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만인이 알아주는 베테랑 정치인이지만, 실은 베테랑이 아니다. 나는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변두리 언론인이지만 사실은 공인된 베테랑이다. 40여년의 언론경력을 뻐기는게 아니다. 군대 문턱에도 못간 오바마 대통령과 달리 나는 막강한 한국육군에서 만3년을 복무하고 제대한 ‘진품 베테랑’이다.
베테랑(Veterans, 영어발음은 베터런스)의 어원인 라틴어 ‘Vetus’는 ‘늙었다’는 뜻이다. 특정 분야에서 오래동안 종사했거나, 해당 분야의 일에 노련한 사람을 일컫는다. 베테랑 변호사, 베테랑 형사, 베테랑 택시기사, 베테랑 주방장도 있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통상적으로 말하는 베터런스는 국가를 위해 군복무를 마친 모든 연령층의 제대장병을 지칭한다.
나만 아니라 한인 중~노년 남자들은 거의 다 베테랑이다. 한국에서 의무적으로 병역을 마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인남자들은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도 금방 소통이 된다. 군대인연을 귀히 여겨서 해병전우회도, 월남 참전용사회도, ROTC 장교회도 결성됐다. 육군 헌병이었던 나도 친지 중에 선배가 한 분 있어서 만날 때마다 헌병 식 거수경례를 붙인다.
한국에선 베터런스를 ‘향군’(재향군인)이라고 부른다. 보훈처 산하단체인 재향군인회는 육군 735만명, 해군 65만명, 공군 50만명 등 850만명의 제대장병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정부보조금을 받고 각종 수익사업도 벌이며 상부상조를 표방하지만 어용단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다. 지난 대선때도 인터넷(SNS)을 통해 박근혜 후보를 지원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한국의 보훈처에 해당하는 미국 연방정부 기관은 재향군인부(Dept. of Veterans Affairs)이다. 줄여서 VA로 불린다. 보훈처장이 차관급인데 비해 VA는 장관급이다. 연방정부의 모든 부서 가운데 규모가 국방부에 이어 두 번째로 방대하다. 전국의 수백개 VA 병원 및 복지센터에 고용된 직원이 28만여명에 이른다. 작년 예산이 물경 1,320억달러에 달했다.
미국의 제대장병은 지난해 기준으로 여군출신 160만명을 포함해 총 2,120만명이었다. 소수계 중에선 흑인이 11.3%로 가장 많았고 히스패닉이 5.7%, 아시안이 1.3%였다. 35세 미만이 190만명인데 반해 65세 이상은 920만명이나 됐다. 한국전쟁(1950~53)도 280만 명의 미군 베터런을 양산해냈다. 그래도 월남전(1964~75)의 780만 명보다는 훨씬 적다.
오는 11일은 연방공휴일인 베터런스 데이다. 전몰장병만을 추모하는 메모리얼 데이와 달리 모든 제대장병을 생사구별 없이 기린다. 원래 이날은 1918년의 제1차 대전 ‘휴전 기념일’이었다. 1954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명칭을 ‘베터런스 데이’로 바꿨고, 한때 10월 넷째 월요일로 앞당겨졌다가 1975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11월 11일로 환원했다.
한국동란 후 한동안 상이군인들이 버스나 기차에 올라와 껌, 연필 따위를 강매하며 행패를 부렸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최고 부자나라인 미국에 요즘 거지행색의 제대장병들이 넘친다. 성인 홈리스의 3분의1이 제대장병이다. 이들 중 70%가 마약중독자이고, 53%가 신체정신 장애자이다. 특히 여군출신이 홈리스가 되는 비율은 일반여성보다 2~3배나 높다.
조만간 아프간 주둔 미군이 대거 철수할 예정이어서 사태가 악화될 조짐이다. 스타벅스는 향후 5년간 제대장병과 그들의 현역 배우자 1만명을 고용하겠다고 3일전 발표했다. 스타벅스의 이사가 된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의 입김이 작용했다. 월마트도 5년내 제대장병 10만명을 채용하겠다며 제대 후 1년 미만의 장병은 무조건 고용하겠다고 장담했다.
한국전을 비롯해 제2차 대전과 월남전의 베터런스 중 4만4,000명이 아직 생존해 있다. 시애틀총영사관이 해마다 이들을 찾아가 위로한다. 바람직한 일인데, 사실은 한인 중장년 남자들 대부분이 제대장병이면서 이민생활 전선의 현역장병이다. 베터런스 데이를 맞아 군복무 때보다 더 힘겨운 이 두 번째 전선에서 명예롭게 퇴역하도록 다짐해야 할 것 같다.
11-9-13
첫댓글 눈산님, 헌병출신이군요. 저의 기억으로 헌병들은 바지줄 칼처럼 세워서 단정한 복장에 미남들이였지요.
'성인 홈리스의 3분의 1이 제대장병이다' 는 수치는 가슴이 아픕니다. 전쟁에서 정신적인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서
그렇게 된것이 아닌가요. 그분들에 의해서 우리가 편안히 살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남자들이 모이면 재미없는 군대 이야기만 해서 ...그런데 윤여춘 선생님의 군대 이야기는 재미있어요.
모르던 것들 잘 알았습니다. 무서운 헌병 아저씨? 아무리 상상해도, 안 어울리세요.
시애틀에서 월남전우들을 만나 달마다 회동 회식을 하며 전우애를 다지는데, 저도 병과는 인사인데 월남가선 통역관이 되어 MP 철모를 쓰고 미군부대에서 근무를 했답니다. 몸은 편했으나 검문 검색하는 일이 싫었습니다.
'헌 병, 깨진 병 누가 사가나?' 아아! 깨진 병 출신이시군요.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거수경례와 함께 버스에 올라와 아래위 훑어 보던. ㅎㅎㅎ 미국에서 베터런스데이는 좀 골치 아픕니다. 휴일 여부 때문이죠. 분명 네이션 와이드 할러데이인데, 직장에선 그것도 아니더라구요. '지배인님, 우리 내일 쉬어요?' 질문하면 여지없이 돌아오는 대답. '네가 베터런스에 속하면 쉬고, 아니면 일해.' 이때 베터런스의 수고는 잊어 버린 채, 떠오르는 불평. "에이씨! 불공평해." 이게 사람 맘이라니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