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지금도 사랑하고 있어요. 시월에 마지막 밤을.......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시월달만 되면 수입도 다른달 보다 엄청많고
수입이 많다는 것은 결론부터 말하면,찿는 사람이 많고,
많은 곳에서 초청해 부르니 인기도 자동으로 상승한다.
시월의 마지막 날은 늦은 가을에서 초겨울로 바뀌는 싯점이기도 하다
이런 표현을 해도 잘못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기온도 내려가고 날씨도 쌀쌀하다 못해 춥다.
모든 곡식들의 열매가 영글어 추수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이노래를 부른 가수는 정말 시월의 마지막 날의 밤에 잊지못할 사연이
있을까?
괜스리 쓸데없이 남의일에 신경을 써본다.
부창스럽구로.......
사람이 내 나이가 되도록 살다보면 잊지못할 사연과 사건이 많을 것이다.
곰곰히 생각 해보니 주마등처럼 한없이 스쳐간다.
고달픈 생활 속에서 잊지못일 크고 작은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어느해 시월의 마지막 날 나도 내 삶속에 생활의 변화를 확 바뀌는 계기가
있었다.
1993년 시월의 마지막날 나는 내고향 입구에서 고향의 형으로 부터 동네
입구의 조그만한 상점을 인수한 날이다.
또,
2012년 시월의 마지막날 울산 축산업 협동조합 조합원을 탈퇴하는 날이다.
새로운 시작이 있는가 하면 마무리를 하는 날이기도 하다.
울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1983년 초(初) 딸아이를 울산 남구의 모(某) 초등
학교에 가입학을 시켜놓고 축산을 하면 괜찮다는 주위의 지인의 말을듣고
축산을 하기로 작정하고 고향으로 오게 되었다.
아주 적은 밑천으로 남의 땅을 관리해주는 조건으로 축산을 시작했다.
황송아지를 몇마리 구입해서 14개월에서 18개월 키워서 판매를 해보니
사료값은 간곳이 없고 처음 시장에서 구입 할때의 원금도 부족했다.
이때에 중앙에 힘있는 사람이 병든소를 외국에서 많이 수입해 국내에서
판매를 해 가격이 완전히 억망이 되어 한우 파동을 겪게 되었다.
7~8년을 버티다 wife가 이렇게 계속 생활을 하다가는 크는 자식들 학교도
보낼수없으니 둘다 젊으니 노가다(막노동)을 하고 자기는 공장을 가겠노라
했다.
고향에 와도 내땅 한평(坪)도 없으니 이방법 이외에는 선택할 직업이 없었다.
하루는 벽돌을 쌓는 동갑 친구가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자기와 같이 일을 하자고
전화가 왔다.
나는 일을 잘할줄 모르잖아 이렇게 이야기 하니 자기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알고보니 이친구가 벽돌을 쌓는대는 이주변에선 일을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하고
뒷일을 하는 사람들이 힘든다고들 했다.
몇년을 안면이고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열심히 해줬다.
처음에는 할줄몰라 시행착오도 많이했다.
막일을 하다보니 몇년동안에 벽돌(수미)쌓기. 목수. 쇠 파이프일.전기. 철근 공사
현장의 엔간한 뒷일은 잘한다는 소릴 들을만큼 진짜 열심히 했다.
1993년 시월 어느날.
그날도 막노동을 가다 그상점 앞을 지나다 보니 임대를 한다는 쪽지를 보고 그집을
얻을려고 무진장 애도쓰고 신경을 많이썻다.
가게 주인도 잘아는 고향의 형인데 내가 성질이 깐깐해 장사를 할수없다고 나름대로
생각을 하면서 나에게 임대를 해줄 생각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임대가 성립되어 인수 인계를해 첫 장사를 시작한 날이다.
앞집에 장사를 몇년간 한사람이 있었는데 고향 사람들이 그집을 지나와 우리집에
물건을 팔려주니 정말 너무 너무 고마웠다.
그런 사연으로 배운게 도둑질이라 지금까지 장사를 하고있다.
그이듬해 부터 마을 이장(里長)을 시작해 6년간 하게 되었고,
삼남면 이장 협의회 회장도 하게 되었고 면정 자문위원도 했다.
마을에는 간이 상수도 위원장도 몇년을 하고 우리마을에 자본금이 일억 천만원인
마을금고 이사와 간사를 십년 가까이 일을 봐주고 금고를 해산할때 잡음하나 나지
않게끔 깨끗이 마무리 해주어 많은 칭찬을 받기도 했다.
이장을 마친후 삼남농협 대의원도 몇번을 하게되고 농협 이사도 하게 되었다.
봉사 단체에도 여러군데 가입도 하게 되었다.
나이가 많아도 축산은 할려고 생각을 하였으나 형편이 여의치 않아
중도에 그만두게 되었는데 지금은 시작하기가 더 힘이든다.
축사짓기 부터 까다롭고 자본도 많이들고 힘도 일에 달린다.
울산 축협에서 가축을 사육하지 않으니 부득히 조합원 탈퇴를 해야 되므로
직접 내가 근교에 있는 지소를 찿아가 탈퇴 동의서에 서명을 해주고 왔다.
축협에 가입 하면서 축산계에도 가입하고 대의원도 하게되는 영광도 얻었다.
정말,
1993년 시월의 마지막날은 시작으로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싶고,
2012년 시월의 마지막날은 마무리 하는날로 의미를 두고싶다.
東方 徐希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