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선 발로 달려가 맞이하고 싶은 손님이 오는 날이다. 첫 번째 음식으로, 고기만두 속을 준비하고 있다. 고기에 파를 듬뿍 넣고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해 두고, 숙주를 삶고 두부에 물기를 제거하고 당면을 삶고 배추와 부추를 씻어놓는다. 어제는 항상 다니는 마트에 만두피를 사러 갔는데 당연히 있으리라 믿었던 만두피가 동이나 있었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황당한 일이었다. 떡만두국 대신 밥을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다른 동네 마트에 갔더니 천만다행으로 딱 세 봉지 남아있었다. 두 개만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기심이 발동하여 세 개를 집어들었다.
주방에 서서 손님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얼마만인가. 시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에는 추석과 명절과 생신에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빴었다. 주말부부였으므로 지금처럼 그의 도움을 살뜰하게 받을 수는 없었다. 무거운 시장 가방을 들고 4층을 오르내리기를 일주일, 식혜와 물김치와 고기 양념은 미리미리 준비하고 나물이며 전을 부칠 재료 등 이것저것 준비하는데 3일 정도를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준비가 된 후에야 당일 날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하면 아침상을 차릴 수 있었다. 힘들었지만 가족이 모두 모여 밥상에 둘러앉아 두러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안이면 저절로 만족스러워졌다. 우리 며느리 애썼구나 맛있다 맛있어. 어머님 말씀 한마디에 내 피로감은 씻은 듯 사라졌다. 그런 날 저녁에는 참 잘했구나 나 자신을 칭찬하였다. 남편의 눈빛에서 고마움이 읽어졌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시댁 식구들이 모이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물론 내가 자청해서 음식을 준비해놓고 초대를 하면 모일 것이나, 나는 그러지 못하였다. 음식을 차려놓고 다들 오시라고 해야지 이번 설에는 하다가도 결국 설이 코앞에 다가오면 모든 게 귀찮아지는 것이었다. 나이는 먹어가고 체력은 떨어지고 여기가 아프고 저기가 아프고 핑계는 사실 수두룩했지만, 내 마음의 부족함이라는 것을 감출 수는 없다.
두 번째 음식으로, 명절 전에 미리 사두었던 전복을 해동시킨 뒤 솔로 빡빡 문질러 깨끗하게 씻었다. 인터넷에 들어가 어떤 종류의 요리가 좋을까 여기저기 뒤져보았다. 전에는 간장 양념을 뿌린 뒤 쪄내는 방법으로 요리를 했었는데 구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 좋고 참한 요리법이 없을까 했는데, 마침 버터에 구워 각종 고명을 올려놓은 전복요리를 발견하였다. 버터에 고소한 맛이 전복에 배어들면 괜찮겠다 싶었다. 아니게아니라 보기도 좋고 신식 맛이다.
야채전 속을 세 번째로 만들었다. 고추와 표고버섯과 송이버섯 깻잎을 다듬어 씻어 밀가루를 묻혀 속을 채워 넣어 두었다. 야채 샐러드와 미리 재워두었던 갈비에 곁들일 야채 무침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준비해서 냉장고에 넣었다. 떡만두국 고명 네 가지를 만들었다. 음식을 미리 가득 차려놓는 쪽보다는 바로바로 만들어진 따끈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처음 내 집에 오는 귀한 손님이 아닌가.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오랜만이라 그런지 나이를 먹어서인지 예전처럼 바로바로 생각과 몸이 일치되어 움직여주지를 않는다. 음식을 만들다가도 이것이 맞는 방법인가 싶어 자꾸만 인터넷을 뒤져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그럼에도 쉬엄쉬엄 이렇게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는 내가 수상쩍지 않은가. 은근히 흥분된 내가 나도 보일 정도이니까. 화장을 하면 피부가 숨을 잘 쉬지 못하는 것 처럼 답답해 웬만하면 화장을 피하는 내가 엷게 화장도 했다. 연노랑 스웨터에 스카프까지 매고 멋있다기보다는 깔끔하다는 인상을 보이려 애쓰는 내가, 의문스럽지 않은가. 딩동! 딩동! 벨이 울렸다.
어서 오게나 어서 오게나
반가움에 달려가 얼싸안고 싶은 사람아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온 안타까운 사람아
백송이 장미꽃 다발을 안고 장미꽃처럼 웃던 다움
덩달아 내 늙은 가슴도 장밋빛으로 물들었네
다움과 홍길
둘이 함께인 사진을 보는 그 순간
세상 행복이 봄날 햇살처럼 나를 비추었네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었네
아무 때나 들여다보고는 아무 때나 웃었네
남자다운 남자와 여자다운 여자
맑고 선명하면서 은근히 빛나는 사랑을
무엇에 견준단 말인가
어서 오게나 어서 오게나
우리가 살아온 인생이 평범해서
특별하게 보여줄 게 없는 게 흠이라면 흠이네
근면하고 성실하고 검소하게 살아왔으니
그것만으로도 나는 자랑스럽네
돈보다 명예보다 사랑이 먼저라는, 다움
따스하고 향기로워 귀한 여자이지 않은가
어서 오게나 어서 오게나
멀리 떠났던 자식 돌아온 듯 기쁘고 반갑네
어디 한군데 미운 구석 없으니 인연중 인연이요
맛있는 음식 있으면 밥상에 불러 앉히고 싶어지니
식구중 식구네
행복을 받으려고 하기 이전에
행복을 주는 우리로 살아가보세나
어서 오게나 어서 오게나
손님이 내 집으로 처음 인사 오는 날 이 글을 액자로 만들어 선물로 건네주고 싶었다. 마주보고 정겨운 목소리로 읽어주고 싶었다. 바로 그 손님의 벨소리다. 멀리 떠났던 자식이 돌아온 듯 반가움에 달려나갔다. 어서 오시게 어서 오시게!
백년손님 온다고 저리 열심이니 누가 말릴까. 평소에는 아프다고 자꾸만 누워있던 내가 주방에 내내 서서 신이 난 듯 움직이고 있으니 남편이 던진 말이다. 내가 정성으로 준비한 만큼 손님은 참 복스럽게도 잘 먹는다. 접시마다 말끔하게 비워졌다. 떡만두를 좋아한다기에 특히 고기만두를 좋아한다기에 한 그릇 안겨주었다. 마지막 국물까지 그릇을 번쩍 들고 마신다. 음식을 준비한 사람에 대한 예의가 백점 만점이다. 술을 멀리하던 남편도 기분이 좋은지 주거니 받거니 대여섯 잔을 마시면서 얼굴에 홍조가 번지고 들떠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미를 위할 줄 알고 고마워할 줄 아는 딸아이는 비워진 접시들을 얼른얼른 가져다가 설거지를 해 놓는다. 사랑과 젊음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딸아이와 백년손님, 둘 때문에 아비인 그와 어미인 나는, 밤나무 밑에서 신이 나서 주머니가 불룩하게 알밤을 줍듯이, 육십 후반 인생길에 떨어져 내리는 아람, 기쁨과 행복과 사랑을 냉큼냉큼 가슴 가득 주워 담는 중이다.
2022년 2월 3일