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장미가 베르사유 정원 같습니다. 쌀밥에 북엇국이 나와서 감사하게 먹고 나왔어요. 고향 담양은 대륙이라 북엇국에 대한 향수가 없는데 내 뇌는 언제, 어디서, 왜, 캡처한 걸까요? 고소하고 담백한 것이 초가 같은 느낌입니다. 집 앞에 꽃집에 들러 '녹보수.화분 하나를 사들고 왔어요. 모친 심부름으로 이 나무를 한 번 산 기억이 있습니다만 정확히는 모릅니다. 깔이 좋고 '대박 나무'라니 대박이 터졌으면 좋겠습니다. 선친께서는 구 탕을 가장 좋아하셨고 한 번도 술에 취한 것을 본 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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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술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것은 부전자전일 거예요. 모친은 젊은 날 술주정을 자주 하셔서 오늘날 나는 남녀 불문하고 주당을 싫어합니다. 대선이 딱 10일 남은 가운데 여야 격차가 오차 범위 안으로 줄어든 이유가 뭘까요? 필자가 딱히 갑장을 미워할 이유가 없는데 꼴도 보기 싫은 걸 보면 성악설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야당에서는 아직도 불쌍한 영부인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이유가 뭘까요? 김건희가 마리앙뚜아네트 쯤 된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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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 제기하는 것이 다 사실이라고 칩시다. 그래서 감옥을 보내고 포토라인에 세워야 직성이 풀리겠냐고요. 그러는 넌 뭐가 다른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을 죽이는 데 열심이었던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내가 왕을 죽였다!" 인가. 그래서 잘났다는 거야? 뭐야? 필자가 '동물의 왕국'에서 먹이사슬에 의해 생명이 산 채로 찢겨져 죽는 걸 보면서 희열을 느낀 것과 같은 맥락인가. 나아가 아직 죽지 않은 사자 새끼를 죽이고 싶은 걸까. 염병, 나만 소시오패스 독박을 썼나 했고 만 이제보니 너도 소시오페스가 아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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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 패싸움을 하다 보면 체인이나 칼로 피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도 피를 보면 흥분했던 것 같아요. 아쉽게도 실전(전쟁) 경험이 없어서 확인을 못했지만 육박전에서 총검술 할 때 보면 이글거리는 소시오패스의 모습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피째 먹지 말라(신 12;20-28)"는 언급이 있는 건가. 칸트의 '판단력이성 비판'은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에 대한 책입니다. 이는 그의 형이하학적인 '순수 이성론'과 형이상학적인 '실천 이성론'사이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넓은 갭을 매워보려는 의도에서 써진 책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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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접근법이 가능하지만 한계를 가진 '감성계'와, 객관화가 어려운 '초 감성계' 사이의 매개 원리에 관한 담론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미학'과 '목적론'을 합쳐서 '합목적성'을 밝히고 있으며 이를 통해 유토피아의 세계를 지향합니다.'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직관'을,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이성’을 파악했지요. 전자는 세계를 인지하는 원리였고, 후자는 도덕의 근거였어요. 그러나 이 두 이성은 칸트가 볼 때 논리적으로 매끄럽게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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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력 비판'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지성(직관)과 이성 사이의 ‘상상력’말입니다. 삼국지의 '천하삼분지계'처럼 플라톤이 1.이성(순수이성비판), 2.의지(실천이성 비판) 3.욕망(판단력 비판) 으로 나눈 이 형식을 빌려 칸트는 자기 철학 세계를 설파하더이다. 이미 '실천이성 비판'을 다뤘고 오늘은 '판단력 비판'을 다루겠습니다. 에예공! 팔로 미! 칸트 형님은 사실(이성)과 당위(종교) 사이에 깊은 심연을 '예술'이라는 교집합으로 접근하려 용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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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정리를 먼저 하면 '판단'이란 '개별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에 포섭시키는 일'입니다. 1. 규정적 판단-이미 있는 개념을 포섭하는 것 2. 반성적 판단-상상력(유희, 놀이, 범주)을 포섭하는 것으로 미적 판단을 4가지 카테고리로 나누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반성적 판단/성질의 범주/무관심한 관심 2. 상상력/분량의 범주/주관적 보편성 3. 유희, 놀이/관계의 범주/목적 없는 합목적성 4. 규칙, 범주/양상의 범주/주관적 필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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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계획 없고 누구에게 보이려고 하지 않은데도 치장하는 여성처럼 '무관심한 관심'을 궁예의 관심법으로 들여다봅시다. 내 생각은 칸트 미학의 핵심은'무관심의 관조'로 보입니다. 무관심하게 보지 못한다면, 아름다움의 영역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무관심하다는 것이 멍청하게 바라본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쩌면 아름다운 여인을 주시하다 다른 일체의 정신 줄을 놓는 상태가 아닐까? (그녀는 예뻤어. 완전히 뻑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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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으로 행해지는 나의 모든 체험은 어떤 형태로건 특정한 ‘관심’과 관련되어 있어요. 철학 강좌를 고를 때, 남친, 여친을 사귈 때, 점심 식사를 할 때는 물론이고 편의점에서 껌을 고를 때, 여유 있게 TV를 시청할 때, 독서를 할 때도 어떤 관심이 개입합니다. 나는 당연히 미적 체험을 할 때도 아름다움을 지닌 그 대상이나 그 대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전제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일상적으로 ‘관심’의 의미를 이렇게 넓게 사용하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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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칸트가 미적 체험의 특정을 ‘무관심한 만족’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품게 돼요. 아마도 칸트도 독자들이 이런 의구심을 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무관심한 만족’에서 자신이 말하는 ‘관심’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는 감이 있어요. 그러니까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 이외의 다른 관심들은 미적 체험에 있어서 쾌감의 원인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관심들도 만족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그때의 만족은 감각을 통한 쾌적감이나 선한 대상에 대한 윤리적 만족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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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적 만족과 다른 만족일 것입니다. 이러한 만족들은 만족의 대상이 실재함으로 해서 그것이 나와 혹은 다른 이들에게 어떤 중요성이 있을지 염두에 둘 때 생깁니다. 이런 관심에서 대상을 대하는 이들에게는 그 대상이 실재하면 거기서 만족이 발생하는 겁니다. 아름다움 자체에 대한 관심 이외의 관심을 가지고 대상을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대상을 통해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느끼는 만족감은 그러한 관심이 아닌, 아름다움 자체를 사심 없이 그저 관조(Betrachtung) 할 때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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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눈앞에 보이는 현존하는 궁전을 대하는 미적 관심 이외의 의식주나 경제 혹은 사회적인 관심들의 예를 들면서, 그러한 관심이 앞서게 되면 관찰자의 마음이 편파적으로 되어 궁전이 지닌 아름다움 자체를 감상할 수 없게 한다고 말해요. 아름다움 이외의 것들은 美가 주는 쾌감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美에 대한 판단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섞여 있다면, 그 판단은 매우 편파적이며 또 순수한 취미 판단(무관심한 관심)이 아니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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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에서 오는 만족은 쾌락_
선에서 오는 만족은 존중_
아름다움에서 오는 만족이 만족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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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셋 중, ‘만족’이야말로 가장 자유로운 만족입니다. '쾌락'은 경향성에 휘둘리고, '존중'은 선의 의무에 매이는데, '만족'이야말로 제약 없이 감각에 따르는 경향성에 휘둘리지도 않고, 선이 주는 의무에도 매이지 않는 '만족' 쾌락-존중-만족 중에 그중에 제일은 '만족'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파스칼이 팡세에서 말한 심심풀이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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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62회 차입니다. 마초도 천하의 맹장입니다. 마초와 조조군의 장수들은 싸움을 벌이고 조조는 마초에게 쫓겨 달아나다가 허저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합니다. 조조가 도망가는 모습이 볼만 합니다. 빨간 망토를 입은 자가 조조라고 말하자 조조는 망토를 벗어 던지고 수염이 긴 놈이 조조라고 하고 하자 조조는 칼로 자신의 수염을 싹둑 잘라버립니다.ㅋㅋㅋ 조조는 그렇게 패하고 진영에 돌아와 자신이 적을 얕본 것을 후회하고 서랑 군에 맞설 대책을 강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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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서랑군의 공격을 맞설 군영을 세워야 하는데 지형조건이 맞질 않는다고 합니다. 흙으로 토성을 짓자니 모래가 많다는 것 같습니다. 고심하던 중에 추운 날씨를 이용해 얼음성벽을 쌓는데 성공합니다. 물론 이 아이디어를 낸 건 조조입니다. 허저와 마초의 장신 간 일기토가 볼만 합니다. 말들이 지쳐서 말을 바꾸고 재대결을 할 만큼 막상 막하의 대결이 치열합니다. 조조의 수하 서 황은 마초군의 뒤를 공격합니다. 결국 마초군은 2만 군사를 잃게 되고 조조는 한수의 서찰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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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를 맺자는 것 같은데 조조는 강화 핑계로 마초를 한수와 이간질 시켜서 둘이 갈등이 생기게 만듭니다. 삼국지연의를 비롯 후대의 묘사에서는 마초가 허저, 장비 등의 맹장들과 막상막하로 무용을 펼치되 지략은 휘하장수 방덕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나 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록을 살펴보면 마초는 오히려 개인의 무용도 무용이지만 그보다 야전에서의 지휘능력과 상황 판단력에 더 뛰어난 모습을 보였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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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조차도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는 기록과 도하 작전 직전에 조조의 의도를 간파하고 그 책략을 깨뜨리기 위해 치렀던 일전에서는 확실히 그의 비범한 면모가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는 관서 군을 완벽하게 장악하는 게 불가했고 근본적으로는 각기 동등한 권한만을 갖춘 여러 제장들 중 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와 조조의 결정적인 입장 차이였고 동시에 승패가 극명하게 나뉜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하여간 마초-여포-주유는 삼국지를 리라이팅 하면서 새로 발견한 보화들입니다.
2025.5.24.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