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내 나이 열일곱인지 열여덟인지 분명치 않다. 공부가 싫어져서 사상적으로 눈뜨게 된 것인지 사상적으로 눈뜨게 되어서 공부가 싫어진 것인지, 그 상관 관계도 확실치 않다. 아마 전자의 경우라고 하는 편이 정직할 것 같은데, 하여간 그 무렵 언젠가 나는 테러를 결심한 적이 있었다.
어떤 형태의 테러를 하려던 것인지도 이제 딱히 헤아릴 수 없으나, 어떻든 그 ‘누군’가를 그냥 둘 수 없다는 충동을 느끼고 그 충동을 행동에 옮기려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 ‘누구’란 춘원 이광수이다. 다정다감하던 시절이라 그의 작품에서 만만치 않은 영향을 받아 왔고 은근히 존경해 오던 터인 만큼, 그가 친일을 종용한 저서 『同胞に寄す』는 어린 나로 하여금 견딜 수 없는 혐오와 분노를 느끼게 했다. 물론 나만이 아니라 당시의 절대적 대다수의 동포는 그런 반응을 보였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알고 보면 나도 그런 여론에 동조한 삼천만 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다닌 학교는 칠 할 이상이 일본인 학생이었고, 백 명 가까운 교사 가운데 소위 조선인 교사는 불과 삼사 명밖에 되질 않아 담임 선생이 그 중 한 사람인 조선인 교사라는 것은 다른 학교의 사제지간의 경우와는 좀 사정이 다르긴 했다.
저녁을 끝내고 응접실로 나온 담임 선생의 한복 차림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 나의 흥분은 더욱 고조되었다.
나의 도도한 ‘소신’의 피력을(그 실은 더듬거렸을는지 모른다) 듣고 난 담임의 표정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만 내친 기세가 꺾인 듯싶어 일순 허전한 것을 느꼈다. 더욱 홍차를 갖고 나온 부인의 세련된 아름다움과 정일한 거동에 나는 나의 들뜬 흥분이 쑥스러워져서 그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얼결에 홍차 한 모금을 꿀꺽 들이마신 그것이 뜨거워 눈물까지 비치는 추태를 보이자 반발적으로 어디까지나 유연한 담임이 얄밉게조차 여겨졌다.
한참 후 입을 연 담임은 엉뚱하게 나더러 이번 일요일에 함께 산에 오르지 않겠느냐고 했다.
“예, 산에요?”
나는 이렇게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등산 말일세”
그리고 나서 담임은,
“호연지기를 기르는 데는 등산이 제일이라네”
하고는 붙여 문 궐련을 깊이 빨아 후욱하고 길게 자연을 내어뿜었다.
얼핏 나는 마음속으로
‘체! 이 겁보가 딴전을 피는구나’
하고 혀를 찼지만 다음 순간
‘오라, 담임이 산에 가서 은밀히 뭔가 알려 주려 하는구나’
하고 ‘그러죠’라는 대답을 하고 말았다. 때가 때인 만큼 나는 이심전심의 선적(禪的) 해석을 내린 것이다.
일요일 담임은 나를 데리고 도봉산을 올랐다. 담임은 먼저 나더러 요즘 왜 공부를 안 하느냐, 공부가 우습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네 나이에는 그저 공부를 해 두어야 한다는 것, 앞으로 뭐가 되고 뭣을 하든간에 공부만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배워야 산다, 배우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춘원이 만들어 낸 슬로우건인데, 그것은 만고의 진리라는 것, 이제 공부 않으면 장차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오리라는 것 등등 고리타분한 설교조의 말들만 늘어놓은 끝에,
-오늘 춘원도 함께 등산할 예정이었는데 못 온 것이 유감이라는 데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어디 몸이 편치 않은가요?”
내가 걸음을 멈추며 그렇게 묻자, 담임은 잠시 쉬어갈까 하면서 가까운 풀포기에 가서 주저앉았다.
“건강이 말이 아닌 모양이야, 그 사람의 고질적인 결핵은 이제 골수에 든 셈이지”
‘그렇다면 더욱 가만히 누워 있으면 될 텐데, 어디 그게 친일의 변명이 됩니까?’
내가 그렇게 마음속으로 반발하고 있을 것을 짐작한 듯이,
“그렇지만 춘원이 그로 인해서 심약해졌고, 심약해져서 그러는 건 아니라네”
“그럼요?”
“그는 그 길이 이 민족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고 하는 거지”
“그럴 수야?”
“하여간, 그가 남들처럼 일헌(日憲)에 시달리는 것이 괴로워 하는 수 없이 그러는 게 아닌 것만은 분 명해”
“친일하는 것이 어째서 이 민족이 사는 길이 됩니까?“
“당연한 질문이지, 나두 그 까닭은 잘 모르겠어, 친구로서 이해해 보려구 무척 애써도 봤지만, 알 듯하 면서도 잘 납득이 가질 않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옥고나 고문이 무서워서라든가 세속적인 영달 때문에 친일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해, 신념으로 하는 일이란 말일세, 그 점만은 나는 인정해 주고 싶 어”
“그따위 그릇된 신념도 신념입니까?
“가만 있어, 자꾸 그렇게 대들진 말게.”
담임은 히뭇이 웃으면서 손을 들어 나의 말을 가로막는 시늉을 하고 나서,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인데 …… 내 짐작으로 그는 속죄양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 아닌가 하는데. 말하자면 기왕 누가 나서야 할 바엔 자기가 나선다는……”
“누가 나서야 하긴 뭘 나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선 일체가 민족이 사는 길이라는 전제에서 말일세. 남들이 꺼리는 걸 욕먹을 것을 각오하 고 자기가 차라리 악역을 맡아 나선다는 게 아닌가……”
“그럼 이완용이와 다를 게 없군요?”
그러자 담임은 그저 허허 하고 웃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뇌까렸다.
“초록이 동색이란 말이군, 아예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아니었는데”
그 얼굴에는 한 가닥 후회의 빛이 스쳤다.
그것을 느끼자, 나도 다소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어 역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춘원은 가만 있으면 됐던 겁니다. 가만히 엎뎌 있으면 말이죠”
하고
‘이제 와서 그렇게 표현하면 따라가던 젊은 사람들은 어떡허라는 겁니까?“
라고 덧붙인 나의 말꼬리는 자기 연민의 감정으로 말미암아 약간 떨려 나왔다.
“그야 따라서 살 수가 없을 테지”
담임은 또 한 번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나서 잠시 뭔가 생각하는 품이더니 어조를 달리하면서,
“어때, 아예 잠자코 있게 된 친구 얘기 들어 보려나?”
“아예 잠자코요?”
“그렇지. 마치 깊은 바닷속의 조개처럼 아예 굳게 입을 다물고 만 친구가 있어.”
“누굽니까, 그가?”
“동경 유학시에 춘원과 함께 문학을 시작해서 아주 탐미적인 시를 쓴 친구인데 자네 서 낭이라는 시 인 알지?”
아 그 서낭! 나도 모르게 언성을 튕겼다. 다음은 그 때 담임이 들려 준 서낭의 이야기를 간추린 것이다.
서 씨는 서울 태생, 낭은 필명이며 춘원과 나이가 같았다. 춘원과 서 낭은 서로를 얕볼 수 없는 문우로서 그 두 사람의 우정은 한 사람이 주로 시를 쓰고, 한 사람이 주로 소설을 썼기 때문에 유지되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두 사람이 다 한결같이 시를 쓰거나, 소설을 썼다면 어쩌면 두 사람의 라이벌 의식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그 우정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을지도 모른다.
춘원은 서 낭의 시를 당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서 낭은 서 낭대로 자기는 도저히 춘원 같은 소설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서 낭은 늘 농조로 춘원에게 말했다.
“나는 소설 따위 시시한 산문은 꿈에도 쓸 생각이 없어. 잘못해서 쓴다 해도 자네 같은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소설을 쓰지 않을 걸세. 그러나 자네 소설은 그런 대로 좋아”
그런 서씨의 오기에 대해 춘원의 대꾸는 이러했다.
“그럴 테지, 자네처럼 어휘를 사치하게 구사하는 탐미주의자는 소설을 쓸 수가 없을 걸세, 기껏 꽁트 정도나 쓸까. 그것조차 문장의 밀도가 지나쳐 솜씨 서툰 식모가 잘못 졸여 낸 고깃국처럼 되질 테니 어디 구수한 맛이 나겠는가”
젊은 시절에 일종의 나르시즘에 빠져 있었던 춘원이지만, 서 낭에게만은 몇 수 놓아야 했다.
첫째, 서 낭은 용모가 단아하고 몸매가 수려해서, 그 일거수 일투족에는 늘 미가 흘렀다. 춘원은 고작 삼불(三佛)이 들어 있다는 말을 듣는 두 눈을 제쳐놓으면 다른 어느 것 하나 서 낭을 당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둘째는, 그의 말솜씨였다. 아무래도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춘원은 그의 표준어를 일종의 음악이라고까지 극찬했다. 비단결 같은 서울 말씨에 자칫하면 흠일 수 있는 지나치게 여성적인 억양이 그에게는 없었다. 서 낭이 웬만큼 말을 길게 할 때면, 춘원은 눈을 지그시 감고 음미하듯이 그것을 듣는 것이 예사였다.
게다가 한 가지 춘원이 늘 야릇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서 낭이 언제나 토론이나 모임의 중심에 있으면서, 그리고 그 발언의 늘 중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언제나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은근히 막후에 있는 인상을 남에게 주는 일이었다.
꼭같이 행동해도 표면에는 어느새 춘원이 나타나고 그는 늘 일정한 거리의 뒤에 머물러 있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춘원에게는 그런 것이 마음에 켕겼다. 왠지 그러한 서 낭의 인상 자체가 하나의 절묘한 예술로서 선천적으로 자기보다 멋을 지니는 것이라고 춘원은 생각했다.
늘 춘원을 내세워 자기는 언제나 몇 걸음 뒤에 머무르면서 조금도 개의치 않는 서 낭을 볼 때 춘원은 역시 자기는 고작 생래의 시골 선비로서 그를 당할 수 없다고 감탄의 혀를 찼다.
서 낭은 술도 잘 하고 놀기도 잘 했다. 그러면서 놀음에 음(淫)하지 않고 술에 지는 일이 없었다. 술을 못 하는 춘원이 언제나 분위기에 말려 과음한 나머지 정신을 잃고 서 낭의 부축을 받아 하숙으로 돌아간 일이 있었다. 이튿날 찾아온 그에게 춘원이,
“고만한 술에 정신을 잃다니 부끄러운 일이야, 자네는 그렇게 마시고도 늘 까닥도 없으니 정말 진골 양반이 다르군 그래.“
라고 했을 때, 서 낭은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뜻밖의 대답을 했다.
“아니지, 그게 나의 탈일세. 아무리 취해도 머리의 어느 한 구석만은 말짱히 살아 있는 게 야속하단 말이야, 한 번 곤죽으로 취해서 자기를 잊어 보고 싶은 데 그게 안 되는군 그래, 자네가 부러워”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 한 구석이 싸늘히 살아서 자기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냉엄한 이성이랄까 성격을 서 낭은 자기의 불행으로 간주했던 것 같다.
그러한 그의 탁월한 또 하나의 능력은 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정확하게 평가하는 데 나타났다.
3. 1 독립 운동이 일어나자, 서울로 돌아가려는 학우들을 만류한 것은 다름아닌 서 낭이었다.
그는 1920년의 시점에서 민족의 독립은 절대로 쟁취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했다. 국제적인 역학 관계가 조선의 일본으로부터의 이탈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혈기 있는 어느 학우가 민족의 독립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고 강변했을 때, 그는 그 단아한 용모에 냉기조차 흘리면서,
“일본은 지금 오르막이야, 국제적인 주가는 상승일로란 말일세, 청나라와 제정 러시아를 이긴 그들의 총칼에 맨주먹으로 대항하는 결과는 뻔한 거야”
라고 잘라 말했다
춘원이 상해로 망명할 때 서 낭은 굳이 말리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충고했다.
“낭만이면 몰라도 독립을 얻으리라고는 믿지 말게”
그랬던 서 낭은 춘원이 돌아왔을 때 이렇게 격려했다.
“비로소 고기가 물을 얻은 걸세, 마음껏 말장난을 하게나”
그로부터 춘원이 연이어 소설을 써 가며 낙양의 지가를 올린 배후에 서 낭의 적절한 충고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 무렵 서 낭이 시를 쓴 것인지 쓰고도 발표만은 하지 않은 것인지 그것은 분명치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춘원과 함께 강연회에는 가끔 나가서 그 유창한 말솜씨로 청중 다수로부터 갈채를 받고 그 탐미적인 예술론으로 제한된 소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서 낭의 부인은 춘원으로 하여금 상징적인 ‘조선의 처녀’라고 감탄케 할 만큼 아름답고 정숙한 여성이었다. 『무정』을 쓸 때 춘원은 서 낭의 부인을 뇌리에 두고 여주인공 영채를 그린 것이라고도 전해진다.
춘원은 자기와 함께 상해로 떠나자고 할 때 서 낭이 안 떠난 것은 그가 정세를 판단한 끝에 망명으로 독립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얻은 때문이기보다 그처럼 아름다운 부인 곁을 차마 떠날 수 없는 데서 못 떠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춘원이 언젠가 미국인 선교사를 부른 만찬의 자리에 서 낭의 부부를 청한 일이 있었다. 그 뒤 춘원은 그 선교사로부터 자기는 조선인이 아름다운 민족이라는 것을 ‘당신의 친구 미스터 서의 부부를 보고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는 술회를 들었다.
그것이 만찬에 대한 사의에 곁들인 외교 사령적인 표현이라고만 생각되지 않았다.
서 낭의 그 아내에 대한 사랑은 거의 몰두에 가까웠다.
서 낭과 춘원의 우정은 일헌(日憲)이 조선인 명사들의 전쟁에의 협력을 종용하게 되어 춘원도 차차 협력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면서도 변함 없이 지속되었다.
아직 노골적인 협력의 시국 강연이 아닌 문학 강연에, 물론 그것은 협력 종용의 전초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지만, 서 낭은 서슴지 않고 춘원과 함께 나갔다.
지금의 국회의사당인 당시의 부민관에서 청중이 주로 학생인 그 문학 강연회에서 서 낭이 먼저, 다음에 춘원의 순서로 연설을 하게 되었다.
그 날 서 낭의 태도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 단아한 용모와 수려한 체구가 단상에 나타났을 때 청중들은 조용한 박수를 보냈다. 탁자의 주전자에서 컵에 냉수를 부어 한 모금 목을 축인 그의 입에서 춘원이 음악이라고 평한 아름다운 말이 비단결처럼 흘러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이변이 생겼다.
일 분 가량 지났을 무렵, 이제까지 흐르는 듯싶던 그의 얘기가 딱 끊어졌다. 처음 청중들은 그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 낭이 부리나케 탁자 위의 컵을 들어 남은 물을 한꺼번에 들이켜는 것을 보고는 청중 몇 사람이 웃음소리를 틀어내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도 서 낭은 말을 잇지 않았다. 앞자리의 청중들은 그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한 손을 들어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몇 번 입술을 문질렀다. 다음은 입에서 손을 떼고 다른 한 손으로 목을 쥐어 문질렀다. 청중은 그제서야 그에게 어떤 이상이 생긴 것을 짐작했다.
서 낭은 다시 두 손으로 입을 덮더니 손가락 사이로 어어어어 하고 짐승 같은 소리를 틀어내었다.
그렇게 되자 청중 몇 사람은 무슨 일인가 싶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단 위의 사회자도 일어났다. 그러나 서 낭은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빠른 걸음으로 단 위를 가로질러 삽시에 무대에서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뒤에 청중들의 고조하는 소리를 남긴 채 서 낭을 따라 나갔다가 허둥지둥 무대로 되돌아온 사회자는 들뜬 목소리로 ‘서 낭 선생이 갑자기 목에서 피를 토했다’고 하면서 청중들이 진정해 주기를 간청했다.
그토록 단상 단하를 가리지 않는 소란한 광경 속에서 이채로운 것은 춘원의 거동이었다. 시종 그는 포갠 두 손을 무릎 위에 놓은 채 눈을 깔고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사회자의 성급한 소개가 끝나자 춘원은 소리 없이 일어나 연단 앞으로 가서 조용히 입을 열더니 차근차근 문학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춘원은 나중에 가서 여전히 가라앉은 어조로 일본과 조선의 문화가 한 뿌리에서 나온 것임을 주장했다. 이렇다할 청중의 반발은 없었으나 때가 때이니만큼 청중의 상당수로 하여금 무엇인가 불안한 예감을 느끼게 했다.
그 날을 계기로 춘원은 내놓고 친일을 말하게 되었고, 서 낭이 목에서 피를 토한 것이 아니라 갑작스레 벙어리가 되었다는 소문도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세상에 그럴 수가 있을까 하고 어처구니없어 하면서 갑작스레 벙어리가 된 서 낭을 동정하는 데 머물렀던 소문은 춘원의 친일적 발언이 잦아지자, 그런 것이 아니라 서 낭이 그렇게 해서 벙어리를 가장한 것이라는 설로 기울어져 갔다.
남달리 상황의 추이에 민감한 그가 전쟁 협력이 강요될 것을 미리 짐작하고 벙어리 시늉을 하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는 일제에 대한 저항의 욕구 불만에 사로잡혀 있던 의식적인 지식층에게는 직성을 풀어 주는 하나의 청량제가 아닐 수 없었다.
치료차 금강산으로 요양을 떠났다는 소문이 들려왔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정치적 은둔이라고 하여 백이숙제에 비겼다.
“그렇지만 선생님, 그런 게 아니구 문자 그대로 진짜 벙어리가 되었다는 이설이 더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얘기를 다 듣고 난 나는 그렇게 담임에게 물었다.
“그야 말 많은 우리 사회니 그런 이설도 나올 법하지”
“서 낭이 일부러 그랬다는 얘기를 믿고 감격한 나머지 금강산으로 따라갔던 학생이 먼발치로라도 한 번 서 낭을 우러러보고 가능하다면 필담이라도 해 볼 작정이었는데 전혀 반응이 없을 뿐 아니라 벙어 리는 둘째치고 넋잃은 사람같더라데요”
“누군 줄 알고 나는 가짜 벙어리요 하고 털어놓겠어?”
“아뇨, 부인이 울먹이면서 조용히 내버려 두어 달라는 비탄이 보통이 아니라는데요”
“글쎄”
“게다가 귀까지 먹어 버렸다는 겁니다. 일부러 벙어리 행세를 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조선 사람에 게 심상치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 일본 형사 삼륜(三輪)이 언젠가 서 낭을 찾아가 틈을 타서 몰래 뒤통수 가까이에서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는데 끄덕도 안 하더라는 겁니다.”
“그 탄환에 개가 맞아 죽은 것을 보고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는 얘기 말이지?”
“가짜라면 아무리 그렇게까지 반응이 없을 수 있을라구요?”
“전혀 반응이 없는 것도 이상하다면 이상하다고 볼 수 있지”
“그러면 그 지독한 일본 관헌이 왜 더 이상 추궁하려 들지 않았을까요?”
“그야 비중이 다르니까, 춘원의 경우라면 그냥은 안 넘어갔을 테지, 일헌으로서도 소문이 못마땅하긴 하지만 벙어리가 되어 버려 하여간 말은 없을 테니 그대로 내버려두는 걸 테지”
“춘원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한 번 찾아갔는데 전혀 반응이 없더라고 슬퍼만 하더군”
“가장한 것으로 생각하고, 졌다! 또 한 번 당했다! 그렇게 생각진 않았을까요?”
“글쎄, 나 같은 사람은, 야! 그런 수가 다아 있었군! 하고 감탄하겠지만, 숭내를 내 봐야 아류로 웃음 거리나 될 뿐이구 나에겐 그런 연기력도 없어, 또 교단에서 말로 벌어먹는 놈이 벙어리가 되었다가는 처자식을 노두에 방황시킬 뿐이지, 춘원은 정직한 사람이니까 정말로 믿고 있을 걸세, 가짜라고 여겼다 면? 글쎄 서로 차원이 다르니까, 졌다! 당했다! 그렇게 느끼진 않았을 걸세”
“역시 선생님은 서 낭이 일부러 벙어리를 가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같이 관립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일에 대해 두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어, 두 가지가 다 열등 의식에서 나오는 것인데, 하나는, 서 낭이 진짜 벙어리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저 항할 것에 저항 못 하는 인간이 저항하는 인간에게 느끼는 시기 질투가 그 원인이지, 다른 하나는, 그 러기엔 인생이 너무 서글퍼진다, 그러니 차마 나는 못하지만 그렇게 저항하는 인간도 있다는 생각에서 같은 인간인 자기도 그런 일말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느껴 보고 인간으로서 자위해 보는 거 지, 남의 행동에 공짜로 얽혀 보자는 수작이지만 전보다는 후자 편에 구원이 있는 것 같군 그래“
“그러니까 저더러도 그렇게 믿으라는 겁니까?”
“안 믿는 것보다야 믿는 편이 낫지 않을까”
“믿고 자위하고만 있을 수 없어요, 행동이 문제니까요”
“행동…… 알았어, 그런데 도대체 춘원을 어떡하자는 거지?”
“그냥 둘 순 없습니다.”
“그만두게!”
담임의 그 한 마디는 일언지하였다. 그만 나는 얼른 대꾸를 못 했다.
“그건 내가 춘원과 가까와서두 아니구 교사로서 자기 주변이 무사하기를 원해서두 아니구, 자네가 연 소해서두 아닐세. 테러란, 특히 동족끼리의 테러에는 전혀 적극적인 뜻이 없어. 지극히 소극적인 행동 이란 말일세. 청년은 큰 뜻을 품으란 말이 있지만 왜 춘원에 맞설 사상을 가져 보려거나 춘원보다 더 영향을 줄 어떤 독자적 행동을 생각지 않고, 춘원에게 욕만 보이려구 하나?”
“저는……”
하고 나는 머뭇거리면서
“저는 지금 전혀 무력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더 배워야지, 그리고 때를 기다려야지”
“언제까지 말입니까?”
“그렇게 조급히 생각할 건 없어, 성급히 회초리 노릇을 하려 들지 말구 참고 커서 대들보감이 될 생각 을 하게나”
그래서 나는 대꾸할 말을 잃었지만 담임이 대들보감이 되어 보라는 권면을 내가 대들보감이라고 착각하고 십대의 치기어린 감동마저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노련한 선생에게 깨끗이 설유당한 것인데, 지금은 이승에 없는 그 담임이 좋은 스승이었다는 고마운 마음이 날이 갈수록 간절하다.
해방 다음 해 봄에, 나는 월남해서 신문사에 들어가 사회부 기자가 되었다. 이미 많은 인사들이 사회의 표면에 나타나 활약하고 있었다. 이북에서 친일파는 말할 것도 없고, 민족주의적 독립 투사까지도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힐난과 공격과 배격으로 세월이 없는 꼴에 식상할 대로 식상한 나는 좌우를 가리지 않은 친일파에 대한 조소와 배척 일변도의 상황을 볼 때 거기 동조하고 싶다기보다는 인간이 같은 인간을 치죄함에 있어서는 어쩌면 그렇게도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는가에 염증조차 느끼기에 이르렀다.
그런 심정에서 나는 춘원의 곤경을 동정걱으로 보게 되었다. 감히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나는 성경의 한 구절을 그렇게 단순히 적응시켰다. 아직도 여론이라든가 다수라는 것에 얼른 동조하지 않고 망설이는 나의 버릇은 그런 데서 싹튼 것인지 모른다. 대중이란 말에 내가 남들처럼 그토록 무조건 취하지 않는 것도 그런 데 있는지 모른다.
나의 춘원에 대한 동정 표시를 동료 기자들은 동향의 탓이라고 평했다. 동향 탓이니 동창 탓이니 동계급 탓이니 하고 칼로 섬벅 무우 자르듯이 가르는 평가를 나는 싫어한다. 인간이란 그렇게 단순한 것일까?
춘원을 동정하다가 나는 문득 서 낭 생각을 했다. 이 당연한 연상이 월남하고도 상당한 시일이 지난 뒤에 일어났다는 것은 생각나고 보니 너무 멍청했다.
생각나기가 바쁘게 나는 문화부장-당시의 학예부장에게 그의 소식을 물었다.
“서 낭? 누구야”
하고 반문하고, 한참 나의 얘기를 듣고서야 학예부장은 뭐, 그런 거라는 듯이,
“어, 그 사람, 그 사람이 어떻다는 거야?”
하고 또 되물었다. 내가 성급히
“지금 뭘 하고 있죠?”
하고 다가묻자,
“뭐 허긴? 벙어리가 뭐하겠어?”
하고 도무지 상대하려 들지 않는 폼이다.
“일부러 벙어리 노릇을 했다고도 들었는데요?”
학예부장은 입가에 냉소를 띠면서
“그야 당시 그런 소문이 있긴 했지, 와전이었어, 여보게, 해방이 아무리 대단한 일이로서니 벙어리가 입이야 열라구”
하고 피식 웃어 보였다.
나는 그만 실망하고 말았지만, 그에 대한 환멸을 거부하는 무엇인가가 나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나는 혹시나 걷잡을 수 없이 혼란한 이 시기에 서 낭이 표면에 나타나 입을 열지 않는 것은 어떤 깊은 까닭이 있는 때문이 아닌가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렇게는 의심하면서 돌도 입을 열어 말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이 중대한 시기에 침묵을 지켜야 할 까닭이 무엇일까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나는 혹시나 하고 그제야 월남 후 처음으로 예전에 도봉산에 나를 데리고 간 은사를 찾아갔다.
은사는 내가 신문 기자가 된 것을 마음으로부터 기뻐해 주었다. 도봉산 등산 이야기도 나오고 춘원에 대한 의견도 교환했다. 내가 춘원에 대한 동정적 일가견을 피력했더니 은사는
“그런 공격은 오히려 춘원의 마음을 가볍게 하고 있지 않을까, 그는 자기를 더 욕되게 탓해 주기를 바 랄지는 모르지”
라고 말했다. 나는 또 한 번 은사에게 앞질리운 듯싶었다. 화제가 필연적으로 서 낭에게 옮겨졌을 때 은사의 얼굴에는 갑자기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러나 나는 뜻밖의 이야기를 기대하면서
“혹시 어떤 깊은 사연을 들으시지 못하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은사는 한참 동안 무연히 손바닥으로 턱을 쓰다듬더니
“그 때 일부러 벙어리가 되었다는 건 기대에서 나온 상상의 산물이었던가 봐”
“그럼 그 때 진짜 벙어리가 된 것이 틀림없었군요”
“유감이지만 그랬던 모양이야. 작년 말인가, 그가 명의를 찾아 본격적으로 치료에 나섰다는 소문을 들 었어”
“그래요? 환멸입니다.”
“글쎄 환멸이라면 분명 환멸인데, 그 때도 따지고 보면 문제는 그에게 있었다기보다 우리 자신에게 있 었던 게 아닐까. 그가 진짜 벙어리인지, 가까 벙어리인지는 그의 문제이면서 그실 우리에게는 바로 우 리의 문제가 아니었던가 말일세, 그가 벙어리 시늉을 했다는 사실보다 자네나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사실이 더 귀중했다구, 그러니까 인텔리는 속아도 안 속는다고 할 수는 없을는지 모르겠네, 그런 의미 에서 그의 벙어리의 허실을 따질 것 없이 그런 계기를 준 그에게 감사를 드려도 좋은 걸세”
은사의 그 말에 나는 어거지로 스스로를 납득시키려고 애썼지만 뒷맛은 결코 개운치 않았다.
젊은 혈기에 피로를 모르고, 지하에서 나타나거나 해외에서 돌아온 투사들을 정력적으로 쫓아다니며 그 풍모와 성해(聖骸)를 접하기를 기자된 유일한 보람으로 삼아 오면서, 그러나 만날수록 기대와는 먼 것을 느끼게 되어서 안타깝던 터에 서 낭에 대한 환멸은 마치 배반이나 당한 것처럼 나의 가슴에 퀭 구멍을 뚫어 놓았다.
그래도 나는 한 가닥 희망을 버리지 않고, 무엇인가를 알아내려고 어느 잡지에 서 낭에 관한 수필을 쓴 일이 있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헤어질 때 은사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기자 생활을 계속하겠지?”
“정치 운동에 관심이 있습니다만”
“그만두게!”
은사의 어조는 도봉산에서 나더러 테러를 마라던 때처럼 단호했다.
“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어. 자네는 아닐세. 강한 개성이 조직 속에서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네, 얼려 돌아가다 자기를 잃으면 끝장일세”
다음해 서 낭에 대한 밀약 같은 것으로 연결되었던 은사는 교수로 있던 대학에서 정치성을 띤 성명서에 서명을 않겠다고 고집한 끝에 반대적 정치 색채로 몰려 어느 편의 정치 학생에겐가의 테러를 맞고 늦가을의 어두운 벽돌담 밑에 몸을 눕히고 말았다. 그로부터 이십여 년, 나는 시인 ‘서 낭’을 잊고 있었다.
인생을 오십 년 가까이 살아 보면 간혹 예기치 않은 때에 우연한 장소에서 미지이면서 알 만한 사람을 만나 뜻밖의 얘기를 듣는 수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인간으로 살고 있는 기쁨을 만끽하고 흠뻑 그 보람에 젖는다.
바로 얼마 전 취재차 다녀오던 충청도 어느 소도시의 여관에서 그런 경험을 했다.
이제까지 경험 가운데서도 그것은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할까.
저녁상을 물린 나는 하루 전의 신문을 뒤적이다가 갑작스러운 위경련의 엄습을 받았다. 세차게 비틀리는 배를 움켜쥐고 간신히 심부름하는 아주머니를 불러 진통제를 사 오도록 부탁했는데, 그것을 마시고도 여전히 신음하는 것을 보다못한 그 아주머니는 바로 이 여관에 이름 있는 의사 한 분이 며칠째 유하고 계시는데 봐 주십사 하고 부탁하면 어떠냐고 했다. 웬 이름 있는 의사가 어떻게 이런 여관에 유하고 있는지 그 까닭을 따질 겨를은 없었다. 그거 왜 빨리 말하지 않았느냐고 알려 준 아주머니를 나무라며 어서 모셔오라고 일렀다.
잠시 후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아 방안으로 들어선 의사를 보고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름 있는 의사라기에 나는 얼핏 고령의 인물을 생각했는데, 밤색 스웨터 위에 밤색 코르텐 양복 아래위를 아무렇게나 걸친 그의 얼굴은 눈썹까지 머리가 뒤덮이고 입 언저리와 턱과 볼에 수염이 무성했으나 혈색 좋은 얼굴은 팽팽하고 눈에는 젊은 생기가 감돌고 있었다.
내가 아픔을 견디기 어려워하며 위경련인 것 같다고 했더니, 그는 진찰도 하지 않고 들고 온 가방 속에서 주사기를 꺼내 놓으며 물었다.
“술울 많이 하시나요?”
두주불사라고 했더니 그는 빙그레 웃으며
“그럼 한 대 갖고는 안 되겠습니다”
하고 진통제 두 개를 주사기에 뽑아 솜씨 있게 놓아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나를 눕히고 진찰을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서슴지 않아 좋긴 한데, 이 친구 혹시 돌팔이 의사가 아닌가 의심했다.
시골 소도시의 여관에 유숙하고 있는 데다가, 풍모나 옷차림으로 미루어 보아 그럴 성싶기도 했다. 그는 잠시 손으로 나의 배를 더듬고 나서
“수술하셨으니 맹장일 리는 없고, 취장은 아닌 것 같고 위경련이 틀림없겠지요”
라고 말했다. 막연한 말이라고 생각되었으나, 나는 그가 아름다운 음성의 소유자인 것을 알았다. 게다가 머리칼과 수염에 뒤덮이긴 했으나, 눈썹이며 눈이며 코며 입이며가 뜯어보면 볼수록 수려하기만 했다.
돌팔이 의사라고 용모가 단정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어딘가 인상이 좀 달랐다. 얼굴과 몸 전체에서 어딘지 세련된 지성이 풍겼다.
나의 속물 근성은 곧 그에게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그를 오래 잡아 두려고 아주머니에게 과일이나 한 접시 깎아 오라고 일렀다. 그는 그저 두 눈에 미소를 담을 뿐 사양하지를 않았다.
과일이 들어온 다음의 통성명까지 웬만큼 뜸을 들이려고 나는 잡담의 실마리를 풀었다.
“어디 가시다 들르신 건가요?”
“아뇨, 이렇게 떠다닙니다”
“떠다니다니요?”
“의사 없는 벽촌을 돌아다니노라면 가끔 부채눈 같은 이런 소도시에 들르기 마련이지요”
“왜 정주하고 개업하시지 않구?”
“그러다 보니까 이제 방랑벽이 천성이 되고 만가 봅니다.”
“고되시지 않으세요?”
“이젠 재미를 붙여서요”
“가족은 어디 계시는데요?”
“저 혼잡니다”
“양친께서는?”
“모두 세상을 떠났어요”
“결혼은 아직?”
“예”
하고 그는 빙그레 웃는다.
그만 얘기가 심문하다시피 빗나가 통성명이 불가피하게 되었을 때 아주머니가 접시에 사과와 배를 깎아 가지고 들어와 놓고 나갔다. 과일을 권하고 나서 나는 무례를 사과했다. 그리고 먼저 나의 이름을 대었다.
의사도 자기의 이름을 말했다. 그가 ‘서 파’라고 했을 때 나는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예 서파요?”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또 그의 두 눈에 미소가 어렸다.
“서가라는 서는 아시겠죠? 파, 물결 파라는 외자지요”
“서 파!”
“부친이 지어 준 이름은 따로 있는데 시골을 들면서부터 파자 외자를 쓰기로 했지요. 본명보다 더 부 친을 느끼게 해서 그렇게 쓰고 있는 거죠”
“서 파! 인상적인 이름이십니다.”
그러고 나서 까닭은 뒤에야 안 것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잠시의 침묵 동안 나는 무언가 가물가물하면서 그것이 좀처럼 뇌리에 떠오르지 않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본명보다 더 부친을 느끼게 해서……)
다음 순간 나는 전신에 주욱 소름이 스치는 것을 느끼며 뚫어지도록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나는 얼른 열려지지 않는 입을 열려고 안간힘을 쓴 끝에 간신히,
“그럼 혹시나 댁은 시인 서 낭 선생의……”
하고 뒤를 잇지 못했다. 의사는 얼핏 눈을 밑으로 깔았다 뜨면서
“그렇습니다. 저는 그의 아들이지요”
라고 말했다. 그래요! 하는 한 마디가 나의 입 속에서 돌 뿐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잠시 세찬 감동을 곁들인 전율이 나의 전신을 파상적으로 스쳐 가고 또 스쳐 갔다. 한참 후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읊듯이 혼잣말을 했다.
“이렇게 여기서 서 낭 선생 자제분을 만날 줄이야”
그러자 그가 물었다
“부친을 아십니까?”
“뵌 적은 없습니다만 얘기만은”
“어떤 얘기를 들으셨지요?”
그는 그렇게 성급히 다그쳐 물었다. 진지한 빛이 그 영롱한 두 눈에 봉화처럼 피어올랐다.
그의 눈빛을 보는 순간, 나는 이제야 내가 오랫동안 품어 온 서 낭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무엇부터 물어볼까-나는 잔뜩 기대에 찬 마음속에서 그렇게 망설였다.
또 한참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거북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나는 입을 열었다.
“제가 서 낭 선생에 관해 들은 얘기는 소문뿐입니다. 그 때 일부러 벙어리 시늉을 하였는지, 정말 구 강인후에 어떤 장애가 생기셨던 것인지, 저에게는 그것이 궁금했고 이제라도 그 점을 분명히 알았으면 합니다.”
그러자 의사의 눈이 잠시 흩어졌다가 다시 초점을 모으더니
“그 때 부친은 일부러 벙어리 시늉을 하신 겁니다”
“그래요!”
순간 나의 가슴은 탁 트이고 거기서 너른 하늘을 보는 느낌이었으나 그것은 잠시였다.
“그러면 해방 후에도 입을 열지 않으신 까닭은요?”
“그것은……”
하는 의사의 얼굴에는 비통한 그늘이 스쳐 갔다.
잠시 후 그는
“사연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하더니 먼 곳을 쳐다보는 눈초리가 되면서
“그러니까 그것은 6. 25가 일어나고, 서울이 수복된 직후의 일입니다. 그 해 시월에 부친은 돌아가셨는 데 돌아가시기 며칠 전 저를 불렀어요”
나는 나의 전 신경을 오직 두 귀에다 모았다.
“한참 저의 얼굴을 올려다보던 부친의 입에서 저의 이름을 부르는 한 마디가 떨어졌을 때 저는 까무 러칠 듯이 놀랐습니다. 아버지가 말을 하시다니! 저는 간신히 기우는 몸을 두 팔로 버티고 견디었지요”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난 다음 서 낭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미안하구나’라는 한 마디였다고 한다. 나에게 들려 준 의사의 얘기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그 날 서 낭은 연단에 서서 얘기를 시작하다가 얼핏 일종의 환각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청중이 자기를 비웃는 소리라고 할까, 갑작스레 그것은 밀물과도 같이 세차게 그에게로 밀려들었다. 순간 그는 말을 끊었다. 수 초간 그의 머리는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그 회전이 머물렀을 때 그의 마음에는 하나의 결단이 생겼다. 이제부터는 일체 말을 않겠다는, 그래서 벙어리가 된다는 결단이었다. 그러자 어느새 한 손은 입으로 가고 다른 한 손은 스스로의 목을 쥐어틀고 있었다.
부민관을 떠나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는 자기가 엉뚱한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열다섯 난 단 하나의 아들에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시름 끝에 그는 아내와 아들에게만 은밀히 사연을 일러 주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뒤 그는 그러한 자기의 생각을 철회했다. 그 까닭은 결코 일종의 완전 범죄를 달성시키자는 데 있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아름다운 아내의 비탄에 오히려 그지없는 사랑스러움을 느꼈고, 철이 들기 시작한 아들이 어딘가 깊어지는 것 같은 것에 미더움을 느낀 때문이었다고 할까.
조선인인 자기의 아내며, 조선인인 자기의 아들이라는 차원에서 항상 느끼던 조선인으로서의 측은의 정은 그러한 아내와 아들을 볼 때 얼싸안고 통곡하고 싶도록 애처로와지면서 한결 더 사랑스러워지고 귀여워지는 데 그는 도취하고 만 것이다. 이 상태를 그대로 간직하려니! 당시의 말세기적 상황에서 그의 탐미적 사디즘은 그로 하여금 그렇게 결심케 했다.
그러고 나서도 몇 번 흔들린 그의 그러한 결단은 아내와 아들과 셋이서 수화술을 배우게 되면서부터 더욱 고질화되었다.
손짓을 해 가면서 서로 의사 전달의 완벽을 기하려고 애쓰며, 그것으로 모자라는 것을 보완하려는 절실한 눈의 움직임에 서 낭은 말을 재개시키는 경우와 비길 것이 아닌 인간의 진정 같은 것을 절감했다. 끝내 서 낭은 말이란 게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어쩌면 말이란 영적인 인간 교류의 방해물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형사 삼륜이 찾아왔을 때, 그는 얼른 때마침 씹어먹던 잣을 한 알씩 자기의 귓속 깊숙이 틀어박았다. 간악한 삼륜에게 대한 연기를 보다 더 자연스럽게 해치울 장난이기에서였다. 삼륜이 자기의 등 뒤에서 마당에 대고 권총 일 발을 쏘았을 때 그의 청각은 그로 말미암아 둔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그가 삼 년을 제 자식처럼 키운 진도견이 그 탄환에 맞아 길길이 두 번이나 뛰었다가 땅에 쓰러져 피를 토했을 때 꼼짝도 않은 것은 순간적으로 자기가 저지른 죄를 느끼고 망연자실했던 탓이다. 자기로 말미암아 적어도 개 한 마리는 죽은 것이 아닌가.
잣으로 귀가 막힌 탓으로 둘레의 움직임이 정지한 상태에서 그는 그러한 죄의식에 깊숙이 침전해 갔다.
그렇게 해서 그 가열한 태평양 전쟁 말기의 몇 년을 서 낭은 심해의 패류(貝類)인 양 스스로를 지켰던 것이다.
해방이 되던 날, 밖에 나갔던 아내가 대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바쁘게,
“여보, 이제 전쟁이 끝났대요”
라고 외치는 소리를 서 낭은 방안에서 너무나 똑똑히 들었다.
황급히 방안으로 들어선 아내는 부리나케 그에게 손짓으로 전쟁이 끝났다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러한 아내를 보고 그는 지그시 웃어 보였다. 아내의 그러한 시늉이 아름답고도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애처로왔다. 끝내는 좀 우스웠다.
(자, 이제는 이 애처로운 아내를 기쁘게 해 주자)
그래서 한 번 깊이 숨을 몰아쉬고 난 그는
“여보”
하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한 마디가 목젖에 걸려 얼른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래 다시
“여보”
하고 입을 놀렸다.
그런데 역시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약간 당황하며 성급히 또 한 번
“여보”
하고 입을 놀렸다. 그런데 웬일일까, 여전히 그것은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이럴 수가!
그는 당황했다. 황급히 이번에는 두 팔을 번쩍 치켜 올리며
“만세!”
를 불러 보았다. 아, 그러나 그것은 전혀 방안의 공기를 가르지 못하지 않는가! 아찔해진 그의 눈에 아내의 일그러져 가는 얼굴만이 너무나 선명히 비쳐 보였다. 그는 전신의 힘을 모아 기를 써 보았다.
두 번, 세 번…… 그러나 그만 그의 정신은 전도되고 말았다.
아내가 자기 가슴으로 몸을 던지며 왁! 하고 울음소리를 터쳤을 때, 그의 눈길은 초점을 잃고 그의 전신은 쏟아져 나오는 땀에 흥건히 젖었다.
한참 동안 그는 사고의 능력을 잃었다. 그 마음은 공허로 가득 찼다.
한참 후 정신을 되살린 그는 마음속으로
(복수를 당했구나)
하고 뇌까렸다. 하염없이 우는 아내를 꽉 부여안고 그는 오랫동안 그것을 놓지 안고 껴안은 팔에 더욱더 힘을 주었다.
그렇게 아내를 부여안고 있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깨끗이 복수를 당했어. 보기 좋게 복수를 당했군. 용서가 없군)
아내와 아들마저 속여 온 것을 그 누군가는 어디선가 빤히 보고 있다가 결정적인 일격을 가해 온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마음이 가라앉자, 그는 왠지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가 우스꽝스러운 희극 배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튿날부터 아내는 의대 예과에 재학중인 아들을 앞세우고, 그럴싸한 의사란 의사를 모조리 찾아다니게 되었다.
그러자 얼마 후 서낭이 본격적인 치료를 서두르고 있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 낭은 아내와 아들이 권하는 누구의 진찰도 어떠한 치료도 일체 거절했다.
그러는 가운데 날이 가고 달이 갔다.
다음해 봄의 어느 날, 그것은 들창 유리 너머로 만발한 개나리꽃이 보이는 봄날이었다.
서 낭은 곤한 낮잠에서 깨어나 한참 동안 멍하니 그 개나리꽃을 쳐다보다가 무심코,
“여보”
하고 아내를 불렀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그 한 마디가 분명히 자기의 청각을 건드린 것을 깨달았다.
“여보, 여보”
하고 점차 높아가는 소리로 아프도록 스스로의 귓전을 두드리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아들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그것은 따근히 목과 입술에 느껴졌다. 그는 벌떡 일어나 대청 마루로 뛰어나가면서 연거푸 아내와 아들을 불렀다.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이 그의 전신을 굽이쳐 흘렀다.
생각해 보니 아들은 학교에 가고, 아내는 장보러 가서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번에는 죽은 개 이름을 불러 보았다.
물론 반응이 있을 리 없었다.
문득 죽은 개가 생각키면서 들떠 오르던 마음이 가라앉아 갔다.
그 때 대문 밖에서 담 너머로 장사치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미역 쓰려구요?”
그는 곧 대청을 내려서서 신발을 꿰고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으로 가서 빗장을 빼었다. 안 보던 미역 장수가 잔뜩 미역 타래를 어깨에 드리우고 버티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흩어지지도 않고 곤두서지도 않고 아주 좋은 미역입니다요”
“아, 난 내자를 부른 건데……”
“그러셨어요? 저는 또 저를 부르는 줄 알고요”
“어디……”
서 낭은 미역 장수가 내어미는 미역을 손으로 쓰다듬어 보다가 미역 한 타래를 샀다. 자기 말소리가 미역 장수인 남에게 확인되었다는 사실이 흐뭇했던 것이다.
그렇게 미역을 사 놓고 서 낭은 조바심으로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아내는 친정에 들렀다가 저녁 늦게야 돌아왔다. 만약 그 날 아내가 빨리만 돌아왔던들 그 날 부터 서 낭은 입을 열었고 벙어리의 신세를 면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가 늦게 돌아온 탓으로 서 낭이 그만 생각할 많은 시간을 갖게 된 것이 서 낭이 입을 열게 되었는데도 벙어리 노릇을 계속하게 된 까닭이라고 할까.
서낭은 자기가 이제 새삼스럽게 입을 여는 데 무슨 뜻이 있을까 싶었다. 오랜 수화술의 습성으로 말미암아 이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아내와 아들과의 의사 소통이나 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토록 이제는 말이 필요치 않게 되어 있었다.
밖에 대한 그것도 별로 의미가 없어 보였다. 이제 내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랴! 게다가 너무나 말이 많아 그것이 탈이 된 세상에 이제 또 내 말까지 보탤 것은 없지 않은가?
자기가 입을 열어 얻을 것은 무엇이며 잃을 것은 무엇일까? 한 번은 스스로 버리고 한 번은 빼앗겼던 말을 이제 되찾았다고 얼싸 좋아라, 다시 구사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까. 희극이다! 그렇다, 오히려 그건 희극이다! 어쩌면 되찾아진 말을 거부하고 계속 침묵을 지키는 것이 자기에게서 말을 빼앗아간 그 무엇엔가에 대한 역습이 되지 않을까, 도대체 말이란 무엇인가?
아내가 늦게 집으로 돌아왔을 때 다시 서 낭은 한 점 거리낌없는 벙어리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서 낭이 그 후 한 번 입을 열 충동을 느낀 때가 있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는 임종을 맞았을 때이다.
자기의 생명처럼 그토록 사랑하고 삶의 뜻 바로 그 자체였던 아내가 이승을 하직하는 순간, 서 낭은 입을 열어 말로써 아내를 떠나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끊어져 가는 생명의 줄을 간신히 당기며 풀어진 눈길을 자기에게 모으고, 있는 기력을 오직 손가락 하나에 모아 수화술로 절실한 감정을 전달하는 아내를 볼 때 차마 그의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도 열심히 손가락을 놀려 아내에게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보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부친은 의사가 너의 적성으로 여겨지느냐고 물었어요, 제가 그런 것 같다고 했더니, 부 친은 다행한 일이라고 하면서 내가 벙어리가 되었다는 것이 네가 의학을 하게 된 동기가 된 것이 아닌 가고 가슴아파했는데 그러나 그것이 그지없기 기쁘기도 했었다고요”
“어버이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지요”
“저더러 환자를 사랑할 수 있느냐고도 물었어요, 정직하게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더니, 사람이란 혼자 살 수도 없고 혼자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부득이 사람이란 얼려 살게 마련이구, 그것이 또 사람 이 사는 일인데 남을 사랑한다는 건 보통의 일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힘에 겨운 일인데 많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여간한 일이겠느냐구요”
“그렇죠, 사람이란 남을 미워하기가 제일 쉬운 일이어서 미워하지 않는 것만도 대견한 일이죠, 그런데 남을 사랑한다는 것, 더욱, 많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건 정말 여간한 일이 다 뭡니까, 거의 불가 능한 일이지요”
“그렇죠? 그건 불가능한 일이죠?”
의사가 그렇게 다그쳤다. 그 언성은 세차고 그 두 눈에는 안타까움 같은 빛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예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자신이 없어서 망설이고 있는데, 의사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문 자답하듯이,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게 남을, 그리구 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가 있겠어요. 있다면 그건 거짓말일 테지요”
하고 쳐지는 음성으로
“부친이 돌아가신 뒤, 그 때 저에게 하신 말씀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어요, 환자를, 남을 사랑할 수 있느냐고 한 말씀이죠,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남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을 송두리째 사랑할 수 가 없어요, 왠지 저는 인간의 추한 것에 눈이 가려지지가 않아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저까지 포 함해서 모든 인간은 너무나 추한 데가 많은 것 같구요, 추한 것 바로 그것이 인간인 것 같기만 하게 보이니까요”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의사는 역시 그 탐미주의자인 서 낭의 아들이구나 생각했다. 미에 예민했던 그 아버지에, 추에 예민한 이 아들.
“그래서 극도의 자기 혐오에까지 사로잡히게 되었는데, 언젠가 저는 그토록 추한 인간이 어떤 일순 불 꽃을 튀듯이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의사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6. 25 때 저는 군의관으로 있었는데 부하를 개돼지처럼 다루고, 즉결 처분을 떡먹듯 하는 그런 사나 운 지휘관도 환자로서 군의관을 대할 때만은 여간 착해지지가 않아요, 그건 아기처럼 귀엽게조차 느껴 지지요, 물론 낫기만 하면 도로아미타불입니다만”
거기서 의사와 나는 함께 웃었다.
“살인범까지 저는 치료해 봤는데요. 환자로서의 그는 의사인 제 눈에는 착하고 순진하게조차 보였어 요. 불쌍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더군요.”
“그랬을 테죠”
“예정에, 개업한 친구를 거들은 적이 있어요, 그 때 저는 고통을 이기면서 오직 의사만 믿고 있는 환 자와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면서 오직 수술에 몰두하는 친구를 보는 순간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지요, 그리고 인간이 계속 이러한 아름다운 관계를 지속시킬 수는 없을까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안 가 치료비로 실랑이가 벌어졌을 때 저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환멸을 느꼈어요, 그토록 아름답게 보이 던 인간 관계가 어쩌면 그렇게 추해 보일 수 있을까 하고요, 그래서 아, 인간이란 어느 일순, 어느 한 때만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래서 저는 떠돌이 의사가 되기를 결심한 겁니 다. 의사 없는 벽촌에 가서 치료를 하게 되면 저는 곧잘 환자에게서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 지요, 제 앞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착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경탄할 수밖에 없어요, 물론 약품을 도난당하는 수도 있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도 있긴 합니다만……”
나는 신음하듯이 탄성어린 어조로 말했다.
“욕심도 많으셔, 그렇게 사람이 착하고 아름다운 순간만 독차지하려 하시다니”
그러자 의사는 한 번 고개를 기우뚱해 보이더니,
“참,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아니 정말 그렇기도 하군요”
하고 말했다.
밤은 어느덧 깊어 갔다. 나는 또 한 접시의 과일을 청했다. 과일 접시를 갖고 온 아주머니가 나가는 것을 기다리는 품이더니 의사는 앉음새와 표정을 달리했다.
“용서를 빌어야겠습니다”
“갑자기 또 무슨 말씀을……”
“제가 선생님을 뵌 것은 우연이면서 우연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
“저는 아까 객보에서 선생님 이름을 보고 이렇게 뵙기를 노린 거지요”
“아니, 그렇지만 저의 위경련까지 선생이 조작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그렇지 않아도 찾아뵈려 했어요”
“그럼 제가 앓길 잘 했군요, 어때요? 제가 환자로서 아름다워 보였습니까?”
의사는 그저 소리 없이 웃고 나서
“저는 옛날 선생님께서 잡지에 쓴 저의 부친의 이야기를 읽었어요”
“그랬었나요!”
“그 글이 깊이 저의 인상에 남아 있었지요, 그래서, 부친이 돌아가신 뒤 저는 몇 번 선생님을 찾아가 진상을 말씀드릴까 했는데, 그것을 밝히는 것이 과연 부친의 뜻일까 하고 망설여져서 이제까지 뵙질 못한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나 하나의 마슴속에 깊숙이 간직해 두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인데, 아까 객보를 보고는 갑자기 생각이 달라졌어요”
“거꾸로 제가 벌써 서 낭 선생께 댁 같은 자제분이 계시다는 걸 알았더면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뵈었 을 텐데요”
“제가 공연한 얘기를 드렸는지 모르겠어요”
“천만에요. 그런데 서 낭 선생께서 술을 잘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랬죠”
“한 잔 하실까요?”
“아뇨, 술을 마시면 실수하기가 쉬워서요”
“실수 않는 술이 어디 술입니까?”
술을 마시면 무슨 실수를 할 것인지 의사는 굳이 술을 사양했다.
“혼자 늙으실 생각입니까?”
“그렇게 될 것 같군요”
“역시 여자에게서 자꾸 인간의 불미한 것이 느껴지셨나요?”
의사는 또 소리 없이 웃었다.
“아뇨, 어디 이런 떠돌이를 따라다닐 여자가 있습니까?”
“있을 성싶은데요”
나는 이 의사와 같은 혈통이 단절된다는 것이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물어 보겠는데, 남성으로서의 충동을 어떻게 처리하고 계세요?”
의사는 또 히뭇이 웃더니
“이제 버릇이 된 게 아닐까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어느덧 버릇이 되어 버린 것 같아요. 버릇이란 무서운 것이니까요, 이제 별로 그런 일로 고통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일종의 도통이시군”
“천만에요!”
의사는 조금 언성을 튕기더니
“곧잘 마음의 간음을 경험하니까요”
“그게 어떤 경우죠?”
나는 다그쳐 물었다.
“글쎄요”
의사는 잠시 생각하는 품이더니
“뭐라 할까요? 뜨거운 여름에 시골길을 가다가 우물가에 들러 시원한 물 한 모금을 청하는 저에게 물을 떠 주시는 어느 아낙네의 수줍은 표정 같은 것에 일순 저는 강력한 인력을 느낄 때가 있어요”
“인력이라고 하시는군”
“우스우십니까?
하고 의사는 얼굴을 붉혔다.
“천만에요, 계속하세요.”
“뭐……이런 경우도 있긴 해요, 청진기를 들고 기다리고 있는 제 앞에서 시골 아가씨가 오히려 가슴을 여미며 목덜미까지 얼굴을 붉히는……”
“그 일순에!”
그 한 마디를 동시에 뇌이고 나서 의사와 나는 꼭같이 소리를 내어 웃었다.
이번에는 내가 앉음새를 고쳤다.
“그럼, 선생께서 일정한 장소에 머물지 않고 가방 하나를 들고 벽촌을 떠다니시는 건 처음 만나는 사 람들이 보이는 어느 일순 어느 한 때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시기 위해선가요?”
“글쎄요”
하고 의사는
“그걸 느끼기 위해서라기보다 그걸 느낄 때만 저는 남과 연결될 수 있어서라고나 할는지요?”
“그러니까, 오직 그럴 때만 남을, 인간을 사랑할 수 있으니까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아네요, 그런 건방진 게 아녜요, 그런 게 아니구 남들처럼 남을 사랑할 수가 없어서……”
뭔가 안타까워하는 의사를 보고, 나는 현상 퀴즈의 해답처럼 한 마디로 나 자신을 납득시킬 대답을 성급히 그에게서 끄집어내려 한 나의 속물성에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나는 일찍 그 소도시에서 이십여 리 떨어져 있는 마을까지 도보로 간다는 의사를 거리 밖의 동둑까지 전송했다. 그도 나도 말이 없었다.
의사와 나 사이에는 이미 말이 필요치 않았다. 그저 함께 나란히 이렇게 거니는 것으로 족했다.
동둑에 이르러 의사와 나는 그저 잘 가라느니, 또 만나자느니, 하는 의례적인 싱거운 인사로 헤어졌다. 그러나, 앞으로 나와 그가 다시 만나지 않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했다. 왜냐하면, 의사도 나도 꼭같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 터이니까.
그는 조그만 손가방 하나를 들고 바람에 밀리듯이 성큼성큼 둑을 걸어갔다.
그렇게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에 눈을 주고 있다가, 나는 자욱한 고독의 그늘과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무거운 짐 같은 것이 그의 두 어깨를 누르고 있음을 환각했다.
그것은 스스로가 짊어진 것이면서 그의 부친인 시인 서 낭이 이어준 것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나 같은 이승의 속물들이 어거지로 떠맡긴 것인지도 모를, 그러나 어느 누군가가 짊어지어야 할 그런 성질의 짐으로 여겨졌다.
잠시 그렇게 시름에 잠겼던 나는 차차 마음이 비어져 가는 느낌이면서 그실 그 어느 때보다도 총족돼 가는 듯한 아주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 갔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