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된 외박
이 희 영
오래전에 친구들과 펜션에서 1박 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1시쯤에 마트에서 만나 시장을 보기로 했지만, 토요일 문예아카데미 수업이 있는 날이라서 늦게 가겠다고 말해두었다. 어머님께도 하루 외박하겠다고 허락을 받았고 남편한테도 어머님 저녁하고 아침 식사를 부탁했다. 하루 저녁 외박이지만 국이며 몇 가지 반찬을 준비해놓고 설레는 마음으로 가방에 짐을 꾸린다. 세면도구며 속옷이랑 화장품도 챙기고 휴대폰 충전기까지 누가 보면 며칠 여행이라도 가는 것 같다.
도서관 수업이 끝나고 서둘러 내비게이션에 ‘백제의 미소’를 검색했다. 서산시 운산면 이지만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혼자 운전하면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덕산을 지나자 꼬불꼬불 산길이 나타난다. 소한, 대한이 지나더니 어느새 한낮에는 봄기운이 느껴지지만, 산모퉁이 돌아 그늘진 산자락에는 여기저기 잔설이 남아있어 아직은 겨울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봄을 기다리며 마음 급한 과수원 아저씨는 사과나무 전지를 하고 계시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 농장이름이 게으름뱅이 농원이었다. 정말로 게으른 농부라면 그런 이름을 짓지는 않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얼마를 달렸을까 벌써 짧은 겨울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며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자랑하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린다. “왜 아직 안 오는 거야?” “가만 있어봐 여기 커다란 간판이 보인다. ‘백제의 미소’ 맞지?” “그래, 그 길로 쭉 올라와” “알았어.”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니 펜션에 모습이 한눈에 나타났다. 와! 감탄사 연발이다.
백제 시대로의 여행이라고 펜션 이름이 ‘백제의 미소’ 라더니 대자연의 감동이다. 이름만큼 참 특이하게 지어진 건물이 나를 반긴다. 주차장을 따로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다. 자연그대로 그냥 담벼락 밑에 주차한 차들이 즐비하다. 적당한 공간을 찾아 주차했다. 돌과 흙 그리고 나무로만 지어졌고 지붕도 기와지붕에 물레방아도 보이고 많은 장독대, 여기저기 옛날 농기구들도 보이고 방 앞에 가마솥이 걸려있고 장작불이 빨갛게 타고 있었다. 한 채씩 지어진 방 이름도 특이하다. 사비성, 웅진성, 의자궁, 선화궁, 근초고궁 등등...
이곳에 많은 사람이 찾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와 피로에서 하루쯤 벗어나, 그 옛날, 지금은 그리운 시골 외할머니 추억에 빠져들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꼬불꼬불 돌담길을 걸어 우리가 예약한 방 ‘무령궁을 찾았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은, 장작불로 뜨겁게 달구어진 황토방에서 찜질을 하고 있었다. 건물은 백제시대 인데 방안은 21세기라고 해야 할까 냉장고를 비롯해서 모든 전자제품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한지 바른 창문에 코스모스가 얼마나 예쁘던지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모두들 바쁘게 사는 6명의 아줌마들은 오늘 특별한 시간을 위해 이곳에 모였다. 오늘은 누구의 엄마도 아니고 누구의 아내도 아니다. 그냥 ‘나’일 뿐이다. 삼십 몇 년 만에 일상에서의 탈출이다. 소젖을 짜는 목장의 안주인도 아니고 손주 보느라 허리가 휘어지는 할머니도 아니다. 오늘만큼은 시어머니 저녁반찬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곧바로 펜션에서의 만찬이 차려진다. 요즈음 한창 제철이라는 과메기에 이글이글 숯불에서는 삼겹살이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다.
“모두들 오늘 이 시간을 위하여 건배”
텁텁한 막걸리 한잔씩을 음미해 본다. 그리고는 친목도모를 위하여 윷놀이가 시작되었다. 3명씩 편을 갈라 서로 잡고 잡히고 박수치며 응원하고 이런 재미있는 놀이가 또 있을까? 부여족 시대에 5가지 가축을 5부락에 나누어 주어 그 가축들을 경쟁적으로 번식시킬 목적에서 비롯된 놀이라는 정설이 있다하는데,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나오지 않는 윷가락은 우리네 인생살이와 닮았다.
홍성으로 시집온 인연으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친구들에 수다가 이어진다. 시집와서 시집살이 한 얘기로 시작해서 자식자랑은 기본이고 휴대폰 바탕화면에 손주들 사진도 내어보인다. 술 잘 먹는 남편 얘기에 아직까지 며느리가 없는 친구는 올해는 꼭 며느리를 보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그러다 어느새 시어머니 이야기다. 98세 되신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단다. 자식이라면 끔찍하시던 어머니도 어느 날부터 인가 자식을 못 알아보신다는 것이다. 82세 시어머니도 약간에 치매증상으로 밤에 잠을 안주무시고 식구들을 귀찮게 하시지만 차마 자식으로써 요양병원에 모실 수가 없다고 한다.
아직은 기억력도 또렷하시고 귀도 눈도 다 밝으신 우리 어머님이 참 고맙고 감사하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오래 사는 것만이 꼭 좋은 일은 아닌듯하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운동도 열심히 하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가자고 약속을 했다.
옛날 방식 그대로 한지에 콩물 먹인, 색깔 고운 방바닥에 모두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그리고는 누눈가 하는 말 “식구들 저녁은 잘 드셨겠지?”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 잘 자는지 모르겠네? 그렇지! 우린 어쩔 수 없이 가정주부였지. 잠시 잊고 있었지만....
첫댓글 아..
부여쯤으로 떠난 줄 알았어요.
가까운 곳에 좋은 곳이 많지요...
친구들과의 하루~
어땠을지 충분히 상상이 가요.
힐링~~^^
저도 얼마전에
"백제의 미소" 보고 왔지요.
그래도 한 해가 바뀌었네요..
펜션 "백제의 미소"..
지나치다 본 듯도 해요.
저는 선화궁이 궁금해요~
가까운 거리이니까 가족들과 한번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