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이반 일리히님
저자 이반 일리히
이 책의 지은이 이반 일리히는 1926년 오스트리아의 비인에서 출생했다.
로마의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찰스부르크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1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아일랜드-푸에르토리고 교구에서 보좌신부로 일했으며, 1956년부터 1960년까지 푸에르토리코의 가톨릭대학교 부총장을 지냈다. 하지만 가톨릭 사제로 있으면서 평범한 신자들만이 교회를 구원해 줄 것이라 믿으며 사제 확대정책에 반대한 것, 피임정책을 지지한 것 등 일련의 교회 정책에 반대한 것이 빌미가 되어 교황청과 마찰을 빚다가 1969년 사제직을 떠났다.
사제직을 떠난 후 『학교 없는 사회』, 『병원이 병을 만든다』 등 근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글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고, 서독의 캇셀대학과 괴팅엔대학에서 유럽 중세사를 강의하는 등 저술과 강의활동에 전념했다.
2002년 12월 2일 독일 브레멘 자택에서 향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가디언〉, 〈르몽드〉, 〈뉴욕 타임즈〉 등을 사후 특집 기사 등을 통해 그에게 20세기 최고의 지성 중 한 명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역자 박홍규
영남대학교 법대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미국 하버드 법대, 영국 노팅엄 법대, 독일 프랑크푸르트 법대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영남대학교 법대교수로 재직하면서 전공인 법학 이외에 인문/예술학/교육학 등 다방면에 걸쳐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거나 알려졌어도 잘못 알려진 사람을 새로운 시각으로 독자들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주요저작으로는 『베토벤 평전-갈등의 삶, 초월의 예술』(2003), 『자유인 루쉰-위대한 지식인의 초상』(2002), 『카프카, 권력과 싸우다』(2003), 『우리는 사랑하는가-에리히 프롬의 생애와 사상』(2004)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오리엔탈리즘』(2000), 『감시와 처벌』(1989) 등이 있다.
001. 임상적 병원병
002. - 현대 의학이라는 유행병
003. 사회적 병원병
004. - 생활의 의료차
005. 문화적 병원병
006. - 고통의 말살
007. - 질병의 창조와 제거
008. - 죽음에 대한 죽음
009. 건강의 정치학
010. - 특수한 반생산성
011. - 정치적 대응책
012. - 건강의 회복
쉽게 신화가 되어 버린 ‘거짓말’이 있다.
국가의 안전은 무력의 균형이라고 선전되었다. 사회복지 사업은 사회생활의 개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못박아 놓았다. 경찰의 증가와 경찰의 보호는 안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호도되었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생산활동인 것처럼 인식케 했다. 심지어 아동이 학교에 가는 것과 학습은 동일시되고 있다. 또 의사한테서 치료를 받기만 하면 건강치료를 받은 것처럼 누구나 오해하게 만든다.
건강, 학습, 존엄성, 독립, 창조적 노력 등의 가치가 이들 가치에 봉사하고 있는 제도의 수행보다 못한 것으로 ‘신화화’된 것이다. 때문에 이런 분야의 예산이 늘어나거나 인력이 확충되는 것에 반대하는 자들은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 오해되거나 반동으로 취급되기까지 한다.
일리히는 이런 오도된 가치관, 타율이 지배하는 사회에 메스를 들이댔다. 때로 그의 주장은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그의 정치한 분석은 『르몽드』, 『가디언』 등 서구 언론이 그에게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중 한명이라는 칭송을 아끼지 않게 했다.
『학교 없는 사회』와 더불어 일리히의 최대 화제작으로 꼽히는 『병원이 병을 만든다』에서 일리히는 전문가의 의료 통제가 낳은 파괴적 경향에 대해 다룬다. 그는 진찰과 치료가 도리어 병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 주목하고, 질병의 치료에 의해 생기는 역설적인 피해에 대해 고발한다. 그는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병원에서 비롯되는 질병으로부터 사회를 회복시키는 것은 정치의 임무이지 전문가의 임무가 아니라고 단언한다.(우리는 이미 의사와 병원이라는 전문가에게 너무 많이 속아왔다)
▶의료기술의 진보와 질병간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14세기 전 유럽을 강타했던 페스트(흑사병)는 16, 17, 18세기에 걸쳐 정점에 이른다. 하지만 예르생(Alexandre Yersin)이 페스트 균을 발견한 건 19세기, 그것도 한참 후반인 1894년이다. 중세 사회사를 연구한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의 분석에 따르면 페스트가 잦아들게 된 것은 의사의 치료나 항생제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유럽 전역에 걸쳐 일어났던 도시의 대화재들 때문이었다. 화재가 주택형식을 바꿔놓았다. 사람들은 목재 주택에서 석조 주택으로 주거형식을 변형시켰고 이에 따라 실내와 사람들이 청결해지기 시작했으며, 작은 가축들이 사람들의 주거 공간과 멀리 떨어지게 됐다. 이것이 사람들과 페스트를 멀어지게 했다.
이 책에서 일리히가 제시하고 있는 자료도 이 같은 내용을 뒷받침한다. 일리히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 뉴욕에서의 결핵 사망자수는 1812년에 1만 명당 7백 명 이상의 비율이었다. 코흐가 처음으로 결핵균을 분리 배양했던 1882년에는 1만 명당 3백7십 명까지로 저하되었다. 나아가 최초로 결핵 용양소가 설치된 1910년에는 1만 명당 1백80명까지로 저하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 후 항생물질의 사용이 일반화되기 이전에 결핵에 의한 사망률은 1만 명당 48명이었다. 결핵은 그 병원(病原)이 이해되고 특수한 치료법이 발견되기 전에 그 독성의 대부분을 상실했고, 따라서 그 사회적 중요성도 대체로 잃고 말았다. 콜레라, 이질, 장티푸스 등도 이와 유사하게 의사나 병원의 통제와 무관하게 정점에 이르렀다가 차차 감소해왔다. 이런 질병을 잡아낸 것은 의사나 병원이 아니었다. 우선 주택의 개선과 미생물 유기체가 갖는 독성의 감퇴 등이 지적될 수도 있겠고, 역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영양의 개선으로 인간의 저항력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항상 이런 문제는 뒤로하고 의사의 숫자가 늘어나면, 의료 기계가 현대화 되면, 병원이 늘어나면 건강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오해에 젖어 있다. 사람들은 의료의 진보와 질병의 상관관계에 대해 일종의 환상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의료비는 ↑ 평균수명은 ―
의사의 숫자가 늘어나면, 의료 기계가 현대화되면, 병원이 늘어나면 건강 치료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철저한 오해다.
1970년을 기준으로 과거 20년 간 미국의 물가지수는 74% 상승되었으나, 의료 관리 경비는 330%나 급상승하였다. 1950년부터 1971년 사이 건강보험을 위한 공적 비용의 지출은 10배나 증가되었고, 사적 보험의 급여는 8배나 증가되었다. 그리고 직접 주머니에서 지불된 액수는 3배나 되었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다른 나라의 총 의료비도 미국에 병행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산업국가-대서양, 스칸디나비아, 동구-에 있어서 보건 부문의 성장률은 GNP 그 자체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다고 하여도 건강에 대한 경비는 1969년부터 1974년 사이에 40%나 증가되었다. 이건 부유한 국가만의 특권이 아니다. 콜럼비아-부유한 자를 우대하는 곳으로 악명 높은 빈곤국이다-에서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10% 이상이 건강관리에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의료비용의 급상승이 평균 수명을 눈에 띄게 연장시키거나 결정적 질병을 잡아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의사가 병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론적으로 의사는 첫 진단으로 그의 환자가 어떤 질병에 걸려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안전 장치(fail-safe)의 원칙에 의해 환자에게 질병이 없다고 말하기보다는 언제나 어떤 질병이 있다고 말하는 쪽으로 행동한다. 의학적 결정의 규칙이 의사를 압박하여 건강하다기 보다는 질병이 있다고 진단하는 것으로 안전함을 추구하게 한다.
하지만 의사의 이런 행위는 존재하지 않는 병을 양산해 내고 있다.
이와 같은 왜곡의 고전적 실례로 일리히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1934년에 행해진 뉴욕 공립학교에서의 실험을 들 수 있다. 뉴욕 시의 공립학교 1천 명의 11세 아동에 대한 조사에서는 61%가 편도선을 제거하도록 요구되었다. 61%의 아동 외에 39%가 다시 다른 의사 그룹의 진단을 받았는데, 그 중 45%가 편도선 절제를 받아야 하고 나머지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쳐 수술이 필요 없다고 했던 아동이 또 다른 의사 그룹에 의해 재진단을 받게 되자 남은 아동의 46%가 편도선 절제를 권고 받았다. 이 중에 또 다시 남은 학생을 대상으로 제 3회의 진단을 받았을 때, 거의 같은 비율의 아동이 편도선 절제를 필요로 한다고 보고가 나왔다. 그 결과 편도선 절제를 받지 않아도 되는 아동은 1천명 중 단지 65명에 불과했다.
기하급수적인 의료비 상승을 유발하는 고가의 장비에 의한 검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66년 미국에서 실시한 한 검사에 의하면 83개의 골반 수술을 권유받은 증세 중 인간과 기계 모두가 옳았던 것이 22개, 그리고 37개의 예는 컴퓨터가 옳았고 의사의 진단은 틀렸으며, 11개의 예에서는 의사가 컴퓨터가 틀렸음을 입증했고, 10개의 예에서는 의사도, 기계도 모두 틀렸다.
단순히 진단만이 문제는 아니다. 1968년을 기준으로 1968년, 영국의 경우 캐나다에서 보다 남자가 1.8배 여자가 1.6배의 외과 수술을 받았는데 대부분 편도선 절제술, 치질 절제술, 사타구니 탈장 수술과 같은 임의의 수술이 2배 이상이었다. 이러한 차이를 결정하는 중요한 인자는 이용 가능한 침대 수, 지불 가능한 병원비, 외과의사의 수 등이었다. 현재 의료비 중 가장 급격한 상승을 보이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노인에 대한 치료비다. 그것도! 충분히 돈을 지불할 수 있는 노인에 대한 치료비가 급상승하고 있다.
▶의사와 의료제도가 만들어 내는 병원병(病院病)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우선 1장 「임상적 병원병」에서는 의료 기술성과의 대차대조표를 제시하고 있다. 과거 3세대에 걸친 비교 검토를 통해 질병의 변화와 소위 의료의 진보라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직접적인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병을 일리히는 임상적 병원병이라고 불었다. 제 2장 「사회적 병원병」에서는 의료의 사회적 조직이 건강을 직접적으로 부정하는 효과를 다룬다. 일리히는 이것을 사회적 병원병이라고 불렀다. 제 3장 「문화적 병원병」에서는 의료 이데올로기가 개인의 활력에 대해 초래하는 부정적 영향을 다룬다. 일리히는 이것을 문화적 병원병이라고 불렀다.
▶건강의 정치학
일리히는 4장 「건강의 정치학」을 통해 의료제도의 불합리함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일리히는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병원에서 비롯되는 질병으로부터 사회를 회복시키는 것은 정치의 임무이지 전문가의 임무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최근 세대 동안 건강관리에 대한 의료(제도)의 독점은 한 번도 점검되지 않고 확대되어 왔으며 우리들의 몸에 관한 자유를 침해해 왔다. 이것이 일리히의 주장이다.
일리히는 『학교 없는 사회』, 『공생의 사회』,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오지 않는다』 등일련의 저작 속에서 일관되게 주장해 왔듯이 타율적 관리를 배제하고 자율적 통제가 지배하는 사회 패러다임을 꿈꾸고 있다. 의료부분의 있어서의 자율적 공생의 계획을 꿈꾸는 일리히는 보건 전문가에 의한 관리에 대해 제한을 목표로 삼는 정치적 계획 그리고 자신의 건강 관리를 위한 힘을 민중들이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계획은 산업적 생산양식에 대한 철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한다.
우리는 이제… 쉽게 신화가 되어버린 거짓말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