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의 맛] 15. 안동 종가음식
고즈넉한 한옥에서 옛날 사대부가 음식·식탁문화 '생생이'
예(禮)상
안동지방 음식은 경상도 음식 중에서도 특이하다. 대표적인 것이 안동식혜다. 고두밥을 해서 무와 고춧가루,
생강 등을 섞고 엿기름으로 삭혀서 만든 전통음료지만 이름만 식혜지 만드는 방법부터가 다르다. 이처럼
안동에는 특이 전통음식이 수두룩하다.
안동간고등어가 그렇고 안동비빔밥, 안동건진국수, 안동찜닭, 안동헛제삿밥, 안동버버리찰떡이 그렇다.
안동은 예부터 음식 조리분야 고서적이 여럿 전해질 정도로 독특한 전통음식이 대문중 종갓집을 중심으로
잘 발달해 왔다. 안동장씨 집안의 음식디미방과 광산김씨 문중의 수운잡방, 의성김씨 종가의 온주법, 고성이씨
집안의 음식절조라는 고조리서가 한곳에 네 가지나 전해지고 있다. 안동이 전통 음식문화의 수도라는 닉네임
이 왜 어울리는지를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들 고조리서와 현재 안동지역 종가음식을 토대로 그 옛날 안동
문화권 사대부가의 음식 원형과 식탁문화를 지금도 생생히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곳. 바로 안동 예미정이다.
예미정 별채정원
△맛, 멋, 분위기 다 모아둔 곳 안동 예미정
안동시 옹정골길 111번지에 위치한 예미정 별채는 330㎡(100여평)의 공간으로 입 구(口)자 모양의 한옥으로
지어져 있다.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로 나뉘어 있는 전통 한옥에는 등마루와 대청마루가 꾸며져 있고 넓은 주
차장이 조성되어 있어서 전통혼례, 회갑잔치, 돌잔치 등 단체행사에 활용하기에도 넉넉하다.
안마당에는 조그마한 연못과 포석정이 놓여져 있고 그 위로 등굽은 소나무가 언제나 푸른 미소로 손님을 반
가이 맞이한다. 소박하면서도 품격이 느껴지는 외관에서 종부의 다듬이 소리, 맛나는 도마질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강미혜 예미정 별채 대표
이곳은 안동권씨 종가음식을 기본으로 하여 안동지역 각 문중의 대대로 내려오는 내림음식들을 비롯해 안동의
향토음식 까지 골고루 맛 볼 수 있는 안동 종가음식 코스요리가 주 메뉴이다.
“어서 오세요. 얼른 안으로 드시지요.”
늘 버선발 차림이다시피한 강미혜 대표(56·안동종가음식체험관 이사)가 미소 띤 모습으로 손님을 반가이 맞이
한다. 주방 조리사들을 직접 지휘하며 공이든 종가음식을 만드느라 종종 모습을 볼 수가 없을 때도 있지만 그
래도 방으로 찾아 가서라도 손님들에게 인사를 한다.
“제가 금방 음식 올려드릴께요. 불편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 벨을 누리시고 말씀 주세요.”
미(味)상
△종가 음식을 토대로 현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제사를 지내는 마음가짐,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 봉제사접빈객을 몸으로 익힌 까닭일까. 별채의 안동종가음식
코스요리는 예의 바른 상차림으로 정성을 다해 조리한 음식을 정겨운 이에게 올린다는 뜻으로 예(禮), 미(味),
정(情), 3가지 코스로 나뉘어져 있다. 최고 큰상차림인 ‘예미정’ 코스는 예약만이 가능하다. 전체 방은 툇마루로
이어져 있고 개별 여유롭게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여섯 칸의 방은 고스넉한 한옥 분위기로 꾸며져 종가음식은
물론 300톤의 소나무 대들보에서 쏟아지는 피톤치드는 그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듯 하다.
“안동에는 수많은 종가가 있고 종가는 종부의 손맛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조리비법의 종가음식들이 전승되고
있는 곳이지요. 종가음식을 토대로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게 퓨젼화한 메뉴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다소 곳 하면서도 단아한 반가의 맏며느리 같은 강 대표의 코스 메뉴 설명은 그 자체가 격조 높은 안동 종가집
음식문화다.
맛 미(味)자 미상 코스요리로 나온 상차림은 정(情)상의 기본 차림에다 구절판과 육회, 대하구이 등이 추가돼 7첩
반상을 원용한 상차림이다. 단호박죽을 전식으로 적양배추와 깻잎채 거기에 소고기와 파채를 실오라기처럼 가늘
게 썰어 올리고 여기에 새콤달콤한 깨즙소스로 촉촉이 버무려 먹는 쇠고기 편채는 입맛을 돋우어주는 전식 샐러
드로 훌륭한 맛이다.
쇠고기 편채
△산해진미 안동 종가음식, 상다리가 휜다
별채를 찾는 손님들에게 코스요리 미상은 인기 메뉴여서 사계절 변화를 딱히 줄 필요가 없는 메뉴라고 한다.
김가루와 참기름에 버무린 탕평채는 방금 묵틀에서 빠져나온 청포묵의 매끄러움을 그대로 담았다. 대부분의
요리들은 놋그릇에 담겨져 나와 더욱 운치 있고 중후한 멋이 돋보인다. 식기가 주는 독특한 미감은 바로 음식
의 맛을 더해 주는 시각적 효과까지 더해지는 듯 하다.
한방수육
구절판
푸짐한 안동 종가음식을 앞에 두니 술 한잔을 반주로 곁들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예미주라는 이름으로
깔끔한 청주가 안동 종가음식 반주로 개발돼 있다. 양식의 와인과 같은 역할이다. 그렇다고 와인을 곁들일 수 없
는 것도 아니다. 안동이 낳은 민족 시인인 이육사 선생의 시 ‘청포도’를 모티브로 개발된 264와인도 준비돼 있다.
깔끔한 청주는 물론이고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의 맛이 푸짐한 종가음식과의 어울림에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이
어진 본요리는 안동 종가음식의 진수를 그대로 보여준다. 안동식으로 무쳐낸 한우 육회의 맛은 양념맛 보다는 쫀
쫀한 한우고기의 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엄나무, 감초 등의 12가지 한방 재료로 삶아 낸 다음 한번 더 맛간장에 겉부분만 윤기 나게 졸여 낸 수육도 겉은
쫀득하고 속살은 보들보들하다.
영덕에서 공수해 온다는 안동문어도 상차림의 품격을 더한다. 시원한 안동 배추전에다 쫄깃한 도토리묵 전도 선
보인다. 고소한 황태구이와 차진 떡갈비 그리고 부드러운 갈비찜, 상다리가 걱정스러울 만치 차려진다.
쑥과 고기를 다져 완자로 빚고 멸치와 다시마 육수에 끓여진 쑥애탕은 강 대표가 직접 만들어 낸다며 권한다.
멸치와 다시마로 우린 육수의 간도 좋았지만 거기에 쑥향이 더해져 더도 덜도 모자라지 않게 간이 딱 맞아 떨
어진다. 쑥향에 잠시 고향집 봄들판에 앉아 있는 듯한 향수에 취해 본다.
간고등어구이
△종가음식의 핵심사상은 봉제사접빈객
마지막으로 짭조름한 안동간고등어 구이가 곁들여진 7첩 반상으로 안동 종가음식 미코스는 마무리된다.
후식은 알싸한 안동식혜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예미정종가음식연구원장
“우리 안동의 향토음식이고 전통음식 이기도 한 안동 종가음식은 한식 세계화에 있어서 더 없이 좋은 한국
음식문화의 산업적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흙 속에 묻혀 있었던 보배라고나 할까요.”
“종가음식의 핵심사상은 봉제사와 접빈객입니다. 식재료 선택과 조상을 받들고 손님 접대에 있어서 성심을
다해 음식을 조리하고 상차림 해야 한다는 걸 지키기 위해 오늘도 수행정진 한다는 맘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종갓집의 평판은 과객들이 했다는 것을 거울삼아 손님의 평판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한층 더 면모를 일신한 예미정의 모습으로 고객들을 맞이하겠습니다.”
오랫동안 안동 향토 전통음식 메뉴개발과 종가음식 문화창달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온 예미정 별채 강미혜 대표.
종가음식에 대한 소신과 ‘예미정’이 걸어가야 할 길을 함께 하는 모습에서 ‘한국 음식문화의 수도 안동’의 한 기둥
을 받히고 있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l 승인 2021.09.10 l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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