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인 용
주홍 글씨
- 사랑과 미움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19세기 미국 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는 호손의 『주홍 글씨』는, 청교도의 식민지였던 보스턴에서 발생한 젊은 목사와 한 여인의 간통 사건에서 시작된다. 당시 청교도 사회는 금욕주의의 삶이 엄격히 요구되던 시대였다. 이 소설은 간음의 죄를 대하는 당시 청교도 사회의 냉혹한 시선을 보여주며, 이상주의자들이었던 청교도들이 역설적으로 비인간적이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어느 여름날, 헤스터는 태어난 지 3개월 된 딸아이를 가슴에 안고 감옥 문을 나선다. 보스턴의 교회 앞 광장에 세워진 처형대 위에서 그녀는 가슴에 단 치욕의 주홍 글씨 A자를 감추려고 갓난아이를 품에 꼭 껴안고 있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 헤스터가 가슴에 달고 다녀야 하는 주홍 글씨 A자는 ‘Adultery’의 머리글자로 간음이란 뜻이다. 그녀는 영국에서 미국 보스턴으로 건너온 여인으로 남편은 의사였다. 먼저 이곳에 도착한 헤스터는 남편을 기다리다 성직자인 딤스데일 목사를 사랑하게 되고 그의 아기를 낳았다. 그 간음의 죄 때문에 그녀는 갖은 수모를 당하며 사람들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날 재판관은 헤스터에게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아이의 아버지, 즉 간통한 남자를 밝히라고 추궁하지만, 그녀는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때 형리가 단장을 휘두르며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위엄있게 소리친다.
“자 여러분 주목하세요. 지금부터 오후 1시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간음을 한 이 여자의 훌륭한 옷을 마음껏 볼 수 있도록
이곳에 세워놓기로 약속하겠소. 부정은 백일하에 드러나게
마련인 정의의 고장, 보스턴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자 헤스터, 앞으로 나와 앞가슴에 수놓은 주홍 글씨를 광장에
모인 여러분께 보이도록 하시오.”
가슴에 금실로 수놓은 주홍 글씨 A자를 달고, 아이를 안은 채 처형대 위에 서 있는 헤스터, 그녀가 꽉 껴 안자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이 아이와 이 치욕이 현실인가를 확인이라도 하듯, 주홍 글씨를 내려다보며 손으로 만져보기까지 했다. 역시 그랬다. 이 두 가지만이 현실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그 치욕의 형장에는, 해상에서 조난을 당했다가 인디언에게 구조된 헤스터의 남편이 와 있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이곳까지 왔지만, 사랑하는 아내의 부정을 목격한 그는 무서운 복수심에 사로잡힌다. 자기의 신분을 숨기고 아내의 불륜남을 찾아내기로 결심한 그는 칠링워드라는 이름으로 개명한다. 그리고 헤스터는 남편의 신분에 대해 비밀을 지켜주기로 약속한다.
한편, 헤스터와 함께 불륜을 저지른 젊은 목사 딤스데일은, 사람들 앞에 설 때마다 양심의 가책으로 고민하며 건강은 눈에 띄게 쇠약해진다. 그 무렵 칠링워드는 마치 악마의 계시를 받은 듯, 딤스데일에게 접근하여 그의 주치의로 가장한 채 한집에서 살게 된다. 이 악마의 사자는 환자의 영혼과 육체와의 상관관계를 유심히 관찰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딤스데일 목사가 헤스터의 상간남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게 된다. 교활한 의사는 복수의 집념을 불태우며 나약한 목사를 심적으로 고문하면서, 그로 하여금 삶의 의욕을 잃도록 조종해 나간다.
그동안 어린 딸, 펄과 함께 꿋꿋이 살아가던 헤스터는, 어느 날 밤 처형대 위에 올라가 스스로 자신의 죄를 자책하고 있는 딤스데일 목사를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근간에 목사의 건강이 너무나 쇠약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헤스터는 그 원인이 남편 칠링워드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남편에게 목사를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래서 그녀는 목사를 만나, 의사의 정체가 바로 자신의 남편이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아이와 함께 다른 나라로 도망치자고 설득한다. 한순간 목사의 얼굴에는 기쁨의 빛이 떠오르지만, 그는 결국 스스로 죄를 고백해야겠다는 가장 인간적인 해결 방법을 선택한다.
수많은 고통과 번민 속에서 고민하던 딤스데일 목사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자신이 저지른 간음죄를 회개하고 고백할 기회를 가졌었다. 그러나 그는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러서야 자기가 지은 죄를 고백하게 된다.
보스턴 탈출이 예정된 날, 그날은 새 총독의 취임을 축하하는 축제일이었다. 연단에 올라선 딤스데일 목사는 마지막으로 훌륭한 기념 설교를 끝내고, 군중들이 지켜보는 연단 옆에 있는 처형대 위로 올라간다.
“뉴 잉글랜드 주민 여러분!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셨던 주민 여러분! 나를 깨끗한
인간이라고 생각해 주셨던 여러분! 이 세상에 가장 큰
죄인이 여기 서 있습니다. 나는 마침내, 7년 전에 이미
섰어야 할 이 자리에 지금 에야 섰습니다. 여러분! 이 여인,
헤스터가 가슴에 달고 있는 주홍 글씨를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이것을
볼 때마다 몸을 떨고 이 여인을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간음을 저지른 남자의 죄악에 대해선 모르고 계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 간음죄를 저지른 남자의 가슴에도 주홍 글씨의 낙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이제 죽음을 앞에 두고 그 남자, 간음을 한
죄인이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이 여인의 주홍 글씨를
봐 주십시오. 보십시오. 불가사의하고 무서운 이 주홍 글씨도 상간
남자의 가슴에 붙어 있는 주홍 글씨에 비하면 한낱 그림자에 불과
합니다. 자 보십시오. 나의 가슴에 붙어 있는 그 심판의 무서운 증거,
주홍 글씨를.”
처형대 위에 선 목사가 갑자기 사제복을 풀어 헤친다. 그 순간 앞가슴에 달고 있던 주홍 글씨 A자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헤스터와 펄의 손을 잡고, 군중들을 향해 헤스터와 간음을 한 자신의 죄를 고백한 후 숨을 거둔다.
유일한 삶의 목적이었던 복수의 대상이 사라지자 칠링워드는 실의에 빠진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심정으로, 죽는 순간에 헤스터의 딸 펄에게 전 재산을 물려준다. 헤스터는 그 사회를 떠나지만 딸은 성장한 후 고행을 하기 위해 다시 고향 보스턴으로 돌아온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세 인물은 모두가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다. 헤스터는 가슴에 주홍 글씨를 달고 다니는 '드러난 죄인'이고, 딤스데일 목사는 가슴에 단 주홍 글씨를 감추고 살아가는 '숨겨진 죄인'이다. 하지만 칠링워드는 교활하고 가혹하게 복수하는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라 할 수 있다.
호손에게는 청교도 의식의 바탕 위에서, 언제나 죄로 인한 인간의 타락과 구원의 문제가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신의 뜻을 거역하고, 사탄의 유혹에 빠져 저지른 원죄 때문에,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보았다. 그는 17세기에 가장 엄격했던 청교도 사회의 규범하에서, 도덕적인 죄를 범한 사람들이 그 죄의식에서 쉽게 헤어나거나 극복하지도 못한 채, 끝없는 고통 속에서 번민하는 인간의 모습을 예리한 통찰력과 섬세한 필치로 탐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