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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모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부산․경남 모임) |
회의자료 |
일 시 : 2012. 4. 2 (월) 19:00 장 소 : 사무실 회의실 | |
전화 : 051) 302-8801 팩스 : 051) 302-8803 | |||
∙ 박정희대통령 기념도서관 건립기금모금 - 부산은행 031-01-032121-0 박정모 |
∙ 회비∙찬조금 계좌번호 - 부산은행 031-12-065269-9 정분옥 |
1. 경과보고
가. 3월 월례회의 (2012. 3. 5 (월) 18:30)
◦ 주요내용
- 강 연 : 강영천 전 교장선생님의 "박정희 대통령의 청렴성과 서민정책, 현재 복지
정책의 문제점 및 한미FTA의 필요성"에 대한 강연
- 새로오신 회원 : 권오성∙이영이 이사
고액회비 및 찬조금 내신 분 (3월분)
금 액 |
내신 분 | |
1,413,000 |
1 |
정분옥 회장 |
300,000 |
2 |
정병호 상임고문, 도봉큰스님 |
100,000 |
2 |
권오성∙김계권 이사 |
50,000 |
4 |
김점수중앙위원,박외숙부회장,정기환거창지부회장,신천팔거창사무국장 |
20,000 |
5 |
강영자∙구수용∙서옥원∙이종근∙임옥출 이사 |
- 물품주신 분
• 정분옥 회장 : 떡120인분, 딸기6박스
• 김종석 이사 : 서적 2권(박정희의 결정적인 순간들, 영시의 횃불)
• 이채호 이사 : 카셋트 테잎 5개(1979. 10. 26 당시 TV방영분)
- 회의자료 설명 및 자료제공
•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자"라고 하는 좌익들에 대한 답변
• 국민들이 보는 박정희
• 2011년 종북세력들이 대한민국 분열을 노린 10대 사건
• 민주당, 공천 제1기준이라는 '정체성의 正體'가 뭔가
나. 사이버위원회 1/4분기 정모 - 일시 : 2012. 3. 2 (금) 19:00, 장소 : 다이아몬드 호텔
다. 여성위원회 3월 월례회의 - 일시 : 2012. 3. 12 (월) 12:00, 장소 : 다이아몬드 호텔
라. 양산시지부 제5차 정기총회 - 일시 : 2012. 3. 26 (월) 18:30, 장소 : 우리농원(양산)
마. 연제구지부 3월 월례회의 - 일시 : 2012. 3. 29 (목) 19:00, 장소 : 다이아몬드 호텔
2. 공지사항
가. 거제시지부 제1차 정기총회 - 일 시 : 2012. 4. 9(월) 14:00, 장 소 : 청소년수련관
나. 박영수 고문 - 경남보훈∙안보단체 연합회 회장 당선
• 2012. 3. 19 (월),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外 15개 단체
다. 권영숙 부회장 - 한국자유총연맹 전국 시∙도 여성연합회 회장 당선
• 2012. 3. 21 (수), 5월에 취임
라. 김종한 자문위원 - 국제라이온스협회 부산지구 총재 선출
• 2012. 3. 24 (토), 355-A(부산)지구, 2012~2013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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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박정희 대통령 숭모전당 (기념∙도서관) 건립기금 모금현황
- 관리계좌 : 부산은행 031-01-032121-0 박정모 2012. 3. 30 현재
수 입 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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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출 부 | |||||||||||||||||||||||||||||||||||||||||||||||||||||||||||||||||
과 목 |
금 액 |
과 목 |
금 액 | ||||||||||||||||||||||||||||||||||||||||||||||||||||||||||||||||
기 금 |
30,240,000 |
- |
- | ||||||||||||||||||||||||||||||||||||||||||||||||||||||||||||||||
이 자 |
1,906,331 | ||||||||||||||||||||||||||||||||||||||||||||||||||||||||||||||||||
계 |
32,146,331 |
계 |
- | ||||||||||||||||||||||||||||||||||||||||||||||||||||||||||||||||
※ 31,697,019원 정기예금 - 만기 : 2013. 3. 6 (정기예금이자 : 933,276원 발생) 기금 내신 분 (순서 - 금액별, 직위별, 가나다순) : 6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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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11, 2012년도 달력대금 협찬 기금 모금현황
- 관리계좌 : 부산은행 048-01-040027-2 박정모
인쇄비: 5,500만원(2011년도 1,500만원+2012년도 4,000만원)-결제 : 5,050만원=미결제 450만원
(25,000부) (5,000부) (20,000부) 2012. 3. 30 현재
수 입 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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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출 부 | ||
과 목 |
금 액 |
|
과 목 |
금 액 |
기금모금 |
54,91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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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비 |
50,500,000 |
이 자 |
889 |
전용 (본회계) |
3,910,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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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출계 |
54,410,000 | |
잔액 |
500,889 | |||
총 계 |
54,910,889 |
총 계 |
54,910,889 | |
기금 내신 분 (순서 - 금액별, 직위별, 가나다순) : 68명 - 2012. 3. 2 이후 내신 분 : 2명 50,000원 - 추종구 부회장, 전용기 홍보부장 ※ 실제 부족액 : 400만원 |
5. 동전 모으기에 동참하신 분 : 32명
2012. 3. 30 현재
계 : 모금액 432,050 + 이자413 = 432,460 | ||||||||||
정분옥 회장 정병호상임고문 김상훈 고문 박영수 고문 김점수중앙위원 강순자 부회장 노명숙 부회장 박외숙 부회장 손찬이 부회장 구맹회 이사 권희동 이사 김상섭 이사 문필선 이사 박영수 이사 박한수 이사 변종길 이사 손연자 이사 윤상수 이사 |
93,200 1,460 2,120 8,580 30,350 2,140 63,460 27,810 12,380 22,080 160 760 9,000 4,300 15,040 5,440 11,490 1,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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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희 이사 장복녀 이사 진혜정 이사 남기영 양산회장 천숙희해운대회장 정기환 거창회장 신천팔 거창국장 성남태 진해회장 김재곤사무처장 우옥자여성위원장 이현주재무국장 김도원여성부장 이찬일청년위원 전용기홍보부장 |
990 1,250 1,730 8,370 8,770 22,400 19,800 4,150 2,000 19,820 2,020 4,240 17,750 7,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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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박정희 대통령 앞에선 항상 오금이 저렸다"
10. 26 이후로 박 대통령을 비난하는게 멋처럼 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 만나면 난 묻고싶다. 지금 이만큼 먹고 사는게 저절로 된 줄 아냐고
박 대통령의 결단과 신뢰를 생각하면, 내가 감히 게으름 피우며 대충 일할 맘을 먹을 수 없었다. 누구하나 찬성하는 자가 없던 상황이었다. 오일 달러가 들어오면 인플레가 일어날 것이라며 반대하는 '밥벌레' 같은 경제학자들도 드글거렸다.
내 계획을 믿어주신 분은 오직 박 대통령뿐이었다. 듣자하니 나와 현대를 질시하여 뒤에서 많은 나쁜말이 오갔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란 거목이 없었다면 우리가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까? 단지 일에만 몰두해도 바늘구멍 지나가는 만큼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우린 둘 다 가난한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며,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대물림하진 않겠다는 뜻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분은 날 믿어 주셨고, 난 단순한 장사아치가 아니라 나라 위해 일한다는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뭣보다도 우린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서로 믿고 도우며 몇가지 큰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있소?"
"네, 각하."
계획안을 가져가면 항상 오금이 저리곤 했다.
박 대통령은 회계 하나 하나를 살피며 이것저것을 따져묻는데 웬만한 전문가 저리 가라 할 수준이었다. 기획참모로 활동했던 경험 때문이었을까.
"정씨를 믿겠어. 함 해보세요."
이 한마디를 얻기란 참으로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허락이 떨어지면 아무런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시어미처럼 까탈스럽지만, 일단 결정하면 사람을 확실하게 믿고 밀어주는 타입이었다. 어려움이 있으면 항상 보고하기도 전에 박 대통령이 알고는 방안을 마련해 놓곤 했다. 결코 찾아가서 상황을 조밀조밀 따져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박 대통령 이후로 등장한 정치 지도자들은 경제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뿐이었다. 다들 대단한 분들이긴 했지만 내가 진심으로 존경한 사람은 박 대통령뿐이다. 그 분의 사명감, 추진력, 그리고 치밀함은 비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아무리 큰 성공을 해도 기뻐하지 않고 항상 다음 계획에 골몰하였으며, 어떤 실패를 하더라도 좌절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법 없이 대책 마련에 고심하였다. 머리란 쓰라고 달려 있는 것인데 그분만큼 머리 달린 값을 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나더러 악바리라고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박 대통령은 나보다 더했다.
- 정주영 (前 현대그룹 명예회장) 회장의 저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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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1조달러와 박정희
- 박 대통령의 중화학공업 결단이 없었다면 무역1조 달러 달성은 어려웠을 것이며,
나라의 운명은 지도자의 지도력 나름
구분∖년도 |
1961년 |
1962년 |
1977년 |
1979년 |
2005년 |
2011년 |
1인당국민소득 |
82달러 |
87달러 |
1,000달러 |
1,800달러 |
17,000달러 |
23,749달러 |
수출액 |
4,100만달러 |
4,300만달러 |
100억달러 |
151억달러 |
2,847억달러 |
1조달러 |
"지금 성장률이 7.1%라 했습니까"
미 국무부 해외개발처장 해밀턴은 깜짝 놀랐다.
1961년 11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동행한 경제기획원 부원장 송정범이 경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그를 만난 자리에서였다.
"그렇게 높은 성장률은 선진국에도 없는 일"이라며 혀를 찼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1960년의 1인당 국민소득은 79달러였고, 무역적자는 GNP(국민총생산)의 16%, 3억달러에 달했다.
1963년부터 선진국에서 노동집약적 경공업이 사양화되면서 한국 공업제품의 수출이 크게 늘어나 경제개발 기본 전략을 수출주도형으로 완전히 바꾸었다. 자본도 자원도 없는 맨손뿐인 한국에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었다. 1966년 한국의 성장률은 7.8%로 7% 목표를 이뤘다.
1973년 연두기자회견서 '중화학공업화'를 선언한 박정희 대통령은 오원철 경제제2수석으로부터 4시간에 걸친 브리핑을 들었다.
"종합화학공장과 조선소 기계공업을 육성하고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을 동시에 건설, 북한이 따라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브리핑을 듣고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박 대통령은 드디어 지시를 내렸다.
"필요한외자 도입 조치를 하시오"
이 회의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조선, 전자, 기계, 제철, 자동차, 석유화학, 원자력 등 기술집약적인 핵심 산업을 모두 일으키는 엄청난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1973년 7월 한국 중화학공업의 상징과 같은 포항제철이 3년 만에 준공되자 박 대통령은 정주영 회장을 독려, 조선소를 만들도록 했다. 선진국에서도 수십년 또는 100년 이상 걸린 산업구조의 변화를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이루어졌다. 이때 이뤄진 중화학공업 육성이 오늘날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1조 달러 클럽에 가입, 무역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게 한 발판이 되었다. 우리에 앞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한 나라는 미국, 독일, 일본, 중국,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8개국이다.
1조 달러는 100달러 지폐로 에베레스트산 (8,848m)을 136개 쌓을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 결단이 없었다면 무역 1조 달러 달성은 아직도 요원할지도 모른다. 나라의 명운은 지도하기 나름이다.
- 2012. 1. 2 경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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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뿌린 노력이 '원전 수출의 씨앗'되다
- 지도자의 의지와 연구원의 피땀, 성공신화 아로새겨
47조원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로 한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원전 선진 6대 수출국 반열에 올랐다. 원전의 설계부터 가동까지 원스톱으로 수출하는 한국은 이제 신성장 시대의 나래를 활짝 펴게 됐다. 이 성공신화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30년 전 전직 대통령의 불굴의 의지와 주당 80시간 넘게 일한 연구원들의 땀방울이 결합한 과거로부터의 후세에 대한 선물인 셈이다.
시간을 거슬러 지난 1971년 3월 경남 양산군 기장읍 고리에서 한국 최초의 원전 기공식이 열렸고 그 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5.16 군사정변 이후 한국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 연구원)을 처음 방문한 이래 수시로 헬기를 타고 연구소를 드나들었다. 석유 한방울도 나지 않는 척박한 영토에서 그는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을 택했다. 그 당시에는 화력발전이나 제조업 구상에만 관심이 있던 때였다. 그러나 1970년대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고도 경제성장으로 전력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두 차례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원전의 필요성은 한국 경제에는 숙명이었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1978년 한전은 고리1호기 상업발전을 시작했다. 세계에서 21번째로 원전 보유국이 된 순간이다. 장인순 대덕클럽 회장(전 원자력연구소장)은 "고리 원전의 건설비가 당시 정부 한 해 예산의 4배나 됐다"며 "그러나 박 대통령은 강한 의지로 밀고 나갔고 전폭적인 지원으로 원자력의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매주 연구소에 들러 연구원들에게 당시 돈으로 100만~200만원의 격려금을 내놓으며 격려했다고 한다.
UAE초대 원자력 국제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정근모 한국전력 원자력 고문도 "기술도 없고 자금도 없고 전문가도 없었던 한국 원자력 시대 초기에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하면서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최선으로 다했다."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 박 전 대통령의 의지와 집념에 감복한 연구원들은 일주일에 80시간 이상 연구에 매진했다고 정 고문은 덧붙였다. 과거의 땀과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1996년 한국 표준형 원전을 개발하는데 성공했고, 이 기술을 이용해 울진 원전 3호기를 우리 손으로 건설하는 신기원을 아로 새겼다.
원자력은 녹색성장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친환경'에너지원으로 다가왔다. 원전은 ㎾h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0g으로 석탄(991g), 석유(782g) 보다 현격한 장점이 있고 태양광 발전(57g)에 비교해도 온실가스 배출문제에선 흠잡을데가 없다. 정부관계자는 "지도자의 의지와 전문가들의 헌신은 한강의 기적의 산 증거인 원전개발과 수출을 낳았다"고 말했다.
- 2009. 12. 28 아주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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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전교조
- 내부 비판 차단엔 눈 감고 자기 조합원 특채
취소에만 목소리 높이며 시위 예고
전교조는 3월 5일 서울시교육청과 교육과학기술부 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집회 이름은 '서울 혁신교육∙민주진보 복직 교사 살리기 투쟁'.
최근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전교조 소속 사립교사 3명을 공립교사로 특채한 것에 대해 교과부가 "법적 근거가 없는 곽노현 교육감의 권한 남용"이라며 직권 취소 조치를 내리자 이를 문제 삼겠다는 것이다.
이 집회에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서울교육단체협의회 등 다른 단체들도 동참키로 했다고 전교조는 밝혔다. 하지만 곽 교육감이 3명을 특채한 것이 분명한 특혜이고 권한 남용이라는게 교육계의 다수 의견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특채가 법적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전교조는 자기 조합원 3명의 특채취소에는 강하게 반발하면서 곽 교육감이 측근 5명을 편법으로 승진시키려 했던 것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측근들에게 특혜를 준 것이 잘못된 결정이었음을 곽 교육감도 인정하고 뒤늦게 취소했는데도 이에 대해선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소위 '생산적 비판'조차 들리지 않는다. 곽 교육감이 편법 인사를 비판하는 서울시 교육청 일반직공무원노조 위원장의 이메일 발송을 이틀간 차단, 교육청 내부의 언로(言路)를 억누른 것에 대해서도 전교조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전교조는 자유로운 비판을 중시한다고 해왔다.
그 전교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된 곽 교육감이 교육청 내부 직원들의 비판을 압박하고 있는데도 전교조는 침묵하고 있다. 전교조는 그러면서 "교과부와 일부 수구 언론을 허위과장보도와 발언으로 선생님들과 교육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며 오히려 곽 교육감을 옹호하고 나섰다. 후보매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곽 교육감이 이번에 또 다시 편법 인사와 내부 언로 차단이라는 도덕적 문제를 드러낸 것을 전교조가 냉정하게 비판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이 질문에 전교조가 먼저 답할 수 있어야한다.
- 2012. 3. 5 조선일보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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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北派가 진보당 휘어잡고 진보당은 민주당 끌고가나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막판까지 버티다 결국 23일 불출마로 돌아섰다. 이 대표가 주연으로 등장한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의 여론조사 조작 의혹은 터지자마자 단박에 두 당의 단일화 효과에 직격탄을 날렸다. 단일화에 따른 야당 상승세가 풀썩 꺾이고, 정당 지지도에서 새누리당이 민주∙진보 연대를 앞섬으로써 총선 판세는 다시 알 수 없게 됐다. 이 대표와 통합 진보당이 그동안 여권의 의혹이 터질 때 마다 '도덕' '윤리' '정의'라는 단어를 앞세운 훈계를 도맡다시피 한 인물과 세력이어서 대중의 배신감과 충격이 더 큰 듯했다.
정치 마당의 상식적 판단은 이 대표의 사퇴가 늦어질수록 본인과 소속 정당, 민주∙진보 연대 쪽의 피해는 더 커져가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대표는 당초 이 정치의 상식을 따르지 않았다. 이 대표는 인터넷 방송에 나가 눈물까지 보이면서도 사퇴라는 말만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이 대표는 민주∙진보 연대의 배후(背後) 추진 세력이라는 원로 모임이 나서 사실상 사퇴를 종용해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사퇴 여부는 무대 위에 선 본인과 진보당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그 너머 '어떤 세력의 몫'이 아니냐는 설(說)이 유력하게 나돌았다. 이 수수께끼는 진보당의 전신(前身)인 민주노동당에서 이 대표와 함께 활동했던 인물들이 '그 어떤 세력'의 실체를 '경기동부연합'이라고 밝힘으로써 풀리기 시작했다. 진보당이 사퇴한 이 대표 대신 관악을(乙) 선거에 내세운 후보도 같은 '경기동부연합' 소속으로 알려졌다.
'경기동부연합'은 1990년대 경기도 성남과 용인을 중심으로 노동운동 등을 하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때 합류한 범(汎)NL(National Liberation)계라고 한다. NL계는 80년대 대학가에서 반미(反美) 자주화를 내걸어 자주파(일부는 주체사상파)로 불리며 급속히 성장, 사회주의 본래 노선에 더 충실할 것을 주장하는 PD(People's Democracy)계를 소수파로 밀어내고 대학가 운동권을 장악했다. 완강한 내부 기율을 기반으로 핵심 세력 중심의 전위(前衛)∙정당 형태까지 갖추었던 NL계가 2000년대 민주노동당에 들어가 당 지도부를 장악하더니 진보신당 탈당파와 국민참여당과 합쳐 통합진보당으로 몸집을 불리고 나아가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과 선거 연대까지 이뤄냈다. PD계는 이들을 종북파(從北波)라고 불렀다.
민주통합당 새 지도부는 친노(親盧)세력이다.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한 프로젝트다. 그래서 사람들은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자신들이 과거에 잘못 판단했다는 양심선언까지 하면서 두 사안의 전면 무효화에 이토록 매달릴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 의문을 풀만한 실마리도 이번에 나왔다. 민노당에 이어 진보당을 장악한 종북파는 그들의 존립 근거인 한미 FTA폐기와 제주 해군기지 백지화에선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므로 민주당이 그들과 손잡으려면 그들 요구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야권 전체로 보면 종북파는 아주 작은 세력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만한 결집력과 활동력을 가진 세력은 야권에 없다. 여권에도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을 중심으로 모인 세력은 있을지언정, 종북파처럼 이념으로 똘똘 뭉치 집단은 없다. 이번 이정희 파동은 80년대 대학가를 주름잡던 종북파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해주었다. 앞으로 이 나라 정치와 국가의 진로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비하려면 이들의 동향에서 눈을 떼선 안된다.
- 2012. 3. 5 조선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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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처음뵌분들의 다정함을 아직도 손끝으로 느끼고있는 저는 울산의 황태철입니다. 자유로운 분위기속의 행사진행도 좋았지만, 정병호상임고문님의 강의 내용은 뜻깊었습니다. 따뜻하게 맞이 해주신 정분옥회장님! 그리고 모든 지원을 해주시겠다는 김재곤사무처장님! 정말감사합니다. 박정모부산회원님들의 무궁한 발전을 빕니다.
바쁘시고 불편한교통 마다하시고 월례회의에 다녀가신다고 큰 수고하셨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울산광역시 지회가 바로갈수있도록 보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