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익산 함라산의 숭림사(崇林寺)
익산시 웅포면 송천리 5번지에 있습니다.
함라산(240m) 정상인 옥녀봉을 동쪽으로 바라보고 있는 백제시대 창건으로 추정하는 역사를 가진 아담한 절입니다.
김제 금산사를 큰절이라 하고 이 곳 절은 작은절이라는 뜻의 차진절이라고 마을에서는 불린답니다.
옥녀봉에는 이상하게도 물이 나온다는 주지스님의 말에 혹시 성터가 있는가를 확인해봅니다.
함라산은 웅포 속칭 곰내를 안고서,금강이 마지막으로 휘돌아서 장항-군산으로 빠져나가게 하는 작은 산줄기를 형성하고 있고, 바로 남쪽 봉우리가 봉화산(230여미터)이고, 6km 쯤 아래 서쪽 자락에 망해산(230m)이 불지사를 안고 있고, 그곳은 나포지역입니다.
함라산에서 서쪽으로 보면 금강 건너에 바로 건지산성이 있는 한산면소재지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금강의 수운을 이용한 교통의 요지에 넓은 평야를 거느리고 있고, 바로 이웃한 웅포면 입점리에는 금관이 발견된 4-5세기의 호족의 무덤으로 보이는 입점리 고분군이 있습니다.
지형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입지적 조건을 갖춘 곳에 숭림사 보광전은 보물 제82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숭림사 보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야 마땅한데 석가모니불이 모셔져있고, 양쪽의 협시불도 도난당한 상태라고 그 연유를 주지스님은 분개한 어투로 설명한다. 중앙의 본존불의 닫집의 조각솜씨가 일품이라고 서오선 전부여박물관장은 설명해준다. 벽화며 나한전도 볼 것이 있고,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절이기도 하다.>

<숭림사 보광전 안내판 숭림사 사적과 중국 숭산의 소림사에서 따온 절 이름 소개>

<보광전 본존불 위의 닫집의 아름다움>

<닫집 솜씨 자세히 보기>

2. 전주 편
<전동 성당 입구>

<성당내부>

<한국최초의 천주교 순교자 동상 : 두 분 다 대전출신으로 내외종간이라는 이야기>

(전주) 경기전 앞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다.

<왕궁 들어가듯, 겹겹의 대문을 통해야 한다.>

<정자각을 지나 경기전이 있다.>

<경기전에 모셔져 있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

<어진박물관에 모셔져 있는 이태조의 어진>

<어진박물관의 태조 이성계의 어진 안내판 조선왕조의 다른 어진도 있다.>

<전주사고 건물>

<오목대누각 건립기 >

<오목대 >

<오목대 현판: 현대 서예가인 황욱선생의 작품>

<오목대 서쪽 뜰에는 비각이 있다.
조선개국을 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말 운봉의 황산 전투에서 왜구 아지발도를 물리치고 개경으로 가기전 이곳에서 야연을 베풀었던 것을 기리면서 쓴 고종의 친필 비가 있다.>

<쓰러져 가는 국가의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선연하다.
계룡산 신원사에 중악단을 세운 명성황후의 간절한 염원과도 같은 것일까?>


<오목대를 보고 내려오면서 전주한옥단지를 배경으로 찍다.
유용환 대전선사박물관장, 전 한남대이상윤 총장과 함께 기념촬영>

<전주향교: 오목대 남쪽 양지바른 곳에 있다. 앞에는 전주천이 흐르고>


<앞에는 대성전이 , 뒤에는 명륜당이 있는 전묘후학(前廟後學)의 건물 배치 형태의 향교로 규모가 크다.사적 제 379호
이곳저곳에 고목은행나무가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전주부 고지도 - 전주시청홈피에서 인용>

<전주 풍남문 안내판>

<보수공사중인 풍남문: 보호그물막사이로 희미하게 풍남문(豊南門)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전라감영의 남문으로 신작로 등을 만들기 위해 1905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으로 헐리고 이 문만 남았다고 한다. 이 성문을 만든 장인들이 서울 숭례문도 만들어서 그 수법이 동일하다고 해설사는 설명한다.>

<전주시청 홈피 사진에서 >

<복원되기전의 성돌이 맨 기단부에서 볼 수 있다. 옆으로는 수구도 있고.>

<오목대에서 바라본 남고산성 : 후백제의 수도여서인지 후백제시의 산성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전주시청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는 남고산성>

<전주 향교에서 바라본 남고산성: 뒤의 이동통신중계탑이 보이는 능선이 산성으로 보인다. 앞의 절은 남고사로 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