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지 모르게 책 읽기가 일상이 되었다. 누구나 한번 취미가 뭐냐 물으면 딱히 내세울 것이 없어서 독서라고 말한 적이 많았다. 직장 생활에 매여 있다는 핑계로 생계의 한 방편으로 필요한 책만 겨우 손에 잡았다. 베스트셀러로 오르내리는 책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어쩌다 접하는 책도 실용서적 위주로 책꽂이에 자리한다.
퇴직이라는 사회적 정년을 맞이하면서 시간의 여유는 나에게 새로운 도전을 안겼다. 시작하는 일상은 달라진다. 일어나서 운동하고 아침 식사 후에는 출근 대신 텔레비전 화면이 함께 한다. 반복된 생활을 벗어나고자 찾은 곳이 평생 교육 프로그램이다. 도서관과 자치단체에서 다양한 강좌가 무료로 시행하는데 가끔 참가 비용이 드는 때도 있다.
독서 토론 프로그램을 선택하면서 어쩔 수 없이 책과 가까이 한다. 한 달에 한 번 성인들이 모여 선정된 도서를 읽고 각자의 느낌과 의견이 오간다. 처음에는 선정된 책 읽기에 한하여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읽기 모임에 참여 횟수가 이어지면서 그 작가가 펴낸 책이나 관련 도서를 챙겨 보게 되고, 책과 더불어 생활하게 이르렀다. 이전에는 내가 필요한 책만 찾아 읽는 것에서 여러 분야, 다양한 장르를 접한다. 먹고 싶고 맛있는 음식만 골라 삼키는 아이에서, 영양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처럼 골고루 먹는 책 읽기로 달라지고 있다.
하루는 지정 도서인 장편 소설을 읽는데 중반부 몇 페이지에서 눈에 거슬리는 활자가 보인다. 내가 알고 있는 띄어쓰기와 다른 표기가 반복된다. 분명히 한글 맞춤법 규정에 어긋난 표기라는 생각에 따로 메모를 한다. 저녁 무렵 내 의견을 정리해 책 뒷장 출판사 연락처로 메일을 보냈다. 책과 자주 접했다면 이름만 얘기해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에 드는 출판사다. 이런 곳에서 이 같은 편집을 해도 되냐며, 옳구나! 한 건 했다는 나만의 자부심으로 답을 기다렸다.
이날이 마침 휴일이라 이튿날까지 기다려 수신 확인을 열어 본다. 이른 아침에 해당 출판부에서 보내 온 내용이다. 당사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책을 읽어주어 감사하다는 인사와 더불어 문장이 이어진다. 띄어쓰기의 경우 본 출판사의 독자적인 한글 표기법에 따른 것이고, 가독성의 측면에서 독자의 원활한 독서를 돕기 위함이라는 내용이다. 수 관형사와 단위 명사는 띄어 쓰는 것이 국립국어원의 표기이지만 붙여서 표기한단다.
띄어쓰기 규정을 인터넷에서 찾아 본다. 아, 그런데 이런. 내가 알고 있는 바와 달리 원칙은 띄어쓰기가 맞지만, 붙여 쓰기를 허용한다고 되어 있다. 한 가지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말 표기가 언제 바뀌었지. 나름 표기법을 속속들이 알고 적용해 왔고, 수십 년 동안 그렇게 지내왔는데 이렇게 복잡한 규정을 사람들이 어떻게 적용하는지 궁금해진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글쓰기까지 도전하고 있다. 어떻게 읽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되는지, 한 문장 한 문장 써 나가는 과정 모두가, 아기가 첫 발을 디뎌 걸음마를 하듯 아주 조금씩 조금씩 채운다.
호기롭게 던진 메일 내용은 괜히 잠시 출판사의 편집자 탓만 하였다. 나의 짧은 지식이 드러난 셈인가. 글쓰기가 맞춤법이나 오탈자의 교정에 머물기보다 내용 작성에 시간을 보내야 할까보다. 편집에 소홀할 수는 없다. 이제 글쓰기를 시작한 입장에서는 쓰는 것이 먼저다. 삶의 경험이 하나 씩 채워져 나를 만들어 간다.
자만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면 인생길에 활력소가 될 것이다. “독서는 완전한 인간을 만들며, 대담은 기지를 가진 인간을 만들며, 글을 쓰는 것은 정확한 인간을 만든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남긴 말이다. 읽고 대화하고 글 쓰기로 하루를 채워나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