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드디서 그 "신나는" (사실은 무시무시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바벨론 도의 큰 광장(서울특별시 서초구의 큰 공터)에 커다란 우상을 세운 다음, 느브갓네살 왕은 "총독, 지방 장관, 군사령관, 왕의 고문, 재무관, 재판관, 치안 판사, 그 밖에 각 도의 모든 관리에게 자기가 세운 신상의 제막식(예배당 완공식)에 참석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절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만, 세 친구는 절을 하지 않았고, 누군가가 그들을 참소했는데, (새번역, NIV)성경에는 그들이 "점성술가"였다고 나옵니다. 2장에서 꿈을 해몽하면서 다니엘과 친구들은 출세했지만, 덕분에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게 된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출세하려면 이런 힘든 시련이 생기는 모양입니다.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라. 만일 이번에도 너희가 절하지 않는다면 너희를 뜨겁게 타는 용광로에 던져 넣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어떤 신이 너희를 내 손에서 구해 내겠느냐?"라고 왕이 묻습니다. 왕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시여,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 입장을 변호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뜨겁게 타는 용광로 속에 던져진다고 해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를 그 용광로에서 구해 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반드시 우리를 왕의 손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 내지 않으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않을 것이며 또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않을 것이니 왕이시여, 그런 줄 아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자신의 앞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희생하기 위해서 왕 앞으로 나갔던 에스더의 결연한 자세가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다니엘의 세 친구나 에스더 모두 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갔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이들을 지켜주셨어야만 하지 않을까요? 신나는 이야기지만, 그 장면 안에 들어가 보니 가슴이 조마조마해 집니다.
왕은 잔뜩 화가 났습니다. 세 친구를 평소에 총애했던 그의 얼굴 표정까지 달라졌습니다. 왕은 풀무 불을 7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현재 온도가 1200도 라면, 8400도까지 높이라는 요구였습니다. 물론 뜨겁게 할 수 있는데까지 최고로 뜨겁게 하라는 의미였겠지만, 풀무를 뜨겁게 달구려고 엄청난 땔감이 던져지고, 불과 연기가 하늘 높이 올라갑니다. 풀무는 계속 달궈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세 사람을 묶어 던져 버리던 군인들까지 불타 죽어버렸습니다. 세 사람만 죽었으면 됐지, 왜 그들까지 죽어야 했을까요?
그런데 세 친구는 죽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묶어서 불에 던진 자는 세명이 아니었느냐?' '그렇습니다. 폐하.' '그런데 어째서 네 사람이 불 가운데 걸어다니고 있느냐? 저 사람들은 묶여 있지도 않고 상한 흔적도 없으며 더구나. 네 번째 사람은 그 모습이 신들의 아들과 같구나.'"라는 대화가 왕과 보좌관들 사이에 오고갑니다.
방금 전까지 7배 뜨겁게 죽이라고 말했던 왕은 이제 자신이 풀무 입구까지 가서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나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야! 이리로 나오너라" 하고 외칩니다. 그들은 풀무 불 밖으로 말짱한 모습으로 나옵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던 왕은 놀랍게도 (세상에 이런 변덕장이가 있을까요?) "시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 자기를 신뢰하는 종들을 구원하셨다.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 경배하지 않으려고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기꺼이 자기들의 목숨까지 내놓았다"라고 선언한 다음, "어떤 민족이나 백성을 막론하고 이 세 사람의 하나님에 대하여 좋지 않게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 몸을 갈기갈기 찢고 그의 집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려라. 이런 방법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신은 천하에 없다"고 명령합니다.
세상에는 느브갓네살 왕과 같은 변덕장이들, 자신들이 하나님이라고 믿는 분들이 종종 있지만, 이렇게 하나님의 기적 (=성령의 역사하심)을 보면서 겸손해지고 하나님 편에 서려는 분들이 가끔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들, 옆에 있기에는 좀 거시기합니다. 조금 전까지 7배 불을 뜨겁게 하라고 했던 왕은 이제는 누구든지 세 사람의 하나님을 좋지 않게 맗하는 자는 패가망신, 멸문지족, 능지처참 해 버리겠다고 공표합니다. 정말 반갑기는 하지만, 이렇게 변덕 부리는 분 옆에서 어떻게 같이 지낼 수 있을까요? 뭐...출세에는 댓가가 따르는 모양입니다만, 다니엘은 그런 왕 옆에서 지내야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다니엘처럼 잘 되게 해 주세요. 총명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기 전에 좀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세 친구와 다니엘은 사전에 미리 어떻게 하기로 했을까요? 아니면 우연히 일치된 행동을 했을까요? 자신을 아껴서 높여 주었던 왕 앞에서 불순종 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했을까요? 하지 않았을까요? 불순종하는 것도 좋다는 메시지인가요? 아닌가요? 목사가 느브갓네살 같은 존재일까요 아닐까요? 어떻게 그 변덕장이 왕이 그들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왜 그 용감한 믿음의 인물들은 더 이상 다니엘 서의 기록에 등장하지 않게 될까요?
더 중요한 질문: 다니엘이 이 자리에 갔을까요? 안 갔을까요? 거기서 절을 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만약 에 만약에 절을 했다면, 다니엘은 세 친구와 다른 길을 간 셈인데,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짧은 성경 기록이지만, 이런 질문들이 현재의 사태를 보면서 떠 오릅니다. 하지만...그들의 고백과 행동은 일치했고, 그들이 앞날을 알지 못하고 나갔을 때, 그들이 알았던 하나님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 용감한 믿음의 용사 세 친구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저희 모두가 같이 힘쓰고 고통스러워 하는 일의 끝도 그럴 것 같습니다.
첫댓글 전 때론 그 세친구와 다니엘의 심경이 어땠을까가 궁금합니다.
사자굴앞의 다니엘은 의연함을 보였지만 속내도 그랬을까요?
사자굴 속 그 깜깜한곳에서 마냥 담담했을까요?
세친구는 풀무불앞으로 끌려가면서 ...
던져지기전과 던져지면서 죽기를 각오했다고 하지만 마냥 담담했을까요?
신앙의 선택을 하고서 죽음의 위기 앞에선 그들이 왜 갈등과 두려움이 없었을까요....전 너무도 두려웠을것이란 결론이 내려지더구요.
다니엘은 아침이 될때까지 사자굴에서 끊임없이 두려웠을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달려들지 모르는 그 어두움 가운데 기도했겠지요.
죽음같은 두려움가운데...
세친구도요..
그래도 옳은길을 옳다고 선택한 것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