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인도에 간 한국 광복군
오늘 명주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작가와의 만남'시간을 가졌다.
10대를 위한 여행기인 <달라도 괜찮아.인도잖아>의 저자로 아이들을 만났기에 부담도 있고 모교에서 후배들을 만나는 설렘도 있었다.
사진을 PPT자료로 활용하니
이야기를 풀어 가는데 훨씬 수월했다.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인도에 간 우리 광복군이야기 였다.
인도의 수도 델리에 가면 2차세계대전 당시 주인도 영국군 총사령부 주둔지로 사용된 '레드포드'가 있다. 인도의 마지막 왕이 거주하다 쫓겨나간 망국의 한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1942년 가을,영국 콜린 맥켄지 영국사령관과 김원봉이 이끄는 민족혁명당이 접촉을 한다. 먼저 2명의 대원이 먼저 인도,버마 전선에 뛰어 들어 한 달 남짓 첩보 업무를 수행했다. 성과가 나쁘지 않았던지 영국군은 더 많은 인원을 요구한다.
한국인은 일본인과 비슷하고 일본어도 능통하고 정신적으로 항일의식 단단히 무장되어 있고,뛰어난 신체조건,
명석한 두뇌로 뛰어난 학습 능력을 갖춘 최정예요원이었기 때문이다.
일본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던 영국군 입장에서 선무방송이나 특수전에서 한국 광복군은 매우 필요한 병력이었다.
1943년 8월 중국 충칭을 떠난 총9명의 광복군은 바로 델리 '레드포드'에서 군사훈련,문서번역,암호해독 등,영어 등을 3개월간 체계적으로 교육 받는다.
이 과정에서 특별한 에피소드 하나!
공작대원들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유일하게 레드포드를 떠나 간 곳은 남쪽으로 17km떨어진
가지 아바드 인그라함 학교였다.
그곳에서 뜻밖의 인연을 만난다.
바로 미국인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스였다. 그는 충남 공주에 유관순이 다녔던 영명학교를 세웠고, 35년간 우리 땅에 머물며 식민지 조선의 아픔과 선량한 조선인에게 연민과 사랑을 베풀었다. 푸른 눈의 한국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끔찍하게 한국을 사랑했던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일제는 1940년 11월 강제로 추방했다.
그런 그가 인도에서 우리 광복군을 다시 만났으니 얼마나 반갑고 극적이었을까.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의 에너지 넘치는 밝은 기운과
호기심 넘치는 눈빛과 질문 속에
인도여행담을 즐겁게 펼치다 돌아왔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나라를 찾기 위해 인도ㆍ버마까지 투입 되었던 우리 광복군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보람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