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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태종. 유동근)이 정도전(김흥기)을 죽이는 장면이다.(독백)
이방원 : 아저씨 ! 저와 아저씨가 조선의 하늘을 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고의 세월을
함께 보냈습니까? 저와 함께 하십시다?
정도전 : 조카 ! 한 세상 원 없이 달려 왔네. 조카와는 같이 갈 수 없을 듯 하이. 이제 그만 보내주게나.
조선의 건국 과정에서 이방원은 건국 전 정몽주를, 건국 후에는 아버지 이성계의 오른팔
정도전을 죽인다. 본시 이들의 뿌리는 같다.
이들의 뿌리가 같다는 말은 훈구파와 사림파의 뿌리가 같다는 것이다.
모두가 고려 말기에 나타난 신흥사대부 세력이기 때문이다.
신흥사대부는 고려 말 권문세족들의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고자 한 새로운 정치세력을 말한다.
헌데 이들이 두 쪽으로 갈라진다. 고려를 엎고 새로운 국가를 세우자는 역성혁명파(정도전, 조준, 하륜)와
고려는 놔두고 개혁을 하자는 온건개혁파(정몽주, 길재, 이색)로 나뉜다.
정몽주 역시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라기보다 권력싸움에서 이성계에게 밀려난 것이다.
아다 시피 권력은 The winner takes in all 아닌가?
온건개혁파는 이후 80-90년 동안 잠수를 타다 성종 때부터 하나의 세력을 형성한다.
이들이 사림파이다. 훈구파나 사림파나 모두 선비들인 것이다.
성종초기까지 조선 정권을 꽉 잡고 있던 훈구파를 먼저 알아보자.
개국과 정변은 공신을 낳고 공신에게는 땅과 집, 노비를 주어야 한다.
조선 개국 1392년부터 1506년(중종반정)까지 114년 동안 배출된 공신은 모두 9차례 478명이었다.
이들이 훈구파이다. 정도전, 배극렴, 조준, 남은, 이지란, 김사형, 이화, 조박 등의 개국공신.
하륜, 조준, 조영무, 이숙번, 이거이 부자(父子), 민무구, 민무질, 조박, 이화 등의 1,2차 왕자의 난
(1,2차 왕자의 난 공신은 겹치는 인간이 많음) 공신
그리고 세조의 계유정난이 나온다.
한명회, 권람, 홍윤성, 정인지, 신숙주, 양정, 홍달손, 유수, 정창손, 한확 등의 훈구파 주요인물들이 나온다.
이 중 역사 드라마나 영화에 많이 나오는 인물은 정도전, 하륜, 조영무, 한명회, 신숙주,
민무구 민무질 형제, 정인지, 이숙번, 홍윤성, 권람 등이다.
이 뒤에도 공신들이 나오나 세조의 계유정난 공신들까지가 훈구파의 핵심 노릇을 한다.
이 중 밥값이라도 한 왕인 태종과 세조를 중심으로 훈구파를 이야기 해보자.
태종 이방원은 이복동생(방석)을 왕으로 옹립하려는 정도전, 남은 등을 죽이는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곧이어 바로 위의 형인 방간이 일으킨 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정종(방과)를 내세워 숨고르기를 한다.
태종의 왕위승계 과정은 전두환이 국보위를 통해 슬쩍 시간을 보낸 뒤 권좌에 오르는 것과 같다,
이 때 태종의 책사가 하륜이다. <용의 눈물>에서는 임혁, <대왕세종>에서는 최종원이 연기한 인물이다.
하륜은 노련한 정치가로 태종이 권좌에 오른 후, 사병혁파를 이유로 동지들을 토사구팽 할 때도 살아남은 대표적
훈구파이다. 태종은 정도전을 죽였지만 정도전의 방법은 옳았다고 판단한다. 그것은 사병혁파이다.
왕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공신들의 사병은 이제 제거대상이고 아울러 말에 토 다는 공신들도 제거대상이다.
신하의 권력이 비대해지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정도전을 통해 경험한 태종은 공신들을 박살낸다.
이숙번, 조영무(탤런트 장항선), 민무구(나한일)형제, 이거이 부자(父子) 등 아들 세종이 정사를 편히 할 수
있도록 모든 정비를 한다.
<대왕세종>에서 하륜(최종원)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인물
(황희-김갑수, 조말생-정동환, 윤회-이원종 최윤덕-선동혁, 정인지, 이수, 맹사성, 허조, 심온, 박은 등)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종의 아들 문종은 참으로 아까운 인물이다.
그의 재위기간은 2년에 불과하나 세종의 건강이 나빠진 세종 18년부터 섭정을 했으니 실제 재위기간은
10년으로 보아야 한다. 아버지만큼 학문을 좋아하고 성품이 바랐던 문종이 일찍 죽지 않고 한 30년만 왕을
했더라만 세조의 계유정난도 단종의 죽음도 없었을 것이다.
세조가 정권을 찬탈하지 않았다면 김종서, 황보인이 안평대군의 야심을 견제하며 단종이 친정할 때까지 잘 했을까?
역사는 가정이 없지만 권력의 속성 상 그리 될 확률은 적다.
훈구파의 거두들은 세조의 계유정난으로 등장한다.
한명회는 세조의 장자방이다. 한명회 없이는 계유정난은 성공하지 못했다.
책략의 달인, 권모술수의 대가, 노회한 정치가인 한명회는 세조의 아들(예종), 손자(성종)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채시라)와 짝짜꿍하며 성종 때까지 권력을 놓지 않는다.
한명회는 세조의 왕위찬탈 과정의 1등 공신이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부정적 묘사가 많지만 성균관을 정비하여
학문을 일으키고 재상으로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 세조, 예종, 성종까지 태평성대를 이끈 공도 있는 인물이다.
연산군에 의해 무덤이 파헤쳐지는 치욕을 겪지만......
비록 계유정난이라는 정변이 있었지만 세종부터 성종까지가 조선 역사 중 가장 평안했고 태평성대라 평가할 만한 시기였다.
사실 성종은 임금이 될 차례가 오지도 않을 사람인데 한명회와 어머니 인수대비의 연합작전(?)으로 왕이 된 인물이다.
따라서 권력은 한명회, 신숙주, 정인지 등 훈구파의 손에 있었다.
성종7년이 되어 한명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훈구파 원로들이 죽자, 성종은 훈구파에 대항할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했고 이때부터 사림파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헌데, 성종은 왕비를 폐출(연산군 어머니 폐비 윤씨)한데다 음주가무(어우동 등장)로 너무 일찍 죽는 바람에
애써 키워 놓은 사림파가 아들 연산군에 의해 박살이 나는 빌미를 제공한다.
연산군 4년(1498)의 무오사화, 10년의 갑자사화로 사림은 한 방에 날아간다.
그러나 다시 재기하여 중종14년 기묘사화(1519. 조광조의 죽음), 명종1년(1545)의 을사사화를 거치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그러다 선조14년, 드디어 훈구파를 완전히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한다.
자 !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인 사람파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고려 말, 정몽주, 길재의 온건개혁파 학풍을 계승한 사람파는 길재의 제자 김종직이 성종 때 출사하고,
뒤이어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 등이 벼슬길에 나가며 훈구파와 치열한 싸움을 시작한다.
4번의 사화를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성리학이라는 확고한 정치이념과
공통의 스승을 모시는 학연으로 연결된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림파는 훈구파와 싸울 때는 하나의 정치세력이었지만 집권하고 난 후,
동교동, 상도동처럼 갈라지기 시작한다.
근데 갈라지는 이유가 골 때린다. 무슨 이념의 엄청난 차이나 국가정책이 달라서가 아니고
벼슬자리 하나 놓고 싸우다 갈라지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나 !!
이조정랑 이라는 벼슬이 있다. 정 5품이지만 요직 중에 요직이다.
조선의 관리임용 권한은 삼정승(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에 있지 않고 이조에 있다.
이조에 막강한 인사권이 있으므로 이조판서의 권력남용을 막기 위해 삼사(홍문관, 사헌부, 사간원)의
관리추천권은 이조판서도 참판도 아니고 그 밑에 이조정랑에게 있었다.
허니, 정5품이지만 요직 중에 요직인 것이다.
보통 전임자가 후임자를 추천하는데 선조7년 이걸 놓고 싸우다 김효원이라는 자가 사는 동네가
동쪽이라 해서 동인(東人), 심의겸이란 자가 사는 곳이 서쪽이라 해서 서인(西人)이 된 것이다.
아주 가지가지 해요 ! 애덜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당시 앞으로 조선 역사에서 이러한 붕당의 폐해를 예견한 사람은 이준경이라는 재상, 단 한 사람 밖에는 없다.
율곡 이이도 처음에는 붕당은 없다며 빨끈하다 4년 뒤 자신의 소견이 짧았다며 반성하고 화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우리역사의 재앙인 임금 선조는 인복은 있었는지 똑똑한 선비들을 신하로 두었다.
이준경, 이이, 이황, 유성룡, 이항복, 이덕형, 이발, 정철, 이산해, 정인홍, 윤두수, 정여립, 이순신, 조헌 등
조일전쟁이 있어서 그랬겠지만 신하 복은 있는 임금이다.
율곡 이이는 양 쪽을 화해시키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동인들의 탄핵을 받고 서인의 거두가 되는 상황이 온다.
여기서 잠깐. 조선역사의 정권은 전체적으로 볼 때, 서인이 여당, 동인이 야당이다.
서인은 훗날 소론과 노론으로 갈려 노론이 주도권을 잡고,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갈려 남인이 야당 역할을 한다.
그러나 선조 때는 동인, 서인의 세력이 비슷비슷 했다.
조정자 역할을 한 율곡 이이가 서인이 된 것은 동인의 탄핵이 주요 했지만 더 들어가 보면 성리학의 두 라이벌.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관계도 한 몫을 했다.
동인의 정신적 지주 이황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다른 학설인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주장하는
율곡 이이를 동인들 입장에서는 따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율곡 이이가 살아있는 동안은 서인이 권력을 잡았다.
성혼, 정철, 김계휘, 박순, 윤두수, 윤근수 등이 당시 서인의 대표적 인물이다
드라마 <이순신>에서 사사건건 이순신을 물고 늘어지는 윤두수(탤런트 정동환)가 서인이다.
반면 동인은 이순신을 도와주는 유성룡, 이발, 이산해, 정인홍, 이덕형 등이다.
백사 이항복은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았는데 굳이 따지자면 서인 쪽에 가깝다.
율곡 이이가 죽자 권력은 이동된다.
선조가 어떤 인물인가? 동인, 서인의 틈바구니에서 이 쪽 저 쪽으로 왔다 갔다 하며 권력놀음을 41년간 한 임금이다.
줏대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는 소인배 아닌가?
이순신이 꺼져가는 나라의 운명을 바꾸어 놓아도 백성들의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쏠리는 것을 걱정하여
이순신을 죽이지 못해 안달한 인간이 아닌가?
선조는 율곡이 살아 있을 때는 율곡이 나의 정치적 사부라며 칭송하다가 그가 죽자,
율곡을 소인배로 몰고 동인들에게 정권을 준다.
이 때 정여립이란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정여립은 원래 서인이고 율곡의 제자였다. 그런데 동인으로 말을 갈아탄 것이다.
갈아탄 것에 그치지 않고 옛 스승인 율곡과 성혼을 탄핵하는 상소까지 올린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가 강조되는 유교 사회에서 스승을 탄핵하는 행동은 그가 아무리
집권당 동인의 실세라 할지라도 너무 나갔고 결국 정여립은 사직한다.
헌데 이 양반이 고향에 내려가 대동계를 조직하고 자신의 세력을 키우면서 ‘정여립의 난’으로까지 문제가 발생한다.
정여립의 난은 지금도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다.
중요한 것은 실각한 서인들이 이 사건을 빌미로 동인을 밀어내고 다시 정권을 잡는다는 것에 있다.
선조 때 권력은 처음에 서인에서 동인으로, 다시 동인에서 서인으로 간 것이다.
그럼 여기서 멈추는가? 아니다. 세자 문제로 권력은 다시 이동된다.
관동별곡의 정철이 등장한다.
정철은 한국 가사문학의 거두이다. 헌데 이 양반은 거의 알콜중독자 수준에 성격이 불같고
직선적이며 남의 말을 잘 믿는다. 동인의 노련한 정치가 이산해는 정철의 성정을 이용해
서인을 실각시키는 권모술수를 부린다.
1591년 세자 문제가 등장한다. 선조의 정비인 의인왕후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
후궁 공빈 김 씨 사이에 임해군, 광해군이, 인빈 김 씨 사이에 신성군이 있다.
드라마 <허준>에서 탤런트 박주미가 연기한 역이 광해군 엄마 공빈 김 씨이다.
신하들은 총명한 광해군을 마음에 두고 있으나 선조는 당시 한창 빠져있던 인빈 김 씨의 소생
신성군에게 마음이 있었다. 동인 영의정 이산해는 이것을 이용한다.
이산해는 서인 정철과 함께 광해군을 세자로 삼자고 같이 주청하자고 한다.
정철은 흔쾌히 승낙하고 다음 날 대전으로 나간다. 이산해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대전에 나가지 않고,
전 날 밤, 인빈 김 씨는 선조의 무릎위에 앉아 정철이 광해군을 옹립하고 자신의 아들 신성군을 죽이려 한다고
베개머리 송사를 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정철의 서인은 실각하고 권력은 다시 동인에게 넘어간다.
이때가 1591년이다.
다음 해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것도 모르고 이 지랄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면 또 말을 안 하지.
다시 권력을 차지한 동인은 서인들의 처리 문제로 지덜끼리 싸우다 남인과 북인으로 갈린다.
정철을 비롯한 서인들에게 엄중한 처벌을 주장하는 북인과 온건한 처벌을 주장하는 남인으로 또다시 나뉘는 것이다.
이산해의 집이 서울 강북에 있다고 북인인 것이다.
유영경, 기자헌, 박승종, 유몽헌, 이이첨, 정인홍, 박홍구, 홍여순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온건파의 유성룡이 영남출신이고 우성전의 집이 강남이라서 남인이다.
이원익, 이덕형, 이수광, 윤승훈, 이광정, 한백겸 등이 이에 해당한다.
겉으로는 서인처리 문제가 발단이 된 갈림이지만 결정적 이유는 학파가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유성룡은 이황의 오리지널 제자이다.
그러나 이산해를 비롯한 북인들의 정신적 지주는 남명 조식이다.
남명 조식은 이황, 이이와 달리 사단칠정보다 실리적 실천궁행에 힘쓴 유학자이다.
훗날, 북인이 광해군을 옹립하고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정책을 핀 것도 조식의 학풍에 근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이 아니었으면 왕위에 오르지 못했을 인물이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선조는 의주로 도망가고 남아 있는 광해군은 군사를 모집하고
전란을 지휘해 많은 신하와 백성들의 칭송을 얻는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한 것은 1608년이니
세자 자리에서만 16년을 보낸 셈이다. 준비된 임금인 것이다.
마지막에 아버지 선조가 인목대비에게서 영창대군을 낳는 바람에 피를 토하는 시련을 겪으며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자신을 지지한 북인을 등용하고 혁신정치를 한다.
광해군의 혁신정치는 대동법의 실시와 실리외교에서 빛을 발한다.
대동법이란 수 백종의 세금을 쌀로 단일화해서 내게 하는 것인데 백성 입장에서는 환영이다.
당연히 양반지주와 관료들은 반대지만....
비록 경기도에 한해 시범적 실시지만 기득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백성 편을 들어 주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이 대동법은 뒤에 또 나온다.
임진왜란을 통해 실리외교의 필요성을 깨달은 광해군은 명나라, 후금(누루하치), 일본 사이에 낀 조선의
지정학적 불리함을 등거리 외교로 헤쳐 나간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난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은 일본과도 수교를 하고 후금을 치기 위해
원병을 청하는 명의 요구를 실리로 잘 비켜 나간다.
비록 광해군과 북인이 인목대비를 폐하고 영창대군을 죽여 인조반정의 빌미를 제공했지만
근본적 이유는 명에서 벗어나 실리적 공간을 찾자는 광해군의 정책을 기득세력,
사대주의자들에게는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광해군의 정책이 계속 되고, 후계 문제도 정상적으로 갔다면 조청전쟁은 없었다.
광해군은 외교가 뭔지를 보여준 명석한 임금이었다.
인조반정이 서인과 남인의 합작품이라는 것은 기득세력의 저항이 얼마나 컸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여기까지(광해군)까지는 서인, 동인, 남인, 북인 갈라져서 서로 권력투쟁을 벌이지만
서로를 죽이지는 않았다. 상대편을 삭탈관직하고 귀향을 보내는 선에서 서로를 정리한다.
그러나 이 후에는 서로를 죽이는 권력투쟁이 시작된다.
‘나와 다르면 무조건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같이 갈 수 없으니 죽여야 한다.’라는 식으로 정치를 한다.
쓰다 보니 좀 길어집니다.
그렇다고 중요한 사림의 사건들이나 당쟁을 기냥 넘어갈 수도 없고....
계속 써 보겠습니다.
To be continue.......
蛇足)
사림(士林)은 선비집단입니다. 선비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목숨을 걸지요.
성종, 중종, 선조 때 까지만 해도 대쪽같은 선비들이 있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임금에게 고합니다.
정여립이 스승 율곡을 비판하자 같은 제자였던 조헌(조헌과 칠백의총의 조헌입니다)은
선조에게 다섯 번이나 상소를 올려 정여립을 비판합니다. 선조가 동인들 눈치를 보며 아무런 비답이 없자,
도끼를 들고 경복궁 앞에서 다시 상소를 합니다.
상소를 가납하지 않으면 도끼로 목을 치라는 뜻이죠.
이를 지부상소(持斧上疏)라 합니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의병장은 사림입니다.
가장 유명한 의병장인 김덕룡과 곽재우는 북인 출신이고 조헌과 고경명은 서인 출신입니다.
첫댓글 저는 술좌석에서 내 짧은지식의 조선역사이야기를 하곤 한답니다. 이유는 '대한민국' 이제 그렇게는 살지말자라는 얘기를 하려고..조선권력이라는 굴레에서 정말 훌륭한 학자나 정치가들이 많이 희생되고 고생한거같습니다. 위에 열거한 정치가들을 보니 훌륭한 분들도 많고 그분들이 할일도 참 많았는데 정치에 휩쓸려 이리저리...권력을 잡은자(양반)들만이 편코자했던 시대..투덜님말씀대로 조선은 빨리 없어졌어야 했을 나라인듯...미래에 후손들은 우리의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합니다.
지금 세계를 호령하는 나라들도 엄청난 권력투쟁, 편 싸움, 백성들에 대한 착취 등이 있었지만 그들은 결정적일때 한 수 했지요.
전 가끔 망할놈의 나라 대한민국이라고 투덜 댈때가 많습니다, 그때는 현대 봉고를 탈때인데요. 천장이 낮고. 폭이 좁아 조금이라도 키큰사람이 타면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스타나(쌍용 15인승 자동차) 가 좋은 차였는데 모두 중국으로 가버렸습니다. 이일을 생각하면 어떤 인간 원망하면서 한국 자동차공장이 개판된것에 대해 또 화를내게됩니다. 이러한 것들 민족성인가요? 정치하는 사람들을 다 그런가요? 무진장 화납니다. 조선왕조 ,당파 사움과 다름없구요. 현대 자동차 독점이라 비사게 차를 사야하는 우리네들도 불쌍합니다. 이 다 정치판 개판 산물이지요.
또하나님 같으신데, 조금 진정하셔유..전 무섭어서 도망갑니다.. =3=3=3
일부러 더러운 싸움을 유도한다거나 또는 정치판을 싸잡아 욕하며 우리네들이 정치에서 딴데로 눈돌리게끔 하고는 지네들만 이익을 취하는 나쁜 넘들이 있습니다. 모든 싸움에는 다 그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요.
근디, 이 냥반은 애브리데이 한개씩이네.. 약 짜시는건 아예 손 놓으신듯..으음, 근디 따지고 보면 코쟁이들도 편먹구 쌈질하는건 매찬가지라는.. 갸덜이 외려 더한듯도 싶은디, 우리으 문제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독립국이 아니었다는것과, 조선이 민족의 기상을 샤그리 읍쌔 버렸다는거이 슬픈 일이며, 시방도 과연 독립국이 맞나 하는 생각도 든다는.. 긍께 호락님도 빨리 장개가서 애 많이 낳는게 애국하는길..인구가 기본으로 1억은 넘어야 나가서 방구껴도 언놈이 뭐라 안한다는.. 글구 정여립이 얘기가 나와서 말인디 그 냥반이 대단한 인물이었고, 후금의 황제가 될수도 있는 사건이 있었는디,조선조정 때매 망가진 일도.. 으음
첨부터 끝까지 공감(정여립은 잘 모르겠고) , ...정치란 원래 싸우는 것이 본질이겠지요
단재 신채호 선생은 정여립을 "400년전 군신강상론을 타파하려 노력한 동양의 위인으로 루소와 견줄 만하다. 하지만 루소와 같이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루소의 사상은 프랑스혁명으로 이어졌지만 정여립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라고 평가하지요
정여립은 기존의 신분질서에 도전하고 백성 중심의 정치체제를 생각한 진보지식인이라 생각합니다. 그 시대에 왕권세습에 문제제기를 할 정도였으니까요. 참으로 아까운 인물이죠. 정황상 역모의 누명으로 죽었을 가능성이 많지요.
요즘 이상한
트로트 음악 하는 사람들과 그 애호층, 그리고 우리 사오모 같은 사람들을 한 마당에 모아 놓으면 아마도 필히 싸움이 벌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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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내용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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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트로트는 송**, 태** 두 명의 인기가수가 부르는 트로트인가요...? 아님 어떤 노래를 말하시는지... 그냥 궁금해서요...^^
그 두 사람이 그 흐름을 주도한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방송피디들도 별 내공없으면 거기에 끌려가기 쉽상이고..,
일본의 패망으로 청일간도협약이 무효가 되고 중국이 우리의 간도땅을 실효적으로 지배한지 어언 100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100년 동안 어떤 정권이 간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쳐 보았는지 저는 이 일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납니다
중국은 남북통일에 대비하여 간도 땅을 자기네 땅임을 
고히 하려고 동북공정이라는 역사왜곡을 밥먹듯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100년이라는 실효적 지배로 영토권이 지배국에 귀속된다는 설은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합니다. 요즘 간도땅 되찾기 운동이 시민사회단체를 통해 물밀듯 일어나고 있습니다. 근데 나라 사랑은 지들만 해대는 것처럼 설레발 잘 치는 조중동이 너무 조용하지요
앞으로 변화될 동북아 정세를 대비한 중국의 공격적 선점행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개덜은 한국을 과거 명나라 아래 조선쯤으로 취급하려 하겠지요.
역사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던 것은 백성들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국민들이 사분오열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남과 호남, 보수와 진보, 좌익과 우익, 수도권과 비수도권, 강남과 강북, 가진자와 못가진자, 사용자와 노동자... 그리고 지역구도로 찢어진 국론에 기생하는 정치인들... 각기 잘났다고 떠드는 지식인들... 세계에서 가장 문맹율이 낮은 것을 휠씬 지나쳐 세계에서 가장 고등교육을 많이 받는 우리국민... 힘든 일은 남에게 시키고 폼나고 돈많이 버는 일을 위해서 머리만 키우는... 문제는 눈비가 뿌려도 땡볕 아래서도 가려줄 모자가 없습니다
19세기 초에 덴마크는 쓸데없는 전쟁을 일으켰다가 프로이센에 깨져 전쟁배상으로 현재 독일의 북부지역 옥토 빼앗기고 전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그룬투비라는 목사가 연대 책임론을 주창하여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는 운동을 하여 오늘날의 복지국가를 이룩하는 정신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오늘 날의 대한민국이 국론이 분열되어 어수선한 것은 모두 국민들이 귀가 얇아서 그렇습니다. 정치가 투명하지 못한 것은 국민들이 정직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않은 사람을 국민의 대표로 뽑기 때문입니다. "어느 지역은 어느당 말뚝을 꽂아놔도 당선된다"는 지역 이기주의에 젖은 국민이 있는 한 정치는 제자리 걸음을 계속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다면 그것은 사회를 이루고 있는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나 한사람부터 정직해지기 시작하고, 못된 정치인들의 선동에 놀아나지 않고 올바른 사람들을 대표로 선출해야 합니다.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밀실에서 공천권을 행사했던 한나라당에 대항한 친박연대의 돌풍이 선거혁명이었는지 아니면 또다른 지역정서의 표출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머리가 좋아서 공부만 하고, 화려한 경력의 간판으로 지역의 맹주에게 강력한 충성심을 보이기만 하면 지역당의 공천권을 받아 국회의원 뱃지는 따놓은 당상이 되는 그런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요...?
거스 님 말씀이 옳습니다. 지금의 정치인들이 행하는 모습은 조선의 당쟁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나라와 백성보다는 당의 이익, 자신의 이익이 우선입니다. 지역감정 ! 언제부터입니까? 정치인이면 누구나 고쳐야 한다도 합니다. 그러면 선거법 고치고, 헌법 고치고 하면 됩니다. 중대 선거구 만들어 전라도에서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나오고 경상도에서도 민주당 국회의원 나오게 하면 차츰 나아집니다. 현재의 헌법, 전두환 대통령 시절, 머리 좋은 양복입은 침팬지들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어느 누가 그 정권에게 정통성이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정치는 아직 조선 숙종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호락은 우리나라의 윗 분들이 하시는 행태와 많은 문제들(교육, 노동, 빈부격차 등)에 짜쯩이 나지만 내 나라를 사랑합니다. 비판은 하지만 만일 내나라의 유사시에는 총을 들고 일어섭니다. 155mm 포는 아직 혼자서 방열할 수 있습니다.(문선대 출신이지만 포병생활도 1년 했삼)지호락은 리처드 형 말씀대로 내 나라가 진정한 Major가 되길 원합니다.
다 읽고보니 거스님의 생각과 저와는 공통분모가 깨 많은 것 같습니다.
이 대목에서 쪼께만 더 나가면 영화, 역사 야그가 정치, 정당 야그화 될듯 허다는.. 으음
긍게... 고거이 고로크럼 흘러 가네유.... 거시기 허야겠지유...
여긴 내가 설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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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귀경이나 해야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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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행사는 잘 치루셨남유? 몸살은 안 나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