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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배경 시점은 2015년입니다. >
170. 인천은 황금빛 뽕밭
부본무 보스가 ‘웰 모텔’ 지하 파티룸에서 벌일 수뇌부 파티에 우호 세력인 상도동파와 산이슬파 두목도 함께 참석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글스파는 부산 유태파에서 구입한 필로폰을 두 조직에 일부 나눠주고 팔아 보라고 할 참이다. 그러니 오늘 파티에서 유태파 두목인 박신배와 인사 나누는 것도 좋아 보이기는 하다.
“뭐? 갱재랑 산이슬이도 부르자고? 음.. 그건 좀 그렇지 않냐?”
윤OO 이글스파 오야붕이 눈살을 찌푸리며 책사인 김신중 전무를 쳐다봤다.
상도동파와 산이슬파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하부조직이나 마찬가지인 연합조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다.
그 두 조직이 공모하여 어떤 대기업을 끌어들여서 이글스파에게 도전했던 것이다. 크게 한판 전투를 벌였고, 사후 수습 협상 결과, 사업 이권을 주고받으며 서로 어정쩡한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아, 그건 좀 곤란한 것 같은데요? 우리야 좋을지 모르지만, 박 사장님은 아침 일찍 올라오셔서 밤늦게까지 신경 쓰시면, 너무 피곤하지 않겠습니까?”
김 전무가 박신배를 핑계 댔지만, 아직은 그런 두 조직의 두목들을 박신배에게 소개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윤 오야붕의 염려를 눈치챈 것이다.
“그래, 맞아. 다음에 두 번째 약 받을 때, 그때 인사시키자. 글마들 한 달간 약 판매한 실적도 평가해 보면서! 그게 낫겠지요? 박 사장님.”
아직도 그들이 자기 수하인 척 허풍을 떨면서 윤 오야가 박신배에게 동의를 구했다.
“아, 예. 파티에 인원이 너무 많으면 제가 잔 돌려받다가 혼자서 곤드레만드레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윤OO의 말에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눈치 빠른 박신배가 얼른 동의했다.
“아, 그라고. 부 보스는 내일 나하고 인천에 좀 다녀와야 되니까, 오늘 술은 조금만 마시도록 하소.”
생각 없이 엉뚱한 소리를 해서 자칫했으면 난감한 상황에 처할 뻔했던 윤 오야가 즉석에서 띨띨한 부본무에게 벌을 내렸다.
“인천에요? 인천 어디 가시게요?”
친구이면서 오야붕인 윤OO의 질책을 눈치 못 챈 부본무가 어리둥절해한다. 사전에 한마디 언급도 없었기 때문이다.
“응. 센트럴 프라자에 좀 가보려고.”
‘센트럴 프라자’는 인천시청 앞에 있는 호텔 이름이다.
“아, 크라운파에 약을 좀 넘길 생각입니까? 그거 아주 좋은 계획입니다. 저는 미처 그 생각을 못 했네요. 허허.”
술 적게 먹으라는 소리에 새침했던 부본무가 박수라도 칠 듯이 좋아한다.
인천 크라운파는 20년 전에 인천 내항이 있는 중구 신흥동에서 탄생한 폭력조직이다. 지금은 인천시청 앞으로 옮겨서 로데오거리를 꽉 잡고 있으며 조직원은 20명 정도이다.
그러나 인천광역시에서 활동하는 조폭은 11개 파에 220명 정도나 된다. 그중에 제일 큰, 조직원 40여 명인 꼴망파는 이미 마약 사업을 하고 있다. 조직원 30여 명의 부평 시장파도 만만치 않은 조직이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지난번에 우리가 인천항 밀수조직에 연줄 좀 대려고 크라운파에 아쉬운 부탁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당당히 우리가 약을 공급할 위치가 됐는데, 회장님이 가셔서 폼도 잡으시고, 거꾸로 약 좀 사라고 제안해 보셔야지요.”
김 전무가 싱긋이 웃으면서 박신배를 쳐다봤다. 우리 이글스파가 이 정도니까 앞으로 필로폰 공급 제대로 하라는 의미다.
“아이구, 인천 크라운파하고도 우호적이시군요! 인천이면 시장이 엄청나게 크지 않습니까?”
이쪽저쪽 쳐다보느라 고개 돌리기 힘들었던 박신배가 이게 웬 떡이냐 싶은 표정을 지으며 감탄했다.
“그럼요! 어쩌면 서울보다 약 시장이 더 클지도 모릅니다. 바로 옆에 부천시도 붙어있지 않습니까? 서울 강남에 사는 부자들이야 약에 손대겠어요?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약쟁이가 되는 거지요.”
김 전무가 으스대며 자기들이 원래부터 인천 쪽 마약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는 점을 암시했다.
인천광역시 인구는 290만 명이고 부천시는 85만 명이니까 합하면 375만 명이나 된다.
서울시 인구 1천만 명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인천항, 인천공항, 남동공단에 송도신도시까지 들어서면서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부천시에도 종업원 1천 명이 넘는 공장이 수두룩하다. 이런 곳에 자연히 유흥업소가 넘쳐나기 마련이고, 마약의 유혹에 쉽게 빠질 가난한 업소 종사자와 불만에 가득 찬 도시 빈곤층이 숱하게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인천지역에 넓은 황금빛 필로폰 뽕밭이 널려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구 이런. 그럼 뭐, 연간 1천 그램도 팔릴지 모르겠네요?”
신림동 이글스파가 필로폰 구입을 연간 5백 그램 보장했는데, 인천까지 포함하면 두 배는 될 것 같아 박신배의 입이 헤벌쭉 벌어진다.
“그렇기는 하지만, 인천 쪽은 지금 다른 조직이 이미 시장을 어느 정도 잡고 있어요. 크라운파가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김 전무가 정색을 하며 시장 뚫기가 만만치 않음을 강조했다.
“그 조직이 설마 칠성파에서 들여오는 일본 야쿠자 뽕을 취급하지는 않겠지요?”
박신배는 인천에서 거래되는 필로폰의 원천 수입처가 더 궁금하다.
“제가 듣기로는 인천에서 거래되는 뽕은 중국에서 들여온다고 합니다. 나중에 박 사장님 약하고 비교해 보면 같은 덴 지 아닌지 알 수 있겠지요.”
중국도 한 군데가 아니고 홍콩 등 여러 곳에서 들여오고 있다.
그중에 질이 괜찮은 필로폰은 주로 중국 삼합회 조직인 ‘죽련방’ 제품이 들여오고 있었다.
박신배는 조선족이 두목으로 있는 ‘선양파’에서 들여오고 있다.
“예. 역시 그렇군요. 그 조직이 중국 어디서 들여온 약을 파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취급하는 약은 질이 아주 좋습니다.”
박신배가 특급 비밀인 수입처 ‘선양파’는 밝히지 않으면서 자기가 취급하는 필로폰의 효력이 좋다고 자랑했다.
“물론 첫째는 약의 질이 좋아야겠지만, 결국은 가격에 달린 거 아니겠습니까? 한 달쯤 팔다 보면 우리가 어느 가격 선에서 크라운파에 공급해야 할지 판단이 설 겁니다.”
그런데 김 전무는 필로폰의 질보다 가격이 더 우선이라며 핵심을 비껴갔다.
“가격은 제가 최대한 맞춰드릴 테니까, 거래처만 확실히 확보해 주시지요.”
박신배도 가격은 자신이 있다.
오늘 이글스파에 1그램당 140만 원에 공급하기로 했는데, 자기는 선양파에서 1그램당 80만 원에 들여오고 있다.
마진을 60만 원이나 붙여놨으니까, 나중에 수십만 원은 깎아줄 여유가 있다.
“그럽시다. 일단 크라운파 만나서 가격 문제 상의해 보고 다시 논의합시다. 설령 인천이 안 된다 해도, 서울만 우리가 장악하면 충분하니까, 너무 염려 마세요.”
부본무가 김 전무 대신 대답하며 박신배에게 미소를 보냈다.
서울에는 아직 중간도매상으로 필로폰을 크게 취급하는 큰 조직은 없다. 거의 다 동네 조폭들이 개인적인 친분으로 소량을 구입해서 자기네들 동네 업소에 밀매하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 우물가에서 숭늉 마실 필요는 없지. 오늘은 일단 술이나 신나게 마시면서 전투 준비나 해봅시다. 허허.”
윤 오야가 끼어들어 실없는 논쟁을 제지했다.
이글스파가 구상하는 마약 사업은 동네 조폭들 같은 장난 게임이 아니다. 일단 시작하면 꼭 성공해야 하고, 수년 내로 연간 수십억 원의 수익을 올려야 한다.
그러려면 당연히 경쟁상대인 조폭들과 약 시장을 놓고 크고 작은 피 튀기는 쟁탈전도 벌여야 한다.
그보다 더 어려운 건, 검찰과 경찰의 합동 마약단속반에 걸리지 않기 위해 피 마르는 술래잡기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사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목숨 걸고 치르는 전투라는 단어가 합당한 표현 같다.
종업원 수십 명을 고용하여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님의 입장도 비슷할 것이다.
동종업계의 경쟁사와 겨루며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힘들게 싸우면서 돈을 벌어 매달 직원들에게 제때 월급 주며 지탱한다.
세무조사다 뭐다, 귀찮고 까다로운 관청의 심사와 통제를 받아 가면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불법이긴 하지만, 수십 명 식구들 먹여 살리기 위해 밤낮으로 애쓰는 폭력조직의 두목들도 기업체 사장님 못지않으니, 굳이 나쁘게만 생각할 수는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이따 6시쯤 저녁 식사를 하도록 하십시다. 피곤하실 텐데, 우선 룸에 가셔서 샤워도 하시고 좀 쉬시지요.”
부본무가 박신배에게 응접 테이블 밑에서 최고급 객실 VVIP 룸 키를 꺼내어 건네주며 웃었다.
앞으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필로폰을 공급해 줄 귀빈이니까, 막강한 이글스파 이인자인 부본무 보스라도 유태파 두목 박신배를 깍듯이 예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마약 사업 관련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박신배는 자기에게 배정된 ‘웰 모텔’ 7층 VVIP 룸 푹신한 침대에 드러누워 잠시 나른한 몸을 풀다가 깊은 오수에 빠졌다.
두어 시간 곤하게 잠을 자고 일어난 박신배는 베드룸 샤워실에서 소나기처럼 뿜어 내리는 물줄기로 기름기 낀 몸을 구석구석 깨끗이 씻었다.
혹시 파티룸에 불려 올 도우미 아가씨들에게 노인네 냄새라도 풍길까 봐 염려되는 모양이다.
룸에 찾아온 부본무를 따라 ‘웰 모텔’을 나섰더니 바로 앞에 있는 ‘고기 & 손두부’ 집으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똥개 길도개 보스와 전대 노전대 실장이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점심을 함께 먹었던 사이라 두 사람과는 이제 친근감마저 든다.
“파티하려면 술배를 비워둬야 하니까, 저녁은 간단히 먹읍시다.”
부본무가 웃으며 원래 계획했던 호텔 레스토랑 같은 데를 안 가는 이유를 대신했다.
“회장님하고 김 전무는 식사하러 안 오십니까?”
오늘 저녁 파티에 두 사람이 함께 참석하는 줄로 아는 박신배가 의아해서 물었다.
“아, 회장님이 참석하면 박 사장님이 불편하실 거라고 우리끼리 놀라고 하셨습니다. 김 전무랑 두 분은 내일 인천 센트럴 프라자 호텔에서 의논할 사항도 미리 점검한답니다. 우리끼리 즐겁게 놉시다. 허허.”
내일 윤 오야붕은 인천 크라운파를 만나 필로폰 거래에 대한 협의를 할 예정이다.
사안이 중요한 만큼 파티에 참석도 안 하고 책사인 김 전무와 작전계획이라도 세우는 모양이다. 역시 조직의 최고책임자는 힘든 자리다.
“아이구, 그거참 반가운 소식이네요. 회장님이 마이크 잡으시면 우리는 기생박수나 치다가 날 샙니다. 그죠? 노 실장. 하하.”
길동개 보스가 좋아라 하며 노전대 실장에게 윙크를 했다.
“아, 예. 뭐 그렇기는 하지요.”
노 실장도 잘됐다 싶은지 험상궂은 얼굴에 미소 짓는다는 게 더 일그러뜨렸다.
저녁 식사는 돼지갈비와 소문난 장단콩 콩국수로 간단히 먹었다.
식사를 마친 네 사람은 ‘웰 모텔’로 돌아와 널찍한 지하 파티룸에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초저녁인데 벌써 도우미 아가씨들 네 명이 불려 와서 파티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다.
스탠드바 의자에 걸터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묵례를 올리는데, 착 달라붙는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 아래로 뻗어 내린 미끈한 각선미가 박신배의 나이를 수십 년 전으로 되돌려버린다.
어디서 골라 불러왔는지, 한결같이 쭈쭈 빵빵하면서도 허리는 잘록한 것이, 늘씬한 몸매에 얼굴도 탤런트 저리 가라 할 만큼 예쁘게 잘도 생겼다.
나이 쉰다섯인 박신배의 잠자던 거시기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일어서려고 한다.
잘하면 오늘 밤 간만에 뽕 따러 가세, 한번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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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룸의 천정에 비친 사이키 조명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벽면의 대형 스크린에는 노래방기기에서 나온 조금은 야한 영상이 돌아간다.
부본무 보스는 플로어에 마이크 잡고 서서, 철삿줄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며 한 많은 미아리 고개를 넘어가는데, 부 보스 파트너 아가씨는 낭군의 허리를 껴안고 함께 끌려간다.
벌써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똥개 길도개 보스는 파트너 아가씨를 꼭 껴안고 블루스를 추는데, 스텝은 좌로 우로뿐인 것이, 꼭 아버지가 딸 데리고 아장아장 걸음마 가르쳐주는 꼬락서니다.
벽 쪽 마루방 바닥에 펼쳐진 술좌석 탁자에는 박신배 보스와 노전대 실장이 앉아서, 아양 떨며 조잘대는 예쁜 파트너 아가씨의 재롱에 취해 있다.
박신배는 파트너가 손으로 집어서 입 안에 넣어주는 과일 안주를 일부러 천천히 받아먹으며, 맞은편 노 실장 눈에 안 띄게 한 손으로 아가씨의 매끄러운 허벅지를 더듬기에 바쁘다.
넷 중에 그래도 제일 덜 생긴 아가씨와 앉아있는 인상파 노전대 실장이 담배 좀 피우고 오겠다며 박신배에게 양해를 구하고 파티룸 밖으로 슬며시 나갔다.
조용한 장소로 나온 노 실장이 주위를 살피면서 핸드폰을 꺼내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고 지부장님? 노전댑니다. 통화하기 괜찮으세요?”
놀랍게도 노전대 실장이 통화하는 상대방은 바로 흥신소 ‘배달 심부름센터’ 부산 지부장인 고문도이다.
(첨언)
이상으로 마약 관련 긴급 연재 5회를 마칩니다.
법무부, 검찰, 경찰,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서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마약 제조, 판매 조직이 하루빨리 일망타진되기를 바랍니다.
어제 4월 12일, 법무부 장관이
대검찰청에서 마약수사를 전담하는
‘마약, 강력부(가칭)’를 조속히 만들겠다고 밝혔다니,
그나마 조금 안심과 위로는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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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약범죄는 애당초부터 뿌리를 못 붙이게 해야 하는데 지난 정권동안 마약사범은
꾸준히 늘었군요. 늦게나마 대검에 마약수사를 전담하는 마약 강력부를 다시 복원시킨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정말 잘된 일입니다.
네, 뱃사공님. 말씀처럼 한동안 마약 사범 단속에 너무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검찰이 나서면 상당히 줄어들긴 하겠지만, 뿌리 뽑기는 어렵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