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백 년’을 꿈꾸며

[남궁효]

‘다른 백 년’을 꿈꾸며

머리글

참배움학교연구회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저는 진관고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남궁효라고 합니다. 제게 요청된 주제가 “한국사 참배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매우 폭넓은 것이어서 제한된 시간에서 동학농민혁명을 중심에 놓고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참배움은 참사람을 목표로 하시지요? 참사람은 참정신과 참몸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한국사의 참배움도 마찬가지로 참정신이 든 참사람을 목표로 하겠습니다.

한국사 전체를 다룰 수는 없고 현대사회와 가까운 근현대사의 인식과 이해를 통해서 참배움을 생각해보았습니다. 흔히 동양철학은 ‘지금,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지금 여기의 상황은 남북분단과 대결, 미국의 남한군작전권 소유, 미중 양다리 외교, 군부독재의 산업화 성공, 시민 학생 세력의 민주화 성공, IMF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확립, 비정규직 양산, 중산층 붕괴 , 경제 양극화, 3포 세대, ‘헬조선’으로 불리는 생존의 어려움, 후쿠시마 사태 이후 핵발전의 위험 고조, 4대강 사업으로 환경파괴 가중 등등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서민 차원의 궁극의 문제는 생존이 여전히 어렵고, 산업경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2. ‘자주’와 ‘근대화’가 따로 진행된 지난 백 년

역사 공부는 지금 이 자리를 이해하기 위하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로 근대의 출발점이 되는 19세기 후반 우리의 과제는 ‘자주적 근대화’라고 압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는 자주 노선과 근대화 노선이 하나로 나가지 못하고 따로따로 진행됩니다. 근대화 노선은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개화파 – 친일적 외교 – 조선 망국 – 일제 식민지 – 남한 사회 – 미군정 3년 - 이승만 독재와 친일파 부활 – 6.25 전쟁으로 군부 팽창 – 박정희 군사독재와 산업화 – 전두환 광주 학살과 산업화 성공 – 6.10 민주항쟁과 민주화 성공 – 김대중. 노무현 정부 – 보수의 재집권(이명박. 박근혜 정부) 자주 노선은 동학농민혁명 – 의병운동 – 항일독립운동(만주, 중국) - 북한 사회 – 친소파 김일성 독재 – 6.25전쟁으로 몰락 – 전후복구 성공 – 냉전 체제로 국력 소모, 경제개발 실패 – 소련 붕괴, 에너지 고갈, 경제붕괴 – 핵전략으로 대미, 대남 외교 실행. 이는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매우 거칠게 대략 분석한 것이니 양해바랍니다.

그런데 북한으로 들어갔던 자주적 세력은 김일성의 독재에 거의 숙청을 당했고, 남한에 들어간 임정 세력은 자주세력의 씨앗이 되고 민주화 운동을 실현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부딪치는 문제는 김대중 노무현 민주화 정부가 불과 10년만에 보수 우익 정권으로 교체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당시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 ‘경제 대통령’ 운운하면서 권력이 보수친일독재 세력으로 회귀하였습니다. 물론 민주화 정권에 대한 철저한 반성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사회가 지나치게 물질화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국민들은 상대적으로 도덕과 윤리의식과는 거리가 한참 먼 이명박 정권을 선택하였고, 기대와 달리 아무런 경제적 혜택도 받지 못하였습니다. 박근혜 정부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친기업가 · 친자본 정책으로 그 나마의 경제 민주화 공약조차 내던져버렸습니다. 참정신, 참다운 역사의식이 결여된 정권인 셈이지요.

3. ‘군사 쿠데타’에 이은 ‘역사 쿠데타’를 겪는 현실

요즘 박근혜 정부는 한국사 국정화 시책으로 학계 교육계의 거센 비난과 반발을 일으키고, 4.19 이후 처음으로 교수들이 거리 행진에 나섰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요컨대 역사왜곡을 통한 보수적 지배체제의 연장 전략이 되겠습니다. ‘역사전쟁’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는 것을 보면 무력으로라도 관철시키겠다는 정권의 중차대한 결사 의지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과거의 정치가 역사라면, 역사 교과서는 현재의 정치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친일독재미화 보수세력인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은 2003년경부터 교과서 작업을 시작하여 경제적 성공, 군사 쿠데타 옹호, 식민지 근대화론을 중심 주제로 하는 근현대사 대안교과서(기파랑)를 만들어 학교에 보급시킵니다(2008.3). 친일=근대화, 분단=건국, 독재=부국으로 환치시키겠다는 것이지요. 2008년 금성판 한국근현대사(노무현 정부)를 좌익 용공으로 몰아서 소위 ‘교과서 파동’을 일으킵니다. 이명박 정부 때 금성판 교과서 채택을 방해하고 법적 소송전으로 비화시킵니다. 보수 언론과 함께 ‘잃어버린 10년’론으로 보수 우익의 가치를 전파하던 뉴라이트는 교학사 교과서(2013)를 만들어 시장에 진입시켰으나 거의 채택률 0%에 가까운 결과로 실망합니다. 마침내 박근혜 정부에서 한국사 국정화 작업을 내세워 ‘역사 쿠데타’를 추진하고 있는 중입니다.

현대 사회의 비극은 일본과 미국에 의존한 근대화 방략의 성공에 있습니다. 자주성이 매우 부족하지요. 최근 한미일 관계 공고화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한편 내부적 남북갈등 고조, 부의 양극화, 자유민주주의의 퇴조 등은 비례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족적 공동체성이라든가 남한 내부의 사회융화통합은 철저히 부정당하면서 소수의 이익 극대화와 통치 공고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여기서 보수세력의 역사관과 진보세력의 역사관은 충돌합니다. 보수세력은 일제 강점기를 식민지 근대와 독재 정부를 산업화로, 진보세력은 반제 반독재 민주화로 갈라서지요.

4. ‘자주적 근대화’를 실현한 동학의 개벽사상

자주적 근대화를 처음으로 실현한 사건은 동학농민혁명입니다. 반봉건 반외세의 척왜양창의와 제폭구민을 내세우며 자주의식을 실천하였으며, 양반과 상민 간에 맞절을 하여 신분해방을 실현시켜 근대화(개벽)의 위대한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또한 시천주(侍天主)·사인여천(事人如天)·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자연과 인간 사회의 합일을 주장하여 유교적 천사상을 바탕으로 서학의 천주사상을 결합시켜 새로운 우주론을 만들어 냅니다. 이 사상에 따르면 자연과 약자 어린애 여성을 착취하여 성장을 이뤄가는 서구적 근대화론에 대항할 수 있으며 평등, 생명, 환경 등의 운동에 철학적 원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린이란 용어를 만들어내고 어린이운동을 실현한 것도 천도교(동학)입니다.

대포와 군함에 의한 제국주의적 근대화는 타인을 희생시키고 자국을 성장 강화시키는 침략적 약탈적 근대화입니다. 한국에서 근대화 산업화에 성공을 거두었으나 민주화가 철저히 실시되지 못하면 내부적 약탈과 수탈체제를 온존시키게 됩니다. 한국사의 참배움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한국근현대사의 자주적 근대화/ 식민지 근대화 과정을 인식하면서 대안 사회를 모색하는 것입니다. 대안 사회의 모색에서 반드시 살펴봐야할 것은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입니다. 새로운 것은 항상 과거 속에 들어있지요.

5. 맺음말-동학농민혁명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대안 사회의 꿈

인터넷신문에서 ‘다른백년’이라는 모임을 보았습니다. 자주적 근대화를 최초로 실현시켰던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으로 현대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사회를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다른백년’이라고 제목을 정했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모두 우리나라의 자랑입니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서로 맞절하면 어떨까요?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모두 같은 나라 아닙니까? 상호 인정하면 우리의 삶도 훨씬 즐겁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남북이 상호 인정하면 남북간의 긴장도 완화되고 경제·문화 교류를 통하여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습니다. 동학의 시천주(侍天主:한울님을 모시다) 사상을 따라 진보가 보수를 모시고 보수는 진보를 모신다면 개벽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지난 150년간의 일본 제국주의와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가 깔아놓은 궤도에서 벗어나 ‘자주적 근대화(개벽)’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역사공부에는 상상력이 중요합니다. 혁명은 낭만가에게서 나온다던가 강신주 선생의 글에서 보았습니다만, 대안사회도 낭만과 여유 그리고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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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5. 10.31 참배움학교연구회에서 강연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