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9MYuAG22wqk
본문 민수기 7장에는 성막봉헌식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성전을 건축하고 나서 봉헌식을 하게 되는데 봉헌식 때 임직식도 함께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임직을 받는 분들이 헌물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만 그것과 유사한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막을 완공하고 나서 열 두 지파에 속한 각 족장들, 본문에는 지휘관으로 나오고 있는데 이 지휘관들이 한 사람씩 차례대로 12일 동안 자신이 속한 날에 나와서 헌물을 드리는데 우선적으로 소 한 마리와 덮개 있는 수레 2분의 1을 드립니다. 수레 2분의 1은 다른 지파 지휘관과 합해서 수레 1대를 드리게 됨을 말합니다. 12지파에서 소 한 마리씩이므로 총 12마리의 소가 드려지게 되고 수레는 두 지파에 한 대씩이므로 총 6대를 드리게 됩니다. 소 12마리, 수레 6대.. 이것을 성막에서 일하는 레위지파에게 건네서 성막을 이동할 때 사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첫째날부터 열 둘째날까지 지파별로 봉헌하는 내용이 12절 유다지파로부터 시작해서 78절의 납달리지파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지파별로 봉헌하는 내용은 패턴이 모두 똑같습니다. 지파별 이름만 달라질 뿐이지 내용은 동일합니다. 12번의 동일한 내용이 12절부터 83절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때 지파별로 드리는 헌물이 금과 은, 그리고 소제물, 번제물, 속죄제물, 화목제물로 송아지, 양, 염소가 드려지게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묵상할 수 있는 것은 첫째, 본문 1절을 보시면 성막봉헌식이 있었던 날은 본문을 기준으로 한달전에 즉, 성막이 완공되던 날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왜 이제 와서 그 내용을 소개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1절에 보시면 분명히 모세가 장막 세우기를 끝내고 그것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한 날에 오늘 봉헌식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절에도 보시면 제단에 기름을 바르던 날에 지휘관들이 봉헌을 하고 봉헌물을 드렸다고 나오고 있습니다.
장막세우기를 끝낸 날, 그리고 제단에 기름을 바르던 날에 대해서는 이미 출애굽기 40장에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출 40:17 둘째 해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출애굽 2년 1월 1일)에 성막을 세우니라
■출 40:9. 또 관유(기름)를 가져다가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
오늘 본문은 출애굽기 40장에 있어야 하는데 왜 민수기에 와서야 소개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출애굽기와 오늘 본문 사이에는 레위기가 있습니다.
민수기는 인구조사가 나오는 내용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인구조사 두가지 목적, 첫 번째가 군대를 편성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땅을 분배받기 위함입니다. 한데 여기서 기억할 것은 이스라엘 군대는 칼과 창으로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 하심으로 치르는 영적전쟁임을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병력이 얼마나 되고 어느 곳에 어떤 지파를 배치하는 것과 같은 전략전술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이유로 인해 인구조사의 중요한 의미는 병력의 숫자파악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께 속해 있고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 돌보시고 함께 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의미가 더 크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12절부터 각 지파별로 하나님께 봉헌한 내용이 열 두 번이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글자 하나 안 틀리고 동일하게 나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각 지파별로 이런 내용으로 봉헌했다 라고 한번만 소개해도 되는데 열두번이나 반복적으로 소개하는 것은 시간낭비요 지면낭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기록하고 편집한 이유는 모든 지파가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고 모든 지파를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신다는 의미가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소위 뭉뚱그려서 그 안에 적당히 포함돼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는 개별적으로 한 사람씩 서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40장에 성막 완공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나서 이어지는 레위기에는 율법과 성막에서 행해지는 제사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만일 성막완공과 성막봉헌식 내용이 함께 나오게 되면 성막봉헌식에 참여한 열 두 지파의 헌신과 봉헌의 의미는 다음에 나오는 제사와 율법내용으로 인해 희석될 가능성이 있고 그 의미가 충실히 반영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봉헌식 내용은 인구조사가 있는 민수기에 함께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인구조사의 의미가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 다 기억하시고 돌보신다는 의미가 있는 것처럼 봉헌식에 참여한 모든 지파, 모든 지휘관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돌보신다는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은 144000명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각 지파별로 일만이천이라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계 7:5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인 맞았다는 것은 구원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간편하게 각 지파별로 일만이천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열 두 지파를 빠짐없이 반복적으로 소개하는 것은 본문의 열 두 지파 지휘관 봉헌과 같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모든 지파를 한 사람 한 사람 빠짐없이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표현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각자에게 사명이 주어졌음과 하나님의 기억하심이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각자에게 하나님은 달란트대로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결코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분들은 없습니다. 병중에 침상에 누워있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보기도의 사명을 할 수 있고 그 고난과 어려움 자체가 또한 사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 10: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기억하고 계심을 기억하시고 일어나 달려가는 신앙인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본문 7절부터 9절까지 보시면 열 두 지휘관이 봉헌한 열 두 마리 소와 수레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레위의 세 아들, 게르손, 고핫, 므라리 자손들에게 나누어주는데 게르손자손들에게는 소 네 마리, 므라리 자손들에게는 여덟마리, 그리고 고핫 자손들에게는 한 마리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여덟마리 주어진 므라리 자손들은 성막의 부품 가운데 옮겨야 할 부분들이 가장 많고 무거운 부분들입니다. 기둥이나 널빤지, 받침대 같은 것들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여덞마리와 수레는 네 개, 게르손은 지붕덮개 같은 가죽이나 천으로 된 부품들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므라리 자손보다는 적은 수의 소 네 마리가 주어집니다. 한데 고핫자손에게는 소가 주어지지 않는 이유는 이들은 모두 부품들을 어깨에 매고 옮겨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법궤나 등잔대, 떡상, 향단, 번제단, 물두멍이 여기에 속합니다.
■마 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주인이 먼 길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달란트를 주면서 장사하게 하는데 동일하게 맡긴 것이 아니라 재능대로 맡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능력과 은사와 재능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는 것들은 모두 하나님이 재능대로 맡기신 것들입니다. 나는 왜 이것 밖에 없나? 혹은 나는 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섬기고 봉사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넘보는 일이 됩니다. 맡기신 대로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사명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롬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로마서에서도 바울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받은 은사가 다른 것인데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은 다 은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은사대로 사명대로 성령의 감동대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한가지만 더 묵상할 수 있는 것은 12절부터 동일한 패턴으로 78절까지 열 두 번이나 반복된 내용이 나온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유일하게 한 군데 다른 부분이 있는데 12절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지파별 지휘관을 소개할 때 모든 지파에 지휘관이라는 명칭이 나오는 반면에 첫 번째로 시작하는 유다지파에만 지휘관이라는 명칭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한가지 눈여겨 볼 것은 열 두 지파가 나오는 순서가 어떤 기준으로 어떤 규칙으로 나오는 것인가 하는 것인데 무작위로 순서를 정한 것이 아니라 이동할 때 지파별 순서 혹은 정착할 때 성막을 중심으로 배치된 진영순서대로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맨 먼저 나오는 것은 맨 앞에 선두에 서는 지파가 유다지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후미에 따라오는 지파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렇다면 유다지파에는 왜 지휘관이라는 명칭이 나오지 않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자료가 많지 않지만 히브리 학자들 해석에 의하면 유다지파가 가장 먼저 나오는 것으로 인해 자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기 위함이라고 해석합니다. 이런 해석이 설득력이 있는 것은 유다지파가 이미 선두에 서는 것은 출애굽기 40장에서 정해진 것입니다. 장자인 르우벤이 서지 않고 네 번째 아들 유다지파가 선두에 선 것은 그만한 재능이 있고 은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릇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정복할 때에도 가장 먼저 올라가서 정복전쟁을 치룬 지파가 유다지파입니다.
■삿 1:1-2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때 정복전쟁이 끝났다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고 지파별 땅을 분배받은 후에 지파별로 가서 또 전쟁을 치러야 하는 단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지파가 바로 유다지파였습니다. 그만큼 유다지파는 모든 일에 앞장서고 리더의 역할을 했던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다지파를 통해 메시야가 나온다는 예언이 있습니다만 인간적으로 볼 때 박수받아 마땅한 지파이다 보니 자칫 자만하고 경솔해 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본문에 지휘관이라는 명칭이 생략된 것으로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헌신과 봉사입니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자신을 감추는 겸손과 낮아짐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사람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은 불완전하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충성은 일관된 헌신을 의미합니다. 그런 자가 진정 상급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모두가 귀하게 쓰임받는 일군들 사명자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