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충기의 세계배낭여행기 119>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나라 중국
저장성(浙江省)
1. 항저우(杭州)와 서호(西湖)
아침에 일어나니 지갑을 확인하니 중국 돈이 부족하다. 서둘러 은행을 찾아 500달러를 위엔화로 환전했는데 환율은 1달러에 6.7元(위엔)이다. 곧바로 역으로 달려가 항저우(杭州)행 열차표를 예매했는데 오후 4시 7분 발 열차로 경와(硬臥) 이등좌(二等座)만 있는데 217元. 아직도 중국의 열차 제도를 잘 모르겠다. 쾌속(快速-자기부상 열차인 듯)이 있고 연와(軟臥), 경와(硬臥), 경좌(硬座)... 암튼 걱정이다.
점심때가 가까워 서성이다보니 ‘영화대왕(永和大王)’ 이라는 음식가게가 보이는데 실내도 깨끗하고 음식들도 깨끗하게 진열한 서양식 스타일로 흡사 미국식 맥도널드 가게와 비슷하다. 우유 한 잔과 치킨라이스를 24元(4천 8백 원)에 주문하고 의자에 앉아 있으니 깨끗한 앞치마를 입고 모자를 쓴 종업원이 쟁반에 음식을 담아 가져다 주는데 먹을 만 했다. 점심을 느긋하게 먹고 나서도 시간이 많이 남아 시장 통도 어슬렁거리고, 이곳저곳을 골목길도 돌아다녔지만 피곤하니 보는 것도 귀찮고 별로 흥미를 끄는 것도 없는 도시풍경이다. 어저께 우한(武漢) 시외버스터미널도(汽車岾), 이곳 무창 기차역(武昌 火車岾)도 사람이 바글거리기는 마찬가지이다.
수퍼마켓(超市)에서 생수 1병과 바나나, 귤, 복숭아를 3개씩 샀는데 과일은 모두 무게를 달아서 판다.
모두 11元(2천 원)으로 무척 싼 편이다. 무창역(武昌)에서 출발이 10여분 늦어 4시 20분에 열차가 출발한다. 먼저 번에 탔던 열차처럼 2층으로 침대가 두 개 마주보고 있는데 비좁으나마 누울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항저우(杭州)에 아침 7시 40분에 도착하였으니 꼬박 15시간 20분이 걸렸다. 항저우역 앞에 있는 여행사에서 항저우(杭州) 일일투어를 175元(3만 2천 원)에 예약할 수 있었다.
항저우는 저장성(浙江省)의 성도로 진나라 때(秦代:BC 200년 경)에 도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여 609년 강남(江南) 운하가 완성되며 이 지역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하는데 서호(西湖)를 끼고 있어 아름다운 건축물과 정원(庭園) 등으로 아름답기로 이름이 높다. 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상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등장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항저우(杭州)는 서호(西湖)를 끼고 있어 풍광이 수려하고, 특히 소주(蘇州)와 더불어 미인들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여 옛 사람들은 항주를 일컬어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蘇州), 항주(杭州)가 있다’고 칭송하였다. 투어버스가 9시 출발이라 간단히 세수와 아침식사를 마치고는 곧바로 버스에 올랐다. 처음으로 간 곳은 서호(西湖)공원 관람인데 1시간 정도 호반에 내려놓고 자유 관람을 하라고 한다. 잘 가꾸어 놓은 호반공원(湖畔公園)은 중국인 단체관광객들로 바글거린다.
이곳에서 나와 같은 일일투어를 하는 아가씨 다섯 명과 친해졌는데 직장동료들로 우한에서 무박 2일짜리 관광을 왔다고 한다. 2명은 결혼, 3명은 미혼이라는 이 아가씨들은 무척 활달하고 재미있었는데 영어도 제법 몇 마디 해서 함께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이드 녀석은 영어를 못하니 이 아가씨들한테 나를 꼭 챙기라고 부탁을 하는 모양이다. 아가씨들은 날 보고 한국말로 ‘곰 세 마리’ 노래를 가르쳐달라고 조른다.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엄마 곰, 아빠 곰 아기 곰~~’ 잘도 따라 부른다.
호반공원 관광이 끝나고 관광유람선을 탔다. 생각보다 서호는 무척 넓은데 가운데는 제법 큰 섬이 두 개나 떠 있다. 주변으로는 꽤 높은 산봉우리들도 보이고 산 밑으로는 절들도 보이는데 아득히 고층건물이 들어선 항저우 시내도 눈에 들어온다.
우한(武漢)에서 관광 온 아가씨들(항주에서)
다음으로는 동진(東晉)시기(328년) 인도의 승려 혜리(慧理)가 지었다는 중국에 있는 가장 크고 가장 부유한 사찰(절) 중의 하나였다는 영은사(靈隱寺)를 관람했는데 현재 무림산(武林山)에 있는 몇몇 사원들 중 가장 크며, 진입로 좌측의 비래봉(飞来峰) 자락에는 많은 동굴과 불교적인 색채를 띈 불상조각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수많은 신도들이 엄청나게 굵고 기다란 향을 사서 불을 붙여 흔들며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다. 우한에서 온 아가씨들은 자기네들도 불교신자라며 가는 곳마다 엉덩이를 쳐들고 엎드려 수없이 절을 해댄다.
다음은 입구에 엄청나게 큰 호랑이 조각이 있는 샘물 호포천(虎跑泉), 정당강(錢唐江)의 역류를 막기 위해 세웠다는 육화탑(六和塔), 소주(蘇州)와 더불어 이곳의 특산물인 실크의 모든 생산과정을 보여주는 실크박물관(天蠶絲網) 등을 구경시켜 준다.
항주 호포천(虎跑泉) / 육화탑(六和塔) / 영은사(靈隱寺) 석탑
일일투어를 끝내고 곧바로 항저우역에서 상하이(上海)행 열차표를 샀는데 저녁 8시 50분 발 쾌속(快速:자기부상)열차 이등좌(二等座)로 63元이다. 도착은 밤 10시 30분. 1시간 40분 만에 정시에 상해에 도착했다. 이곳 상해(上海)에서 한국으로 가는 여객선이 있다는 말을 국내에서 들었기에 늦었지만 여객선 터미널 부근에서 자려고 역무원에게 여객선 터미널을 영어로, 필담으로 물었더니 서너 명을 불러 같이 얘기를 나누어 보더니 상해에서 한국으로 가는 여객선이 없다고 한다.
시간이 너무 늦어 결국 역 부근에서 1박을 하기로 하고 호텔을 찾느라 어정거리는데 중년의 아주머니가 다가와 영어로 호텔을 찾느냐고 묻는다. 그러노라고 했더니 따라 오란다. 나는 비싼 곳은 안가니 싼 곳으로 안내해라. 알았다.
길거리에 한 참을 세워놓고 호텔 승합차를 기다리는 모양인데 탔다가 또 무슨 영문인지 내리라고 실랑이를 하고.... 결국 내려서 동료인 듯 또 한 아주머니와 함께 택시를 타고 꼬불꼬불 너저분한 골목길을 돌아 호텔에 도착한다. 호텔은 그럴듯한데 골목길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카운터 아가씨에게 1박 싱글 룸이 얼마냐? 320元이다. 이런 제기럴...
지금까지 180元 정도에 자지 않았던가? 뒤도 안돌아보고 나왔더니 나를 데리고 간 아주머니가 쫓아와 260元이면 자겠느냐? 안잔다. 아마 손님을 데려다주고 얼마씩 받는 모양인데 가격도 가격이려니와 모든게 마음에 들지 않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버렸다. 근데... 12시가 가까워 오는데 어쩐다??
한참을 어두운 골목을 되짚어 나와 넓은 거리로 나오다보니 대로변에 영어간판 ‘Holyday Inn’이 보인다. 미국에서는 가장 저렴한 숙소가 Inn이 아니던가? 그런데 건물이 20여 층의 고층인데다 다가가면서 보니 너무 고급스러워 보이긴 한다. 하기야 일본에서도 역 부근마다 있는 토요코인(東橫Inn)이 싸고 깨끗했었다. 카운터 아가씨한테 영어로 물었다. 1박에 얼마냐? 능숙하고 매끄러운 영어로 대답한다.
세금포함 788元(14만 원)이다. 꽥!!!! 왜 이리 비싸냐? 저 요금표를 봐라. 이 부근에 더 싼 데는 없냐? 저~~쪽으로 가 보세요. 제기럴 어깨를 누르는 배낭이 왜 이리 무겁냐? 덥기는 또 왜 이리 덥고....
올 여름은 이상하게도 덥구나... 제기럴... 이미 12시도 넘었다.
흐느적거리며 골목길을 돌다 보니 저만치 허름한 호텔 같은 것이 보인다. 자그마한 강이 있고 다리건너 보이는 간판이 금강지성여관(錦江之星旅館)인걸 보니 이 강이 금강(錦江)인 모양이다. 예쁘장한 카운터 아가씨는 영어도 잘한다. 1박에 얼마냐? 288元인데 12시가 넘었으니 200元(3만 6천 원)만 내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방에 짐을 내려놓고 시원하게 에어컨을 켠 뒤 샤워를 하고나니 살 것 같다. 이제야 배가 고프다. 배낭을 열고 뒤져보니 먹다 남은 웨하스 두어줄, 우한의 아가씨가 선물로 준 계원연자(桂園蓮子) 팔보죽(八寶粥) 한 캔, 과일 몇 개가 고작이다. 몽땅 먹고 뜨거운 물에 커피를 타서 마시고 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내일은 내일이다. 우선 자고 보자.
<계원연자 팔보죽(桂園蓮子 八寶粥)>
상해(上海) / 연자(蓮子) / 계원(桂園:용안龍眼)
우한 아가씨가 준 계원연자 팔보죽(八寶粥)은 중국에서 예로부터 건강식으로 널리 알려진 음식으로 잠깐 소개해 본다. 팔보죽(八寶粥)은 글자 그대로 8가지 건강에 좋은 곡식들을 넣어 끓인 죽인데 거기에 계원(桂園:龍眼)과 연자(蓮子:연꽃 씨)가 들어있다는 뜻이다.
그 8가지가 ①찹쌀 ②율무 ③콩 ④땅콩 ⑤연자(연꽃 씨) ⑥팥 ⑦녹두 ⑧계원인데, 계원(桂園)은 우리나라에서 자라지 않는 과일로 둥근 열매 모양이 용의 눈 같다고 하여 일명 용안(龍眼)이라고도 한다. 중국은 전통 혼례에서 신랑신부 앞에 네 가지 열매를 놓는 풍습이 있다고 하는데 그 과일이
①대추(紅棗) ②땅콩(花生) ③계원(桂園/龍眼) ④연자(蓮子)가 그것인데 조생귀자(早生貴子) 즉, 일찍 귀한 아들을 낳으라는 뜻이라고 한다. 대추는 조(早), 땅콩은 생(生), 계원은 귀(貴), 연자는 자(子)...
이 팔보죽에는 귀한 蓮子(연꽃 씨)와 桂園(용안)이 들어 있으니 귀한 음식인 셈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카운터 아가씨에게 상해에서 한국 가는 여객선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전화를 건다. 그러더니 한국말로 서비스가 된다고 전화기를 건네준다. 수화기를 들고 한국어 서비스 번호를 눌렀더니 9시부터 한국어 서비스가 시작된다고...
느긋하게 길거리에 나와 식사를 하고 9시를 기다려 전화를 다시 했더니 무뚝뚝한 남자목소리로 자기는 SK텔레콤 직원인데 여객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끊어버린다.
나쁜 놈. 모처럼 한국말을 듣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는데....
결국 여객선은 포기하고 상해시내 일일 투어를 할 요량으로 카운터 아가씨에게 예약을 부탁했더니 일일 투어는 9시부터 시작이라 이미 늦었단다. 그러면 박람회를??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로 그것도 못할 짓이란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세월 보냈다고 하지 않던가?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푸동(浦東) 공항으로 향했다. 너무 지쳤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좀 쉬고 싶다.
비행장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무역업을 한다는 27세의 중국청년 우펑(伍風)을 만났는데 영어가 유창하다. 미국에서 유학을 했다고 한다. 명함을 주며 꼭 연락하자고 한다.
푸동 공항에서 한국말이 그리워 아시아나 데스크로 갔더니 한국인은 아니고 중국 한족 아가씨인데 한국말을 제법 잘한다. 영종공항까지 얼마냐고 하니 3.755元(68만 원)이란다!!! 여행하느라 돈을 모두 써버려서 그런 돈이 없으니 좀 더 싸게 가는 방법이 없냐? 친절한 이 아가씨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는 안 된다고 하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더니 중국 남방항공(南方航空)으로 데리고 간다. 남방항공 매표원과 한참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더니 한참 후 마침 표가 하나 있는데 70% DC가격으로 1510元(27만 원)이고 2시 55분 비행기란다.
이런 횡재가 있나?? 인사를 하고 보낸 후 아무래도 너무 고마워서 초콜릿 2개를 사서 창구에 찾아가 건네주었더니 환한 미소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