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간 차이의 원인
이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 장 서두에 언급한 양국의 차이점으로 돌아가보자
두 나라는 같은 섬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정치적, 경제적, 생태적으로 왜 그렇게 다른 길을 걸어온 것일까?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자연환경의 차이에 기인한다.
히스파니올라 섬은 주로 동쪽에서 비가 뿌린다.
아이티보다 동미니카 공화국 쪽이 더 강우량이 많고, 따라서 곡식도 더 잘 자란다.
또한 히스파니올라 섬에서 가장 높은 산맥(해발 3,000미터 이상)이 도미니카 공화국 쪽에 위치해 있으며,
이 산맥에서 발원한 강은 주로 동쪽 즉 도미티카 공화국 쪽으로 흐른다.
도미티카 공화국 쪽에는 너른 평야와 계곡, 고원지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토양의 입자가 굵다.
특히 북쪽의 시바오 계곡은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곡창지대 중의 하나이다.
반면 아이티 쪽은 높은 산맥이 동쪽에서 뿌리는 비를 차단하기 때문에 보다 건조하다.
아이티는 도미니카 공화국에 비해 산지가 많고 평야는 적으며, 석회암층이 많고,
토양도 입자가 가늘고 비옥도가 떨어지며 회복이 더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자연의 혜택이 보다 적게 주어진 아이티 쪽이
도미니카 공화국보다 먼저 농업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이러한 역설이 발생한 것은 아이티가 숲과 토양이라는 환경 자본을 희생하여 농업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 즉 겉으로 드러나는 부(富)의 이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손실이 존재한다는 주제에 대해서는 마지막 장에서 다시 다루기로 한다.
두 나라의 경제가 서로 다른 퀘적을 그리게 된 데에는 이렇게 자연환경이 달라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사회.정치적인 차이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무수히 많은 개별적 요소가 양국 경제의 틀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것이다.
그러한 사회.정치적 요인 중 하나는 두 나라가 유럽의 식민지였다는 점이다.
아이티는 부유한 나라 프랑스의 가장 가치있는 해외 식민지였던 반면,
도미티카 공화국은 경제적,정치적으로 몰락해가는 에스파냐의 식민지로
1500년대 말경에는 에스파냐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프랑스는 아이티에서 노예를 기반으로 한 집약적 플랜테이션 농업을 발전시켰지만,
에스파냐는 자국 식민지의 발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프랑스는 에스파냐에 비해 훨씬 많은 노예를 식민지에 들여왔고,
그 결과 식민지 시절의 아이티는 도미니카 공화국에 비해 인구가 7배나 많았다.
오늘날에도 아이티 인구는 1,000만으로 도미니카 공화국의 880만보다 많다.
그러나 국토 면적에서는 아이티가 도미니카 공화국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따라서 인구밀도는 아이티가 도미니카 공화국의 2배에 이른다.
아이티 쪽이 도미니카 곻화국 쪽보다 토양의 비옥도도 더 떨어지고 삼림이 빠르게 파괴되어간 데에는
높은 인구밀도와 낮은 강우량이 주된 원인이 되었다.
게다가 아이티에 노예를 수송해온 프항스 선박들은 유럽으로 돌아가면서 아이티의 목재를 싣고 갔기 때문에
19세기 중반까지는 산간 고지대를 제외한 아이티의 산과 들에서 나무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두 번째 사회, 정치적 요인은
에스파냐어를 사용하고 유럽게 인구가 많은 도미니카 공화국 쪽이 크리울어를 상용하고
아프리카계 인구가 많은 아이티보다 유럽 이민자들에 대해 보다 수용적이었다는 점이다.
유럽인들의 이민과 투자가 아이티에서는 1804년 이후 헌법에 따라 제한되었으나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유럽 이민자들 중에는 중산층의 사업가 및 전문가들이 많아 도미니카 공화국의 발전에 공헌했다.
그리하여 도미니카 공화국은 1812~1865년 사이에 자발적으로 다시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었고
1861~1865년 사이에는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에스파냐의 보호령이 되었다.
양국 경제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사회적 요인은
노예제의 역사를 경험한 아이티인들 대부분이 각자의 땅을 소유하고 자급자족하는 데에 치우쳐
환금작물 개발 및 유럽 국가들과의 교역에 소홀히 했던 데 반해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수출 경제와 해외 무역을 발전시킨 점이다.
아이티의 엘리트층은 자국보다 프랑스에 대한 강한 동질감을 느꼈던 까닭에
땅을 소유하거나 농업 경제의 발전에 힘쓰지 않았고,
그보다는 주로 농민들을 통해 부를 얻고자 했다.
양국 경제에 차이를 가져온 최근의 요인으로는 두 독재자의 차이를 들 수 있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트루히요는(비록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서이긴 했지만) 나라의 근대화와 공업 경제의 발전을 추구했지만
아이티의 뒤발이에는 그렇지 않있다.
이는 두 독재자 개인의 차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으나 어느 정도 두 나라 사회의 차이를 반영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지난 40년간 아이티는 도미니카 공화국에 비해 삼림 파괴와 빈곤의 문제가 한층 심해졌다.
도미니카 공화국에는 대부분의 삼림이 보존되어 잇는 산태에서 산업화가 싲가되엇기 때문에
투루히요 정권은 수력 발전을 위해 댐 건설 계획을 세웠고, 바라게르와 그 이후 의 대통령들은 이 계획을 현실화시켰다.
발라게르는 땔감 때문에 삼림을 훼손할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프로판가스와 액화 천연가스를 수입했다.
그러나 빈국인 아이티의 주민들은 숲에서 나무를 베어 숯을 만들어 사용할 수밖에 없았기 때문에
그나마 남아 있던 삼림이 급속도로 파괴도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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