)'의 이두 음인 '쇠울'이 '서울'로 되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신라가 수도를 '금성(金城)'이라고 이름한 것은 한자의 뜻에 '매우 귀중한 성'이란 의미가 있고, 이두로 읽으면 종족의 중심지를 이르는 말인 '소울'이 되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고대 국가들의 이름은 아리아 어다.
부여(扶餘)는 베어(bear)다.
'부여(扶餘)'는 만주에 있었던 나라다. 그런데 무엇을 근거로 한국의 고대 국가였다고 주장할 수가 있을까? 동쪽으로 이주한 아리아 인 즉 아리랑이 세운 나라들은 한국의 고대 국가로 분류될 수 있다. 고조선이 남긴 어휘들에 아리아 어의 자취가 있듯이, 부여가 사용한 국호·수도·왕의 이름에도 아리아 어의 자취가 있다. 그러므로 부여는 아리아 인(아리랑)이 세운 나라였다. 따라서, 부여는 한국의 고대 국가다. 건국된 시기는 고조선 이후였다고 할 수 있다. '부여'는 영어로 곰이라는 말인 '베어(bear)'와 어원이 같다고 할 수 있다. 무엇 때문에 '베어'를 국호로 정했을까? 부여의 제도에는 왕 아래에 가축의 이름을 딴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猪加) 구가(狗加) 등 6개의 관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동물의 이름을 따서, 국호를 '베어(bear)'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만주에는 북방 아시아 인·수메르 인·아리아 인이 공존했고, 각각은 범·검은 곰·흰곰을 토템으로 했다고 볼 수 있다. 아리아 인은 동족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아리아 어로 곰을 뜻하는 부여(bear)를 국호로 정했다고 볼 수 있다.『삼국유사』'북부여'조에 기록된 인명과 지명 중에는 아리아 어의 티가 있는 것들이 있다. 부여(扶餘)의 도읍지였던 '흘승골성(訖升骨城)'의 '흘승'은 영어로 성좌·교황청이라는 말인 '홀리 씨(Holy See)'와 어원이 같고, '골'은 한국어로 옛날에 관청이 있던 곳을 이르던 말인 '고을'과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첫 임금의 이름인 '해모수(解慕漱)'의 '해'는 태양이라는 뜻이고, '모수'는 로마의 군신
'마르스(Mars)'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해모수'의 뜻은 '태양과 같은 위대한 군신 마르스(Mars)'라고 할 수 있다
'해모수'의 아들인 '해부루(解扶婁)'의 어원은 '해(태양신)를 부르다'이고, 이 말은 '히브리(Hebrew)'란 말과 기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히브리는 이스라엘 족이고 이스라엘 족은 수메르 인의 후예다. 왕의 이름이 아리아 어에서 수메르 어로 바뀐 것이 아닐까? 부여는, 고조선이 그랬듯이, 아리아 인과 수메르 인이 연합하여 건국했다고 볼 수 있다. '해수'의'해'는 수메르어이고, '모수'는 아리아 어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모수'란 왕의 이름은 아리아 인과 수메르 인의 공존을 상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수메르 어인 '해부루'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등장했다. 이것을 확대 해석하면, 수메르 인이 왕권을 장악했다는 뜻이다. 이로써 위기를 느낀 아리아 인들이 남하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건국했다고 볼 수 있다.
고구려(高句麗)는 호흐 레(hoch Re)다.
'고구려(高句麗)'의 '고구(高句)'는 독일어로 '높은'이란 말인 '호흐(Hoch)'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고, '려(麗)'는 태양신이라는 말인 '레(Re 또는 Ra)'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고구려'는 '고귀한 태양신(Hoch Re)'이라는 뜻이다.
국호를 '고귀한 태양신'이라고 이름한 것으로 보아, 고구려의 첫 도읍지인 '졸본(卒本)'이라는 말에도 당시의 종교와 철학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한다. '졸본'의 어원은, 앞장에서 설명하였듯이, '솔즈베리(Salisbury)'와 같다. '졸본'은 '솔즈베리'를 영어식 'ㅅ' 발음 대신 독일어식 'ㅈ' 발음으로 음역한 것이다.『삼국사기』「지리」조 를 보면, 고구려의 지명에 '홀(忽)'이란 표기가 많이 있다. 요동 지방의 요충지였던 안시성의 옛 이름인 '안정홀(安丁忽)', 함경남도 안변의 옛 이름인 '비열홀(比列忽)' 등이 그 예다. 중세 유럽에서는 왕후나 귀족의 성 또는 대저택을 홀(hall)이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홀(忽)'은 영어의 '홀(hall)'과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고구려에서도 왕족이나 귀족이 직접 관장한 성에 홀이란 말을 붙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백두산의 다른 이름인 '장백산(長白山)'의 '장'은 독일어로 '성스러운'이란 말인 '장크트
(Sankt)'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고구려·졸본·홀·장백산' 등은 독일어와 같은 게르만 어 계열의 아리아 어를 사용한 아리아 인들이 고구려를 세웠다고 볼 수 있는 증거가 된다.
백제(百濟)는 빅 조이(big joy)다.
온조(溫祚)는 처음에 나라의 이름을 '십제(十濟)'라고 했다. '제(濟)'자에는 중국의 제(齊)
나라가 물 건너 왔다는 뜻이 담겨 있고, '십(十)'자의 소리에는 '세인트(saint)'란 뜻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산동 반도에 있던 제(齊)나라가 망하자, 그곳에서 살던 아리아 인들의 일부가 한반도 서해안 지대로 이동하여 나라를 세운 것이 백제의 기원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미추홀(彌鄒忽)'은 '비류(沸流)'가 나라를 세운 곳이다. '미추홀'의 어원은 '만남의 광장'이라는 뜻인 '미트홀(meet hall)'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동족들의 집결을 기다리며 서해안 지대에 미추홀 즉 만남의 장소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아, 배를 이용해 이주한 유민들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위례성(慰禮城)은 온조(溫祚)가 처음 도읍한 곳이다. '위례'는 '좋은 태양신'이라는 말인 '웰레(well Re)'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고구려와 신라의 국호에는 태양신이란 말인 '려'와'라'가 있지만, 백제의 국호에는 없다. 당시는 태양신을 숭배하던 시절이어서, 백제는 태양신이란 말인 '레(Re)'를 '례(禮)'로 표기하여 도읍지를 '위례성(慰禮城)'이라 이름했다고 볼 수 있다.
『삼국유사』'남부여 전백제'조에 "비류가 죽고 그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위례성으로 돌아
왔다. 후에 백성들이 올 때 크게 기뻐하였다 하여 나라의 이름을 백제(百濟)로 고쳤다."라는
기록이 있다. (주 3-5)이 기록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百濟(백제)'라는 말에 큰 기쁨이란 뜻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백제'란 말은 영어로 큰 기쁨이란 말인 '빅조이(big joy)'와 어원이 같은 아리아 어의 어휘를 한자로 음역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百濟'를 '구다라(くだら)'라고 읽는다. 이것은 옛 이름들을, 한자의 음으로 읽지 않고, 원래의 소리로 읽어 온 일본의 전통에 연유한 것이다. '구다라'의 어원은 '큰 나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백제 사람들이 '百濟'를 '큰 나라'라고 훈독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구다라'라고 읽었다고 볼 수 있다.
백제의 초기 역사에는 의문점들이 많다. 다음은 1996. 12. 30일자 중앙일보에 게재된 '이규행 옴부즈맨' 칼럼의 일부다.【장개석(蔣介石) 총통이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에게 그의 고향과 관련해 했다는 이야기가… 장개석의 고향은 양자강 남쪽의 절강성(浙江省)인데 그곳은 옛 백제(百濟) 땅이었다는 사실을 백범에게 말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 '蔣介石(장개석)'의 중국 북경 표준음은 '장제스'이지만, 대만에서 공식으로 발간된 장총통집(蔣總統集)에 쓰인 '蔣介石(장개석)'의 영문 표기는'장가이섹(Chiang Kai-shek)'이다.】
절강성이 옛 백제의 땅이었고, '蔣介石'의 정음(正音)인 '장가이섹'은 북경 표준음과 다른
절강(浙江) 방언으로서 한국식 음과 같다는 것이 주는 의미는 크다. 제(齊)나라가 망하자
제나라에서 살던 아리아 인들의 일부가 한반도로 이동하여 백제를 건국했고, 일부는 절강성
일대로 남하하여 백제와 제휴함으로써 절강성 일대에 백제의 담로(擔魯)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절강성 일대가 백제의 땅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신라(新羅), 서라벌은 슬라브(Slav)다.
신라(新羅)의 국호는 초기에 서라벌(徐羅伐)·서벌(徐伐)·사라(斯羅)·사로(斯盧)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되다가, 6세기초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 때 '신라(新羅)'로 되었다.
『삼국유사』'진한(辰韓)[진한(秦韓)이라고도 한다]'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후한서(後漢書)에 이르기를 "진한(辰韓)의 나이 많은 노인이 한 말에 의하면, 진(秦)나라가 망하고 사람들이 한국(韓國)으로 오자, 마한(馬韓)이 동쪽의 땅을 나누어주었더니 서로 불러 모여 무리를 이루었고, 언어가 진(秦)나라 말과 같아 혹은 진한(秦韓)이라고도 했으며, 12개의 작은 나라에 각각 만호가 되었고, 나라라 칭했다고 한다."라고 했다. 또, 최치원(崔致遠)이 이르기를 "진한(辰韓)은 본래 연(燕)나라 사람들이 피난해 와서 …."】이 기록으로 볼 때, 종족 이동의 큰 물결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진(秦)나라는 기원전 221년에 중국을 통일하고, 불과 15년만에 망했다. 뒤를 이어서 한(漢)나라가 기원전 202년에 통일 국가로 등장하면서, 중국의 전국 시대에 진(秦)·연(燕)·제(齊)나라에서 살았던 아리아 인들이 만주와 한반도로 이동하여 삼국의 주체가 되었다. 이로써 기원전 2000년경부터 황하 문명의 중심 세력을 이루었던 아리아 인들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이 여파로 기원전 3세기경부터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종족 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아리아 어의 어휘들은 한자로 기록되며 소리가 변했기 때문에 중국어에서 아리아 어의 자취를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리아 인들이 아랄에서 황하 유역으로 대거 이동했다는 사실이 잊혀졌다. 그러나 이제는 아리아 인들이 황하 유역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한국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서라벌(徐羅伐)'이란 말은 아랄 지역에서 동유럽으로 이동한 슬라브 족들이 나라의 이름으로사용한 '슬라브(Slav)'와 어원이 같다. 기원전 1500년경부터 황하 유역으로 이주하였던 슬라브 족들이, 중국을 통일한 한(漢)의 남방 세력에 밀려, 한반도로 이주하여 '서라벌(徐羅伐)'이란 국호를 사용한 것이다.신라의 전신인 '진한(辰韓)'을 일명 '진한(秦韓)'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고, '서라벌'이 '슬라브'와 어원이 같다는 것은 중국의 '진(秦)'나라에 슬라브 족들이 많이 살았었다는 뜻이다.
'서라벌'과 '슬라브(Slav)'의 첫소리 '서'와 '스'는 '새로운'이라는 뜻이고, '라''는 태양신
'라(Ra)'와 같고, 끝소리 '벌'과 '브'는 한국어의 '벌'과 영어의 '밸리(valley)'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슬라브'는 '새로운 태양신의 땅'이라는 뜻이다.
영국의 앵글로 색슨 족과 같은 계열의 아리아 인들이 기원전 2000년경부터 동쪽으로 이주하여 고조선을 건국했고, 일부가 제(齊)나라의 주축이 되었다. 독일계 게르만 족과 같은 계열의 아리아 인들이 연(燕)나라의 주축이 되었고, 기원전 1500년경부터 이동한 슬라브 족이 진(秦)나라의 주축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리아 어가 한자로 기록되면서 원래의 소리를 잃어, 동쪽으로 이동한 아리아 인의 역사가 잊혀졌던 것이다.
발해(渤海)는 베어 해(bear sea)다.
발해는 고구려의 유민들이 세운 나라다. 발해와 사신의 왕래가 많았던 일본의 기록에 의하면
'말갈인'이 수적으로 많았으나 고구려의 유민들이 지배층이었다고 한다. '말갈인'은 그 뿌리가 수메르 인이고, 고구려의 유민들은 아리아 인이다. 따라서 발해는 아리랑과 쓰리랑이 세운 나라이므로, 한국의 고대 국가다. 발해를 한국의 고대 국가로 분류하는 그 당위성이 '발해'란 국명에서도 확인된다. '발해(渤海)'란 말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왜 고구려의 유민들이 만주 평원에서 건국하며 바다라는 뜻이 있는 '발해(渤海)'를 국명으로 정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황하 하구의 근해가 발해만(渤海灣)이다. 발해 건국 이전에 나온『사기』에 발해(渤海)란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지금의 발해만 일대를 발해(渤海)라고 불렀다고 볼 수 있다. 기원전 2000년경 이 지역으로 이주한 아리아 인들이 이 바다를 '곰의 바다'라는 뜻인 '베어해(Bear海)'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를 쓰면서, '베어'와 비슷한 소리를 갖고 있는 한자인 '발(渤)'자를 사용해 '발해(渤海)'라고 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춘추 전국 시대에 발해만 일대에 있었던 연(燕)은 고구려를 건국했던 아리아 인의 선조들이 세운 나라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가 있어 고구려의 유민들은 발해만 일대의 옛 땅을 회복한다는 기치 아래 나라 이름을 발해(渤海)라고 한 것이다.
낙랑(樂浪)은 아리랑이다.
『삼국유사』'낙랑국(樂浪國)'조에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 김부(金傅)가 고려에 귀의하매,태조가 그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낙랑 공주(樂浪公主)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경순왕'조에는 고려 태조가 장녀 낙랑 공주를 경순왕에게 시집보냈다는 기록이 있다.이 기록들로 볼 때, 당시 사람들은 '낙랑(樂浪)'이라는 말에 친근감을 가졌었다고 볼 수 있다. '낙랑(樂浪)'이라는 말은 아리아 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리아 인들은 자신들을 '아리랑'이라고 불렀고, 가무를 좋아했던 아리아 인들은 '아리랑'을 한자로 '樂浪'이라 표기하고 '악랑'·'아리랑'이라고 읽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 '樂浪'을 '악랑'으로 읽지 않고 '낙랑'으로 읽는 것은 발음하기가 부드럽기 때문이지 원래의 소리라고 보기는 어렵다.『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연지(燕地)'조에 "낙랑해중(樂浪海中)에 왜인(倭人)이 있어"라는 기록이 있다. 일개 군에 불과한 낙랑군(樂浪郡)의 이름을 따서 큰 바다를 낙랑해라고 이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낙랑군이 생기기 이전부터 아리아 인들은 황해(黃海)를 '악랑해(樂浪海)' 즉 '아랄 해(Aral海)'라고 불렀다고 볼 수 있다. 한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노른자위 바다'·'귀중한 바다'란 말인 '아랄 해'의 뜻을 살려 '黃海(황해)'라고 표기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라의 헤라클레스·박혁거세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 이 이름들은 신라 초기에 사용된, 왕의 칭호다. 깊은 뜻들이 담겨 있었겠지만, 잊혀진지가 이미 오래다. 그러나 이 어휘들이 아리아 어에서 기원했다고 보면, 원래의 뜻을 알 수가 있다.『삼국유사』'신라시조 혁거세왕'조에 제1대 박혁거세(朴赫居世)왕의 칭호는 거슬감(居瑟邯) 또는 거서간(居西干)이었는데, 이 칭호는 알지거서간(閼智居西干)에서 유래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삼국사기』'신라본기 시조'조에 "거서간(居西干)은 진(辰)나라 말로 왕(王)이다.[혹은 귀인(貴人)을 부르는 칭호다.]"라는 기록이 있다. 위의 두 기록으로 볼 때, '알지거서간'이란 말은 '알스 그레이스 칸(Ar's Grace Kan)'과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말은 '아리아 인의 위대한 임금'이라는 뜻이다. 왜냐 하면, '거서'의 어원은 영어로 '각하(閣下)'라는 말인 '그레이스(Grace)'와 같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각하'의 어원이 '거서[Grace]'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리스 알파벳이 한국어로 해석되는 것으로 볼 때, '그리스(Greece)'란 국호도 '그레이스(Grace)'·'거서'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혁거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영웅 '헤라클레스(Heracles)', 로마 신화에 나오는 '허큐리스(Hercules)'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혁거세'·'헤라클레스'·'허큐리스'란 이름들은 '위대한 태양신'이라는 말인 '헤라(Hera)'에서 기원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삼국유사』'신라시조 혁거세왕'조에 "혁거세왕 : 아마도 향언(鄕言)일 것이다. 불구내왕(弗矩內王)이라고도 하니, 광명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다."라고 혁거세의 어원을 해석한기록이 있다. '불구내(弗矩內)'의 어원은, '광명'이란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불그레하다'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혁거세'에는 '불그레하다'란 뜻이 있으므로, '혁거세'는 '위대한 태양신' 즉 '헤라(Hera)'와 뜻이 통한다. 그래서 신라인들은 '헤라클레스'를 '혁거세(赫居世)'로 표기하고, '불구내왕(弗矩內王)'·'불그레 왕'이라 훈독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제2대 왕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의 '차차웅'을 '자충(慈充)'이라고도 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있다. '차차웅(次次雄)'과 '자충(慈充)'의 어원은 영어로 '재판관·재판하다'라는 말의 진행형인 '저징(judging)'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차차웅과 자충은심판관·재판관이라는 뜻이다.
제3대부터 제16대까지(『삼국사기』에 는 제18대) 사용된 왕의 명칭은 이사금[尼師今,
齒叱今, 尼叱今]이다. 한자의 표기가 여러 가지였다는 것은 원래의 소리와 뜻을 둘 다 살려
한자로 표기하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다. '이사금'의 '이사'는 'Israel, Islam, Isaiah' 등의 'is'와 어원이 같고, '금'은 '임금'으로 볼 수 있다. 'is'는 알이 많다는 뜻이자 아랄 지역을 뜻하는 말인 '알스(ars)'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영어로 섬이라는 말인 아일런드(island)의 'is'는 '알스(ars)'와 어원이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알스(ars)'는 '위대한'이란 뜻으로도 쓰였다. 따라서'이사금'은 '아랄의 임금'·'위대한 임금'이란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제17대(『삼국사기』에는 19대)부터 제22대까지 사용한 왕의 칭호는 마립간(麻立干)이다.
『삼국유사』'제2 남해왕'조에 "혹왈마립간 립일작수(或曰麻立干 立一作袖)"란 기록이 있다.이 글은 "혹은 마립간(麻立干)이라고도 하였는데, 립(立) 대신 수(袖)를 쓰기도 한다."라는 뜻이다. 즉, '마립간(麻立干)'을 '마수간(麻袖干)'이라 부르기도 했다는 뜻이다. '마립간(麻立干)'의 '립(立)'은 '설립'이므로 '마립간(麻立干)'을 이두로 읽으면 '마설간'이 된다. '마설[麻立]'은 영어로 원수(元帥)라는 말인 '마셜(Marshal)'과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마수(麻袖)'는 로마신화의 군신(軍神)인 '마르스(Mars)'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신라 국왕의 호칭인 '마수간'의 '마수'가 로마 신화의 군신 '마르스(Mars)'와 어원이 같다는 주장은 너무 지나친 것 같지만, 증거가 될 어휘들이 있다. (1) 한국어에 '첫 번째로 물건을 파는 일'이라는 뜻인 '마수걸이'란 말이 있다. '마수걸이'의 '마수'는 군신 '마르스'와 어원이 같고, '걸이'는 재료·소재를 뜻하는 말인 '거리'와 같다고 보면, '마수걸이'의 원 뜻을 알 수가 있다.'마수걸이를 했다'라는 말은, 지금은 '개시를 했다'라는 뜻이지만, 지난날에는 '군신 마수에게 바칠 세금을 준비하다'란 뜻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려면 그날그날 세금을 내야했다는 뜻이다. (2) 일본 신화 속 신들의 이름에 '마사'라는 표기가 있다. (235쪽 스사노오노미코토, 237쪽 마사카 … 참고) 일본 신화의 신들은 일본으로 이주한 고대 한국인이므로, 일본 신화에 군신 '마사'란 말의 자취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마사', 신라의'마수', 로마의 '마르스'는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어휘들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아랄에서 세계로 이동한 아리아 인들이 이주지로 가지고 간 알알 문명의 신화에 나오는 군신의 이름에서 기원했다고 볼 수 있다.
로마 신화의 신들은, 로마 신화에만 있는 두 얼굴의 문지기 신 야누스(Janus)만 빼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과 성격이 비슷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로마 신화는 그리스 신화의 모방이다."라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지중해 문명의 중심이 그리스에서 로마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당연시되었다. 하지만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의 '마수간'과 '혁거세'는 이러한 주장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가 된다.
그리스 신화의 군신은 아레스(Ares)고, 로마 신화의 군신은 마르스(Mars)다. '마르스는
아레스를 모방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 하면, 신라의 '마수'가 그리스의 '아레스'보다 로마의 '마르스'와 소리가 더 유사하다는 것은 로마 신화가 그리스 신화보다 아랄 신화의 원형을 더 잘 유지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로마 신화는 그리스 신화의 모방이 아니고, 그리스 인과 로마 인은 비슷한 시기에 이주하여 고유의 원주지 전통을 각각 유지하고 있었다."라는 증거다. 아마도『삼국유사』에 '마립간 립일작수(麻立干 立一作袖)'라는 기록이 없었다면, 로마 신화는 그리스 신화의 모방이라는 누명을 영원히 벗지 못했을 것이다.
로마 신화의 '허큐리스(Hercules)'도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Heracles)'를 모방한 이
아니다. 신라의 '혁거세'가 둘 가운데 어느 하나의 모방일 수 없는 것과 같이, 각각은 아랄 신화의 전통을 유지했다고 볼 수 있다.헤라클레스는 '제우스(Zeus)'신과 테베 출신의 여인 '알크메네(Alcmene)' 사이에서 태어났다.즉, 헤라클레스는 신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스 인들은 헤라클레스와 같은 반신 반인의영웅들을 좋아했다. 헤라클레스와 같은 반신 반인의 영웅들이 그리스 인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이주민과 원주민의 혼혈 동화가 성행했다는 뜻이다. 이것은 단군 신화에서 환웅이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 왕검을 낳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삼국 시대 초기까지는 아리아 어의 전통이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종교 행사를 주관하던 제사장들이 아리아 어를 전승하면서 이름들을 지었기 때문에 전통이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불교가 국교로 공인되면서, 알알 문명의 종교를 주관하던 제사장들의 설자리가 없어지게되자, 이들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던 아리아 어의 전통은 갑자기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이러한 결과로 8세기경 신라의 석학인 김대문(金大問)이 차차웅·이사금·마립간의 어원을 바르게 밝히지 못했고, 최치원(崔致遠)은『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을 편찬하며 이러한 칭호들을 사용하지 않고 모두 왕(王)으로 기록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삼국유사』'제2 남해왕'조 참고)
첨성대·참 별꼴이야[peculiar]
경주 첨성대(瞻星臺)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첨성'의 뜻을 알 필요가 있다. 첨성대와 비슷한 이름이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塹星壇)이다. '첨성(瞻星)'과 '참성(塹星)'은 고대 한국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기 때문에 어원이 같다고 보고, 이두로 읽으면 '참별'이 된다.'별'이란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첨성대와 참성단은 별을 보고 점을 치거나 이와 관계된 일을 하던 곳이었다고 볼 수 있다.
별을 보고 점을 치던 점성술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한자가 쓰이기 훨씬 이전인 아랄 시절부터 별을 보고 점을 치던 일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어휘가 있다. 한국어의 '별꼴이야'와 영어의'피큘리어(peculiar)'가 그것이다. 둘은 소리가 비슷하고, 둘 다 '기묘한·별난·이상한'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peculiar'을 글자 그대로 '페쿠리알'로 읽으면, 이 소리는 '별꼴이야'와 더 비슷해진다.
'별꼴이야'와 '피큘리어(peculiar)'가 어원이 같다는 사실은 아랄 시절에 점성술이 크게 유행했었다는 뜻이고, 둘 다 '기묘한·별난·이상한'이란 뜻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아랄 시절에 이미점성술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져 있었다는 뜻이다.옛날에 별을 관측한 것은 별들의 변화를 신의 계시로 보고 이것을 따라야 한다는 일종의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참으로 그렇게 믿었는지 알 수 없지만, 위정자는 스스로 행한일의 결과가 나빴을 경우에 책임을 지지 않고 빠져나갈 회피의 수단으로 점성술을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하늘이 내린 결과로 돌리는 것보다 더 좋은 회피책을 찾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남용하고 악용한 것이다. 이로 인해 점성술에 공정성과 신뢰성이 결여되면서
원성이 쌓이게 되어 '별꼴이야'라는 말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첨성(瞻星)과 참성(塹星)의 이두음인 '참별'이 원래 소리라면, 아랄 시절에도 '참별'이란 말이 있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참별'과 어원이 같은 말이 아리아 어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참별'은 영어의 '챔피언(champion)'·'체임버(chamber)'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아랄 시절에 별들의 변화를 보고 점을 쳐서 어떤 일을 위해 뽑힌 사람을 '참별'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챔피언(champion)'에 우승자란 뜻이 있게 되었고, 점을 치며 회의를 하던 장소를 '참별'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체임버(chamber)'에 회의장이란 뜻이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참별'의 '참'은 한국어의 '참하다'의 '참', 영어의 '참(charm)'과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참(charm)'에는 매력적이라는 뜻과 마력(魔力), 주문(呪文)이라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참별'
의 뜻은 '매력적인 별'이다.
아프리카의 동남부에도 아랄에서 이동한 종족이 남겼다고 볼 수 있는 '참별'이란 말이 있다. '짐바브웨(Zimbabwe)'의 '짐바', '잠비아(Zambia)'의 '잠비', '모잠비크(Mozambique)'의 '잠비' 등은 한국어의 '참별', 영어의 '참피온'과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짐바브웨'에 있는 고대 유적지인 '그레이트 짐바브웨'에서 알알 문명의 '티'를 찾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레이트 짐바브웨'는 고대 그리스의 유적과 닮은 점이 많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곳에서
돌기둥 위에 새를 조각한 유물이 몇 개 발굴되었는데, 짐바브웨는 이 새 모양을 국가 문장과
국기에 그려 넣었다. 이 돌기둥 위에 있는 새는 '오리'를 닮았고, 이 새는 한국의 솟대 위에 있는 새와 기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레이트 짐바브웨'의 유적과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갖고 있는 알알 문명의 티는 기원전17세기를 전후하여 150여 년 간 이집트의 델타 지대를 지배하다 밀려난 힉소스(Hyksos) 족이 아프리카의 동부 연안을 따라 남하하다 이곳에 정착하여 남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힉소스 족은아랄에서 그리스와 지중해 일대로 이동한, 시르 다리아 강 출신의 아리아 인들이 주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기원전 2000년경에 아랄 지역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한반도에 정착하였던 아리아 인의 일부가 기원경을 전후한 시기에 일본으로 이주하여 알알 문명의 티를 남겼듯이, 짐바브웨이로 이주한 힉소스 족들도 알알 문명의 티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 2-2 참고)
'별꼴이야'의 '별'을 '별(別)'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별소리, 별사람, 별별일, 별다르다,
별나다, 별스럽다, 별 볼일 없다, 별에 별 것'의 '별'을 한자의 '별(別)'로 보는 것도 잘못이다. 한자가 생기기 이전에도 '별'자를 일부 명사나 동사 앞에 붙여 '보통과 다른, 특별한, 이상한, 온갖'이란 뜻으로 썼다고 볼 수 있는 몇 가지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1) 순수 한국어와 한자가 결합하여 이렇게 다양하게 쓰인 어휘는 찾기가 어렵다. 순수 한국어와 한자의 결합은 물과 기름에 비유될 만큼 어려운 것이 한국어의 현실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접두사 '별'이 이렇게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은 접두사 '별'이 순수 한국어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2) 별을 보고 점을 치며 희생의 산 제물을 바치던 '보통과 다른·특별한·이해하기 어려운·이상한' 행사들이 치러지면서, 별이란 말에 '보통과 다른·특별한·별처럼 많은 온갖·이상한'이란 뜻이 생기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별별'은 별을 중복 사용하여 별이 많다는 뜻이 됨으로써'여러 가지·온갖'이란 뜻을 갖게 되었다. 한자의 별(別)자에는 '여러 가지·온갖'이란 뜻이 없다.
(3) 접두사 '별'이 한자라면 한자가 쓰이기 이전에는 순수 한국어에 '보통과 다른·특별한'이란 어휘가 없었다는 뜻이 된다. 이토록 고대 한국어가 빈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4) '별(別)'자의 원 뜻은 '칼로 살을 발라내어 살과 뼈를 가르다'이다. 그래서 '나누다'란 뜻을 갖는 것이다. 별(別)자에 '유별나게'란 뜻이 있는 것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신에게 희생의 산 제물을 바치고 뼈와 살을 바르던 공희의 살벌한 분위기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별(別)'자의 소리는 '별[星]'에서 기원했다고 볼 수 있고, 한자로 별이란 글자인 '성(星)'의 소리는 '스타(star = Saint ar?)'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낙동강 오리알'은 '낙동강 아리안'이다.
가야는 수메르 인의 땅이다. '가야(伽倻)'는 낙동강 유역에 있었던 고대 국가들의 이름이고, 이 일대를 이르던 옛 지명이다.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에 가야산(伽倻山)이 있고, 충청남도 삽교천 유역에도 가야산
(伽倻山)이 있다. '가야'는 수메르 인들이 자신들의 지역을 이르던 이름이었다. 그래서 '가야'라는 이름이 옛날부터 있는 지역은 수메르 인들이 이주한 곳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하였지만 (90쪽, 113쪽 참고), 다른 나라에도 '가야'라는 이름이 있다. 나이지리아북부에 있는 카노(Kano)라는 도시의 전설에 의하면, 가야(Gaya)족의 카노(Kano)라는 대장장이가 철을 찾아 이곳에 와서 이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카노의 동쪽 지역에 '가야'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인도의 갠지스 강 유역에는 힌두교의 성지인 '가야', 불교의 성지인 '부다 가야'가 있다. 이 가야란 이름들도 한국의 가야와 마찬가지로 수메르 인들이 이동하여 남겼다고 볼 수 있다.
'경상도 문둥이'란 말은 낙동강 유역에 수메르 인들이 많이 살았다고 볼 수 있는 언어 자취다. '문둥이'의 '문'은 수메르 인을 지칭하는 말인 '모니'가 원형이고, '둥이'는 바람둥이의 '둥이'와 같다. 따라서 '문둥이'는 수메르 인을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문둥병'이란 말이 생긴 까닭은 아리아 인들의 힘에 밀리며 가난에 찌든 수메르 인(문둥이, 모니둥이)들이 이 병에 많이 걸렸기 때문에, 이 병을 '모니둥이 병'이라 하게 되었고, 이 말이 줄어 '문둥병'으로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낙동강(洛東江)'은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 아닌데도 '동(東)'자가 쓰인 것으로 보아, 소리에 원 뜻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낙(洛)'은 '나이'를, '동(東)'은 '땅'을 음역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낙동'은 '나이 땅'이 어원이고 그 뜻은 '큰 강이 흐르는 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낙동강의 서쪽에 있는 '섬진강(蟾津江)'의 '섬진(蟾津)'은 이두로 '섬나이'·'시나이'가 되어, '낙동강'·'섬진강'은 이집트로 이주한 수메르 인들이 남긴 '나일'·'시나이'와 기원이 같다고 볼수 있기 때문이다. (89쪽 참고)
낙동강 유역의 고인돌들은 남방형이다. 북방형 고인돌이 없다는 것은 수메르 인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한 시기가 매우 늦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원주민들의 저항이 강해, 수메르 인의 남진이오랫동안 지연되었다는 뜻이다. 수메르 인들의 이동이 끝나고 한동안 잠잠했던 낙동강 유역에 다시 이동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진(秦)나라에 이어 한(漢)나라가 통일을 이룩하면서, 황하 유역에서 일어난 종족 대이동의 물결이 낙동강 유역에까지 밀어닥친 것이다.
가야 지역의 고분들에 대한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고분들의 형식에 몇 차례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물들만으로는 어떤 종족들이 이주해 왔는지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라는 속담은 수메르 인들의 뒤를 이어 아리아 인들이 낙동강 유역으로 이주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언어 자취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낙동강 오리알 떨어지듯 했다."·"낙동강 오리알처럼 떨어졌다." 이 말들은 매우 처량한 신세가 된 형편을 비유할 때 쓰는 속담이다. '낙동강 오리알'과 '처량한 신세'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었기에 이런 속담이 생겼을까? 6·25 때 낙동강 전투에서 패한 인민군들의 처량한 신세를 오리알에 비유하게 되면서 이속담이 생겼다는 주장이 있다. 그래서 '낙동강 오리알'은 '어떤 무리에서 떨어지거나 뒤에 처져 처량하게 남게 된 신세'를 비유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럴 뜻한 해석이지만, 이 해석을 이 속담의 기원으로 보기는 어렵다. 표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오리알은 다리나 날개가 없어 걸을 수 없고 날 수도 없어 무리에서 떨어지거나 뒤에 처질 수 없다. 그러므로 "낙동강 오리 신세가 되었다."·"낙동강 오리 떨어지듯 했다."·"낙동강 오리처럼 떨어졌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속담은 없다. 잘못 표현된 속담이 유행되었을 리가 없다. 이 속담이 유행되었다는 것은 표현에 하자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속담은 문법적으로 완전하다고 보고 출발해야 한다. 또, 6·25 이전에도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떨어지다'의 뜻에 '함락되다'가 있다. '오리알이 함락되다'라는 말은 더 이상한 표현이다. 하지만, '오리알'을 낙동강 일대로 이동한 '아리안(아리아 인)'이나 '아리아 인들이 세운 작은 나라'로 보면 의문이 풀리게 된다. '아리랑'의 유래가 잊혀지면서 이 속담의 유래도 잊혀졌었지만, 때를 만남으로써 그 유래를 알 수가 있게 되었다.아리아 인들이 낙동강 유역으로 이동한 시기는 언제였을까? 수메르 인들이 일본의 규슈 지방으로 이동을 시작한 시기는 야요이 문화가 시작된 기원전 3∼2세기경이다. 고조선 유민들이 남하하면서 수메르 인들의 일부가 일본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낙동강 유역의 '가야'란 이름은, 수메르 인들이 남겼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 일대에서 고인돌들이 축조될 때부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진한(辰韓)의 12국과 변한(弁韓)의 12국을 포함하여 낙동강 유역에 있었던 가야라는 이름의 소국들 중에는, 고조선과 황하 유역에서 이주한 아리아 인들이 주축이었던 나라들이 많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통일 국가를 이룩하지 못함으로써, 하나하나신라에 병합되었다. 그래서 "낙동강 오리알 떨어지듯 했다."·"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라는 속담이 생긴 것이다. 비옥한 낙동강 유역을 차지하고도 통일을 이룩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라에 맥없이 떨어진 아리아 인의 소국들에 관한 이야기를 역사적 교훈으로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이 속담이 생긴 것이다. 역사를 잃어버림으로써 빛이 바랬지만, 음미할수록 뜻이 깊은 속담이다.
낙동강 유역에 있었던 아리아 인의 소국들은 신라에 의해 멸망되었다. 그러므로 이 속담은
신라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신라 건국의 주체는 서라벌 즉 슬라브 계 아리아 인들을 비롯하여, 육촌을 이루고 있었던 고조선계 아리아 인들이었다. 같은 아리아 인들이었는데 어떻게 이 속담이 신라에서 유행될 수 있었을까? 이 물음의 해답을 낙동강 유역에서 고인돌들을 축조한 수메르 인들에게서 찾을 수가 있다.낙동강 유역의 수메르 인들이 아리아 인들에 의해 완전히 밀려 역사의 장에서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고, 신라가 발전할 수 있었던 데는 수메르 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신라 김(金)씨 왕들의 시조인 김알지(金閼智)가 제4대 탈해왕 때 황금 궤짝에서 나왔다는 설화는 수메르 인계가 정치의 중심에 등장하기 시작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金(금)'자가 '곰'의 뜻으로 쓰인 예가 많으므로, '김(金)'은 수메르 인의 상징이었던 '곰'을 음역한 것으로 볼 수 있어, '김(金)씨는 수메르 인이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3대 노례(유리)이사금의 왕비가 김(金)씨였던 것으로 보아 수메르 인의 힘이 건국 초기부터 만만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수메르 인계 김씨 왕들에 의해 낙동강 일대에 있었던 아리아 인의 소국들이 신라로 합병되었기 때문에 "낙동강 오리알처럼 떨어졌다."·"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라는 속담이생겼다고 볼 수 있다. 김씨 왕들이 아리아 인이었다면, 이 속담이 유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의 '행주산성'과 영국의 '스톤헨지'
한국의 한강 유역에 있는 '행주산성'의 '행주', 영국의 솔즈베리에 있는 '스톤헨지(Stonehenge)'의 '헨지', 파키스탄의 인더스 강 유역에 있는 고대 유적지인 '모헨조다로(Mohenjo-dalo)'의 '헨조'는 소리가 비슷하다. 우연히 생긴 비슷한 소리들일 수 있지만, 그냥 지나치기가 아쉽다. 아리아 인들이 한국·영국·인도로 이동했으므로 '행주·헨지·헨조'는 아리아 어에서 기원한, 어원이 같은 어휘들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대의 전통 어휘들은 당시의 종교와 깊은 관계가 있었으므로, 이 어휘들은 알알 문명의 종교에서 기원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행주·헨지·헨조'는 당시의 종교 행사였던,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공희의 제사와 관계가 있는 어휘였다고 볼 수 있다.
스톤헨지는 영국의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고대의 유적이다. 영국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스톤헨지가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500년경부터이며, 돌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2000년경부터이고, 기원전 1000년경부터는 버려졌다고 한다. 스톤헨지라는 이름은 색슨 인이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스톤헨지'의 뜻이 무엇이란 말은 없다. 영어로 '스톤(stone)'은 돌이란 말이니까 거석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지만, '헨지(henge)'의 뜻을 알 수가없기 때문이다. '헨지'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한국어의 '행주산성·행주치마·행주·행주질'의 '행주'와 '헨지'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서로를 보완함으로써 '솔즈베리·서벌·서울'의 뜻을 알 수 있었듯이, '헨지'와 '행주산성·행주치마·행주·행주질'이 갖고있는 뜻들을 활용하여 서로를 보완해 보면, 이 어휘들의 원 뜻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행주산성은 한강 하류 북쪽 강변에 있는 작은 산성으로서,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벌어졌던
싸움(1593년)에서의 승리로 유명해진 곳이다. 이 행주산성 싸움에서 부녀자들이 앞치마에 돌을 담아 날라 싸움을 도왔다고 해서 '행주치마'라는 말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임진왜란보다 앞서 1481년에 초간된 『두시언해(杜詩諺解)』에 "쵸마 호"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행주치마라는 말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쵸마'란 말이 임진왜란 이전부터 있었듯이 '행주'·'행주질'이란 말들도 옛날부터 있었을 것이다.따라서 '행주'란 말은 아리아 어에서 기원했다고 볼 수도 있으므로, '행주'와 어원이 같은 말이 영어에도 있을 것이다. '스톤헨지'의 '헨지'가 '행주치마'의 '행주'와 어원이 같다면, '행주'의 원 뜻이 그릇 닦는 헝겊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행주'의 원 뜻은 그릇 닦는 일과 관련된 어떤 행위를 이르는 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행주치마'의 '치마'는 영어의 '치미어(chimere)'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치미어(chimere)'는 영국 국교회파의 주교가 때때로 입는 헐겁고 소매가 없는 웃옷이다. 이 '치미어'와 '치마'의 어원이 같다면, 행주치마의 기원은 종교 행사와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행주치마는 옛날에 '행주'란 행사를 치를 때 사제가 입는 소매가 없는 웃옷에서 기원했다고 볼수 있다.행주산성의 축성 시기는 통일 신라 시대의 토기가 나오는 점으로 보아 그 이전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고려 시대에 이 일대를 행주(幸州)라고 부르기 이전에도 행주산성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고려 시대 이전에 행주산성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강변에 솟아 있는 작은 산이지만 토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산의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산의 이름은 지역의 이름이 바뀔 때마다바뀌었다고 보기 어렵다. 산의 이름이 '행주산'이어서 행주산성이라고 불렀다면, 고려 시대의 행주란 지명은 행주산성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려가 건국하고 개명한, 중부 지방의 지명들 중에는 고조선 시대의 지명에서 유래되었다고 추측되는 것들이 많다. 지명이 통일 신라에 의해 개명되었어도 이 지역 사람들은 옛 그대로 불러오다가, 고려가 건국되면서 옛 이름들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행주'란 지명도 그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오래된 지명들은 한자의 뜻보다 소리에 원 뜻이 있다. 그러므로 '행주산성'의 '행주'도 소리에원 뜻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오래되었다는 공통성으로 볼 때, '행주산성'의 '행주'는'행주치마·행주질'의 '행주'와 어원이 같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행주산성'은 '행주란 행사를 치르던 산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행주(幸州)'란 지명에 행복이란 뜻인 '행(幸)'자가 쓰인 것으로 보아, '행주'란 말은 무언가를 기원하는 일과 관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스톤헨지가 있는 '솔즈베리'란 지명은 한국 고대사에 등장하는 고구려의 졸본, 신라의 서벌, 백제의 사비·소부리 등과 어원이 같다. 따라서, 솔즈베리는 그 주변 일대에 살던 종족들의 수도이었고, 솔즈베리의 중심인 스톤헨지는 종교 행사를 치르던 곳이었다고 볼 수 있다. 어떤행사가 있었을까?
'솔즈베리'·'서벌'은 '살벌(殺伐)'이란 말과 소리가 비슷하다. '살벌'은 '분위기나 풍경 또는 인간 관계 따위가 거칠고 서먹서먹함'을 뜻한다. '살벌(殺伐)'은 '솔즈베리'를 음역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솔즈베리에서 행해졌던 신에게 희생의 산 제물을 바치던 공희의 제사 분위기가 살벌하여, '솔즈베리'란 말에 '살벌(殺伐)'이란 뜻이 생겼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를 위한다는 명분에 의해 소수의 희생이 강요됨으로써 솔즈베리에 살벌한 기가 감돈 것이다. 이 살벌했던 공희의 행사 이름이 '행주'·'헨지'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행주산성'은 한강변에서 아리아 인들이 신에게 희생의 제물을 바치던 공희의 행사인'행주'를 치르던 산성이었고, '행주치마'는 이 행사를 할 때 제사장이 입었던 앞치마이었고, '스톤헨지'는 공희의 행사인 '헨지'를 치르던 돌 제단이란 뜻이었다고 할 수 있다.
파키스탄의 인더스 강 유역에 있는 인더스 문명의 유적지인 모헨조다로(Mohenjo-dalo)는
기원전 2500년경∼기원전 1500년경까지 인더스 문명의 중심이었던 고대 도시다. 기원전
1500년경에 인더스 강 유역으로 침입한 아리아 인들이 이 도시를 파괴시켰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모헨조다로'라는 말이 언제부터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래된 이름이라면, 한국어와 영어로 그 뜻을 풀이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모(Mo)'는 수메르 인들이 즐겨 사용한 성인이라는말인 '모니(muni)'와 같다고 볼 수 있다. '헨조(henjo)'는 '스톤 헨지'의 '헨지', '행주산성'의'행주'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다로(dalo)'는 (넓은)골짜기라는 말인 영어의 '데일(dale)'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데일(dale)이란 말은 지금은 (넓은)골짜기란 뜻이지만, 아랄 시절에는 강이 흐르는 넓은 골짜기에 있는 충적 지대에서 농사가 잘되었기 때문에, 아랄 시절에 데일(dale)은 농경이 가능한 비옥한 충적 지대가 있는 계곡을 이르던 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데일(dale)'이란 말이 한국어에서는 '들'로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데일(dale)'은 고조선의 도읍지였던'아사달(阿斯達)'의 '달(達)'과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의 잉글랜드 버크셔에 서닝데일(Sunning dale)이란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다로·달·데일·들'은 어원이 같고, 옛날에 지명으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모헨조다로'의 뜻은 '모니(수메르 인)들이 공희의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 있는 들'
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해석은 '모헨조다로'의 뜻이 '사자(死者)의 언덕(the mound of the dead)'이라고 전해지는 것과 서로 통한다.
『환단고기』의 뿌리는 역사다.
문자가 없었던 시절에 노래[lore]로 암송되어 전해지던 역사가 문자로 기록된 것이 신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화 속에는 역사의 뿌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신화의 형식을 갖춘 창작된신화들도 있을 것이지만, 각국의 건국 신화들은 대전제 "아리랑은 아리아 인, 쓰리랑은 수메르 인, 이들의 원주지는 중앙 아시아의 아랄이다."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수메르 인과아리아 인이 세계로 이동하며 파종한 문명의 시작이 각국의 건국 역사이었고, 이것이 압축되어 문자로 기록된 것이 각국의 건국 신화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조선의 건국 신화인 '단군 신화'에도 역사가 압축되어 있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정사(正史)는 고조선의 역사적 실체를 인정하면서도 그 시작을 전하는 단군 조선에 관한 역사 기록을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고려 때 김부식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삼국사기』에는'朝鮮遺民(조선유민)'이란 글귀가 고조선에 관한 기록의 전부이지만, 뒤에 일연이 개인적으로 편찬한『삼국유사』에 는 '고조선'의 건국 신화인 '단군 신화'가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의 하나다. 당시에는 고조선에 관한 자료들이 지금보다 많이 있었을 것인데, 선대의 역사를 편찬하는 국가적 사업에 고조선의 역사를 누락시키고 삼국에 국한하여 편찬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다. 고려의 뒤를 이은 조선은 '조선'이란 국호를 사용하면서도 고조선의 역사 기록을 역시 기피했다. 조선 세조 3년에는『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삼성밀기(三聖密記)』등과 같은 문서를 사처에 소장하지 말고 진상하도록 한 수거령이 있었다. 수거된 문서가 얼마나 되었고 어떻게 보관되었다는 기록이 없으니, 잘 보관하기 위한 수거가 아니었고, 뿌리를 뽑기 위한 수거령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렇게 정사가 대를 이어 고조선의 역사 기록을 기피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종교 문제였다고 볼 수 있다. 불교가 국교로 공인되면서 재래 종교의 몰락과 더불어 고조선의 역사도 배척을 당하게 되었다. 고조선의 역사는 재래 종교와 유착되어 있어서 역사만을 따로 분리하여 계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불교가 국교로 공인되면서 고조선의 역사와 전통이 철저하게 배척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간접적인 증거가 기록에 있다. 신라 초기에 임금을 차차웅·이사금·마립간 등으로 부르게 된 유래에 대하여 8세기경 신라의 대학자였던 김대문(金大問)의 어원 해석이『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해석은 원래의 뜻과는 전혀 다르다. 이런 엉뚱한 해석이 생기게 된 원인은 재래 종교의 제사장들이, 불교가 국교로 공인되면서, 공식적으로 설자리를 잃게 되어 그들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었던 고조선의 역사와 언어가 갑자기 단절되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 시대에도 고조선의 역사 계승은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삼국사기』에 기록되지 않은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유교가 종교를 지배했기 때문에 재래 종교와 연관되었던 고조선의 역사는
계승될 수 없었다. 또, 고조선의 역사는 너무 오래 되고 지나치게 압축되어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에 유용성이 없었던 것도 계승되지 못한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재래 종교에 대한 신앙적인 믿음이 없이는 고조선의 역사는 온전히 전승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고조선에 관한 기록은 장구한 역사에 비해 너무 빈약하다.이제 종교의 족쇄는 풀렸지만, 정사의 전통은 신화란 꼬리표를 붙여 여전히 고조선의 시작인 단군의 역사를 금기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리랑의 뜻이 밝혀짐으로써 단군 신화는 역사로 복원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단군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환단고기(桓檀古記)』란 책이 있지만, 정사는 이 책을 위서로만 평가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런 편협한 역사관을 갖고는 세계의 고고학 자료들을 분석하여 종합해 낼 꿈도 꿀 수 없고,『일본서기』의 신화 시대를 제대로 읽어 낼 수없고, 한국 고대사에 대한 외국 학자들의 역사 왜곡을 반박할 수 없다.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 밝히자는 것이지 없었던 역사를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물론 문제는 있다.『환단고기』는 창조론적 역사관에 기초되어 있어 종교성이 강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의 압축으로 인해 생긴 문제로 보고 하나하나 풀어 가면 된다.『역사의 키워드 아리랑과 알파벳』은 있는 그대로를 추구하는 역사관에 기초하여 고대사를 연구함을원칙으로 한다.
『환단고기』에 근세에 생긴 용어들이 있다고 해서 전체를 위작으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종류의 문헌들을 소지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었던 시절에 그 내용들이 온전히 전해졌을 리가 없다. 그 속에 잃어버린 역사가 있다고 보고, 옥석을 가릴 때가 되었다. 이런 뜻에서『환단고기』에 나오는 글 중에서 주목할 만한 호칭·국명·지명 등의 어원을 해석해 보았다. 이러한 해석을 통해 『환단고기』와 알알 문명이 상호 연계된다는 사실을 역사학계는 주시해야 할 것이다.
"天帝桓因氏亦稱安巴堅(천제환인씨역칭안파견)"이란 기록이 있다. 이 글은 천제(天帝)인
'환인(桓因)'을 '안파견(安巴堅)'이라고도 칭했다는 뜻이다. '안파견'의 '안파'는 '알파·알프스·알평'과 어원이 같고, '견'은 임금을 뜻하는 '칸'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안파견'의 뜻은'아랄의 평화를 지키는 임금'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Afghanistan)'의 '아프간'은 '안파견(安巴堅)'과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프가니스탄'을 직역하면, '천제 환인 안파견의 땅(나라)'이 된다.
'須密爾國(수밀이국)'이란 기록이 있다. 수밀이국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Sumer)'라고 할
수 있다.『환단고기』에 나오는 파나류 12국의 영역은 아랄 해를 중심으로 하는 당시의 세계 지도였다고 볼 수 있다.
"斯白力之天(사백력지천)"이란 기록이 있다. 아리아 인들은 아랄 지역을 '斯白力'이라 불렀
다고 볼 수 있다. '斯白力'은 '시베리아(Siberia)'의 음역으로 볼 수 있지만, 불교에서 중생이 여러 가지 고통을 참고 견디어야 하는 이 세상이라는 뜻인 '사바 세계'와도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왜냐 하면, '시베리아'의 '시베'와 '사바 세계'의 '사바'에서 '시'와 '사'는 둘 다 '새로운·신성한'이란 뜻이고 '베'와 '바'는 곰이란 말인 '베어(bear)'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어, '시베리아'와 '사바 세계'는 둘 다 '새로운·신성한 백곰의 땅'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인도로 이동한 아리아 인들은 '사바 세계' 즉 '아랄 지역'에서 종족들간에 싸움이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사바 세계'를 매우 고통스러운 세상으로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阿耳斯 (아이사타)'라는 기록이 있다. '아이사타'는 인류의 조상이 처음 만난 곳이고,
'사타려아(斯 麗阿)'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이사타'와 '사타려아'에 '사타'가 공통으로 있다. '사타'의 '타'는 그리스 알파벳의 '델타·제타·이타·시타·이오타'에서 볼 수 있듯이 장소를 뜻한다. 따라서 '사타'는 '세인트(saint)·산타(santa)'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으므로, 그 뜻은 '성인들이 사는 곳'·'신성한 곳'이다.'아이사타'의 '아이'는 '알'에서 기원한 말로서 한국어의 '아이'와 어원이 같고 '새 생명·새로운'이란 뜻이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아이사타'의 뜻은 '새 생명이 있는 신성한 곳'이다. '사타려아'의 '려아'는 지역을 뜻하는 에리아(area)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으므로, '사타려아'의 뜻은 '신성한 지역'이다.
'波奈留之山(파나류지산)'이란 기록이 있다. '파나류'는 '파미르(Pamirs)' 고원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파'는 '위대한'이란 뜻이고 '나루'는 '나라'와 같다고 볼 수 있으므로, '파나류'의 뜻은 '위대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天海(천해)'의 동쪽에 환인의 파나류국이 있었고 그 강역이 매우 넓었다는 기록이 있다. 중앙아시아의 아랄 해(Aral Sea)를 중심으로 펼쳐진 광활한 영역이 카스피 해(Caspian Sea)의
동쪽에 있는 것으로 볼 때, 천해는 카스피 해라고 할 수 있다. 또, '카스피 해(Caspian Sea)'의'카(Ca)'는 '카인(Cain)'의 '카'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어, '카스피 해'의 원 뜻은 '카인의 바다'·'환인의 바다'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만여 년 전에 빙하기가 끝나고 종족들이 북상하기 시작한 초기에 백인계 카인은 카스피 해를 중심으로, 흑인계 아벨(Abel)은 흑해(Black Sea) 남부 연안을 중심으로, 황인계 셋(Seth)은 아랄 해를 중심으로 수렵채취에 주로 의존하여 각각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후 인구의 증가로 농경의 비중이 증가하게 되면서, 아랄 해의 아무 다리아 강과 시르 다리아 강 유역의 델타 지대가 각광을 받게 되었다. 카인은 아무 다리아 강 유역에, 셋은 시르 다리아 강 유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벨은 힘 겨루기에 밀려 정착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이후, 아랄 해의 두 강 일대에서 인류 문명의 탄생이 시작되었다. 여기가『성경』에 나오는 에덴(Eden)의 배경이다. 아벨이 흑인계였다고 볼 수 있는 유전학적 자취를 일본의 소수 민족인 아이누에서 찾을 수 있다.『성경』에 서 카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은 카인 족이 아벨 족을 아랄 지역에서 밀어낸 싸움이었다고 볼 수 있다. (279쪽 "아이누는 아프리카 인의 후예다." 참고)
'흑해(Black Sea)'란 이름이 생긴 유래에 대한 몇 가지 설이 있지만,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에
"몇몇 기록에 의하면, 아마 흑인종(a black race)이 살았던 데서"라는 짤막한 기록이 있다.
옛날에 이 바다 남부 연안 일대에서 흑인들이 살았기 때문에 이 바다를 흑해라고 불러온 역사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홍수 시대에 이 일대로 아프리카 흑인의 진출이 만만치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천해를 바이칼호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바이칼호는 염호가 아니고, 그 주위에는 농경이 가능한 충적 지대가 발달되지 않아, 큰 집단이 탄생하기에는 부적합한 지역이었다. 바이칼호 동쪽에 있는 흑룡강(黑龍江)은 흑인계 아이누가 이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쓰인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黑水(흑수)'와 '白山(백산)'이란 기록이 있다. 「삼성기」 첫 장에 나오는 '흑수'와 '백산'은 환인의 무리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다. 이 때는 환웅의 무리가 이동하기 이전이므로 흑수를 흑룡강으로, 백산을 백두산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기서의 흑수는 흑해(Black Sea)이고, 백산은 흑해와 카스피 해 사이에 있는 카프카스 산맥의 엘브루스(El brus, 5642m)산이나, 아랄 지역 남부의 산악 지대인 엘부르스 산맥, 또는 아랄 해 동쪽의 산악 지대인 파미르 고원의 고봉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엘브루스'의 '엘'은 가나안 신화에서 신들과 인간의 아버지가 되는 신이었던 것으로 볼 때, '엘브루스'의 뜻은 '엘을 부르는 산', '엘을 위하여 제사를 지내는 산', '엘이 강림하는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부터 엘부르스는 성지로 여겨졌다고 볼 수 있다.
'靑邱(청구)'라는 기록이 있다. '청구(靑邱)'의 '청(靑)'은 '파라(Pa Ra)'를, '구(邱)'는 '고을[Gaul]'을 음역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靑邱(청구)'의 어원은 '파라고을(Pa Ra Gaul)'이고, 뜻은 '위대한 태양신의 고을'이다. 남미(南美)에 있는 나라의 이름인 '파라과이(Paraguay)'와, 대구시에 있는 '팔공산(八公山)'의 '팔공(八公)'은 '파라 고을'과 어원이 같다고볼 수 있다.'장당경(藏唐京)'이란 기록이 있다. '장당(藏唐)'은 '성스러운'이란 말인 독일어 '장크트(sankt),영어 세인트(saint)'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장당경'은 '성스러운 수도'란 뜻이다.
'가림토(加臨土)'라는 문자 기록이 있다. '가림토'란 말은 고대 한국어일 것이므로, 어원은
'가람 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가람(伽藍)의 어원으로 보는 승가람마(僧伽藍摩)의 산스크리트 어 'samgharama'는 '삶 god Ra many' 즉 '승려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가림토 문자'는 불교 이전에 있었던 재래 종교의 사찰(가람 터)에서 승려들이 사용한 문자였다고 할 수 있다. 비슷한 문자가 인도에도 있는 것으로 볼 때, 아랄 시절에도 이와 유사한 문자가 사용되었음이 유추된다. (주 3-6)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이런 내용들로 볼 때 『환단고기』를 아무런 근거도 없는 조작품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취사 선택도 쉽지는 않다. 많은 연구가 있어야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환단고기』를 조작된 것으로 보아온 편견은 사라져야 된다는 것이다.
니나 노 늴리리야 (Nina know Nilerea)
닐리리야 '닐리리야'는 경기 민요의 하나로서 무당들이 굿을 할 때 부르던 무가(巫歌)인 창부 타령(倡夫打令)에서 전화된 노래다. 지금까지 '닐리리야'란 말은 피리의 음색을 딴, 뜻이 없는 구음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것은 고대에 한반도로 이주한 종족들의 이동 역사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잘못된 해석이다. '닐리리야'는 세계가 잃어버린 알알 문명의 존재를 증언하는 노래다. 이노래 속의 노랫말들을 해석해 보면, '닐리리야'에 잊혀진 역사가 담겨 있다는 것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니나노 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 … 얼씨구나 절씨구나 좋다 좋아."
'니나노 닐리리야'는 현대 한국어로 해석되지 않는다. 아무런 뜻도 없는 구음이 노래의 제목
으로 되기는 어렵다. 뜻을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노래이니 아리아 인의 노래에서 기원했다고
보고, 이 노랫말을 아리아 어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영어로 옮겨
보았다. (주 3-7)
"Judging raise what. Nina know Nilerea. Nilerea
Nina know, all seek, jury seek, joy joy."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를 'judging raise what'이라고 옮겨 보았다. '짜증'은 '재판하다'란 말인 'judge'의 진행형 'judging', '내다'는 '일으키다'라는 말인 'raise', '무엇'은 '무엇'이라는 말인 'what'과 어원이 같다고 보면, 'judging raise what'의 뜻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 위하여 재판을 해서 무엇하나?"라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재판을 한다는 것은 짜증스러운 일이어서, '저지(judge)'의 진행형 '자징(judging)'이 '짜증'으로 전의되었다고 볼 수 있다.'니나(Nina)'는 바빌로니아 신화에서 대양(大洋)의 신(神)인 '에아(Ea)'의 딸이며, 강의 여신이다. 한국어에서 '에아'는 뱃노래 소리인 "에아디야 어기아디야"의 '에아'로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주 3-8) '노'는 'know(알다)'와 어원이 같다고 할 수 있다.'닐리리아(Nilerea)'는 '나일 에리어(Nile area)' 즉 나일 강 유역을 뜻했다고 볼 수 있다. 아리아 인들은 기원전 2000년경 아랄 지역에서 외부 세계로 이동을 하기 이전부터 이집트의 나일 강 유역에 대한 소식을 듣고, 나일 강 유역을 이상향으로 생각하고 '닐리리야'라 부른 것이다. '얼씨구'는 'all seek' 즉 '모두 찾아보자'란 뜻이고, '절씨구'는 'jury seek' 즉 '배심원이 찾아보자'란 뜻이라고 하면, 앞뒤의 말이 통한다. '좋다'는 'joy'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위의 노래를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재판을 해서 무엇하나. 강의 여신 니나(Nina)는 나일 강 유역의 이상향 닐리리야(Nilerea)를 알고 있다. 모두들 찾아가 보자, 배심원이 찾아가 보자, 좋다 좋아."
아마도 몇 사람이 모여서, 들은 풍월로, '대양의 신 에아가 사는 집터'인 '이집트'의 나일강유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서로의 이야기가 달라 싸움이 벌어졌던 것 같다.
"옳고 그른지를 누가 판단해 줘야 할 텐데, 아무도 가보질 못했으니 재판을 한들 누가 어떻게판단해 줄 수 있겠느냐? 에아의 딸인 강의 여신 '니나'는 나일 강 유역의 이상향 닐리리야를 잘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닐리리야가 어떤 곳인지를 알기 위해 모두 다 같이 찾아가 보자, 배심원들이 대표로 찾아가 보자,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자. 좋다 좋아 해보자." 이런 뜻이 담겨 있다면, 지나친 망상일까? 가정이 가정을 낳고 있지만, 그 결과는 '알알 문명의 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뿔뿔이 흩어진 것들을 하나의 가정을 통해 모음으로써 잊혀졌던 것을 찾아 낼 수 있다면, 그 가정은 진실이다.
'닐리리아'라는 노래가 한반도에서 불려져 온 지는 적어도 2천년 이상 되었다. 아리랑과 마찬가지로 문자로 기록된 일이 없이 입으로만 전승된 노래다. 이렇게 원형이 온전하게 구전될 수 있었던 것은 옛날의 지명들이 한자로 표기되었어도 옛 소리 그대로 불러온 전통이 있었고, 특히시골의 자연 부락 이름들은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거의 다 옛 소리 그대로 불려질 만큼, 한국어의 뿌리가 깊고 튼튼했기 때문이었다.
뜻을 잃어버렸던 '조선, 서울, 서벌, 아리랑, 쓰리랑, 닐리리야, 미추홀, 아리송' 등을 알알 문명이란 하나의 고리에 연결시켜 해석하면, 각각의 뜻들이 자연스럽게 상통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종족 이동의 역사가 있었다는 증거다. 억지나 우연이나 전파에 의해, 각각의 뜻들이 이렇게 상통할 수는 없다.
아리랑
아리랑에는 '서울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 정선 아리랑'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너무 흔하다고 그냥 지나치기가 섭섭하여 '서울 아리랑'을 옮겼다.
"아리랑 아리랑 아랄이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아리랑은 임과의 관계를 종족 이동의 역사에 비유한 노래로서 3∼4천 년 전의 역사를 온전히
간직하고 적어도 2000여 년 이상 구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알알 문명의 종교와 전통은 불교가 국교로 공인되면서 설자리를 잃게 되었지만, 민간에서 굿과 광대의 형태로 그 명맥이 이어졌다. 아리랑은 지난날 광대가 부르던 판소리나 잡가를 통틀어 이르는 타령에 속한다. 타령은 서민의 노래였다. 아리랑이 옛 노래 책에 오르지 못했던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은 지배층이 타령을 천시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리랑은 한국인들을 한데 묶어 하나로 결속시키는 철학이 되어, 어려운 고비를 넘기는 힘이 됨으로써 지금도 싱싱한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아리랑은 한국인의 정이다.
아리랑이란 노래는 있어도 쓰리랑이란 노래는 없다. 이유는 '우두커니 서 있다'·'우두망찰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쓰리랑이 아리랑의 힘에 밀렸기 때문이다. (211쪽 "우두커니 서 있다." 참고) 하지만, 아리랑과 쓰리랑은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랄이가 났네."와 같은 공존의 철학을 갖고 융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위대한 혼혈·한국인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진출과 더불어 '대∼한민국'이 떴다. 대∼한민국인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단군의 자손'·'배달 민족'이란 어휘들 속에는 한 핏줄의 순수성을 한국인 원래의참모습으로 보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러나 역사적 참모습은 그렇지가 않다. 단군 신화를 역사로 볼 때, 환웅의 일행은 외부에서 이주한 종족이었고,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단군 왕검이태어났다는 이야기는 한국인의 혈통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역사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한국인의 뿌리를 밝히기 위해서는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랄이가 났네."를 확대 해석한 대전제 "아리랑은 아리아 인, 쓰리랑은 수메르 인, 이들의 원주지는 중앙 아시아의 아랄이다."를 역사적 사실로 보고, 이것을 단군 신화에 접목시켜 볼 필요가 있다. 대전제가 역사적 사실이라면,단군 신화 속에 아리랑과 쓰리랑의 역사가 있을 것이다.환인의 서자 환웅의 일행은, 이주했던 시기로 볼 때, 아리랑 즉 아리아 인이다. 아리랑의 노랫말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랄이가 났네."에는 아리랑과 쓰리랑은 고향이 같으니 사이 좋게 지내자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아리아 인은 같은 고향 출신인 수메르 인과 손을잡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곰에서 사람으로 변한 웅녀는 쓰리랑 즉 수메르 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환웅과 웅녀의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 왕검은 아리아 인과 수메르 인의 혼혈이다. 이러한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한국어의 뿌리를 밝히는 것이다. 고대에 종족들이 이동하며 상호 융화됨으로써 그들의 언어들도 융화되어 오늘의 언어가 되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언어의 뿌리가 형성된 과정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의 형성 과정과 같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여러 고대 문명들이 남긴 전통 어휘들이 한국어로 해석되고, 한국어에 영어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는 어휘들이 최소 200여 개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므로 한국어의 뿌리에 수메르 어와 아리아 어가 있다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문제는 어순이다. 한국어는 주어(S)+목적어(O)+동사(V) 즉 SOV형 어순이고, 아리아 어는 주어(S)+동사(V)+목적어(O) 즉 SVO형 어순이다. SOV형 언어는 초원에서 생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초원 지대에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말하는 기회가 많아, 자연히 큰 소리로 목적어부터 말하는 것이 의사 전달을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다는 경험을 쌓게 되었고, 이것이 발전하여 SOV형 언어로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SOV형 언어는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종족들이 발달시킨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알타이 어계에 속하는 터키 어·몽골 어·퉁구스 어·한국어·일본어 등이 여기에 속한다.
SVO형 언어는 숲에서 생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숲에서는 서로 가까운 거리에서 말을 하는
기회가 많아, 상대가 무엇을 말하려 한다는 것을 눈치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라, 목적어다 동작을 나타내는 말을 먼저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의사 전달이 빠르고 정확하다는 경험을 쌓게 되면서, 이것이 발전하여 SVO형 언어로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SVO형 언어는 그 기원이 숲이고, 일찍부터 농경 생활을 하던 종족들이 발달시킨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인도 유럽 어족의 언어·셈 어·중국어 등이 여기에 속한다.한국어의 어휘들 중에는 아리아 어에서 기원한 것들이 많이 있지만, 한국어의 어순은 아리아어와 다르다. 이것은 아리아 어가 한반도에서 중심 언어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뜻이고, 숲의 언어인 SVO형 언어를 사용한 아리아 인을 능가하는, 초원의 언어인 SOV형 언어를 사용한 저변세력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 저변 세력의 실체는 어떤 종족이었을까? 그 종족은 수메르 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 하면,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어는 SOV와 SVO의 혼합형으로 알려져 있지만, 인도의 드라비다 어가 한국어와 어순이 같은 SOV형 언어인 점으로 볼 때, 수메르 어의 원형은 SOV형이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아 인을 뜻하는 아리랑이란 노래는 있어도 수메르 인을 뜻하는 쓰리랑이란 노래는 없는 것이 현실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것은 아리아 인들이 지배는 했지만 수메르 인들의 수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아리아 어가 수메르 어에 흡수되었다는 뜻이다. 수메르 인들의 수가 많았다는 것은 한반도에 있는 고인돌의 수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고인돌은 수메르 인들이 축조한 것이다. 세계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5만여 기의 고인돌 가운데 그 절반이 한반도에 있다. 한반도에 있는 고인돌의 수가 한반도로 이주한 수메르 인의 수와 비례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메르 인의수가 많았다는 하나의 증거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한반도의 원주민들이 사용한 언어가 어떤 어순의 언어였는지, 한국어의 어떤 어휘들이 원주민어에서 유래되었는지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원주민어가 고대 한국어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주민의 세력이 만만치 않았다고 볼 수 있는 몇 가지 증거가 있기때문이다.
(1) 북방형 고인돌이 한강 이북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는 것은 원주민들이 한강 유역을 경계로 하여 수메르 인들의 남진을 초기에 저지했었다는 뜻이다.
(2) 낙동강 유역에 있는 고인돌들이 거의 다 남방형이란 사실은 수메르 인들이 낙동강 유역
으로 진출한 시기가 매우 늦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원주민들이 비옥한 낙동강 유역에서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고 수메르 인의 남진을 오랫동안 저지했었다는 증거다.
(3) 고인돌이 북방형에서 남방형으로 변하게 된 원인들 중의 하나는, 수메르 인들과 원주민들이 융화되며, 수메르 인의 조장 풍습과 원주민의 매장 풍습이 융화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수메르 인들과 원주민들은 초기에 격렬하게 충돌했지만, 아리아 인들의 남진이 본격화되면서부터는 공동으로 저지하기 위하여 융화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원주민어와 수메르 어가 융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찍이 한반도 북쪽과 만주 일대에서 고조선을 건국한 아리아 인들은 북방 아시아계 종족들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하여 곰 즉 수메르 인과 손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아리아 어와 수메르 어가 융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북방에서 형성된 '아리아 어 + 수메르 어'와 남방에서 형성된 '수메르 어 + 원주민어'가,
고조선의 유민들이 한반도로 남진함으로써, 상호 융화되어 고대 한국어로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대 한국어는 교착어였고, SOV형과 SVO형의 혼합형이었다고 볼 수 있는 고대 한국어의
어휘들이『일본서기』에 있다. 이 어휘들은 일본으로 이주한 고대 한국인들이 남긴 것이다.
당시의 어휘들이 현대 한국어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이 시절의 고대 한국어가 현대 한국어의 근간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언어 증거들로 볼 때, 현대 한국어는 다음과 같이 여러 언어가 융화된 복합 언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한국어 = 한반도 원주민어 + 수메르 어 + 아리아 어 + 중국어를 비롯한 외래어
수메르 어와 아리아 어가 한국어의 뿌리가 되었다는 주장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학계와 언어학계가 짚고 넘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중앙 아시아의 아랄 해 일대에서 성장한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이 세계로 이동했고 그들의 일부가 한반도로 이동했다는 사실들이 부정되기는 어렵게 되었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랄이가 났네."와 '그리스 알파벳'이 상고 시의 역사를 풀 수 있는 키워드가 됨으로써,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의 이동이 역사적 사실로 확인되기 때문이다.충북 제천시 황석리 고인돌에서 발굴된 기원전 5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골의 형태가 장두형이란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장두형 두개골은 단편적으로나마 아리아 인이 한반도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인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삼국 시대 초기에 황하 유역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아리아 인들은 국가 건설에는 성공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그들의 언어는 고대 한국어에 흡수되었다고 볼 수 있다.이상과 같이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의 언어가 한국어의 근간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어는 알타이 어 계통에 속하면서도 특이한 형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한자음이 고대 중국음에 더 가까운 것은 받아들인 쪽이 원형을 더 잘 보존하는 속성이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이 속설은 종족 이동의 시각으로 고대사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잘못된 설이다.받아들인 쪽이 원형을 더 잘 보존하는 속성이 진리라면, 현재의 영국어보다 미국어가 19세기 영어의 원형을 더 잘 보존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먼 뒷날, 한국이나 일본이영어 어휘들의 원형을 영국보다 더 잘 보존할 것이라고 주장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리는 멀어질수록 흐려지는 법이다. 한 종족이 원주지에서 다른 지역으로 다수가 이동한 다음에 그 원주지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이 진입해 지배했기 때문에, 원주지 언어보다 이주지 언어가 원형을 더 잘 보존하게 된 현상을 언어의 속성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과거의 역사에서 받은 쪽이 준 쪽보다 원형을 더 잘 보존한 것과 같은 현상이 발생하였던 것은 언어의 속성이 아니고 종족 이동의 결과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한국의 한자음이 고대 중국음에 더 가까운 것은 황하 유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던아리아 인들이, 한(漢)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게 되면서, 남방 세력에 쫓겨 한반도로 이주하여 삼국 시대의 주축이 된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갖고 온 고대 중국의 한자음은 한국어에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황하 유역의 고대 중국 한자음은 남방계를 비롯하여 여러 변방의 음들과 융화되며 원형이 변하여 현재와 같이 된 것이다.
한국이 중국의 한 성(省)이 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힘은 황하 유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 밀려 생존을 위해 피난 온 종족들인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이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랄이가 났네."를 합창하며 줄기차게 저항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 같은 종족들의 이동이 없었다면, 중국이란 호기심에 이끌려 벌써 손들었을 것이다.
한국인을 단일 민족으로 보아 온 기존의 견해는 바뀔 때가 되었다. 수메르 인은 북방 아시아
계의 여러 종족들이 아랄 지역에서 융화되며 새롭게 태어난 종족이었고, 아리아 인은 유럽계의 여러 종족들이 아랄 지역에서 융화되며 새롭게 태어난 종족이었다. 이렇게 혼혈된 두 종족이 한반도에서 상호 혼혈되었고, 여기에 한반도의 원주민을 비롯하여 중국계와 일본계가 유입되었다. 그러므로 한국인은 위대한 혼혈이다. 큰 나라일수록 혼혈의 비율은 증가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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