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기원은 어디일까요? 어떤 강의 발원지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들 중에서 하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자연발생의 샘을 말한답니다. 물론 그 샘에서 물이 항상 솟아나와 강으로 계속 흘러들어가고 있어야 합니다.
동진강의 발원지 「빈샴」을 찾았습니다. 오늘부터 동진강 따라걷기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곳에까지 올라와 동네를 이루고 살기 시작한 이유가 궁금해질 정도로, 버스도 자주 다니지 않는 변비(邊鄙)한 골짜기. 궁벽한 산골마을이 골짜기 고갯길을 따라 길게,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제는 더 없겠지, 그러나 또 나타나고 또 나타나며 띄엄띄엄 이어져 있습니다.
하기야 이곳이 해발고도 230미터 정도에 불과하니 4백여 미터 고지 진안고원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리 높은 곳이랄 수도 없겠지만, 최근에 만경강 따라걷기를 몇 주 동안 하고 난 터라 평지길에 익숙해져버린 관성 탓도 있어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네요.
(위 사진 : 자주감자 꽃)
(위 사진 : 건너편 산기슭에도 우리의 지금 위치보다 더 높은 곳에까지 인가가 보인다.)
도중에 버스가 잠깐 들러 쉰 목욕리 내목마을은 신비로웠습니다. ‘고원분지’라 할까요, 뺑 둘러 산만 보이는 곳에 의외의 넓은 터가 있어 꽤 많은 인가가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농토도 그럭저럭 넓은 편인 신기한 마을이어서 마치 진안 부귀면의 노래재마을을 보는 느낌이었죠.
( 위 아래 사진 : '지각' 옆집 사는 여성이 밭의 새와 짐승을 쫓으려고 매달아둔 생활용품들. 가끔 줄을 잡아당겨 떨렁떨렁 소리를 내면 된단다. '지각'=제각. )
( 위 사진 : 화살표 길을 따라 오르면 여우치에 닿는다고 정국장이 설명. 내목마을에서. )
내목을 빠져나오면서 마을어귀에 '효자 정려비'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미처 사진은 찍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큰 마을이었군요.
여우치(如牛峙) 고개를 아주 살짝 못 미친 고갯길 정상 능선이 바라보이는 곳 부근에 샘은 있었습니다.
한(一) 강의 발원지라 하기에는 너무나 의외의, 작고 초라한 웅덩이였습니다.
뜬봉샘이나 데미샘 또 최근에 본 밤샘이나, 오대산 염불암 옆 낙동강의 또 다른 발원지처럼 숲속에 있어 유현한 분위기도 아니고, 한강 발원지 검룡소처럼 풍부한 물이 쏟아져 내리는 곳도 아닙니다.
그냥 산비탈 밭둑 아래 나무 그늘 하나도 없는 노지의 작은 웅덩이.
생나무 토막으로 소박한 계단을 만들어 샘 앞까지 다닐 수 있게 했고 돌로 옹벽을 쌓아 어느 정도는 존재감을 보여주는 모습이지만, 깨끗하지 못한 물이 조금 고여 있을 뿐 마른 풀과 먼지가 물 표면을 덮고 있는 등, 실망스러운(?) 샘이었습니다. 물이 솟는 것이 보이지않았고, 밤샘처럼 아주 작은 물줄기조차 흘러내리고 있지 않습니다.
바로 그 둑 위의 밭에서 노부부가 일을 하고 있다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줍니다.
김제에서 이곳으로 시집 왔다는 할머니, “예전에는 이 물을 퍼다 썼다”고 합니다.
바로 옆 안내판의 ‘빈시암[頻泉]’.
시암은 ‘뱀→뱜, 해→햐, 샘→샴’처럼 다소 긴 한 음절로 부르는 이곳 사람들의 발음습관을 두 음절로 표기한 것입니다.
‘마르지 않는다’는 뜻으로 썼다는 ‘頻’은 다소 의외로군요. 한자와 고유어의 조합이 이렇게나 어울리지 않는 단어도 처음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비가 내릴 때나 물이 있고 평소에는 자주 마르곤 해서 ‘늘 비어있는 샘’」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그런 연유로 사실 할머니의 증언도 조금 의심스럽기는 했지요.
이 장면에서 강의 기원과 발원지의 뜻에 대해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잖아도 동진강의 발원지를 두고는 오랫동안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고 하는 정병귀 국장의 말. 어슷비슷한 거리에 어슷비슷한 적은 양의 물이 흐르는 소하천이 몇 개나 있어서 딱히 어느 것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지. 고민하던 정읍시가 최근에 결단하여 이 샘을 발원지로 정하기로 했던 모양입니다.
더 이상의 논란을 계속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할머니가 양말만 신은 발로 밭일을 하다가 청하지도 않은 손님들을 집으로 들어오라고 친절을 베풉니다. 마침 산길을 걸어 오르느라 땀도 흘렸고 적당히 중참 때도 되어 할머니네 집 그늘막에 잠시 올라 둘러앉습니다. 조필례 여사가 가져온 각종 야채부침개는 단연 인기로군요. 당귀, 부추, 곰취…를 밀가루 반죽에 버무려 부친. 내가 가장 많이 먹은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아예 밥을 먹으라며 “김치하고 밥 좀 줄까?”
우리가 불쑥 들러 귀찮을텐데도 오히려 오랜만에 사람소리 듣는 것이 반가웠던 모양이지요. 고맙기 짝이 없는 친절이지만 그렇게 얻어먹을 체면도 없고 마냥 앉아 먹고 있을 만큼 한가롭지도 않은 터라, 사양하고 일어섭니다.
마당에는 은행나무가 그득하고, 커다란 가마솥은 반질반질 잘 닦여 있습니다. 원래 흙집이던 것을 여러 번 손을 대어 지금의 그럴 듯한 집으로 바꿔 놓았답니다. 아드님이 목사라면서 마당 입구에 세워놓은 십자가의 연유를 설명하기도 하며 우리를 배웅합니다. 사진 한 컷 찍자는 정국장의 제안은 극구 사양하며 몸을 돌려 안으로 피합니다.
정말 지척인 여우치 고갯마루를 밟아보지 못하고 되내려오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여우치의 정상이 호남정맥의 경로이기도 하고, 섬진강 수계로 바뀌는 지점이기도 하고, 그 섬진강의 옥정호가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는데 말입니다.
여기는 정읍시 산외면 종산리 여우치마을이었습니다.
고갯마루를 직선거리로는 180미터, 산길로는 250미터 남겨둔.
고개를 넘으면 옥정호를 내려다보는 비탈에 임실군 운암면 운정리 마암마을.
마암에는 ‘섬진강시인’ 김용택이 교편을 잡던 마암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첫댓글 바쁜 핑계로 후기도 밀리고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감사님 덕에 읽을 꺼리가 산더미네요..ㅋ
다 읽어보지 못하고 몇편만 읽어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