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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떠서 호텔 창문을 열어보니 바람도 불고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먼저 물과 습기에 취약한 카메라가 걱정되었다. 이스라엘이 우기임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서 갈릴래아 호수의 물이 낮은 상태로 그대로 있다고 한다. 언제나 물이 모자라서 애태우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만 오면 반색을 한다고 한다. 우리가 머문 유다인 호텔 프런트의 직원이 안내자에게 한국에서 온 우리들이 이스라엘에 축복의 비를 가지고 왔다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란다. 비가 내려 순례하기에는 불편하지만 이곳 성지 이스라엘에는 극심한 가뭄 끝에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생명의 비이니 함께 기뻐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맞아야 했다.
오늘은 순례 후반부에 접어든 일곱째 날이다. 내일이 벌써 순례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피땀을 흘리시며 고뇌하셨던 올리브산 쪽과 예수님께서 수난하시고 돌아가신 예루살렘 순례가 계획되어 있다. 오늘도 아무런 사고 없이 순례를 마칠 수 있도록 아침 기도 봉헌으로 순례를 시작했다.
주님 승천 기념 경당
오늘 순례의 첫 장소는 예루살렘 동편 올리브 산 정상에 있는 주님 승천 기념 경당이다. 올리브산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 1km정도 떨어져있는 곳으로 예루살렘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다. 예루살렘이 해발고도 평균 750m정도인데 올리브산은 850m 정도 된다. 예수님 승천 경당은 올리브산 정상에 아랍마을의 중심부에 있는 이슬람 사원 안에 있다. 사도행전에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산은 안식일에도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예루살렘 가까이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올리브산 정상은 처음부터 신심 깊은 신자들에게 예수님의 승천장소로 여겨졌고, 예수님 승천 기념 경당이 세워진 것은 비잔틴 시대인 387년이다. 그 후로 많은 종교전쟁을 치르면서 경당의 소유는 여러 종파로 이전되었는데 현재는 이슬람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1152년 십자군에 의해 지어졌을 때는 팔각형의 건물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지붕을 덮지 않았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천사들이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1,11) 라고 해서 지붕을 만들지 않고 천막으로 덮었다고 한다. 그런데 1187년 이슬람이 이곳을 차지한 후 돔을 만들어 씌우고 모스코로 개조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슬람에서도 예수님을 하나의 예언자로 인정을 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승천 사건을 기념 보관한다고 한다. 현재 건물은 팔각형의 십자군 성당의 남은 부분이다.
경당 안으로 들어서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남겨 놓았다는 예수님의 오른쪽 발자국이 찍힌 바윗돌이 하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만졌는지 바위가 반들반들하게 닳아있었다. 역사적인 신빙성은 없고, 십자군 시대의 유물로 보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거니셨던 자취가 남아있을 바위이기에 나도 만져보며 예수님의 승천을 그려보았다.
사진 가운데 고동색 윗도리와 흰색 바지를 입은 마네킹이 뒤로 돌아서서 있는 곳을 미랍(Mihrab)이라고 한다. 이슬람 신자들은 메카를 향하여 절을 하는데 메카방향을 표시한 것이라고 한다. 기도할 때 그쪽을 보고 기도한다.
돌담 윗부분에 검정색 고리들이 달려있는데, 이것은 주님승천대축일에 천막을 칠 때 묶을 수 있는 고리라고 한다. 이 고리도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소유가 구분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돌담 가운데 아래에 있는 돌기둥은 십자군 시대의 팔각형 돌기둥이라고 한다.
매년 프란치스코회원들은 이곳에서 예수님 승천 축일을 기념한다. 프란치스코회원들은 벽 안쪽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자며, 저녁기도와 아침기도를 바친다. 자정부터 다음날 정오까지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안 정교회, 콥틱교회, 시리아 정교회도 그들의 예수님 승천축일에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주님의 기도 기념 성당
이어서 주님 승천 경당에서 남쪽으로 약 100m 거리에 있는 주님의 기도 성당으로 내려갔다. 이 성당은 예수님께서 가끔 머무르며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셨던 곳이다.
주님의 기도 기념성당은 예수 탄생 기념성당과 예수 무덤(부활) 기념 성당과 함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가 지은 3대 동굴성당중 하나로 326년에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그 이후 여러 차례 종교전쟁을 거치면서 소유주가 여러 번 바뀌었고 마지막으로 이슬람교도들의 손에 들어갔다. 1868년 프랑스의 아우렐리아 드 바씨(Aurelia de Bassi) 공주가 그 땅을 사서 프랑스에 헌납하였고, 1875년 조그마한 기념성전과 카르멜 수녀원을 지어 수녀들에게 이곳을 맡겼다고 한다. 아우렐리아 공주는 그 수녀원 안에 있는 묘지에 묻혀 있다.
우리는 먼저 성당 지하 주님의 기도 동굴로 내려갔다. 그곳에 예수님께서 앉아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셨다는 장소에 바위가 있다.
주님의 기도 동굴
제자들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기뻐하셨을 것이다. 기도를 가르쳐주시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던 제자들의 행복한 표정을 상상하며,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해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다 같이 손을 잡고 주님의 기도를 정성스럽게 바쳤다.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던 바로 그 자리라고 한다.
카르멜 수녀원 성당..카르멜 수녀원은 봉쇄수도원으로서 제대 오른쪽 격자문 안이 수녀님들이 기도하고 미사하는 곳이다.(2013년10월 촬영)
수녀원 성당 입구 오른쪽에 아우렐리아(Aurelia de Bassi) 공주의 무덤
수녀원 회랑
사진 김영근 요셉
성당 담벼락과 수녀원의 긴 회랑에는 각국의 언어로 되어 있는 주님의 기도문 판들이 걸려있다. 우리나라 말로 된 주님의 기도문도 있었는데 부산교구 초대 교구장 최재선 요한 주교님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식 후 성지순례를 하신 후에 공의회의 염원을 담아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기증하신 것이라고 한다.
우리말 주님의 기도문은 성물판매소 근처에 걸려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8년 12월에 한국 개신교 목사와 분별력 없는 주님의 기도 성당 카르멜 수녀회의 수녀에 의해서 파괴되고 바로 그 자리에 개신교용 주님의 기도문이 들어서 있다. 카르멜 수녀원 측에서는 멀쩡한 가톨릭 주님의 기도문을 마모가 되어서 교체가 필요한 시기에 개신교 목사가 요청을 하여서 개신교용 주님의 기도문을 붙였다고 한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이 사실을 안 부산교구에서 원상복구를 바라는 공문을 발송하고 기다렸는데,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는 목사님으로 인해서 지금까지도 복구가 안 되고 있었다. 현재는 원상복구 요청과 달리 개신교 기도문은 그대로 놔둔 채 다른 곳에 가톨릭 기도문을 설치해 놓았다.
자칭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다고 하는 목사님께서 다른 사람이 주님께 봉헌한 기도문을 바르지 않은 과정을 통해 파괴하면서까지 선교를 하는 행위가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 양심에 묻고 싶다.
개신교용 주님의 기도문 앞에서
사진 정기환 마티아
우리 가톨릭 주님의 기도문 앞에서
주님의 기도 기념 성당을 뒤로 하고 다음 순례지인 주님 눈물 기념 성당으로 내려갔다.
주님 눈물 성당으로 내려 가는 길.. 왼쪽 담 너머는 유다인 공동묘지
주님 눈물 성당은 예수님께서 예리코에서 올라오시다가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멸망을 예고하시고 이 거룩한 도시를 위해 눈물 흘리심을 기념하는 성지이다. 주님 눈물 성당은 올리브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었다.
유다인 공동 묘지
눈물성당으로 가는 길의 예루살렘 성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유다인들의 공동묘지가 있다. 이 올리브동산을 유다인들은 ‘여호사밧’(하느님께서 심판하신다) 언덕이라고 부른다. 유다인들은 예루살렘성이 보이는 이곳에 묻혔다가 최후의 심판 때 무덤에서 부활하여 선한 이들은 키드론 계곡 너머 예루살렘 대성전에 모이게 되고, 악한 이들은 계곡 아래로 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유다인들은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절대로 화장을 못한다. 시신을 밑에 묻고 그 위에 관처럼 생긴 돌 상자를 놓고 그 위에 돌들을 올려놓는다. 돌은 변하지 않는다. 이 돌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너를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곳에 있는 무덤은 일반인들의 무덤이 아니고 정통파 유다교인들의 무덤이다. 수백 년 된 묘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비를 맞으며 유다인 공동묘지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키드론 골짜기 너머의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내려갔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 성전을 오가실 때마다 올리브 산을 거쳐 가셨다.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올리브 산에서 쉬기도 하셨다. 예수님 공생활 중에 자주 제자들과 들르신 추억이 가득한 산이다.
성당 입구의 쥐엄나무
주님 눈물 성당 입구에 들어서자 오른쪽에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쥐엄나무가 있다. 돼지나 먹던 것을 둘째 아들이 먹었던 열매들이 맺혀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의 납골 공동묘지
성당 입구 쥐엄나무에서 조금 들어가면 1953-1955 사이에 발굴한 AD 1-2세기경의 유다인 그리스도인들의 납골 공동묘지가 있다. 1-2세기는 그리스도인들이 한창 박해를 받던 시기이다. 발굴된 납골 묘에는 콘스탄틴 시대에 주로 사용된 초세기 신앙의 상징문자들이 새겨진 유골함이 다수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유골함(사진 김영근 요셉)
주님 눈물 기념 성당 정면
주님 눈물 성당은 6세기경에 비잔틴 양식의 기념 성당이 있었지만 파괴되어 오랫동안 방치된 상태로 있었다. 1955년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이 뜻 깊은 자리에 예수님께서 흘리신 눈물방울을 형상화한 기념성당을 지었다.
네 기둥으로 이루어진 성당 지붕의 네 귀퉁이에 눈물단지를 올려놓았다. 유다인들은 장례식에서 애곡을 할 때 눈물을 모으는 풍습이 있다. 예수님의 눈물을 받아놓도록 눈물단지를 올려놓은 것이다. 성당 마당에는 비잔틴 시대 교회의 유적인 기둥이 있다.
성당 내부는 작았다. 성당 제대 뒤편에 반원형의 아름다운 창문이 있는데 외부의 빛이 들어오는 유일한 곳이다. 창살 한 가운데 성작과 성체의 문양은 예수님의 희생과 죽으심을 통해서 예루살렘을 비롯한 온 세상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문양 아래의 가시 줄기는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겪으신 내적인 고통을 보여준다.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면 예루살렘 시가지가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다고 하는데 창문에 빗물이 맺혀 보이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 올리브산 중턱 이곳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신 것이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루카 19,41-44).”
주님 눈물 성당 앞에서 예루살렘 시내를 바라보면 이슬람 황금돔 사원이 보이고 성벽 아래에 이슬람 신자들의 공동묘지가 보인다. 황금돔 사원이 있는 자리는 원래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쳤던 모리야 산이 있었던 곳이고,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던 터이다. 그 자리에 이슬람 황금돔 사원이 세워진 것인데, 이슬람 사람들에게 황금돔 사원은 마호메트가 사원 안에 있는 바위를 딛고 하늘로 승천한 곳이며, 마호메트가 다시 그 자리로 내려온다는 곳이다. 세계 3대 유일신 종교가 함께 자신의 성지로 공유하고 있는 예루살렘이 늘 역사적으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성당이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자리에 있어 예루살렘의 풍경 전체를 볼 수 있는 전망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완고한 백성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이 미어지시어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님께서 나 때문에 눈물 흘리는 일이 없도록 나의 삶이 예수님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드릴 수 있기를 기도하며 겟세마니 동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겟세마니 동산 정원의 올리브 나무들
주님의 눈물 기념 성당에서 300m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겟세마니 동산이 있다. 겟세마니 동산은 올리브 동산이라고 불리었을 만큼 옛날부터 올리브 나무가 많았다. 기원후 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이곳의 올리브나무를 모두 베어 버려서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겟세마니 동산의 올리브 정원에는 수령 1000년이 넘어 보이는 고목도 있고, 2천년이 넘은 올리브 나무 8그루도 보존되어 있었다.
올리브 나무는 척박한 토양과 소량의 물만으로도 튼튼한 잎을 내고 열매를 맺기에 이스라엘에서 가장 흔한 과일나무 중 하나이며 지중해의 환경과 문화에 잘 어울려서 수천 년을 산다고 한다.
겟세마니 동산의 2천년이 넘은 나무들은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부터 있었던 나무들이다. 죽은 것 같이 딱딱하고 늘어진 주름에서 2천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온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그 옛날 예수님을 기억하고 있는 나무들이다. 올리브 고목들은 예수님이 이곳에서 성부께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시고 고통스러운 밤을 보내시다 체포되셨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부디 힘을 내어 오래오래 살아서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예수님이 마지막 기도하시던 그날 밤의 정경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를 바랬다.
올리브 정원을 둘러본 다음 겟세마니 대성당으로 들어갔다. 이 성당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신 후 키드론 골짜기를 지나 이곳에 오셔서 죽음의 공포와 불안 속에 고뇌하며 기도하시던 곳이기에 ‘고뇌의 성당’이라고 불린다. 또 16개국의 재정지원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여러 민족의 성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성당은 비잔틴 시대에 세워졌다가 여러 번 전쟁을 겪은 다음 1924년에 프란치스코회에 의해서 현재의 성당이 지어졌다. 겟세마니 성당은 예루살렘에 있는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이다.
겟세마니 대성당 정면에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그림이 있는데, 십자가 아래의 중앙에는 그리스어의 알파와 오메가가 쓰여 진 판을 들고 계신 성부가 계시고, 그 아래에는 세상의 고통을 봉헌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있다. 위의 사슴은 겟세마니 동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4개의 큰 기둥이 성전을 바치고 있는데 4복음을 상징하며, 그 기둥 위에 4복음서 저자인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사도가 복음서를 들고 있는 석상이 세워져 있다.
성당 내부..많은 순례객들이 빠져나간 뒤..
성당 안에는 다른 나라 순례객들이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중앙제대 앞에는 예수님께서 엎드려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신 바위가 있다. 그 바위에 경배하기 위해 미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수많은 순례 객들로 성당 안이 가득했다. 성당 안은 예수님께서 밤에 기도하시던 상황을 재현하여 어둡게 설계를 하여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예수님께서 고뇌에 싸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루카 22,44)
12사도를 상징하는 천정 돔과 중앙 정면 벽의 바위에 앉아 기도하시는 예수님
푸른빛의 보라색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작은 빛이 조명과 함께 어두운 내부를 비추고 있다.
제대 앞의 예수님께서 고뇌하며 기도하셨던 바위
사진 정기환
성당 밖 왼쪽 벽 아래에 바위가 붙어 있다. 이 바위는 성당 안의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바위의 연장선에 있는 바위다.
겟세마니 바위에 경배하고 나오니 비가 그쳤다. 11시에 미사를 봉헌하러 겟세마니 동굴(사도들의 동굴)로 갔다. 겟세마니 동굴은 예수님께서 근심과 번민에 휩싸여 기도하실 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제자들이 기다리다 잠들었던 곳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주 이 동굴에서 제자들과 함께 쉬고 기도하고 가르치셨다. 겟세마니 동굴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겟세마니 바위에서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루카22,41)에 있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다시 동굴로 오셨을 때 유다가 예수님께 입을 맞추고 예수님을 팔아넘겼던 이곳에서 오늘 주님수난미사를 봉헌했다.
성모님 무덤 성당..무덤 성당 입구 계단 오른쪽으로 좁은 통로 끝에 사도들의 동굴이 있다.
겟세마니 동굴은 성모님 무덤성당 입구 오른쪽 좁은 골목 안에 있다. 성모님 무덤성당은 그리스정교회와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는데 일정에 없어서 들어가 보지 않았다. 물론 성모님은 영혼과 육신이 함께 승천하셨기 때문에 성모님 무덤은 없다. 오후에 우리가 순례할 시온산에 성모님께서 영면하신 곳이 있고, 이곳 겟세마니 동산에도 성모님의 무덤이 있다. 성모님은 어디에서 잠드셨던 것인가?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의 전승에 의하면 성령강림 후 성모님은 시온산에서 제자들과 함께 지상 생애의 여생을 보내셨으며, 시온산 위에서 돌아가시고 키드론 계곡에 묻히기 위해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성모님이 평생 한곳에서만 지내시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전승에는 성모님께서 요한 사도가 모셨던 에페소에서도 지내셨다고 전한다. 추정컨대 에페소에서 지내시다가 여생을 마치실 때가 되어서 혹은 다른 사도들과도 같이 지내고 싶으셔서 그리스도인들의 중요한 거점인 예루살렘 다락방이 있었던 시온산에서 지내시다가 돌아가셨는데, 키드론 골짜기에 무덤을 두던 유다인들의 전통에 따라 키드론 골짜기에서 가까운 이곳에다 묘를 썼을 것이다.
사도들의 동굴(겟세마니 동굴)로.. 성모님 무덤에서 바라 본 사도들의 동굴 입구
사진 김영근 요셉
자연동굴로 제대 뒤에는 열한 제자(유다 빠진)와 함께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프레스코화가 있고, 제대 아래는 잠들어있는 두 제자의 청동상이 있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마태 26,38; 마르 14,34).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마태 26,41; 마르 14,38)
강론: 현재 주님의 자녀들인 우리도 사도들처럼 잠에 빠져있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는데 깨어 있도록 해야 되며, 점점 깊이 잠들어가는 가족과 이웃을 깨워 함께 주님 안에 머물며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제대 왼쪽에 성모승천 프레스코화가..
제대 왼쪽 성모승천 프레스코화
발굴된 비잔틴 시대의 동굴 출입구
(사진 김영근 요셉)
주님 승천 기념 경당을 시작으로 올리브산을 타고 내려오면서 예수님의 발자취와 가르침을 되새기는 순례를 마치고 오후 순례를 위해 시온산으로 이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