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복숭아(2)
최 화 웅
나는 지난해 10월 14일 <마음의 영성>카페에 ‘하늘복숭아’를 올린 바 있다. 올해도 그 온천본당 성전 벽면의 복숭아나무에는 하늘복숭아가 주렁주렁 달렸다. 이태 전 온천본당으로 교적을 옮긴 뒤 한여름에 하늘복숭아를 받는 즐거움이 컸다. 그래서 성당에 갈 때면 복숭아나무를 올려다보고 그날을 기다리곤 했었다. 아마 평일미사에 나오는 250여 명의 신자들은 거의 나와 같은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하늘나라에서는 쉴 새 없이 비바람을 뿌리고 하늘복숭아를 흔들었다.
부산의 8월은 태풍과 비바람이 잦다. 올해 7월의 ‘너구리’에 이어 8월 초에는 ‘나크리’와 ‘할롱’이 닥쳤다. 태풍 전후에는 흐린 날씨에 비가 잦아 복숭아나무를 마구 흔들며 낙과의 아픈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올해는 입추를 지나면서 가을장마가 머무르는 동안 하늘복숭아는 몰라보게 자랐다. 신부님께서는 8월 무더워가 절정에 이를수록 복숭아 얘기를 자주 꺼내셨다. 신자들에게 복숭아를 수확할 날이 가까웠음을 은근히 알린 것이다. 그럴 때면 ‘염불보다 잿밥’이라는 옛말이 떠올라 웃음을 머금곤 했었다.
지난 화요일에는 투석을 마치고 저녁미사에 가는 길에 전주 스테파노 형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형님! 내일 여름휴가를 떠나려고 합니다. 동해안으로 가는 길에 부산에 들러 형님을 뵙고 바다바람도 좀 쐬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물론이지, 어서 와라.”하고는 그리운 손님맞이에 가슴부터 설렜다. 엘사와 저녁을 먹으면서 스테파노와 율리아나 가족을 위한 나름의 1박 2일 스케듈과 이벤트를 짰다. 우선 대청소를 하고 작은 방에 잠자리를 정하고 저녁산책 대신 장을 보러 나갔다. 기다리는 마음이 즐겁기 이를 데 없었다.
다음날 오전미사 때 신부님께서는 강복 뒤에 “신자 여러분, 오늘 마침내 복숭아를 드리겠습니다. 돌아가실 때 마당에 놓인 소쿠리에서 하나씩 가져가십시오.” 계속된 신부님의 뒷이야기는 “어제 저녁에 복숭아를 따보니 모두 90개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시장에 가서 복숭아 150개를 사왔습니다. 시장에서 사온 복숭아는 알이 크고 잘 생겨서 눈에 잘 들어올 겁니다. 그러나 맛은 작은 것이 더 나을 겁니다.” 우리 부부는 성당에서 하늘복숭아를 가져오면서 저녁에 도착할 스테파노 가족 생각으로 마음이 들떴다.
스테파노에게 네비에 등록할 번지를 카톡으로 전했다. 그리고는 지하철을 타고 친구들과 점심을 약속한 시내로 나갔다. 틈나는 대로 현재 위치를 확인하며 도착시간에 신경을 썼다. 돌아오는 시간에는 빈 시간에 올여름 마지막 개봉작인 ‘해무’를 관람했다. 잔인했다. 영화가 끝날 무렵 걸려온 전화가 기분을 전환시켜주었다. 스테파노 율리아나 부부는 방학 중인 외동딸 요세피나를 동행했다. 대자 부부도 자리를 함께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대자 베드로는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서울 사비노와 전주 스테파노를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라고 부르며 살갑게 대한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나온 우리 앞에 펼쳐진 광안리해수욕장의 야경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내일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우리나라에 오시는 날이고 모레는 성모 승천 대축일이며 글피는 광화문에서 시복미사가 봉헌되는 날이다. 성스러운 나날속에 연휴가 풍성하다. 함께 오전미사를 참례하고 비가 멈춘 틈에 시냇물소리 시원하고 로즈마리향 짙은 캠퍼스 숲길을 함께 걸었다. 금정산성에서 점심을 나눈 스테파노 가족은 동해안을 향해 떠났다. 스테파노 가족이 떠난 뒷모습에 지난해 늦가을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백산과 배들평야, 눈 내리던 겨울밤 전주한옥마을의 정경과 지난 봄 벌교답사와 나주 영산포구가 겹쳤다. 지난 일은 언제나 사무치게 그리운가보다. 나는 ‘you raise me up’을 흥얼거리며 울적한 마음을 달랬다. 우리는 만나서 사랑하고 이별하며 하루를 보내는지 모를 일이다. 무더운 8월의 눅진한 일상이 또 그렇게 지나간다.
첫댓글 "복숭아를 나누시는 신부님과 신자들의 사랑과, 먼길 마다않고 찿아가고, 설레이며 기다리시는 그 사랑과, 기쁘게 함께 행복한 자리를 만들어주시는 베드로.안젤라님의 사랑이 지금 내리는 비처럼 마음을 촉촉하고 행복하게 하네요..
온천본당 주임 신부님의 마음을 묵상합니다. 주님 안에서 소중한 형제애의 인연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국장님 감사합니다. 건강 조심하십시요.
훈훈한 얘기 잘 읽고 갑니다.
일년을 기다리다 만난 멋진 이름을가진 하늘복숭아~ 온천성당 분들 행복 하겠 어요^^* 기다리고, 만나고 ,갈곳이 있는 설레는 마음.만남뒤의 이별 또 기다림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감. 행복해보여 넘넘 좋아요.~♡~ 사랑이 엿보여 참 좋습니다^^*
"God with us"!!
선생님을 직접 뵙고 안색이 많이 좋아진 것을 확인하고 마음이 놓였습니다.
게다가 하늘복숭아까지 맛볼 수 있었으니 축복이었습니다.
베드로+안젤라 대자 부부님과의 만남과 ME주말 경험담도 저희 부부에게는 큰 은총이었구요.
선생님과 엘사 형님 덕분에 온천성당에서 미사도 드릴 수 있었으니...
동해안의 해안도로를 따라 강릉까지 가는 길에서 저희 가족은 정말 기쁘고 행복했답니다. 감사드려요. ^^*
온천성당의 '하늘복숭아'
새삼 부러워요^^
오가는 인연 소중히 여기고
기다려주는 마음도 부럽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